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로마처럼 가장 강대하면서도 장기간 존속한 조직은 찾아볼 수 없다. 기원전 753년 탄생해 기원후 476년 서로마가 멸망할 때까지 약 1200년간을 존속한 로마의 ‘생존 DNA’를 찾는다면 최고의 기업으로 영속하기를 바라는 현대 기업들에게 성공의 전략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인이나 게르만인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지는 가장 열등한 민족인 로마인이 어떻게 그토록 오랫동안 커다란 문명권을 형성하고 유지할 수 있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는 것이 바로 로마의 ‘생존과 성공 DNA’를 찾는 과정일 것이다.
◆ 자유인의 연합을 바탕으로 한 팀제=
로마 성공 요인의 첫 번째 특징은 시민성을 들 수 있다. 당시 주변 민족에 비해 가장 약체인 라틴족을 바탕으로 형성된 로마는 시민들의 공동체 의식, 참여의식이 없었다면 결코 도시국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로마 성장의 중요한 원천인 로마군대의 실질강건함의 원천은 바로 창조적이고 자유인인 이었던 시민들의 참여를 조직화 한 시스템에 있었다. 로마는 국가의 주요한 의사결정을 포럼이라는 광장에 모여 시민 전체 회의를 통해 결정했다. 로마 시민들은 모두 투표권을 가지고 있었고 초기 왕정의 왕과 공화정의 집정관 모두 시민투표로 결정했다. 즉 로마 시민의 의식 속에 로마는 ‘왕의 나라’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곧 국가’였다. 시민이라는 자각을 가진 병사들이 조직적으로 싸우는 로마군에게 그런 자각이 없는 다른 부족이 패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 ‘조직 시스템의 로마’=
로마인들은 ‘한 개인의 역량에 의지하는 사회나 조직은 위험하다’는 사실을 경험 속에서 터득해왔다. 평민 중에서도 뛰어난 인재를 모으고 원로원 중심의 통치 체제 내에서 그 인재를 활용해 나간 로마의 방식은 오늘날의 표현 방식으로 하면 ‘조직력’이라는 한마디로 집약된다. 이 조직력의 힘으로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했다.
뛰어난 지도자는 항상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 진실에 가깝다. 그 대신 다수의 적당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조직은 발전 속도도 느리고 비약적이지는 않지만 목표를 향해 착실히 전진해나가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로마 전쟁사에는 명장으로 지중해 세계에 이름을 떨친 인물을 발견할 수 없다. 그 대신 천재적이지는 않지만 견실하게 지휘할 수 있는 인재풀이 있었다. ‘로마사’를 쓴 티투스 리비우스는 ‘만약 로마군과 고대 세계 최대의 정복자였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군대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라는 이라는 가정을 한 뒤 “조직력에서 우수한 로마군이 최종적으로 이겼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는 그 근거로 “한명 한명의 전사는 각자의 운에 따라 죽거나 살거나 한다. 다만 로마에서는 전사 한 사람의 죽음이 직접적으로 국가의 손실로 연결되지 않고 끝난다” 라고 기술하고 있다.
로마 군단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낸 핵심 원리 중 하나는 바로 ‘백인대’라는 요즘의 팀제와 같은 조직에 있다. 백인대와 대원 중에서 뽑힌 실전경험이 풍부한 팀장격인 백인대장은 로마군단의 등뼈에 해당할 만큼 강고한 조직의 로마를 만든 밑거름이었다.
◆ 소통의 로마=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이 있다. 수백년에 걸쳐 로마가 광대한 영토를 지배할 수 있었던 최대의 비밀 중 하나는 전 제국 영토 곳곳으로 뻗친 도로망의 정비에 있다.
기원전 312년에 시작한 로마 가도 부설은 기원전 1세기의 공화정 시대에 본국 이탈리아를 총망라하며 완성되었고, 제정 시대에 접어들어서는 유럽, 중근동, 북아프리카에 걸친 제국 전역을 망라했다. 그 결과 주요 간선도로는 375 갈래, 전체 길이는 8만 킬로미터를 넘었고 간선도로나 사도까지 포함하면 총연장 길이는 30만 킬로미터에 이른다. 고대 세계에서 국가 방위 면에서 생각하면 도로망의 부설을 양날의 칼이기도 했다. 고대판 고속도로인 로마가도는 자국 군대가 신속하게 이동할 수가 있었지만 그 반대로 적 또한 그만큼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가 있었다.
고대 중국 진나라의 만리장성과 로마 가도는 서로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온 점 때문에 자주 비교된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강대한 방벽을 둘러쳐서 사람의 왕래를 끊은 반면 로마는 사람의 왕래를 촉진한 가도를 건설했다. 똑 같이 고대 제국이라고 일컬어지는 로마와 중국이었지만 그 이후 역사에서 나타난 결과는 판이했다. 로마의 도로망은 팍스 로마나(로마의 평화)로 연결된 데 비해 중국의 만리장성은 팍스를 가져다주지 못했다.
오늘날 모든 조직에서 내‧외부를 연결하는 발달한 네트워크의 구축은 그 조직의 스피드가 돼서 효율을 증폭시킨다.
로마는 그만큼 소통을 중시한 개방성과 포용성을 지닌 민족이었다. 이 점은 로마 가도와 같은 하드웨어 측면 뿐 아니라 전쟁을 한 패자도 동화시켜 시민권을 준 포용성에 있다. 한 마디로 말해 로마는 패자를 예속시키기보다는 자신의 ‘공동 경영자’로 삼아 역량을 강화하는 전략을 택했다. 내부적으로는 능력과 공에 따라 신분상승의 기회를 개방했고 외부 민족에 대해서도 자치를 허용하며 로마화를 진행시켜 나갔다. 로마에서는 황제의 지위조차 출신지나 출생을 불문하고 개방되어 있었다.
◆ 착실하고 지속적인 개혁=
우리는 흔히 “로마의 역사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경구를 자주 인용하곤 한다. 천년이 넘는 역사에서 로마는 계속 성공만 해왔을까. 역사적 사실은 결코 ‘아니다’ 쪽이다.
로마도 인간이 만든 이상 실패가 없을 수 없다. 오히려 성공보다는 실패와 좌절의 역사였다. 하지만 그들이 동시대 짧게 성공했다 멸망한 다른 민족이나 국가와 다른 점은 스스로의 실패를 인정하는 순간 주저 없이 개혁을 단행하는 용기를 잃지 않았던 데 있다.
로마가 천년 이상 존속한 데는 결코 운이 좋아서도 아니고 그들의 자질이 특별히 우수해서도 아니다. 다만 있는 그대로 모습을 직시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 그것을 한걸음 한걸음 개선해왔기에 번영이 오래 지속될 수 있었다.
개혁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개혁은 반드시 기득권자의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모든 사람이 찬성하는 개혁이란 어느 시대에도 존재하기 어렵다. 진정한 의미의 개혁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한다. 역사상 수많은 민족이나 국가, 집단이 등장하지만 그 노력을 꺼려 쇠퇴해갔고 그 노력을 아끼지 않은 소수만이 미래를 개척했다.
그런 의미에서 로마인들은 구조조정의 달인들이었다. 어떤 정치시스템이나 조직시스템이든 처음부터 국민이나 조직 구성원을 불행에 빠뜨리려고 생각하면서 만들어진 것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동기가 ‘선한 것’이었다 할지라도 오랜 시간이 지나거나 시행되는 과정에서 ‘악한 것’으로 바뀔 수 있다. 만든 자의 의지대로만 되어가는 세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원인은 시스템 자체에 있다기보다 외부 환경의 변화에 있다. 로마인들은 초기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그리고 다시 황제정으로 환경 변화에 맞게 시스템을 고쳐가며 변화시켰다.
◆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노블리스 오블리제, 즉 리더 집단의 자질과 특성이 로마의 중요한 성공요인이었다. 로마의 지배계층은 솔선수범해 병역이나 납세 등 그들의 의무를 수행했으며 항상 검소한 태도로 평민들과 같이 생활하려는 모습을 견지했다.
아울러 국가와 공동체에 필요한 공공시설이나 기타 인프라를 만드는 데 사재를 아끼지 않고 투자하는 등 적극적이었다. 지도층이 법적 권리와 경제적 부, 세금 등을 평민과 공유하기를 거부하고 지배와 명령하기를 즐기면 지도층과 피지도층 간에 갈등이 일어나고 국가는 부패하기 시작한다.
안찬수 기자 khae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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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인이나 게르만인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지는 가장 열등한 민족인 로마인이 어떻게 그토록 오랫동안 커다란 문명권을 형성하고 유지할 수 있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는 것이 바로 로마의 ‘생존과 성공 DNA’를 찾는 과정일 것이다.
◆ 자유인의 연합을 바탕으로 한 팀제=
로마 성공 요인의 첫 번째 특징은 시민성을 들 수 있다. 당시 주변 민족에 비해 가장 약체인 라틴족을 바탕으로 형성된 로마는 시민들의 공동체 의식, 참여의식이 없었다면 결코 도시국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로마 성장의 중요한 원천인 로마군대의 실질강건함의 원천은 바로 창조적이고 자유인인 이었던 시민들의 참여를 조직화 한 시스템에 있었다. 로마는 국가의 주요한 의사결정을 포럼이라는 광장에 모여 시민 전체 회의를 통해 결정했다. 로마 시민들은 모두 투표권을 가지고 있었고 초기 왕정의 왕과 공화정의 집정관 모두 시민투표로 결정했다. 즉 로마 시민의 의식 속에 로마는 ‘왕의 나라’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곧 국가’였다. 시민이라는 자각을 가진 병사들이 조직적으로 싸우는 로마군에게 그런 자각이 없는 다른 부족이 패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 ‘조직 시스템의 로마’=
로마인들은 ‘한 개인의 역량에 의지하는 사회나 조직은 위험하다’는 사실을 경험 속에서 터득해왔다. 평민 중에서도 뛰어난 인재를 모으고 원로원 중심의 통치 체제 내에서 그 인재를 활용해 나간 로마의 방식은 오늘날의 표현 방식으로 하면 ‘조직력’이라는 한마디로 집약된다. 이 조직력의 힘으로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했다.
뛰어난 지도자는 항상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 진실에 가깝다. 그 대신 다수의 적당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조직은 발전 속도도 느리고 비약적이지는 않지만 목표를 향해 착실히 전진해나가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로마 전쟁사에는 명장으로 지중해 세계에 이름을 떨친 인물을 발견할 수 없다. 그 대신 천재적이지는 않지만 견실하게 지휘할 수 있는 인재풀이 있었다. ‘로마사’를 쓴 티투스 리비우스는 ‘만약 로마군과 고대 세계 최대의 정복자였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군대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라는 이라는 가정을 한 뒤 “조직력에서 우수한 로마군이 최종적으로 이겼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는 그 근거로 “한명 한명의 전사는 각자의 운에 따라 죽거나 살거나 한다. 다만 로마에서는 전사 한 사람의 죽음이 직접적으로 국가의 손실로 연결되지 않고 끝난다” 라고 기술하고 있다.
로마 군단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낸 핵심 원리 중 하나는 바로 ‘백인대’라는 요즘의 팀제와 같은 조직에 있다. 백인대와 대원 중에서 뽑힌 실전경험이 풍부한 팀장격인 백인대장은 로마군단의 등뼈에 해당할 만큼 강고한 조직의 로마를 만든 밑거름이었다.
◆ 소통의 로마=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이 있다. 수백년에 걸쳐 로마가 광대한 영토를 지배할 수 있었던 최대의 비밀 중 하나는 전 제국 영토 곳곳으로 뻗친 도로망의 정비에 있다.
기원전 312년에 시작한 로마 가도 부설은 기원전 1세기의 공화정 시대에 본국 이탈리아를 총망라하며 완성되었고, 제정 시대에 접어들어서는 유럽, 중근동, 북아프리카에 걸친 제국 전역을 망라했다. 그 결과 주요 간선도로는 375 갈래, 전체 길이는 8만 킬로미터를 넘었고 간선도로나 사도까지 포함하면 총연장 길이는 30만 킬로미터에 이른다. 고대 세계에서 국가 방위 면에서 생각하면 도로망의 부설을 양날의 칼이기도 했다. 고대판 고속도로인 로마가도는 자국 군대가 신속하게 이동할 수가 있었지만 그 반대로 적 또한 그만큼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가 있었다.
고대 중국 진나라의 만리장성과 로마 가도는 서로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온 점 때문에 자주 비교된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강대한 방벽을 둘러쳐서 사람의 왕래를 끊은 반면 로마는 사람의 왕래를 촉진한 가도를 건설했다. 똑 같이 고대 제국이라고 일컬어지는 로마와 중국이었지만 그 이후 역사에서 나타난 결과는 판이했다. 로마의 도로망은 팍스 로마나(로마의 평화)로 연결된 데 비해 중국의 만리장성은 팍스를 가져다주지 못했다.
오늘날 모든 조직에서 내‧외부를 연결하는 발달한 네트워크의 구축은 그 조직의 스피드가 돼서 효율을 증폭시킨다.
로마는 그만큼 소통을 중시한 개방성과 포용성을 지닌 민족이었다. 이 점은 로마 가도와 같은 하드웨어 측면 뿐 아니라 전쟁을 한 패자도 동화시켜 시민권을 준 포용성에 있다. 한 마디로 말해 로마는 패자를 예속시키기보다는 자신의 ‘공동 경영자’로 삼아 역량을 강화하는 전략을 택했다. 내부적으로는 능력과 공에 따라 신분상승의 기회를 개방했고 외부 민족에 대해서도 자치를 허용하며 로마화를 진행시켜 나갔다. 로마에서는 황제의 지위조차 출신지나 출생을 불문하고 개방되어 있었다.
◆ 착실하고 지속적인 개혁=
우리는 흔히 “로마의 역사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경구를 자주 인용하곤 한다. 천년이 넘는 역사에서 로마는 계속 성공만 해왔을까. 역사적 사실은 결코 ‘아니다’ 쪽이다.
로마도 인간이 만든 이상 실패가 없을 수 없다. 오히려 성공보다는 실패와 좌절의 역사였다. 하지만 그들이 동시대 짧게 성공했다 멸망한 다른 민족이나 국가와 다른 점은 스스로의 실패를 인정하는 순간 주저 없이 개혁을 단행하는 용기를 잃지 않았던 데 있다.
로마가 천년 이상 존속한 데는 결코 운이 좋아서도 아니고 그들의 자질이 특별히 우수해서도 아니다. 다만 있는 그대로 모습을 직시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 그것을 한걸음 한걸음 개선해왔기에 번영이 오래 지속될 수 있었다.
개혁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개혁은 반드시 기득권자의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모든 사람이 찬성하는 개혁이란 어느 시대에도 존재하기 어렵다. 진정한 의미의 개혁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한다. 역사상 수많은 민족이나 국가, 집단이 등장하지만 그 노력을 꺼려 쇠퇴해갔고 그 노력을 아끼지 않은 소수만이 미래를 개척했다.
그런 의미에서 로마인들은 구조조정의 달인들이었다. 어떤 정치시스템이나 조직시스템이든 처음부터 국민이나 조직 구성원을 불행에 빠뜨리려고 생각하면서 만들어진 것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동기가 ‘선한 것’이었다 할지라도 오랜 시간이 지나거나 시행되는 과정에서 ‘악한 것’으로 바뀔 수 있다. 만든 자의 의지대로만 되어가는 세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원인은 시스템 자체에 있다기보다 외부 환경의 변화에 있다. 로마인들은 초기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그리고 다시 황제정으로 환경 변화에 맞게 시스템을 고쳐가며 변화시켰다.
◆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노블리스 오블리제, 즉 리더 집단의 자질과 특성이 로마의 중요한 성공요인이었다. 로마의 지배계층은 솔선수범해 병역이나 납세 등 그들의 의무를 수행했으며 항상 검소한 태도로 평민들과 같이 생활하려는 모습을 견지했다.
아울러 국가와 공동체에 필요한 공공시설이나 기타 인프라를 만드는 데 사재를 아끼지 않고 투자하는 등 적극적이었다. 지도층이 법적 권리와 경제적 부, 세금 등을 평민과 공유하기를 거부하고 지배와 명령하기를 즐기면 지도층과 피지도층 간에 갈등이 일어나고 국가는 부패하기 시작한다.
안찬수 기자 khae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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