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민족 우수성 발굴 … 국가 성장동력으로 삼아야
왕인박사 뱃길 뗏목원정, 하멜표류기·발해탐사 복원준비
내일신문은 ‘제2회 장보고대상’ 후보를 집중 조명한다.
내일신문이 주관하고 (재)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가 주최하는 ‘제2회 장보고대상’ 최종 후보로 결정된 9명(기관·단체 포함)을 만나 바다에서 희망을 찾는 이야기를 들었다.
최종후보 9명은 지난 12월 21일 예비심사위원회에서 선정했다. 경상북도와 김용삼 월간조선 전략기획실장, 채길웅 고대항해탐험연구소장(해양문화) 안산시, 이판묵 해양연구원 해양탐사장비연구사업단장, 조명래 한국해양구조단 단장(해양과학) 김철곤 한국무역협회 이사, (주)영진공사, 조재우 소금박물관장(해양산업)이다.
“세계는 해양문화를 통해 진화했다.”
1월 25일 한국시인협회 회원 40여명과 충남 태안군 학암포에서 자원봉사에 참여한 채바다 고대항해탐험연구소장(본명 채길웅·64)은 “잃어버린 해양문화를 찾아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강국으로 나가는 밑거름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떼배에 몸을 싣고 일본 상륙 성공
“손바닥만한 뗏목이 거센 파도에 묻히는데 왜 무섭지 않겠습니까”
1996년 5월 채 소장은 길이 6.5m 폭 3m 떼배(제주 뗏목)에 몸을 싣고 일본 원정에 나섰다.
채 소장은 일본 원정에 성공한 후 다음해인 1997년 10월과 2001년 4월 두 번 더 일본 상륙작전에 성공했다.
고대 선조들이 사용했던 떼배 ‘왕인호’는 일본 국민과 언론의 관심을 모았다. 한국이 일본 고대문화의 뿌리였음을 일본인들에게 알리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렇게 1600 년 전 왕인 박사가 현해탄을 건넜던 뱃길 전남 영암 대불항-완도-보길도-고흥 앞바다-일본 큐슈 가라쓰 해안을 길이 6.5m 폭 3m 뗏목으로 완주했다.
채 소장 일행은 추위와 파도 졸음과 싸우면서 8일 동안 바다에 몸을 맡겼다. 채 소장은 “우리의 뛰어난 해양문화를 재조명하는 것은 과거를 통해 미래의 삶을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는 분단국가로 사실상 섬나라다. 섬나라가 해양을 발판삼아 살아갈 방도를 찾는 것은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이후 제주의 탄생신화인 벽랑국 신화를 좇아 120km 대 항해에 도전장을 냈다. 전남 해안의 벽랑도(현 소랑도)가 벽랑국일 것이라는 증거를 ‘고려사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에서 그 기록을 찾아냈다.
벽랑국 바닷길은 일본 고승 엔닌이 중국으로 가려다 두 번이나 실패한 험난한 곳이다. 이 뱃길을 길이 7.5m, 폭 2.9m 뗏목을 타고 제주의 탄생 신화와 기원을 찾았다. 2005년 제주 남북통일회담 당시 성공기원을 위해 ‘떼배 제주 일주탐사’도 성공했다.
제주~서울~여수 ‘하멜’ 재조명
채 소장은 올 8월 제주에서 서울까지 하멜이 압송됐던 길을 다시 걷는다. 서울에서 다시 여수 유배지까지 3000리 길을 걷는 ‘하멜표류기 재조명’을 준비하고 있다.
채 소장은 “하멜은 우리나라를 세계 최초로 유럽에 소개한 인물”이라며 “조선에서 사망한 선원 49명의 영혼을 달래고 하멜의 출생지 호르큼시와 선장 출생지 암스테르담과 자매결연을 통한 문화교류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1653년 8월 16일 하멜이 표류한 제주 서귀포 대정읍 신도 2리 해안이 난파된 지역임을 찾아내고 이곳에 기념비를 세웠다.
채 소장은 “우리가 하멜표류기를 제주를 중심으로 봐서는 안된다. 당시 암스테르담과 동인도회사인 나가사키 데지마로 가려다 풍랑을 만난것이다. 데지마로부터 하멜을 다시 검증해야 해양의 역사를 정확하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채 소장의 바다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다. 1997년 블라디보스톡에서 일본 오끼섬으로 항해하다 풍랑에 목숨을 잃은 발해탐사단 4명의 원혼을 달래는 발해탐사를 계획하고 있다. 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한반도 침략 전진기지로 삼았던 큐슈(시가현) 가라스 항을 목표로 전남 영암에서 다시 떼배 항해를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채 소장의 고민과 걱정은 끝나지 않았다. 해양탐험에 필요한 예산과 각종 장비는 혼자 마련해왔다. 기업은 물론 정부와 자치단체 지원은 한 푼도 없었다. 그만큼 해양역사 조명에 관심이 부족하다.
채 소장은 지난해 9월 제주를 강타한 태풍 나리로 모든 것을 잃었다. 태풍은 순간 최대 속도 52.1m 하루 500mm가 넘는 물폭탄을 쏟아 부으며 채 소장이 혼자서 만든 해양박물관, 집과 해양관련 자료도 쓸어갔다.힘들게 만든 떼배가 태풍에 쓸려갈 때는 가슴이 미어졌다.
“그래도 살아있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바다는 항상 문을 열어놓고 기회를 줍니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전호성 기자 hsjeon@naeil.com
채바다 소장은
채바다 소장은 제주도 성산포 출신으로 한양대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후 중앙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부터 전공과 무관한 바다에 ‘미쳐’ 고대사 연구와 제주 뿌리찾기, 일본 고대사 연구 등을 통해 왕인 박사를 재조명하고 있다.
1996년 첫 고대 뱃길탐험을 시작으로 세차례 한·일 뱃길탐험과 2003년 남북평화축전 성공 기원 제주일주 등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지난해 10월에는 남제주군 성산읍 시흥리에 바다박물관을 세웠다. 시흥포구에 떼배 4척을 정박시켜 ‘떼배체험 바당마을(www.ttebe.net)’을 운영하며 제주의 전통 뗏목이 가진 문화·역사적 가치를 전수하고 있다.(문의 064-782-1235)
떼배는 해양문화 유산
떼배는 제주에서 오래 전부터 전해내려 온 원시형태의 배다. 원래 이름은 터배 터위 테위 테배 등 마을마다 달랐다. 고대부터 제주 사람들이 만들어왔고 1960년대까지 제주 연근해에서 고기잡이나 해녀들 해조류 채취에 이용했다.
떼배는 주로 삼나무를 이용한다. 길이 6.5m, 폭 3m, 선수 2.7m로 통나무 10여개를 엮어 만든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겨울에는 배를 분해·보관하다가 봄 여름에 다시 조립해 사용한다.
떼배는 세계 여러나라에 남아 있는 원시 배들과는 선재(船材)나 모양 크기 모든 면에서 다르다. 사료(史料)적 가치가 매우 높아 해양국가인 우리나라에서 그 원형을 찾아내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는 게 학계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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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인박사 뱃길 뗏목원정, 하멜표류기·발해탐사 복원준비
내일신문은 ‘제2회 장보고대상’ 후보를 집중 조명한다.
내일신문이 주관하고 (재)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가 주최하는 ‘제2회 장보고대상’ 최종 후보로 결정된 9명(기관·단체 포함)을 만나 바다에서 희망을 찾는 이야기를 들었다.
최종후보 9명은 지난 12월 21일 예비심사위원회에서 선정했다. 경상북도와 김용삼 월간조선 전략기획실장, 채길웅 고대항해탐험연구소장(해양문화) 안산시, 이판묵 해양연구원 해양탐사장비연구사업단장, 조명래 한국해양구조단 단장(해양과학) 김철곤 한국무역협회 이사, (주)영진공사, 조재우 소금박물관장(해양산업)이다.
“세계는 해양문화를 통해 진화했다.”
1월 25일 한국시인협회 회원 40여명과 충남 태안군 학암포에서 자원봉사에 참여한 채바다 고대항해탐험연구소장(본명 채길웅·64)은 “잃어버린 해양문화를 찾아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강국으로 나가는 밑거름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떼배에 몸을 싣고 일본 상륙 성공
“손바닥만한 뗏목이 거센 파도에 묻히는데 왜 무섭지 않겠습니까”
1996년 5월 채 소장은 길이 6.5m 폭 3m 떼배(제주 뗏목)에 몸을 싣고 일본 원정에 나섰다.
채 소장은 일본 원정에 성공한 후 다음해인 1997년 10월과 2001년 4월 두 번 더 일본 상륙작전에 성공했다.
고대 선조들이 사용했던 떼배 ‘왕인호’는 일본 국민과 언론의 관심을 모았다. 한국이 일본 고대문화의 뿌리였음을 일본인들에게 알리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렇게 1600 년 전 왕인 박사가 현해탄을 건넜던 뱃길 전남 영암 대불항-완도-보길도-고흥 앞바다-일본 큐슈 가라쓰 해안을 길이 6.5m 폭 3m 뗏목으로 완주했다.
채 소장 일행은 추위와 파도 졸음과 싸우면서 8일 동안 바다에 몸을 맡겼다. 채 소장은 “우리의 뛰어난 해양문화를 재조명하는 것은 과거를 통해 미래의 삶을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는 분단국가로 사실상 섬나라다. 섬나라가 해양을 발판삼아 살아갈 방도를 찾는 것은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이후 제주의 탄생신화인 벽랑국 신화를 좇아 120km 대 항해에 도전장을 냈다. 전남 해안의 벽랑도(현 소랑도)가 벽랑국일 것이라는 증거를 ‘고려사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에서 그 기록을 찾아냈다.
벽랑국 바닷길은 일본 고승 엔닌이 중국으로 가려다 두 번이나 실패한 험난한 곳이다. 이 뱃길을 길이 7.5m, 폭 2.9m 뗏목을 타고 제주의 탄생 신화와 기원을 찾았다. 2005년 제주 남북통일회담 당시 성공기원을 위해 ‘떼배 제주 일주탐사’도 성공했다.
제주~서울~여수 ‘하멜’ 재조명
채 소장은 올 8월 제주에서 서울까지 하멜이 압송됐던 길을 다시 걷는다. 서울에서 다시 여수 유배지까지 3000리 길을 걷는 ‘하멜표류기 재조명’을 준비하고 있다.
채 소장은 “하멜은 우리나라를 세계 최초로 유럽에 소개한 인물”이라며 “조선에서 사망한 선원 49명의 영혼을 달래고 하멜의 출생지 호르큼시와 선장 출생지 암스테르담과 자매결연을 통한 문화교류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1653년 8월 16일 하멜이 표류한 제주 서귀포 대정읍 신도 2리 해안이 난파된 지역임을 찾아내고 이곳에 기념비를 세웠다.
채 소장은 “우리가 하멜표류기를 제주를 중심으로 봐서는 안된다. 당시 암스테르담과 동인도회사인 나가사키 데지마로 가려다 풍랑을 만난것이다. 데지마로부터 하멜을 다시 검증해야 해양의 역사를 정확하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채 소장의 바다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다. 1997년 블라디보스톡에서 일본 오끼섬으로 항해하다 풍랑에 목숨을 잃은 발해탐사단 4명의 원혼을 달래는 발해탐사를 계획하고 있다. 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한반도 침략 전진기지로 삼았던 큐슈(시가현) 가라스 항을 목표로 전남 영암에서 다시 떼배 항해를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채 소장의 고민과 걱정은 끝나지 않았다. 해양탐험에 필요한 예산과 각종 장비는 혼자 마련해왔다. 기업은 물론 정부와 자치단체 지원은 한 푼도 없었다. 그만큼 해양역사 조명에 관심이 부족하다.
채 소장은 지난해 9월 제주를 강타한 태풍 나리로 모든 것을 잃었다. 태풍은 순간 최대 속도 52.1m 하루 500mm가 넘는 물폭탄을 쏟아 부으며 채 소장이 혼자서 만든 해양박물관, 집과 해양관련 자료도 쓸어갔다.힘들게 만든 떼배가 태풍에 쓸려갈 때는 가슴이 미어졌다.
“그래도 살아있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바다는 항상 문을 열어놓고 기회를 줍니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전호성 기자 hsjeon@naeil.com
채바다 소장은
채바다 소장은 제주도 성산포 출신으로 한양대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후 중앙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부터 전공과 무관한 바다에 ‘미쳐’ 고대사 연구와 제주 뿌리찾기, 일본 고대사 연구 등을 통해 왕인 박사를 재조명하고 있다.
1996년 첫 고대 뱃길탐험을 시작으로 세차례 한·일 뱃길탐험과 2003년 남북평화축전 성공 기원 제주일주 등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지난해 10월에는 남제주군 성산읍 시흥리에 바다박물관을 세웠다. 시흥포구에 떼배 4척을 정박시켜 ‘떼배체험 바당마을(www.ttebe.net)’을 운영하며 제주의 전통 뗏목이 가진 문화·역사적 가치를 전수하고 있다.(문의 064-782-1235)
떼배는 해양문화 유산
떼배는 제주에서 오래 전부터 전해내려 온 원시형태의 배다. 원래 이름은 터배 터위 테위 테배 등 마을마다 달랐다. 고대부터 제주 사람들이 만들어왔고 1960년대까지 제주 연근해에서 고기잡이나 해녀들 해조류 채취에 이용했다.
떼배는 주로 삼나무를 이용한다. 길이 6.5m, 폭 3m, 선수 2.7m로 통나무 10여개를 엮어 만든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겨울에는 배를 분해·보관하다가 봄 여름에 다시 조립해 사용한다.
떼배는 세계 여러나라에 남아 있는 원시 배들과는 선재(船材)나 모양 크기 모든 면에서 다르다. 사료(史料)적 가치가 매우 높아 해양국가인 우리나라에서 그 원형을 찾아내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는 게 학계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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