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해도 가난'' 근로빈곤층 400만명]남편 잃고 미용기술 배워 4인가족 이끄는 지정아씨

4.직업훈련으로 빈곤 벗었다 - 실업자 재취업 교육 받아 새출발

지역내일 2008-01-30
“아이 생각에 죽을 각오로 기술 배웠죠”
미래불투명, 아직은 불안 … “일하는 것 자체가 희망”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아이 둘과 저를 남기고 무심코 떠난 사람이 불쌍하기도 했고 험한 세상 살아가려니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경기도 의정부 신곡동에 위치한 오미영 헤어숍에서 보조 미용사로 일하는 지정아(여 39)씨. 지방도시 주거단지 인근 10평 남짓 작은 미장원이지만 최근 오픈했는지 깔끔한 인테리어와 밝은 조명 덕분에 화사해 보였다. 오미영 원장과 지씨, 젊은 남자직원 3명이 근무하는 보금자리다.
이 미장원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직원이 지씨다. 지씨가 이곳에서 일한지는 이제 겨우 한 달 남짓, 미용기술을 배운지 1년 밖에 되지 않는 초보 미용사다. 하지만 눈썰미와 손재주가 있어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미용기술을 배우고 있다.

◆남편 잃고 죽고 싶은 마음뿐 = 지씨가 미용기술을 배워 생업전선에 뛰어들게 된 데는 가슴 아픈 과거가 있다. 28살에 남편 김 모씨와 결혼을 했다. 남편은 화학분야에서 일하는 엔지니어였다.
화학분야 중에서도 화약과 같은 폭발 위험성 물질을 다루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기술 덕분에 남편을 찾은 기업도 많았고, 수입도 괜찮아 무난한 가정생활을 꾸릴 수 있었다.
아이도 둘이나 얻어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남부럽지 않은 행복한 가정을 꾸려갔다.
이런 지씨 가정에 시기의 신이 질투라도 한 것일까. 2002년 8월 남편이 새로 옮긴 직장의 연구실로 주말에 실험을 하러 간 것이 화근이 됐다.
실험실에서 이 회사 연구소 소장과 함께 실험을 하다 폭발사고가 난 것이다. 이 사고로 김 씨와 연구소장이 사망했다. 김 씨가 남겨둔 것이라곤 4살짜리 딸과 2살짜리 아들뿐이었다.
울고 또 울고 악몽같은 날을 몇 달동안 보냈다. 함께 죽는 게 사는 것 보다 낫다는 생각이 수시로 들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보며 마음을 고치고 추슬렀다.
문뜩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남아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남겨진 재산이라고는 전세금과 몸뚱이뿐이었다. 남편은 젊고 건강했기 때문에 흔한 보험도 하나 들어 놓지 않았다.
지씨는 아이들과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이 들었다. 지씨는 “아이도 돌보면서 평생 할 수 있는 직업이 필요했다”며 “하지만 전북 정읍 시골에서 고등하교를 졸업하고 의정부에서 골프가게 종업원으로 잠깐 근무했던 경험밖에 없어 살길이 막막했다”고 기억을 되살렸다.

◆3차례 기술 교육 =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식당 종업원 아르바이트부터 시간제 단순노동 등 뼈 빠지게 일해도 생활은 나아지진 않았다.
지씨는 차라리 기술을 배우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이러던 중 생활정보지를 뒤적거리다 양재기술(재봉기술)교육기관의 광고를 보고 양재기술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6개월의 과정을 끝내고 다시 생활전선으로 나왔지만 취업은 녹록치 않았다. 양재기술로 취업을 할 수 있는 곳은 극히 제한적었다. 지씨가 할 수 있는 일은 옷수선집을 열거나 세탁소 개업을 해야 기술을 써 먹을 수 있었다.
지씨는 “창업을 할 만큼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았다”며 “특히 창업을 한다고 해도 실패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창업의 길로 갈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교육기간동안 교육비는 고용보험에서 지급된 것이 위안이었다.
지씨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전문적인 기술을 익혀 안정적인 직업을 얻고 싶은 게 지씨의 마음이었다. 지씨는 고민을 거듭하다 제과 제빵기술을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양재기술보다는 활용도가 높을 거라고 판단했다.
다시 6개월간 제빵기술을 배웠다. 제빵기술 교육은 수료했지만 이도 취업이 만만치 않았다. 프랜차이즈 제과점에 취업을 알아봤지만 창업을 하라는 답변만 들었다.
지씨는 “나이제한, 기혼자, 실무경험이 없다는 점 때문에 번번이 거절을 당했다”며 “아이들 딸린 여성이 반듯한 직장을 구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였다”고 말했다. 또 다시 6개월을 허송세월한 것 같아 마음이 답답했다. 함께 모시고 있는 친정어머니께 아이들을 돌보게 했지만 이도 죄송한 마음만 들뿐이었다.
지씨는 오기가 발동했다. 더 이상 물러날 길이 없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찾은 곳이 미용학원이었다. 일단 과정을 수료하면 미용실에 취직이 쉽고, 경력이 쌓이면 개인 가게를 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6개월간 교육기간이 끝나고 견습사원으로 1년간 일했다. 이 기간 동안 월수입은 60만원에 불과했다. 손가락 지문이 닳도록 머리 감기고 청소하며 어깨넘어 곁눈질로 기술을 배웠다. 이렇게 1년이 지나자 지씨도 어느덧 어엿한 미용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빠듯한 생활이지만 아이들이 희망 = 지씨는 오미영 헤어숍으로 일터를 옮기고 월급도 120만원으로 올랐다. 남편이 사망하고 산재보험에서 보조해 주는 생활비를 더하면 빠듯하게 생활한다. 물론 지금도 아이들 교육비에 생활비를 쓰고 보험금 들어가고 나면 저축은 생각도 못한다.
지씨의 가계규모를 살펴보면 매월 60만원가량이 아이들 유치원비와 사교육비로 지출된다. 또 자신을 포함해 아이들 보험금이 40만원. 50만~70만원 정도 생활비가 들어가기 때문에 저축하기란 쉽지 않다.
지금도 지씨는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오미영 원장처럼 머리 만지는 일이 프로가 되려면 아직도 배워야할 기술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지씨는 “늦었지만 내가 좋아하고 미래가 보이는 기술이 배웠다는 생각에 그나마 마음이 뿌듯하다”고 한다.
아이들에게는 미안한 마음뿐이다. 아침 9시에 나오면 밤 10시가 다 돼서야 집에 도착한다. 작은 아들은 아직도 아버지는 미국에서 일하는 줄 알고 있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큰 딸에게는 최근 아버지의 사고 이야기를 했다. 엄마와 딸은 밤새 울며 서로를 위로해 주었다.
지씨는 “미용기술을 배우는 과정은 힘이 들지만 열심히 일해서 내 가게라도 차릴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요즘은 하루하루가 즐겁다”며 “다행히 내가 좋아할 만한 일을 찾았다”고 말했다.
정석용 기자 sy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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