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는 대학가
김수종 (언론인 전 한국일보 주필)
“하이힐 위에서 혹사당하는 여학생을 위해 발 마사지기를 도입해야 합니다.”
서울대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한 한 후보가 제시한 선거공약이라고 한다. 어느 신문이 이 공약을 예로 들며 대학가의 보수화를 설명하는 기사를 게재한 것을 보았다.
요즘 대학생들은 과거 반세기 동안 이념과 정치 및 사회이슈를 놓고 분노의 항변을 토해내던 기성세대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삼성비자금 문제가 터져도 학생들은 이 이슈를 공론화하는 데 관심이 없다. 대학의 상징이었던 대자보가 사라지고, 사회문제를 놓고 토론을 벌이는 동아리들도 시들해진 대신, 재테크나 토익과 취미 동아리활동을 알리는 포스터가 대학가를 수놓는다. 심지어 ‘아름다운 부자’ 토론 동아리가 생겨날 정도다.
정말 상전벽해와 같은 대학가의 변화이다. 과연 이런 현상을 보수화라는 개념 속에 묶어야 하는 지에 대해선 흔쾌하게 동의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직접 대학생을 대상으로 이념성향을 묻는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대학생의 보수화를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다.
대학생의 보수화 경향 뚜렷
고려대 서울대 성균관대 연세대 이화여대 중앙대 한양대 등 7개 대학 신문사가 이들 대학 학부학생 2,087명을 상대로 정치성향을 설문조사한 결과, 35.1%가 자신의 성향을 ‘보수적’, 23.2%가 ‘중도적’, 33.5%가 ‘진보적’이라고 대답했다. 서울대생의 보수화 경향은 훨씬 두드러져 ‘보수적’이라고 응답한 학생비율은 40.5%였다고 한다. 서울대 학생들 중 자신을 보수적이라고 밝힌 사람의 비율은 2000년 13.2%, 2002년 17.2%, 그리고 2005년 27.6%로 꾸준히 증가했다.
이 설문조사 결과 나타난 대통령 후보 지지도 성향을 보면 변화하는 대학가의 정치적 성향을 다소 구체적으로 알아볼 수 있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47.8%로 가장 많은 지지를 얻었고,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 11.8%,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 7.5%,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 6.9%, 이인제 민주당 후보 1.2%지지 순이었다. 정당지지도 역시 한나라당 41.2%로 가장 많았으며, 민주노동당 14.0%, 대통합민주신당 6.6%, 창조한국당 4.3% 순이었다.
왜 이렇게 대학생은 변해가는 것일까. 여러 가지 사회학적 진단이 내려지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대학설립 자유화로 대학생의 사회적 지위가 낮아진 점,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이 초래한 경쟁, 고용 없는 성장으로 가중되는 청년 실업률 등이 대학생들의 보수화 경향, 또는 개인주의적인 경향으로 흐르게 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또한 냉전이 종식되고 민주화가 나름대로 완성되면서 거시(巨視) 담론도 붕괴됐다. 게다가 경제적으로 삶의 질이 향상되고 세계가 개방되면서 대학생들의 개인적 활동 폭은 다양화 됐다. 따라서 학생의 정치적 무관심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해석도 내놓을 수 있다.
얼마 전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의 저자 토마스 프리드먼이 뉴욕타임스에 ‘Q세대’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Q는 ‘quiet’(조용하다)의 첫머리 글자로 번역하면 ‘침묵하는 세대’가 된다. 반전세대인 저자가 대학생인 딸 세대를 바라보며 9·11사태 이후 미국 대학생들의 정치적 무관심을 걱정하는 칼럼이다. 프리드먼은 미국 대학생들이 대단히 낙천적이며 이상주의적이라는 데서 깊은 인상을 받았지만, 너무도 덜 급진적이고 정치참여에 소극적인 것을 보고 황당함을 느꼈다고 술회하고 있다.
개인을 위해서나 국가를 위해서나 Q세대는 너무 침묵하고 너무 온라인에만 매달려 있다는 게 프리드먼의 한탄이다. Q세대가 이렇게 침묵하는 사이 탐욕스런 미국 기성세대가 환경문제 재정적자 사회보장적자 등 다음세대에게 큰 짐을 아무 대책 없이 마구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그들은 사회문제를 잘 알고 있고, 어른들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만 옛날 방식대로 정치인을 향해 소리 높여 항의하지 않는다.
Q세대의 이상주의 필요
프리드먼은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미국사회가 필요한 것은 Q세대의 이상주의, 운동, 분노가 주는 자극이다. 즉 대학생들이 조직화하여 정치권력으로 하여금 그들의 미래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만들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은 스튜던트 파워의 변천사가 다르다. 그러나 세계화와 인터넷문화의 확산 탓인가. 프리드먼이 말하는 미국 ‘Q세대’의 모습은 오늘을 사는 한국 대학생들의 정치적 침묵, 또는 정치적 보수화와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미국에서처럼 한국의 대학생들도 그들에게 떠넘길 무거운 짐을 만드는 기성세대, 특히 정치인들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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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언론인 전 한국일보 주필)
“하이힐 위에서 혹사당하는 여학생을 위해 발 마사지기를 도입해야 합니다.”
서울대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한 한 후보가 제시한 선거공약이라고 한다. 어느 신문이 이 공약을 예로 들며 대학가의 보수화를 설명하는 기사를 게재한 것을 보았다.
요즘 대학생들은 과거 반세기 동안 이념과 정치 및 사회이슈를 놓고 분노의 항변을 토해내던 기성세대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삼성비자금 문제가 터져도 학생들은 이 이슈를 공론화하는 데 관심이 없다. 대학의 상징이었던 대자보가 사라지고, 사회문제를 놓고 토론을 벌이는 동아리들도 시들해진 대신, 재테크나 토익과 취미 동아리활동을 알리는 포스터가 대학가를 수놓는다. 심지어 ‘아름다운 부자’ 토론 동아리가 생겨날 정도다.
정말 상전벽해와 같은 대학가의 변화이다. 과연 이런 현상을 보수화라는 개념 속에 묶어야 하는 지에 대해선 흔쾌하게 동의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직접 대학생을 대상으로 이념성향을 묻는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대학생의 보수화를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다.
대학생의 보수화 경향 뚜렷
고려대 서울대 성균관대 연세대 이화여대 중앙대 한양대 등 7개 대학 신문사가 이들 대학 학부학생 2,087명을 상대로 정치성향을 설문조사한 결과, 35.1%가 자신의 성향을 ‘보수적’, 23.2%가 ‘중도적’, 33.5%가 ‘진보적’이라고 대답했다. 서울대생의 보수화 경향은 훨씬 두드러져 ‘보수적’이라고 응답한 학생비율은 40.5%였다고 한다. 서울대 학생들 중 자신을 보수적이라고 밝힌 사람의 비율은 2000년 13.2%, 2002년 17.2%, 그리고 2005년 27.6%로 꾸준히 증가했다.
이 설문조사 결과 나타난 대통령 후보 지지도 성향을 보면 변화하는 대학가의 정치적 성향을 다소 구체적으로 알아볼 수 있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47.8%로 가장 많은 지지를 얻었고,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 11.8%,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 7.5%,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 6.9%, 이인제 민주당 후보 1.2%지지 순이었다. 정당지지도 역시 한나라당 41.2%로 가장 많았으며, 민주노동당 14.0%, 대통합민주신당 6.6%, 창조한국당 4.3% 순이었다.
왜 이렇게 대학생은 변해가는 것일까. 여러 가지 사회학적 진단이 내려지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대학설립 자유화로 대학생의 사회적 지위가 낮아진 점,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이 초래한 경쟁, 고용 없는 성장으로 가중되는 청년 실업률 등이 대학생들의 보수화 경향, 또는 개인주의적인 경향으로 흐르게 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또한 냉전이 종식되고 민주화가 나름대로 완성되면서 거시(巨視) 담론도 붕괴됐다. 게다가 경제적으로 삶의 질이 향상되고 세계가 개방되면서 대학생들의 개인적 활동 폭은 다양화 됐다. 따라서 학생의 정치적 무관심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해석도 내놓을 수 있다.
얼마 전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의 저자 토마스 프리드먼이 뉴욕타임스에 ‘Q세대’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Q는 ‘quiet’(조용하다)의 첫머리 글자로 번역하면 ‘침묵하는 세대’가 된다. 반전세대인 저자가 대학생인 딸 세대를 바라보며 9·11사태 이후 미국 대학생들의 정치적 무관심을 걱정하는 칼럼이다. 프리드먼은 미국 대학생들이 대단히 낙천적이며 이상주의적이라는 데서 깊은 인상을 받았지만, 너무도 덜 급진적이고 정치참여에 소극적인 것을 보고 황당함을 느꼈다고 술회하고 있다.
개인을 위해서나 국가를 위해서나 Q세대는 너무 침묵하고 너무 온라인에만 매달려 있다는 게 프리드먼의 한탄이다. Q세대가 이렇게 침묵하는 사이 탐욕스런 미국 기성세대가 환경문제 재정적자 사회보장적자 등 다음세대에게 큰 짐을 아무 대책 없이 마구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그들은 사회문제를 잘 알고 있고, 어른들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만 옛날 방식대로 정치인을 향해 소리 높여 항의하지 않는다.
Q세대의 이상주의 필요
프리드먼은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미국사회가 필요한 것은 Q세대의 이상주의, 운동, 분노가 주는 자극이다. 즉 대학생들이 조직화하여 정치권력으로 하여금 그들의 미래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만들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은 스튜던트 파워의 변천사가 다르다. 그러나 세계화와 인터넷문화의 확산 탓인가. 프리드먼이 말하는 미국 ‘Q세대’의 모습은 오늘을 사는 한국 대학생들의 정치적 침묵, 또는 정치적 보수화와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미국에서처럼 한국의 대학생들도 그들에게 떠넘길 무거운 짐을 만드는 기성세대, 특히 정치인들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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