100일 정성으로 빚은 술
윤숙자 소장 “입안에 머금으면 은은한 사과향이 난다”
윤숙자 한국전통음식연구소장은 삼해주의 매력에 빠져 있다. 궁중 술을 연구하면서 삼해주와 인연을 맺은 그는 “삼해주를 입안에 머금으면 은은한 사과향이 난다”며 “부드러우면서 혀에 스며드는 맛이 산뜻하고 세련됐다”고 말했다.
쌀과 누룩 그리고 물만 가지고 빚는 삼해주에서 사과향이 나는 것은 왜 일까.
◆‘임금님도 먹던 술’ = 사과향의 바탕은 ‘정성’이다.
삼해주(三亥酒)는 글자 그대로 12지간의 마지막 날인 ‘돼지날’을 택해 세 달 동안 빚는다. 집안에서 가장 손맛이 뛰어난 며느리가 100일 기도하는 정성으로 빚는 술이 삼해주다. 윤 소장은 “음력 1월부터 세 달 동안 빚는 동안 자연스런 사과향이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대부 집안과 궁중에서 즐겨 먹었던 삼해주를 빚는 방법은 다양한 문헌에 전해온다. 17세기 실학자 홍만선이 쓴 농서 겸 생활서인 ‘산림경제’에는 “정월 첫 해일에 찹쌀 한 말을 백번 씻어 가루로 만들어 묽은 죽을 쑤어 식힌 데에다 누룩가루와 밀가루를 한 되씩 섞어 독에 넣고, 다음 해일에 찹쌀과 멥쌀 각 한 말을 백 번 씻어 가루로 만들고 이것으로 술떡을 푹 끓여서 술밑에 섞고, 또 세 번째 해일에 백미 다섯 말을 백번 씻어 떡으로 찐 후 식힌 것을 끓인 물 세 양푼에 풀어서 다시 덧술해 3개월 동안 익혀 낸다”고 기록돼 있다.
1670년 안동 장씨 부인이 각종 음식 만드는 방법을 한글로 쓴 ‘규곤시의방’에는 정월 첫째 둘째 셋째 해일에 걸쳐 빚는다고 기록돼 있어 집집마다 술 빚는 방법이 다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해주는 음력 정월에 담기 시작해 봄 버들개지가 날릴 때쯤 마신다고 해 유서주(柳絮酒)라는 낭만적인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윤 소장은 “좋은 술을 빚기 위해 누룩을 잘 만들고, 날씨와 바람 등을 고려해 술을 안치되 온도와 술독관리에도 최선을 다 해야 하는데 100일 간의 정성을 들여야 하는 삼해주는 엄정한 가풍이 없으면 이룰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비의 기개와 낭만이 깃든 술문화 = 전통주가 대중화되기 위해선 우선 맛있고 좋은 술이 나와야 한다. 서울시 삼해주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 한국전통음식연구소에서 삼해주 빚는 법을 가르치고 있는 권희자씨는 “술을 잘못 만들고 전통주를 외치기만 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권씨는 조선조 23대 왕 순조의 둘째딸과 결혼한 김병주의 5대 손녀 며느리다. 김병주의 집안은 김씨가 부마가 된 후 궁에서 나온 상궁들에 의해 삼해주를 제사에 사용하게 됐다.
권씨는 “대학교수였던 시아버지는 집안에 술을 만들어 두고 반주를 즐겼다”며 “많은 며느리들 중 술 담그는 손맛이 좋은 며느리가 제사에 사용될 술 빚는 일을 맡았다”고 말했다.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전통 술문화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윤 소장은 “우리 선조는 술을 음식 가운데 가장 귀한 것으로 여겨 정성을 다해 담갔다”며 “그래서 술 마시는 법을 소학에서 가르치고 누구나 술 마시는 범절이 깍듯했다”고 말했다.
윤 소장은 “술을 대접받는다는 것은 정신과 육체가 성숙한 인격자라고 인정받는 것을 뜻했다”며 “선비의 기개와 낭만을 느낄 줄 아는 문화가 살아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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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숙자 소장 “입안에 머금으면 은은한 사과향이 난다”
윤숙자 한국전통음식연구소장은 삼해주의 매력에 빠져 있다. 궁중 술을 연구하면서 삼해주와 인연을 맺은 그는 “삼해주를 입안에 머금으면 은은한 사과향이 난다”며 “부드러우면서 혀에 스며드는 맛이 산뜻하고 세련됐다”고 말했다.
쌀과 누룩 그리고 물만 가지고 빚는 삼해주에서 사과향이 나는 것은 왜 일까.
◆‘임금님도 먹던 술’ = 사과향의 바탕은 ‘정성’이다.
삼해주(三亥酒)는 글자 그대로 12지간의 마지막 날인 ‘돼지날’을 택해 세 달 동안 빚는다. 집안에서 가장 손맛이 뛰어난 며느리가 100일 기도하는 정성으로 빚는 술이 삼해주다. 윤 소장은 “음력 1월부터 세 달 동안 빚는 동안 자연스런 사과향이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대부 집안과 궁중에서 즐겨 먹었던 삼해주를 빚는 방법은 다양한 문헌에 전해온다. 17세기 실학자 홍만선이 쓴 농서 겸 생활서인 ‘산림경제’에는 “정월 첫 해일에 찹쌀 한 말을 백번 씻어 가루로 만들어 묽은 죽을 쑤어 식힌 데에다 누룩가루와 밀가루를 한 되씩 섞어 독에 넣고, 다음 해일에 찹쌀과 멥쌀 각 한 말을 백 번 씻어 가루로 만들고 이것으로 술떡을 푹 끓여서 술밑에 섞고, 또 세 번째 해일에 백미 다섯 말을 백번 씻어 떡으로 찐 후 식힌 것을 끓인 물 세 양푼에 풀어서 다시 덧술해 3개월 동안 익혀 낸다”고 기록돼 있다.
1670년 안동 장씨 부인이 각종 음식 만드는 방법을 한글로 쓴 ‘규곤시의방’에는 정월 첫째 둘째 셋째 해일에 걸쳐 빚는다고 기록돼 있어 집집마다 술 빚는 방법이 다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해주는 음력 정월에 담기 시작해 봄 버들개지가 날릴 때쯤 마신다고 해 유서주(柳絮酒)라는 낭만적인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윤 소장은 “좋은 술을 빚기 위해 누룩을 잘 만들고, 날씨와 바람 등을 고려해 술을 안치되 온도와 술독관리에도 최선을 다 해야 하는데 100일 간의 정성을 들여야 하는 삼해주는 엄정한 가풍이 없으면 이룰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비의 기개와 낭만이 깃든 술문화 = 전통주가 대중화되기 위해선 우선 맛있고 좋은 술이 나와야 한다. 서울시 삼해주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 한국전통음식연구소에서 삼해주 빚는 법을 가르치고 있는 권희자씨는 “술을 잘못 만들고 전통주를 외치기만 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권씨는 조선조 23대 왕 순조의 둘째딸과 결혼한 김병주의 5대 손녀 며느리다. 김병주의 집안은 김씨가 부마가 된 후 궁에서 나온 상궁들에 의해 삼해주를 제사에 사용하게 됐다.
권씨는 “대학교수였던 시아버지는 집안에 술을 만들어 두고 반주를 즐겼다”며 “많은 며느리들 중 술 담그는 손맛이 좋은 며느리가 제사에 사용될 술 빚는 일을 맡았다”고 말했다.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전통 술문화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윤 소장은 “우리 선조는 술을 음식 가운데 가장 귀한 것으로 여겨 정성을 다해 담갔다”며 “그래서 술 마시는 법을 소학에서 가르치고 누구나 술 마시는 범절이 깍듯했다”고 말했다.
윤 소장은 “술을 대접받는다는 것은 정신과 육체가 성숙한 인격자라고 인정받는 것을 뜻했다”며 “선비의 기개와 낭만을 느낄 줄 아는 문화가 살아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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