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 권하는 사회와 헤지펀드 허용의 위험
유철규(성공회대학교, 경제학)
마이너스 대출 한도를 높여준다. 재직증명서만 있으면 연소득의 몇 100%까지 빌려준다. 요즈음 현저히 늘어나고 있는 은행의 개인신용대출 판촉광고 문구들이다. 실제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들어 6월말까지 시중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12조원 증가했다. 또한 지난 8월 한 달간 늘어난 시중은행과 제2금융권의 가계대출은 무려 4조 9580억원에 달했다. 외환위기를 겪은 10년 만에 다시 한번 ‘빚 권하는 사회’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외환위기이전의 빚이 기업투자와 관련된 대출을 위주로 했다면, 다시 등장한 빚은 가계신용대출이라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이다. 이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우려가 제기되지만, 무엇보다도 이 빚 권유가 광풍에 빗댈 정도의 재테크 유행을 배경으로 하여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첫째로 해야 할 일은 빚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회복하는 일이다.” “명예퇴직자나 주부, 학생 같은 아마추어 투자자들이 멋모르고 뛰어들고, 부실기업 주식까지 폭등했으니 영락없는 투기판이다.” 각각 1998년 6월 2일자와 1998년 12월 17일자 일간신문들에 게재된 글들로서 당시 관료나 민간경제연구소 등 경제주도층의 집단적 여론을 보여준다. 반면 2004년 이후의 여론주도층의 집단적인 말들은 크게 달라지는데, “기업가 정신은 리스크를 테이킹하려는 모험심을 가져야 하며 항상 부족함을 느끼며 이를 도전해 성취하려는 자세를 말한다”(2004년 4월 26일자), “증시활성화로 내수 살리자”(2004년 12월 9일자), “이제는 저축에 대한 패러다임을 대폭 전환할 필요가 있다”(2004년 10월 26일) 등이 그 예이다. 이후 국민들이 예금과 같은 위험회피적 저축으로부터 주식 등 위험금융자산으로 가계의 자산구성을 바꾸어야 한다는 등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권유가 줄 잇고, 급기야 국정최고책임자의 “부동산이 이기나 주식이 이기나 두고 봅시다”라는 대국민 주식구입 강권발언이 등장하기에 이른다. 바야흐로 “빚 권하는 사회”와 “리스크(위험) 권하는 사회”의 결합이다.
요 몇 일새 금융계를 달구고 있는 화두는 단연 ‘헤지펀드’의 조기허용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증권연구원이 주최한 공청회에서 재정경제부의 연구용역을 수행한 증권연구원은 2009년에 미국식 헤지펀드(Hedge Fund)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당초 정부가 사모주식펀드(PEF)의 규제를 완화하면서 2012년까지 헤지펀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던 것에 비해 3년이나 앞당겼다. 재정경제부는 앞으로 여러 의견을 들어 헤지펀드 도입 최종안을 확정할 예정이라고 했지만, 말만 연구용역이고 후원이지 재정경제부와 증권계의 합작품이라고 보아야 하기에 이미 결정된 것에 가깝다. 차관이 나서 헤지펀드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예찬했을 정도이다. 그러나 조지소로스의 퀀탐펀드나 1998년 파산하면서 연방은행의 긴급지원을 불렀을 정도의 타격을 미국금융시장에 끼쳤던 롱텀캐피탈매니지먼트 등을 모델로 삼는 것이 헤지펀드 방안이다. 그런데도 우리 경제에 가져올 수 있는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하고 감당해 낼 수 있을지 복안이 없다. 헤지펀드는 정의상 금융감독과 규제를 벗어나도록 설계된 것인데 가뜩이나 취약한 한국의 금융감독당국과 협의해서 무슨 묘한 안전장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일단 도입해 놓고 경험을 쌓다보면 될 것이라는 주장은 내세울 데가 따로 있는 것이다. 어떻게 자국통화를 국제통화로 하는 미국시장도 종종 충격을 받는 리스크를 한국이 감당할 수 있을지, 그것도 왜 계획보다 3년을 앞당겨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이 결정하려는 처사를 이해하기 어렵다. 증권연구원은 단기이익 추구에 급급한 투기성 외국자본을 막는데도 헤지펀드 도입이 절실하다고 주장했지만, 토종이나 외국산이나 헤지펀드는 헤지펀드일 뿐이다. 오히려 더 철저히 헤지펀드여야 살아남는다.
아시아 경제가 미국발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한 금융위기의 타격을 상대적으로 덜 받고 있는 이유가 헤지펀드에 대한 노출이 적고 파생금융시장의 영향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라는 점이 밝혀져 있는 판에, 그 동안 전 국민에서 리스크를 권유하던 정부가 드디어 스스로 리스크를 한번 져 보기로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실패해도 책임질 일 없으니 리스크를 지는 일도 아니다.
왜 이렇게 서두르는가. 국민들이 이따금 보도되는 헤지펀드의 엄청난 고수익률에 눈높이를 맞추고, 노동소득을 우습게 여기고, 한푼 두푼 모아 조금씩 생활을 개선해가는 일의 가치를 우습게 알고, 빚내서 한탕하는 유행을 부러워하게 만들어서 무엇을 얻으려는 것인가. 연기금을 주식투자펀드와 같이 경쟁시키고 노후의 불안이든 자녀교육의 불안이든 살 곳의 불안이든 재주껏 각자가 알아서 해결하라고 몰아붙이는 것이 왜 우리의 갈 길이 될 수 있는지 해명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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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철규(성공회대학교, 경제학)
마이너스 대출 한도를 높여준다. 재직증명서만 있으면 연소득의 몇 100%까지 빌려준다. 요즈음 현저히 늘어나고 있는 은행의 개인신용대출 판촉광고 문구들이다. 실제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들어 6월말까지 시중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12조원 증가했다. 또한 지난 8월 한 달간 늘어난 시중은행과 제2금융권의 가계대출은 무려 4조 9580억원에 달했다. 외환위기를 겪은 10년 만에 다시 한번 ‘빚 권하는 사회’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외환위기이전의 빚이 기업투자와 관련된 대출을 위주로 했다면, 다시 등장한 빚은 가계신용대출이라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이다. 이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우려가 제기되지만, 무엇보다도 이 빚 권유가 광풍에 빗댈 정도의 재테크 유행을 배경으로 하여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첫째로 해야 할 일은 빚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회복하는 일이다.” “명예퇴직자나 주부, 학생 같은 아마추어 투자자들이 멋모르고 뛰어들고, 부실기업 주식까지 폭등했으니 영락없는 투기판이다.” 각각 1998년 6월 2일자와 1998년 12월 17일자 일간신문들에 게재된 글들로서 당시 관료나 민간경제연구소 등 경제주도층의 집단적 여론을 보여준다. 반면 2004년 이후의 여론주도층의 집단적인 말들은 크게 달라지는데, “기업가 정신은 리스크를 테이킹하려는 모험심을 가져야 하며 항상 부족함을 느끼며 이를 도전해 성취하려는 자세를 말한다”(2004년 4월 26일자), “증시활성화로 내수 살리자”(2004년 12월 9일자), “이제는 저축에 대한 패러다임을 대폭 전환할 필요가 있다”(2004년 10월 26일) 등이 그 예이다. 이후 국민들이 예금과 같은 위험회피적 저축으로부터 주식 등 위험금융자산으로 가계의 자산구성을 바꾸어야 한다는 등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권유가 줄 잇고, 급기야 국정최고책임자의 “부동산이 이기나 주식이 이기나 두고 봅시다”라는 대국민 주식구입 강권발언이 등장하기에 이른다. 바야흐로 “빚 권하는 사회”와 “리스크(위험) 권하는 사회”의 결합이다.
요 몇 일새 금융계를 달구고 있는 화두는 단연 ‘헤지펀드’의 조기허용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증권연구원이 주최한 공청회에서 재정경제부의 연구용역을 수행한 증권연구원은 2009년에 미국식 헤지펀드(Hedge Fund)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당초 정부가 사모주식펀드(PEF)의 규제를 완화하면서 2012년까지 헤지펀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던 것에 비해 3년이나 앞당겼다. 재정경제부는 앞으로 여러 의견을 들어 헤지펀드 도입 최종안을 확정할 예정이라고 했지만, 말만 연구용역이고 후원이지 재정경제부와 증권계의 합작품이라고 보아야 하기에 이미 결정된 것에 가깝다. 차관이 나서 헤지펀드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예찬했을 정도이다. 그러나 조지소로스의 퀀탐펀드나 1998년 파산하면서 연방은행의 긴급지원을 불렀을 정도의 타격을 미국금융시장에 끼쳤던 롱텀캐피탈매니지먼트 등을 모델로 삼는 것이 헤지펀드 방안이다. 그런데도 우리 경제에 가져올 수 있는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하고 감당해 낼 수 있을지 복안이 없다. 헤지펀드는 정의상 금융감독과 규제를 벗어나도록 설계된 것인데 가뜩이나 취약한 한국의 금융감독당국과 협의해서 무슨 묘한 안전장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일단 도입해 놓고 경험을 쌓다보면 될 것이라는 주장은 내세울 데가 따로 있는 것이다. 어떻게 자국통화를 국제통화로 하는 미국시장도 종종 충격을 받는 리스크를 한국이 감당할 수 있을지, 그것도 왜 계획보다 3년을 앞당겨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이 결정하려는 처사를 이해하기 어렵다. 증권연구원은 단기이익 추구에 급급한 투기성 외국자본을 막는데도 헤지펀드 도입이 절실하다고 주장했지만, 토종이나 외국산이나 헤지펀드는 헤지펀드일 뿐이다. 오히려 더 철저히 헤지펀드여야 살아남는다.
아시아 경제가 미국발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한 금융위기의 타격을 상대적으로 덜 받고 있는 이유가 헤지펀드에 대한 노출이 적고 파생금융시장의 영향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라는 점이 밝혀져 있는 판에, 그 동안 전 국민에서 리스크를 권유하던 정부가 드디어 스스로 리스크를 한번 져 보기로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실패해도 책임질 일 없으니 리스크를 지는 일도 아니다.
왜 이렇게 서두르는가. 국민들이 이따금 보도되는 헤지펀드의 엄청난 고수익률에 눈높이를 맞추고, 노동소득을 우습게 여기고, 한푼 두푼 모아 조금씩 생활을 개선해가는 일의 가치를 우습게 알고, 빚내서 한탕하는 유행을 부러워하게 만들어서 무엇을 얻으려는 것인가. 연기금을 주식투자펀드와 같이 경쟁시키고 노후의 불안이든 자녀교육의 불안이든 살 곳의 불안이든 재주껏 각자가 알아서 해결하라고 몰아붙이는 것이 왜 우리의 갈 길이 될 수 있는지 해명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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