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기름유출로 극심한 피해를 입고 망연자실해 있는 태안군을 방문하여 예보사랑나누미와 함께 자원봉사를 하면서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감회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10여 년 전에는 여수에서 이와 비슷한 사고가 발생하여 막대한 손해를 끼친 적이 있었고 정부에서는 그러한 사고에 대비하여 매뉴얼도 만들고 사고예방훈련도 하였으나,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조류의 변동성이 큰 서해안의 특성을 감안하지 못하고 초동 대응에도 실패하여 결국 이러한 재앙을 막지는 못했다 한다. 필자는 금번 서해안의 비극을 보면서 10년 전 외환위기 때의 생경(生梗)했던 대처와 최근 서민금융시스템의 불안정성이 겹쳐지면서 금융 부문에서도 이러한 위기가 닥쳤을 때 현행 시스템으로 과연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을지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마침 이번 대통령 선거의 최대 이슈는 경제였고 그 중에서도 서민경제의 불황에 대해서는 모든 후보자들이 한 목소리로 개선을 촉구하고 대안들을 제시하였으나, 서민경제 불황에 따른 서민금융시스템 불안정성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러한 불찰은 참여정부 하의 서민금융 활성화 방안에서도 드러났던 바, 재정경제부에 관련 부서를 설치하고 금융감독원의 인력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피상적인 접근 말고 문제의 근원적인 해결책은 제시되지 못했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공통된 판단이다.
이와 관련하여 예금보험공사 직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발족된 예금보험제도발전협의회가 주최한 학술 심포지엄에서는 서민금융기관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통합금융감독제도에 상응한 통합예금보험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데 금융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여졌다. 현행 중앙회나 연합회 등 업계를 대변하는 기구들이 감독기능을 행사한다는 데 부정적인 의견이 다수를 이루었고, 예금보험제도가 단순한 기금 적립 및 보험금 지급에 한정되지 않고 정리·회수·조사 등 예금보험공사가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인력과 노하우 및 가장 중요한 기금손실 최소화라는 사명감에 성공의 열쇠가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 자리였다.
한편 동 심포지엄에서 다루어진 다른 연구과제들에는 최적 예금보호시스템 구축을 위한 금융정책의 방향과 금융제도 안정성 유지를 위한 예금보험공사 독립성 강화방안 등이 포함되었는데 두 과제 모두 예금보험공사가 한국은행 및 금융감독원과 함께 금융제도 안정성 유지를 위한 한 축을 이룬다고 하면서도 감독정보 공유의 미흡과 입법 미비로 인한 공사 위상의 저하 및 이로 인한 실질적 업무 추진의 한계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던 바, 이를 몸으로 느끼고 있던 많은 직원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혹자는 예금보험제도발전협의회의 발족과 협의회의 동 심포지엄 개최에 대해 조직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편협한 집단이기주의로 폄하하려 하겠지만, 필자는 금융 현장에서 시스템 불안정성을 직접 목도하고 있는 공사 직원들의 입장에서 질시와 의혹의 시선을 두려워하기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싶지 않고 믿고 싶지 않은 현실에 경종을 울림으로써 정말로 위기가 닥쳤을 때 이를 지혜롭게 극복하기 위한 한 알의 씨앗을 뿌리는 심정으로 동 협의회가 발족되고 동 심포지엄이 개최되었다는 점을 알리고 싶다.
예금보험공사는 화재의 예방과 화재 발생시 진압을 책임지는 소방방재청과 비교되어 많이 논의되고 있는 바,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겠다. 강원도에 대형 산불이 연이어 일어나던 시절 소방방재청은 화재진압용 헬기를 충분히 보유하지 못해 초기 진화에 애를 먹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알고 보니 산불이 발생하기 전 예산심사 과정에서 예산절감을 이유로 헬기 도입 시기가 늦춰지거나 일부 취소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비분강개한 직원들이 많았다고 하지만, 그러한 태도에 대한 언론의 반응은 오히려 왜 진작 헬기 도입의 필요성을 널리 홍보하지 못 하였는가 하는 비판이었다. 이러한 에피소드가 주는 교훈은 당위성과 필요성에 대한 홍보는 당사자 자신이 할 수밖에 없으며 그 과정에서 조직이기주의로 매도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만약 서민금융의 부실로 금융위기가 발생된다면 그 양상은 10년 전 외환위기와는 다른 깊이와 폭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마치 최근 서해안의 기름유출 사고로 인한 오염이 서해안의 독특한 지형으로 인하여 대재앙이 되었던 것처럼 그리고 초기 대응 실패가 더 커다란 손실을 야기한 것처럼 그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카산드라의 예언은 어느 시대에나 환영받지 못하는 운명을 타고 났는지도 모른다. 더구나 금융계의 응급치료 외과의사 심지어는 장의사로까지 인식된 예금보험공사에 있어서 그러한 위기에 대한 경고를 곱게 봐 줄 금융계 인사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불편한 진실에 눈감고자 하는 사람들이 위기의 책임자로 지목될지도 모를 감독 담당자라거나 부실금융기관의 경영진이라면 시각을 달리 보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예금보험제도의 가장 큰 수혜자라 할 수 있는 국민의 대다수인 서민을 볼모로 한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에서 벗어나 진정 서민을 위한 정책을 설계하고 많은 전문가들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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