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적 있어도 이방인 취급해요”
외국인 근로자들 12명과 태안 유류피해 현장 자원봉사 다녀와
<사진> 지난 15일 태안 유류유출 피해현장에 봉사활동 다녀온 주디씨 가족. 사진 아래쪽 가운데가 주디씨, 왼쪽이 남편 미잔씨, 그리고 주디씨 동생들.
“해변가에 개미떼처럼 모여 서로 도와주는 봉사활동 모습이 감동적이었어요. 외환위기 때 금모으기에 참여했던 수많은 국민들의 모습과 함께 결코 잊지 못할 장면이예요. 한국인들 대단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어요.”
필리핀인 주디씨는 외국인 근로자 12명과 함께 지난 15일 태안 유류유출 피해현장으로 자원봉사활동을 다녀왔다.
그녀는 그곳에서 망가진 삶의 터전을 일으켜 세우려는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필리핀에서는 이러한 대규모 자원봉사활동을 볼 수 없었기에 감동의 깊이는 더했다.
주디씨가 태안에 간 이유는 어려운 이웃의 아픔에 작지만 도움을 주고 싶어서다. 특히 한국인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기에 동참하고 싶어 남편과 동생들까지 모두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그녀에게 한국은 좋은 기억만 주지 않았다. 학원에서 영어강사로 일하고 있는 그녀는 자주 택시를 이용하는데 가끔 택시기사들이 일부러 멀리 돌아간다. 외국인이 길을 모를 것이라는 생각에 택시비를 많이 받기 위해서다. 한번은 유창한 한국말로 항의해 기본요금만 낸 적도 있다.
집 주변을 가족들과 지나가다가 노인들로부터 자신을 비하하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젊은이들은 그렇지 않는데 나이 많은 사람들 일수록 외국인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많아요. 한국국적을 오래전에 취득했지만 저는 여전히 이방인이죠.” 주디씨는 자원봉사 현장에서 보았던 것처럼 일상생활에서도 친절해주길 기대했다.
특히 그녀는 한국의 민주화를 부러워한다. 고향 필리핀은 아직 민주사회로서 부족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투표가 한국인으로 3번째 투표에 참여한 거예요. 투표장에 줄서있는 모습을 보면 매우 부러워요.”
그녀의 꿈은 필리핀에 고아원을 운영하는 것이다. 부모없는 아이들에 대한 교육지원이 부족한 필리핀에서 작지만 소외된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고 싶기 때문이다. 주디씨는 지난해 유치원 가방 2박스를 필리핀으로 보내 가방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정도로 아동교육에 관심이 높다.
주디씨의 고향은 필리핀 가비데(Cavite)다. 대학에서 초등부 교육과를 졸업한 그녀는 대학생 때 한국인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회사에 다니던 엔지니어 출신 남편을 만나 1992년 한국에 들어와 결혼했다.
한국에 입국한 이후 그녀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남편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절친한 친구와 함께 의류회사를 차렸지만 2년 후 회사는 문을 닫았다. 그간 벌어 놓았던 대부분 재산을 날렸다.
더욱이 척추에 이상을 느낀 남편은 큰 수술을 받았다. 여기에 간경화가 발생해 남편은 약으로 살아갔다. 남편과 사이에 낳은 두 아이도 폐렴에 자주 걸려 병원비만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가정경제를 책임지게 된 그녀는 영어강사를 시작했다. 남편 병간호와 아이 돌보기, 직장까지 3가지 일을 떠맡았던 것이다. 그녀의 이런 노력에도 한국인 남편은 3년전 간경화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아이들 때문에 그녀는 슬퍼할 시간도 없었다. 본격적으로 영어강사에 나섰다. 먹고살기 위해서다. 이렇게 성남지역에서만 10년째 영어강사를 하고 있다.
“남편이 사망하자 국가가 지원해 주던 영세민 지원이 끊겼어요. 내가 직장을 다니고 있다는 게 이유지요.” 주디씨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어 지훈이와 지영이를 필리핀에 있는 어미니에게 보냈다. 아이들이 다행이 잘 적응하고 있다. 요즘은 인터넷 채팅과 화상통화를 통해 서로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그녀는 지난해 8월 동갑내기 방글라데시인 미잔씨와 새로운 삶을 꾸렸다. 남편 미잔씨는 한국내 방글라데시 근로자로 구성된 방글라데시공동체를 이끌며 고국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앞장서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대통령 시장 등 지도자들 100여명이 감옥에 있죠. 부정한 지도가가 있으면 국민이 불행해 집니다. 한국의 민주적 투표는 매우 부럽습니다.” 미잔씨는 한국에서 본 민주적 절차를 고국에서도 실현되길 기대했다.
성남=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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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근로자들 12명과 태안 유류피해 현장 자원봉사 다녀와
<사진> 지난 15일 태안 유류유출 피해현장에 봉사활동 다녀온 주디씨 가족. 사진 아래쪽 가운데가 주디씨, 왼쪽이 남편 미잔씨, 그리고 주디씨 동생들.
“해변가에 개미떼처럼 모여 서로 도와주는 봉사활동 모습이 감동적이었어요. 외환위기 때 금모으기에 참여했던 수많은 국민들의 모습과 함께 결코 잊지 못할 장면이예요. 한국인들 대단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어요.”
필리핀인 주디씨는 외국인 근로자 12명과 함께 지난 15일 태안 유류유출 피해현장으로 자원봉사활동을 다녀왔다.
그녀는 그곳에서 망가진 삶의 터전을 일으켜 세우려는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필리핀에서는 이러한 대규모 자원봉사활동을 볼 수 없었기에 감동의 깊이는 더했다.
주디씨가 태안에 간 이유는 어려운 이웃의 아픔에 작지만 도움을 주고 싶어서다. 특히 한국인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기에 동참하고 싶어 남편과 동생들까지 모두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그녀에게 한국은 좋은 기억만 주지 않았다. 학원에서 영어강사로 일하고 있는 그녀는 자주 택시를 이용하는데 가끔 택시기사들이 일부러 멀리 돌아간다. 외국인이 길을 모를 것이라는 생각에 택시비를 많이 받기 위해서다. 한번은 유창한 한국말로 항의해 기본요금만 낸 적도 있다.
집 주변을 가족들과 지나가다가 노인들로부터 자신을 비하하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젊은이들은 그렇지 않는데 나이 많은 사람들 일수록 외국인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많아요. 한국국적을 오래전에 취득했지만 저는 여전히 이방인이죠.” 주디씨는 자원봉사 현장에서 보았던 것처럼 일상생활에서도 친절해주길 기대했다.
특히 그녀는 한국의 민주화를 부러워한다. 고향 필리핀은 아직 민주사회로서 부족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투표가 한국인으로 3번째 투표에 참여한 거예요. 투표장에 줄서있는 모습을 보면 매우 부러워요.”
그녀의 꿈은 필리핀에 고아원을 운영하는 것이다. 부모없는 아이들에 대한 교육지원이 부족한 필리핀에서 작지만 소외된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고 싶기 때문이다. 주디씨는 지난해 유치원 가방 2박스를 필리핀으로 보내 가방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정도로 아동교육에 관심이 높다.
주디씨의 고향은 필리핀 가비데(Cavite)다. 대학에서 초등부 교육과를 졸업한 그녀는 대학생 때 한국인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회사에 다니던 엔지니어 출신 남편을 만나 1992년 한국에 들어와 결혼했다.
한국에 입국한 이후 그녀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남편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절친한 친구와 함께 의류회사를 차렸지만 2년 후 회사는 문을 닫았다. 그간 벌어 놓았던 대부분 재산을 날렸다.
더욱이 척추에 이상을 느낀 남편은 큰 수술을 받았다. 여기에 간경화가 발생해 남편은 약으로 살아갔다. 남편과 사이에 낳은 두 아이도 폐렴에 자주 걸려 병원비만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가정경제를 책임지게 된 그녀는 영어강사를 시작했다. 남편 병간호와 아이 돌보기, 직장까지 3가지 일을 떠맡았던 것이다. 그녀의 이런 노력에도 한국인 남편은 3년전 간경화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아이들 때문에 그녀는 슬퍼할 시간도 없었다. 본격적으로 영어강사에 나섰다. 먹고살기 위해서다. 이렇게 성남지역에서만 10년째 영어강사를 하고 있다.
“남편이 사망하자 국가가 지원해 주던 영세민 지원이 끊겼어요. 내가 직장을 다니고 있다는 게 이유지요.” 주디씨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어 지훈이와 지영이를 필리핀에 있는 어미니에게 보냈다. 아이들이 다행이 잘 적응하고 있다. 요즘은 인터넷 채팅과 화상통화를 통해 서로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그녀는 지난해 8월 동갑내기 방글라데시인 미잔씨와 새로운 삶을 꾸렸다. 남편 미잔씨는 한국내 방글라데시 근로자로 구성된 방글라데시공동체를 이끌며 고국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앞장서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대통령 시장 등 지도자들 100여명이 감옥에 있죠. 부정한 지도가가 있으면 국민이 불행해 집니다. 한국의 민주적 투표는 매우 부럽습니다.” 미잔씨는 한국에서 본 민주적 절차를 고국에서도 실현되길 기대했다.
성남=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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