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추의 정치, 가능성을 찾아서(임현진)

지역내일 2008-01-16
시계추의 정치, 가능성을 찾아서

임현진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장)

요즈음 괘종시계 보기가 힘들다. 전자식 시계에 밀려버린 까닭이다. 예전엔 벽에 달린 시계가 거의 괘종이었다. 시계추가 일정한 간격으로 좌우로 왔다갔다하면서 풀어지는 태엽이 바늘을 움직여 시, 분, 초를 맞추어준다. 괘종시계의 비밀은 바로 시계추에 있다. 시계추가 조금만 잘 못 움직여도 시간이 어긋나기 때문이다.
지난 연말 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여에서 야로의 정권교체를 두고 좌에서 우로 시계추가 이동했다고 한다. 노태우와 김영삼 우파 정부 10년에서 김대중과 노무현 좌파 정부 10년으로의 이동을 거쳐 다시금 좌우의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국제적 명성을 지니는 미국 정치학자 헌팅톤(Samuel. P. Huntington)의 지적대로 좌우 이동을 두 번 하였으니 한국은 ‘제3파’ 민주주의의 경우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에 이어 공고화에 성공했다고 얘기할 수 있다.

정반합을 통한 시계추 이동
시계추의 정치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념과 가치 지향에서 좌우 정당이 존재해야 한다. 그러기에 가장 큰 의문은 우리의 경우 지난날 거쳐갔던 정부들의 계급적 성격을 진정 좌우 구도 아래 나눌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보다 진보적 혹은 보다 보수적이라고 규정할 수 있겠지만, 노태우 정권과 김영삼 정권을 우파 정부라고 하고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을 좌파 정부라고 하기에는 이들의 정책 방향과 내용이 각기 복잡하고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간단한 보기를 들어 보자. 노태우 정권은 북방정책을 개진하고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제시, 좌파 정부의 단초를 열었다. 부동산 정책에서 토지초과이득세를 도입한 것이나 대기업 확장에 대한 규제정책을 강구한 것도 매우 진보적이었다. 그렇다고 노태우 정권을 좌파 정부라 말할 수는 없다. 노태우 정권의 권력기반은 노동배제적인 정부-기업 연합의 보수적 성격을 띠었기 때문이다.
반면 김대중 정권은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IMF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여과없이 수용했다는 점에서 우파 정부의 면모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기초생활보호법의 제정을 통해 사회안전망의 기반을 마련한 것이나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교류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보수적인 정부라 말할 수 없다. 김대중 정권은 친(親)노동적이라고 하기에는 친(親)기업적인 정책도 주저하지 않은 개량적 부르조아와 권력기반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시계추의 정치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좌우 사이의 권력 변화와 교체가 단순 이동을 넘어 과거의 잘못된 정책을 지양하면서도 좋은 정책은 수용하는 변증법적 합(合)의 과정을 거쳐야 할 필요가 있다. 정반합의 과정을 거치지 못하는 한 보수적 정부와 진보적 정부 사이의 상호 교체는 기계적 작용과 반(反)작용의 역학을 넘지 못한다. 시계추가 왔다갔다 하는 것으로 그칠 때 국리민복을 위한 정책의 상향적 개선이나 개변은 기대할 수 없다.
멕시코는 시계추의 정치가 갖는 가능성과 한계를 잘 보여준 흥미로운 나라다. 지난날 일당 독재 아래 좌파 대통령과 우파 대통령이 번갈아 5년 단임의 임기를 채우면서 좌우 사이의 정책적 균형을 맞추어왔지만 시계추의 움직임이 줄어들면서 정치활력을 잃은 바 있다. 결국 일당 중심의 지배정당 체제의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그러나 다수당체제 아래에서도 시계추의 이동이 떨어짐으로써 좌우 권력 사이의 정책적 견제와 균형이 일어나지 않고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일관하다 보니 결국 외국자본이 국민경제를 장악하고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실체를 가져야 할 선진화
이명박 당선인이 이끌 새 정부는 창조적 실용을 강조하고 있다. 실용이라 해서 이념과 가치와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념과 가치를 지키되 경직되기보다 유연한 상황 인식과 대응을 의미한다. 최근 인수위원회의 주요 대내외 정책-교육, 기업, 노동, 복지, 대미(對美), 통일-표명에서 보면 일종의 시장맹신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규제를 풀어 시장에 맡길 것은 과감히 추진하되 정부가 나서야 할 문제에는 적절히 개입해야 국가정책의 공공성과 효율성을 늘여줄 수 있다고 본다. 시계추의 이동이 반작용을 넘어 정반합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용주의는 현실추수보다 실사구시를 통해 미래창발성을 갖는다.
최근 유행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선진화다. 건국 60주년을 맞는 올해 새 정부가 추진할 과제가 산업화와 민주화의 다음 단계인 선진화라는 논리다. 선진화는 매우 매력적이고 화려한 말이지만 실체가 뚜렷하지 못하다. 선진과 후진의 차이는 상대적이다. 후진이라는 동양의 전통사회에 문명이 있을 수 있듯이 선진이라는 서양의 근대사회에도 야만이 있을 수 있다. 역사는 단절보다는 연속이다. 오히려 산업화를 IT, NT, BT, GT 등으로 이끌면서 민주화를 소통과 연대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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