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침탈 막아낸 의용수비대
주민등록 1호, 고 최종덕씨
독도 거주자 김성도씨 부부
독도 지킴이는 예부터 대한민국 국민들이었다. 국민들은 독도의 실효적 지배를 통해 독도 영유권이 한국에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1950년대 초반 독도의용수비대, 독도주민등록 1호 주민인 고 최종덕씨, 현재 독도에 거주하고 있는 김성도씨 부부 등이다.
독도의용수비대는 울릉도 주민 홍순칠씨 주도로 조직된 순수 민간조직으로 약 3년 8개월 동안 혼란에 빠진 독도를 사수했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다. 1952년 2월 27일 미국이 독도를 미군 폭격 훈련지에서 제외하고 한국동란으로 혼란해지면서 일본은 독도 침탈을 수시로 감행했다. 1952년 8월에는 불법으로 독도에 상륙해 ‘시마네현 오키군 다케시마’라는 팻말을 세우기도 했다.
독도의용수비대는 1953년 4월 20일 조직됐다. 한국동란에 참여했던 홍순칠씨가 1952년부터 무기를 조달하고 6·25 참전 경험자를 중심으로 꾸렸다. 45명으로 출발한 수비대는 최종적으로 33명이 남았다.
독도의용수비대는 전투대 2개 조와 보급요원 등으로 독도사수에 나섰다. 1953년 6월 독도에 접근한 일본 수산고등학교 실습선을 돌려보낸 뒤 7월 12일 독도에 접근하는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순시선 PS9함을 격퇴하는 등 수차례에 걸쳐 일본인 침탈을 막아냈다. 1953년 8월 5일에는 동도(東島) 바위벽에 ‘한국령’이라는 글자를 새겨 한국 영토임을 분명히 했다.
독도의용수비대는 1956년 12월 30일 국립 경찰에 무기와 임무를 넘기고 울릉도로 돌아왔다. 정부는 홍순칠대장에게 1966년 5등 근무공로훈장, 나머지 대원들에게는 방위포장을 수여했다. 특히 홍순칠 대장에게는 1996년 보국훈장 삼일장이 추서됐다.
고 최종덕씨는 독도를 사람 사는 섬으로 바꾼 주인공이다. 1980년 일본이 영유권을 재차 주장하자 “단 한명이라도 우리 주민이 독도에 살고 있다는 증거를 남기겠다”며 1981년 10월 14일 서도 벼랑어귀(서도 산 20번지)로 주소를 옮기고 이주했다.
최씨는 이에 앞서 1965년 3월 수산물 채취를 위해 독도에 들어가 살면서 어로활동을 했다. 1968년 6월 시설물을 건립하는 등 약 5년간 독도에 살면서 서도의 물골(샘물)을 발견하고 물골 진입 계단과 선착장 가옥을 설치했다. 1987년 작고하기 전까지 독도에 수중창고를 마련하고 전복수정법을 개발하기도 했다.
최씨의 딸 부부도 1985년 최씨와 함께 거주한데 이어 1986년 7월 주소를 옮겼다. 1993년 8월까지 독도에 거주한 부부는 아들 출생지도 독도로 신고했다. 남편 조준기(51)씨는 지난해 독도기반시설 구축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현재 독도에는 김성도·김신열씨 부부가 살고 있다. 김씨는 1970년대부터 고 최종덕씨 소유 어선 선원으로 독도를 드나들다 1991년 11월 독도리 20-2번지에 이주했다. 2003년에는 시인 편부경씨가 주민등록을 독도로 옮겼다.
1987년 11월 2일 송재욱씨 일가족 6명이 최초로 독도에 호적을 옮기는 등 1999년 일본의 호적등재 보도이후 ‘범국민 호적 옮기기 운동’으로 최근까지 600여 가구 2000여명이 독도에 본적을 두고 있다.
대구 최세호 기자 seho@naeil.com
후원
대구한의대 산학협력단
대구한의대 안용복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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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등록 1호, 고 최종덕씨
독도 거주자 김성도씨 부부
독도 지킴이는 예부터 대한민국 국민들이었다. 국민들은 독도의 실효적 지배를 통해 독도 영유권이 한국에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1950년대 초반 독도의용수비대, 독도주민등록 1호 주민인 고 최종덕씨, 현재 독도에 거주하고 있는 김성도씨 부부 등이다.
독도의용수비대는 울릉도 주민 홍순칠씨 주도로 조직된 순수 민간조직으로 약 3년 8개월 동안 혼란에 빠진 독도를 사수했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다. 1952년 2월 27일 미국이 독도를 미군 폭격 훈련지에서 제외하고 한국동란으로 혼란해지면서 일본은 독도 침탈을 수시로 감행했다. 1952년 8월에는 불법으로 독도에 상륙해 ‘시마네현 오키군 다케시마’라는 팻말을 세우기도 했다.
독도의용수비대는 1953년 4월 20일 조직됐다. 한국동란에 참여했던 홍순칠씨가 1952년부터 무기를 조달하고 6·25 참전 경험자를 중심으로 꾸렸다. 45명으로 출발한 수비대는 최종적으로 33명이 남았다.
독도의용수비대는 전투대 2개 조와 보급요원 등으로 독도사수에 나섰다. 1953년 6월 독도에 접근한 일본 수산고등학교 실습선을 돌려보낸 뒤 7월 12일 독도에 접근하는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순시선 PS9함을 격퇴하는 등 수차례에 걸쳐 일본인 침탈을 막아냈다. 1953년 8월 5일에는 동도(東島) 바위벽에 ‘한국령’이라는 글자를 새겨 한국 영토임을 분명히 했다.
독도의용수비대는 1956년 12월 30일 국립 경찰에 무기와 임무를 넘기고 울릉도로 돌아왔다. 정부는 홍순칠대장에게 1966년 5등 근무공로훈장, 나머지 대원들에게는 방위포장을 수여했다. 특히 홍순칠 대장에게는 1996년 보국훈장 삼일장이 추서됐다.
고 최종덕씨는 독도를 사람 사는 섬으로 바꾼 주인공이다. 1980년 일본이 영유권을 재차 주장하자 “단 한명이라도 우리 주민이 독도에 살고 있다는 증거를 남기겠다”며 1981년 10월 14일 서도 벼랑어귀(서도 산 20번지)로 주소를 옮기고 이주했다.
최씨는 이에 앞서 1965년 3월 수산물 채취를 위해 독도에 들어가 살면서 어로활동을 했다. 1968년 6월 시설물을 건립하는 등 약 5년간 독도에 살면서 서도의 물골(샘물)을 발견하고 물골 진입 계단과 선착장 가옥을 설치했다. 1987년 작고하기 전까지 독도에 수중창고를 마련하고 전복수정법을 개발하기도 했다.
최씨의 딸 부부도 1985년 최씨와 함께 거주한데 이어 1986년 7월 주소를 옮겼다. 1993년 8월까지 독도에 거주한 부부는 아들 출생지도 독도로 신고했다. 남편 조준기(51)씨는 지난해 독도기반시설 구축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현재 독도에는 김성도·김신열씨 부부가 살고 있다. 김씨는 1970년대부터 고 최종덕씨 소유 어선 선원으로 독도를 드나들다 1991년 11월 독도리 20-2번지에 이주했다. 2003년에는 시인 편부경씨가 주민등록을 독도로 옮겼다.
1987년 11월 2일 송재욱씨 일가족 6명이 최초로 독도에 호적을 옮기는 등 1999년 일본의 호적등재 보도이후 ‘범국민 호적 옮기기 운동’으로 최근까지 600여 가구 2000여명이 독도에 본적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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