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해도 가난'' 근로빈곤층 400만명]13평 가게에서 희망을 다시 씁니다

4.이렇게 빈곤 탈출했다 - 금융지원받아 창업 새출발

지역내일 2008-01-28
남편과 사별하고 마이크로크레딧 지원받아 ‘이모네 곱창’ 사장이 된 김옥연씨

일요일인 20일 오후 4시.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내려 황학사거리 ‘이모네 곱창’ 집을 찾아가는 길은 을씨년스러운 느낌마저 감돌았다.
지난 밤 곱창 굽는 냄새와 손님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한껏 어우러졌을 거리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잠시 잡념에 젖어있는데 저만치서 바쁜 걸음으로 다가오는 아주머니 한 분이 있다. 한 눈에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약속보다 조금 먼저 갔을 뿐인데 괜스레 미안해한다. 가게 문을 열고, 히터를 틀고, 저녁 장사에 필요한 불을 지피면서도 커피 한 잔 내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모네 곱창 대표 김옥연(53)씨와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억울했어요. 내가 바란 삶은 이게 아니었는데….” = “내가 원하는 삶이 이런 것은 아니었는데 어떨 때는 정말 억울하다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사연 없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만은 김 씨의 사연도 만만치 않았다.
결혼초기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고생 한 번 안 해보고 자라 좋은 학벌을 가졌던 남편은 생활력에 문제가 있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취직해도 오래 다니지 못하고 그만뒀다. 자식들은 크는 데 생활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보다 못해 분식집을 시작했다. 음식솜씨가 좋아 장사가 제법 잘 됐다. 규모를 키워 공사장 인부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이른바 ‘함바식당’을 열었다. 힘은 들었지만 사는 재미가 쏠쏠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남편이 큰 돈 만들겠다고 주식을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어렵게 모은 돈을 몽땅 주식으로 날린 남편은 결국 빈손으로 돌아왔다. 설상가상으로 식당에서 배달 일을 돕던 남편이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평생 목발을 짚는 신세가 됐다. 병간호하기에도 벅차 결국 식당문도 닫아야 했다.
그러던 중 2000년 남편은 간암 선고까지 받았다. 평소에도 당뇨, 고혈압 등 각종 합병증으로 병치레가 잦았지만 간암 선고는 충격이 컸다. 극도로 불안해진 남편은 잠시도 그녀가 곁을 떠나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꼬박 1년을 병원에서 먹고 자면서 병수발을 했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두 딸을 제대로 돌볼 겨를조차 없었다. 결국 이듬해 남편을 떠나보냈다. 힘들었지만 사랑했던 남편이 떠났고, 여성가장이 됐다. 가슴에 한동안 찬바람이 불었다.

◆“돼지고기 냄새조차 싫어했는데” = 일자리를 찾아 나섰지만 마땅한 곳은 없었다. 간병도우미를 시작했지만 적응이 안 돼 그만뒀다. 다시 산모도우미를 시작했다.
5년 가까운 기간 동안 50여 곳에서 일했다. 젊은 산모들이 김 씨가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좋아할 때 보람을 느꼈다. 수입도 적지 않아 월 150~190만원 가까이 벌었다. 하지만 일이 계속될지 장담할 수 없고, 산모도우미는 입주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작 자신의 아이들을 돌볼 수 없었다. 창업을 결심했다. 처음부터 곱창 집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김 씨의 부모님 고향은 황해도 장연으로 6·25때 피난 와서 서울에 터를 잡았다. 부지런함이 몸이 밴 두 분이었지만 하는 일은 좀처럼 풀리질 않았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하던 빵공장에 불이 나서 문을 닫게 되면서 어머니는 고모와 함께 순대를 만들어 팔았다. 감수성이 한창 예민한 어린 김 씨에게는 돼지고기와 순대가 창피하고 냄새조차 싫은 기피대상이 됐다.
그런 김 씨가 곱창 집을 시작한 것은 순전히 동생의 권유에서다. 시장에서 돼지고기 부산물을 음식점에 공급하는 일을 하던 동생이 자신의 거래처 가운에 하나가 비게 되자 소개를 해 줬기 때문이다.

◆신용불량자도 아닌데 대출받을 신용이 없어 = 처음에는 동생 권유를 거절했다. 하지만 다른 창업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었다. 알아보고 다닌 가게만 100곳 가까이 된다.
창업자금을 구하는 일은 더욱 힘들었다. 여성부, 노동부, 지자체 등 정부부처에서 지원해주는 각종 창업자금을 알아보기도 했지만 번번이 좌절했다. 특별한 기술이나 담보가 없는 상황에서는 그야말로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은행은 두말할 것도 없다. 신용불량자는 아니지만 대출받을 만한 신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곱창 집을 하기로 마음먹고 준비하던 중 사회연대은행의 마이크로크레딧(무담도신용대출)을 알게 됐다. 급한 마음에 덜컥 사업계획서를 제출하긴 했는데 지원자가 워낙 많아 반신반의했다.
다행스럽게도 지원대상에 선정 됐다. 전세방을 빼서 월세로 돌리고, 동생에게 일부 빌리고, 사회연대은행에서 지원받은 1500만원을 보태 가게를 열었다. 2006년 1월 1일이다.
김 씨는 “사회연대은행의 대출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디딤돌이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돈보다는 정성과 맛이 먼저입니다 = 물론 가게를 열었다고 전부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하루 종일 일했는데도 매상이 4만원이 전부일 때도 있었다. 주인이 바뀌니까 왔던 손님들이 돌아가는 경우도 잦았다. 이때 깨달았다. “손님들도 거부하는 구나. 그리고 맛도 길들여지는 구나”라고.
다시 기운을 차리고 정성껏 음식을 준비했다. 두 딸도 도왔다. 모두 대학생인데 큰 딸은 25세, 작은 딸은 23세다. 그런데 큰 딸은 이제 대학교 3학년이고, 작은 딸은 1학년이다. 고등학교 졸업한 뒤 갑자기 닥친 가정의 어려움 때문에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휴학을 여러 차례 한 것이 다른 친구들에 비해 학년이 늦은 이유다. 딸들에게는 늘 고마운 마음뿐이다.
인테리어도 바꾸고, 메뉴도 새롭게 개발했다. 당장 돈 벌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곱창 하나에도 온갖 정성을 다 쏟았다. 평소 음식을 통한 대체의학 등에 관심이 있었기에 이를 접목하기 위해 연구도 했다. 마음과 정성을 다하자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특히 요즘 젊은이들은 음식을 단순히 먹는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 그녀에게는 놀라웠다. 휴대폰이나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음식에 대한 평을 인터넷에 올리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서 급속도로 입소문이 났고, 방송매체에서도 연락도 왔다.
특히 지난해 여름에는 SBS ‘결정! 맛 대 맛’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창업한지 얼마 되지 않은 기간이지만 맛 프로그램에만 6~7군데 나갔다.
하지만 남들처럼 ‘TV에 방영된 집’이라고 떠들썩하게 홍보하지 않는다.
가게 입구에 그 흔한 플래카드 하나 없다. 주위에 황학동 곱창골목에서 10년, 20년씩 보낸 분들이 많은데 이런 분들 가운데 TV에 소개되지 않은 분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마당에 아직 초보자에 가까운 그녀가 지나치게 홍보를 하는 것이 부담이 됐기 때문이다.
굳이 알리지 않아도 맛으로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일터가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 고마운 사람들이 참 많다. 가족들은 물론이고, 사회연대은행을 비롯해 알게 모르게 주위에서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비록 몸은 힘들지만 동생에게 빌린 돈을 갚았고, 사회연대은행에서 빌린 대출금을 갚을 수 있는 지금이 꿈만 같다. 두 딸도 다시 복학해서 학교에 다니고 있다.
형편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사회연대은행에 정성이 담긴 기부금도 냈다. 소액대출을 받아 일어선 김 씨는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올해는 근처에 생활이 어려운 아이들을 초청해 정성껏 요리한 곱창을 대접할 계획도 갖고 있다.
그녀는 말한다. “이른 새벽 가게 문을 나설 때면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땀 흘려 일할 수 있는 일터가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이 되자 삼삼오오 짝을 지은 손님들이 가게로 들어왔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눈에 많이 띈다. 다들 미리 알고 오는 분위기다. ‘외국인들도 찾아오고, 공항에서 내리자말자 큰 트렁크 가방을 끌고 곧장 찾아온 손님이 있었다’는 얘기가 빈말이 아닌 듯 했다.
다시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동안 을씨년스럽던 황학동 사거리는 어느새 달라졌다. 가게 문들이 열리고, 지글지글 곱창 굽는 소리와 구수한 냄새 그리고 소주 한 잔이 그리운 사람들이 거리를 다시 살아나게 한 것이다.
좌절감에 주저앉았던 김 씨가 ‘이모네 곱창’으로 다시 희망을 노래하듯이 말이다.
글·사진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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