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호 전 프로야구팀 롯데 4번 타자 “벗들과 함께하는 맛이 일품입니다.”
얼굴은 거울에 비추고 마음은 술에 비춘다는 말이 있다. 술 문화는 그 나라의 정신문화를 반영한다.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명사들은 저마다 좋아하는 전통주를 추천하며 우리 정신문화의 현대화와 농식품산업 활성화를 희망했다.
편집자 주
부산시민들이 주말이면 많이 찾는 산 중 금정산이 있다. 백두대간의 끝자락에 위치한 금정산은 최고봉인 고당봉이 해발 801m로 산행길이 좋아 보름달이 밝으면 야간 산행객도 붐빈다.
금정산에는 신라 이후 화전민들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산성마을이 있고, 그들이 빚어 파는 산성막걸리가 있다.
◆추억의 스타, 추억의 막걸리 = 김민호(47) 부산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은 술을 잘 먹는다. 부산을 연고지로 한 프로야구팀 롯데의 4번 타자 출신인 그는 양주 한 병과 맥주 세 병을 섞은 ‘폭탄주’를 단숨에 마실 정도의 주량과 체력을 갖고 있다. 운동을 한 뒤 회식자리에서도 주종불문 시원스레 한 잔 걸친다.
그런 김 감독이 산성막걸리를 전통주 중 으뜸으로 꼽았다. 이유는 “맛있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다 다른 입맛이지만, 산성막걸리를 먹어본 대다수 사람들은 “맛있다”는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산성막걸리는 맛있을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산성막걸리는 금정산을 등산 한 후 먹는다. 땀이 가득한 채 시원한 술집 마루에 걸터앉아 산성막걸리 한 잔 먹으면 가슴이 뚫리는 듯 통쾌한 기운이 일어난다. 산행을 마친 뒤라 시장기도 돌던 차여서 산성막걸리는 기운도 북돋아 준다.
게다가 산성막걸리 안주는 대체로 오리불고기나 닭백숙이다. 주머니 사정이 좀 넉넉해 염소불고기라도 시켰다면 제대로 술 먹는 멋을 낼 수 있다.
여기다 맛을 배가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산행을 함께 한 사람’이다. 연인, 가족, 동아리 사람, 뜻 맞는 친구 등 산행을 함께 한 사람은 나와 특별한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다. 곁에 있기만 해도 좋을 사람과 산행 후 나누는 막걸리 한 잔에 어찌 마음을 뺏기지 않으리.
김 감독도 지난 10월 중순 오랜 지인의 소개로 사람들을 만나 산성막걸리를 한 잔 마셨다. 김 감독은 “오후엔 교장선생님과 함께 하는 회의가 있어 많이 마실 수는 없었지만 점심시간을 이용한 짧은 시간에 가을 빛 완연한 산성마을에서 만남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고 말했다.
김용희 김용철 김민호 마해영 등으로 이어지는 롯데 4번타자 계보를 잇고 있는 김 감독은 부산의 야구팬들이 ‘자갈치’라 부르며 특별히 사랑하는 스타다. 야구 보러 간다고 하지 않고 ‘응원 보러 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유명했던 부산의 야구팬들은 그를 사랑했다. 롯데가 우승을 하던 1984년과 1992년 모두 현역으로 뛰었던 그는 팀 분위기를 끌어내기 위해 선수대기실에서도 고함을 질러대던 혈기방장한 선수였다. 오죽하면 선배들이 ‘자갈치 시장에 온 것처럼 시끄럽다’고 자갈치란 별명을 붙였을까.
하지만 팬들은 그를 부산의 상징 중 하나인 ‘자갈치’로 기억한다. 억센 생명력을 가진 이름으로.
◆민속주 1호 = 산성막걸리는 우리나라 민속주 1호다. 정식명칭은 금정산성토산주. 부산시 금정구 금성동 동사무소 앞에 있는 유한회사 금정산성토산주가 산성막걸리를 빚는 술도가다.
인공재료를 사용치 않고 누룩과 쌀, 물 세 가지만으로 전통제조 방식대로 만드는 자연 발효주다. 알콜도수는 보통 막걸리보다 높은 8도다.
유청길(50) 금성산성토산주 사장은 140kg의 쌀로 만든 고두밥과 누룩 80kg 그리고 금정산 맑은 물 10말을 더해 약 20도 이상의 온도로 저장한다. 하루 정도 지나면 술이 되는데 일주일 정도 발효해 완숙한 술을 거른다. 그의 어머니 전남선(75)씨에게 배운 방식이다.
유씨의 부인 진현주(45)씨는 “산성 안에서 마시는 술이 다 산성막걸리는 아니다”며 “가끔 다른 술을 먹고 ‘산성막걸리 먹었더니 머리가 아프다’며 욕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산성막걸리는 쌀로 술 빚는 것을 금지하던 시절, 마을사람들끼리만 만들어 마시는 것으로 명맥을 유지했다. 그러다 1979년 부산을 방문한 고 박정희 대통령이 산성막걸리가 사라질 위기라는 말을 듣고 곧바로 양성화할 것을 지시(대통령령 제9444호)해 민속주 1호가 됐다.
막걸리는 서민들의 삶과 연관돼 있다. 쌀로 술을 빚으면 위에 맑게 뜨는 것은 청주(약주)가 되고 밑에 남아있는 술덧에 찬물을 쳐가며 체에 받쳐 찌꺼기를 제거하면 탁주가 된다. 이 탁주에 또 물을 부어 걸러내면 막걸리가 된다. 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장은 “청주는 양이 적게 나오지만 물을 부어 걸러내는 막걸리는 많이 나온다”며 “막걸리는 서민들의 술”이라고 말했다.
산성막걸리에 얽힌 이야기도 땀냄새 물씬 풍기는 민초들의 삶과 얽혀있다. 산성막걸리의 유래는 정확하지 않지만 화전민들이 생계수단으로 술을 빚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1703년(조선조 숙종 29년) 금정산성 개축과 1808년(순조 8년) 동문 신축 등을 통해 외지인에게 산성막걸리의 맛이 알려졌다. 거대한 성을 쌓는 데 동원된 인부와 군졸은 새참으로 나오는 산성막걸리를 먹으며 갈증과 허기, 피로를 덜었다. 인부들은 공사가 끝나 고향으로 돌아간 뒤에도 새큼하면서도 구수한 그 맛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산성막걸리는 금정산을 찾는 사람들이 있는 한 영원히 이어질 술이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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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은 거울에 비추고 마음은 술에 비춘다는 말이 있다. 술 문화는 그 나라의 정신문화를 반영한다.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명사들은 저마다 좋아하는 전통주를 추천하며 우리 정신문화의 현대화와 농식품산업 활성화를 희망했다.
편집자 주
부산시민들이 주말이면 많이 찾는 산 중 금정산이 있다. 백두대간의 끝자락에 위치한 금정산은 최고봉인 고당봉이 해발 801m로 산행길이 좋아 보름달이 밝으면 야간 산행객도 붐빈다.
금정산에는 신라 이후 화전민들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산성마을이 있고, 그들이 빚어 파는 산성막걸리가 있다.
◆추억의 스타, 추억의 막걸리 = 김민호(47) 부산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은 술을 잘 먹는다. 부산을 연고지로 한 프로야구팀 롯데의 4번 타자 출신인 그는 양주 한 병과 맥주 세 병을 섞은 ‘폭탄주’를 단숨에 마실 정도의 주량과 체력을 갖고 있다. 운동을 한 뒤 회식자리에서도 주종불문 시원스레 한 잔 걸친다.
그런 김 감독이 산성막걸리를 전통주 중 으뜸으로 꼽았다. 이유는 “맛있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다 다른 입맛이지만, 산성막걸리를 먹어본 대다수 사람들은 “맛있다”는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산성막걸리는 맛있을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산성막걸리는 금정산을 등산 한 후 먹는다. 땀이 가득한 채 시원한 술집 마루에 걸터앉아 산성막걸리 한 잔 먹으면 가슴이 뚫리는 듯 통쾌한 기운이 일어난다. 산행을 마친 뒤라 시장기도 돌던 차여서 산성막걸리는 기운도 북돋아 준다.
게다가 산성막걸리 안주는 대체로 오리불고기나 닭백숙이다. 주머니 사정이 좀 넉넉해 염소불고기라도 시켰다면 제대로 술 먹는 멋을 낼 수 있다.
여기다 맛을 배가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산행을 함께 한 사람’이다. 연인, 가족, 동아리 사람, 뜻 맞는 친구 등 산행을 함께 한 사람은 나와 특별한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다. 곁에 있기만 해도 좋을 사람과 산행 후 나누는 막걸리 한 잔에 어찌 마음을 뺏기지 않으리.
김 감독도 지난 10월 중순 오랜 지인의 소개로 사람들을 만나 산성막걸리를 한 잔 마셨다. 김 감독은 “오후엔 교장선생님과 함께 하는 회의가 있어 많이 마실 수는 없었지만 점심시간을 이용한 짧은 시간에 가을 빛 완연한 산성마을에서 만남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고 말했다.
김용희 김용철 김민호 마해영 등으로 이어지는 롯데 4번타자 계보를 잇고 있는 김 감독은 부산의 야구팬들이 ‘자갈치’라 부르며 특별히 사랑하는 스타다. 야구 보러 간다고 하지 않고 ‘응원 보러 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유명했던 부산의 야구팬들은 그를 사랑했다. 롯데가 우승을 하던 1984년과 1992년 모두 현역으로 뛰었던 그는 팀 분위기를 끌어내기 위해 선수대기실에서도 고함을 질러대던 혈기방장한 선수였다. 오죽하면 선배들이 ‘자갈치 시장에 온 것처럼 시끄럽다’고 자갈치란 별명을 붙였을까.
하지만 팬들은 그를 부산의 상징 중 하나인 ‘자갈치’로 기억한다. 억센 생명력을 가진 이름으로.
◆민속주 1호 = 산성막걸리는 우리나라 민속주 1호다. 정식명칭은 금정산성토산주. 부산시 금정구 금성동 동사무소 앞에 있는 유한회사 금정산성토산주가 산성막걸리를 빚는 술도가다.
인공재료를 사용치 않고 누룩과 쌀, 물 세 가지만으로 전통제조 방식대로 만드는 자연 발효주다. 알콜도수는 보통 막걸리보다 높은 8도다.
유청길(50) 금성산성토산주 사장은 140kg의 쌀로 만든 고두밥과 누룩 80kg 그리고 금정산 맑은 물 10말을 더해 약 20도 이상의 온도로 저장한다. 하루 정도 지나면 술이 되는데 일주일 정도 발효해 완숙한 술을 거른다. 그의 어머니 전남선(75)씨에게 배운 방식이다.
유씨의 부인 진현주(45)씨는 “산성 안에서 마시는 술이 다 산성막걸리는 아니다”며 “가끔 다른 술을 먹고 ‘산성막걸리 먹었더니 머리가 아프다’며 욕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산성막걸리는 쌀로 술 빚는 것을 금지하던 시절, 마을사람들끼리만 만들어 마시는 것으로 명맥을 유지했다. 그러다 1979년 부산을 방문한 고 박정희 대통령이 산성막걸리가 사라질 위기라는 말을 듣고 곧바로 양성화할 것을 지시(대통령령 제9444호)해 민속주 1호가 됐다.
막걸리는 서민들의 삶과 연관돼 있다. 쌀로 술을 빚으면 위에 맑게 뜨는 것은 청주(약주)가 되고 밑에 남아있는 술덧에 찬물을 쳐가며 체에 받쳐 찌꺼기를 제거하면 탁주가 된다. 이 탁주에 또 물을 부어 걸러내면 막걸리가 된다. 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장은 “청주는 양이 적게 나오지만 물을 부어 걸러내는 막걸리는 많이 나온다”며 “막걸리는 서민들의 술”이라고 말했다.
산성막걸리에 얽힌 이야기도 땀냄새 물씬 풍기는 민초들의 삶과 얽혀있다. 산성막걸리의 유래는 정확하지 않지만 화전민들이 생계수단으로 술을 빚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1703년(조선조 숙종 29년) 금정산성 개축과 1808년(순조 8년) 동문 신축 등을 통해 외지인에게 산성막걸리의 맛이 알려졌다. 거대한 성을 쌓는 데 동원된 인부와 군졸은 새참으로 나오는 산성막걸리를 먹으며 갈증과 허기, 피로를 덜었다. 인부들은 공사가 끝나 고향으로 돌아간 뒤에도 새큼하면서도 구수한 그 맛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산성막걸리는 금정산을 찾는 사람들이 있는 한 영원히 이어질 술이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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