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장보고 대상-바다에서 희망을 찾다]바다로 우리 영토를 넓힐 수 있다
김용삼 월간조선 전략기획실장 … 국가해양력 개념도입, 한민족대항해시대 제안
지역내일
2008-02-13
내일신문은 ‘제2회 장보고대상’ 후보를 집중 조명한다.
내일신문이 주관하고 (재)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가 주최하는 ‘제2회 장보고대상’ 최종 후보로 결정된 9명(기관·단체 포함)을 만나 바다에서 희망을 찾는 이야기를 들었다.
최종후보는 지난해 12월 21일 예비심사위원회에서 선정했다. 경상북도와 김용삼 월간조선 전략기획실장, 채길웅 고대항해탐험연구소장(해양문화) 안산시, 이판묵 해양연구원 해양탐사장비연구사업단장, 조명래 한국해양구조단 단장(해양과학) 김철곤 한국무역협회 이사, (주)영진공사, 조재우 소금박물관장(해양산업)이다.
“근대화를 위해 피땀 나게 뛰어온 30여년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바다로의 도전입니다.”
2004년 겨울, 한민족은 아직 ‘반도’에 갇혀있었다. 반만년 역사의 터는 한면만 대륙과 맞닿은 한반도였다. 김용삼(50·사진) 월간조선 전략기획실장은 나머지 세 면을 둘러싼 바다에 주목하고 ‘한민족 대항해시대’를 제안했다.
삼면이 바다인데다 육지에서는 늘 먹을거리 생산이 빈약했으니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아야 했고(어업) 부존자원이라고는 없는 나라이다 보니 해외에서 원료를 사다 가공해서 외국에 팔기 위해 항구가 필요했다(항만산업). 삼면을 둘러싼 바닷길을 열기 위해 배를 만들었고(조선산업) 그 배를 운전하고 관리하는 기술이 요구됐을 때 또 그렇게 했다(해운산업).
그의 표현대로 가히 “해양혁명”이었다. 바다는 이제 한반도를 삼면에서 포위한 걸림돌이 아니라 태평양으로 뻗어나갈 열린 길, 큰 가능성이 됐다. 그가 우리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하나로 해상왕 장보고를 꼽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청해진은 요즘으로 치자면 두바이에요. 홍콩이나 싱가포르같은 자유무역항이죠.”
바다는 생존과 직결된다
대전이 고향인 김용삼 실장에게 바다는 낯설었고 배라고는 강릉 앞바다에서 언뜻 본 쪽배가 전부였다.
1980년 3월, 해군에 자원해 전투함정에 배치되면서 처음 배를 타봤다. 그러나 구축함에 오르는 날까지 잠은 육지에서 자는 줄 알 정도로 배와 바다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어수선한 80년, 절박한 남북 대치상황에서 초년병 시절을 나며 그는 새로운 방향에서 눈을 떴다.
“미군이 2차대전때 사용한 전투함이 당시 우리 주력전투함이었어요. 도색만 살짝 바꿔서 사용했는데 그나마 태부족이었죠. 사정거리가 60km 이상 되는 미사일로 무장한 북한군에는 15km 함포로 대응했구요. 매일 두차례 회피 기동훈련을 했는데 사실상 8단계에 걸친 36계 작전이었어요. 잠수정은 60여척 대 0척이었구요.”
그때부터 바다는 곧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로 다가왔다. 바다를 공부해야겠다는 절박한 심경이었다. 잠수함부터 시작해 해양이며 조선에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외국의 자료를 뒤졌고 연구자들을 만나며 각종 학술연구발표회를 쫓아다녔다.
기자생활을 시작하면서는 잠수함이며 바다에 대한 기사를 썼다. 전문기자라는 용어마저 생소하던 시절이었지만 해양관련 기사는 대부분 그의 몫이었다. 잠수함 사업에 깊이있게 접근했고 국내 7대 조선소 사장을 연속 인터뷰하며 조선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들었다.
“일찌감치 바다에 주목한 선구자들의 도움을 크게 받았어요. 김재철 장보고기념사업회 회장같은 분들에게 바다를 보는 안목을 배웠죠.”
‘돈’이 되는 해양에 주목
“바다는 물결만 출렁이는 곳이 아닙니다.”
김용삼 실장은 푸른 바다가 “돈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해양력을 키우지 못하면 ”곧 절박한 상황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듯 말했다.
석유가 비근한 예가 될 수 있다. 육상의 자원이 고갈돼가자 육지와 가까운 바다 대륙붕을 개발하기 시작했지만 금세 바닥이 드러났다. 시추선은 점점 대양 한 복판을 향해 나가고 있고 그만큼 석유를 얻기까지 쏟아 붓는 노력과 비용이 커진다.
바다는 ‘유전’이다. 독도 앞바다에서 찾아내 환호성을 질렀던 메탄수화물은 석유의 대체물이 될 수 있는 문자 그대로 유전이다. “상용화되면 3세기 동안 에너지 걱정이 없다”. 태평양해저망간단괴 단독개발광구 개척은 “건국 이래 가장 잘한 일”이다. ‘바다의 검은 진주’라 불리는 망간은 망간뿐 아니라 구리 니켈 코발트같은 유용한 금속 광물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 우리 광구는 2040억 달러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세계 22개국 중 하나로 참여한 남극기지 개척 역시 그 잠재적 가치가 어마어마하다.
우리는 한반도라는 좁은 땅덩어리를 벗어나 “바다로 영토를 확장”하고 있는 셈이다. 그가 국내에 처음 소개했던 개념, 국가해양력이라는 단어가 담고 있는 의미다. 해양력은 곧 새로운 국부 창출과 연결된다.
김용삼 실장은 여기서 다시 ‘배’로 돌아갔다. 해양력은 곧 우리나라의 미래나 매한가지이고, 그 해양력을 키울 수 있는 핵심은 ‘배’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해양력 키우기는 조선을 기반으로 해야 합니다. 조선산업은 통신 등 일부를 제외하고 99%가 우리 기술입니다. 국산으로 자급자족이 가능하죠.”
그는 여기에 더해 젊고 우수한 인력이라는 인적 인프라를 또다른 동력으로 꼽았다. 선박 설계기술면에서 가장 강력한 라이벌인 일본을 우리가 제칠 수 있었던 힘이기도 하다.
김 실장은 “배는 바다와 바다, 대륙과 대륙,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라며 “배를 잘 만든다는 것은 미래를 잘 만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단언했다. 국민소득 2만 달러를 얘기하는 지금 거제에서 울산에 이르는 조선클러스터는 벌써 소득수준 3만5000 달러와 4만 달러를 넘나들고 있다.
“조선은 사양산업일 수 없습니다. 물론 단순한 선박건조가 아니라 다른 산업·과학 분야와 결합한 MT(Marine Technology)로 가능한 거죠. 심해유전개발에 필수적인 탐사선 유조선 등을 만드는 기술에서 우리가 세계 최고가 됐어요. 앞으로는 조선소에서 우주구조물을 만들 겁니다.”
해양정책 전담기구 축소우려
“막연한 의미의 바다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돈이 되는 바다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돈벌이와 경제활동 공간을 넓히는 쪽으로 해양을 공부해야 합니다.”
경치 자체도 상품이 될 수 있다. 몰디브나 발리 바다가 아름답다 하지만 우리 서남해안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네는 섬과 해안을 상품으로 개발했고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 개념을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 20여년간 그가 해온 일, 앞으로 할 일이다.
“여수 해양엑스포에 큰 기대를 걸고 있어요. 바다에 대한 개념을 바꿔줄 거예요.”
다만 인수위 논의대로 정부기구개편이 진행될까 우려한다. 해양정책을 총괄지휘하는 컨트롤타워 축소와 함께 정책 연관성이나 지속성이 사라질 수 있어서다. 그는 “해양수산부가 부처로 존재하면서 우수한 인재들이 배치됐고 먼 미래를 내다보는 해양정책이 생산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기구 축소에 따라 해양에 눈을 돌리는 우수 공무원이 사라지고 해양정책에 대한 예산투자가 줄어든다면 지금까지 쌓아온 것마저 잃어버릴 수 있어요. 만에 하나 기구 위상이 격하되더라도 투자는 줄어들면 안됩니다.”
새 정부가 해양정책과 관련한 인재나 예산 측면에서 투자를 계속할 수 있도록 견제하는 일, 역시 그가 감당할 몫이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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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이 주관하고 (재)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가 주최하는 ‘제2회 장보고대상’ 최종 후보로 결정된 9명(기관·단체 포함)을 만나 바다에서 희망을 찾는 이야기를 들었다.
최종후보는 지난해 12월 21일 예비심사위원회에서 선정했다. 경상북도와 김용삼 월간조선 전략기획실장, 채길웅 고대항해탐험연구소장(해양문화) 안산시, 이판묵 해양연구원 해양탐사장비연구사업단장, 조명래 한국해양구조단 단장(해양과학) 김철곤 한국무역협회 이사, (주)영진공사, 조재우 소금박물관장(해양산업)이다.
“근대화를 위해 피땀 나게 뛰어온 30여년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바다로의 도전입니다.”
2004년 겨울, 한민족은 아직 ‘반도’에 갇혀있었다. 반만년 역사의 터는 한면만 대륙과 맞닿은 한반도였다. 김용삼(50·사진) 월간조선 전략기획실장은 나머지 세 면을 둘러싼 바다에 주목하고 ‘한민족 대항해시대’를 제안했다.
삼면이 바다인데다 육지에서는 늘 먹을거리 생산이 빈약했으니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아야 했고(어업) 부존자원이라고는 없는 나라이다 보니 해외에서 원료를 사다 가공해서 외국에 팔기 위해 항구가 필요했다(항만산업). 삼면을 둘러싼 바닷길을 열기 위해 배를 만들었고(조선산업) 그 배를 운전하고 관리하는 기술이 요구됐을 때 또 그렇게 했다(해운산업).
그의 표현대로 가히 “해양혁명”이었다. 바다는 이제 한반도를 삼면에서 포위한 걸림돌이 아니라 태평양으로 뻗어나갈 열린 길, 큰 가능성이 됐다. 그가 우리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하나로 해상왕 장보고를 꼽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청해진은 요즘으로 치자면 두바이에요. 홍콩이나 싱가포르같은 자유무역항이죠.”
바다는 생존과 직결된다
대전이 고향인 김용삼 실장에게 바다는 낯설었고 배라고는 강릉 앞바다에서 언뜻 본 쪽배가 전부였다.
1980년 3월, 해군에 자원해 전투함정에 배치되면서 처음 배를 타봤다. 그러나 구축함에 오르는 날까지 잠은 육지에서 자는 줄 알 정도로 배와 바다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어수선한 80년, 절박한 남북 대치상황에서 초년병 시절을 나며 그는 새로운 방향에서 눈을 떴다.
“미군이 2차대전때 사용한 전투함이 당시 우리 주력전투함이었어요. 도색만 살짝 바꿔서 사용했는데 그나마 태부족이었죠. 사정거리가 60km 이상 되는 미사일로 무장한 북한군에는 15km 함포로 대응했구요. 매일 두차례 회피 기동훈련을 했는데 사실상 8단계에 걸친 36계 작전이었어요. 잠수정은 60여척 대 0척이었구요.”
그때부터 바다는 곧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로 다가왔다. 바다를 공부해야겠다는 절박한 심경이었다. 잠수함부터 시작해 해양이며 조선에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외국의 자료를 뒤졌고 연구자들을 만나며 각종 학술연구발표회를 쫓아다녔다.
기자생활을 시작하면서는 잠수함이며 바다에 대한 기사를 썼다. 전문기자라는 용어마저 생소하던 시절이었지만 해양관련 기사는 대부분 그의 몫이었다. 잠수함 사업에 깊이있게 접근했고 국내 7대 조선소 사장을 연속 인터뷰하며 조선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들었다.
“일찌감치 바다에 주목한 선구자들의 도움을 크게 받았어요. 김재철 장보고기념사업회 회장같은 분들에게 바다를 보는 안목을 배웠죠.”
‘돈’이 되는 해양에 주목
“바다는 물결만 출렁이는 곳이 아닙니다.”
김용삼 실장은 푸른 바다가 “돈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해양력을 키우지 못하면 ”곧 절박한 상황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듯 말했다.
석유가 비근한 예가 될 수 있다. 육상의 자원이 고갈돼가자 육지와 가까운 바다 대륙붕을 개발하기 시작했지만 금세 바닥이 드러났다. 시추선은 점점 대양 한 복판을 향해 나가고 있고 그만큼 석유를 얻기까지 쏟아 붓는 노력과 비용이 커진다.
바다는 ‘유전’이다. 독도 앞바다에서 찾아내 환호성을 질렀던 메탄수화물은 석유의 대체물이 될 수 있는 문자 그대로 유전이다. “상용화되면 3세기 동안 에너지 걱정이 없다”. 태평양해저망간단괴 단독개발광구 개척은 “건국 이래 가장 잘한 일”이다. ‘바다의 검은 진주’라 불리는 망간은 망간뿐 아니라 구리 니켈 코발트같은 유용한 금속 광물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 우리 광구는 2040억 달러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세계 22개국 중 하나로 참여한 남극기지 개척 역시 그 잠재적 가치가 어마어마하다.
우리는 한반도라는 좁은 땅덩어리를 벗어나 “바다로 영토를 확장”하고 있는 셈이다. 그가 국내에 처음 소개했던 개념, 국가해양력이라는 단어가 담고 있는 의미다. 해양력은 곧 새로운 국부 창출과 연결된다.
김용삼 실장은 여기서 다시 ‘배’로 돌아갔다. 해양력은 곧 우리나라의 미래나 매한가지이고, 그 해양력을 키울 수 있는 핵심은 ‘배’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해양력 키우기는 조선을 기반으로 해야 합니다. 조선산업은 통신 등 일부를 제외하고 99%가 우리 기술입니다. 국산으로 자급자족이 가능하죠.”
그는 여기에 더해 젊고 우수한 인력이라는 인적 인프라를 또다른 동력으로 꼽았다. 선박 설계기술면에서 가장 강력한 라이벌인 일본을 우리가 제칠 수 있었던 힘이기도 하다.
김 실장은 “배는 바다와 바다, 대륙과 대륙,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라며 “배를 잘 만든다는 것은 미래를 잘 만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단언했다. 국민소득 2만 달러를 얘기하는 지금 거제에서 울산에 이르는 조선클러스터는 벌써 소득수준 3만5000 달러와 4만 달러를 넘나들고 있다.
“조선은 사양산업일 수 없습니다. 물론 단순한 선박건조가 아니라 다른 산업·과학 분야와 결합한 MT(Marine Technology)로 가능한 거죠. 심해유전개발에 필수적인 탐사선 유조선 등을 만드는 기술에서 우리가 세계 최고가 됐어요. 앞으로는 조선소에서 우주구조물을 만들 겁니다.”
해양정책 전담기구 축소우려
“막연한 의미의 바다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돈이 되는 바다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돈벌이와 경제활동 공간을 넓히는 쪽으로 해양을 공부해야 합니다.”
경치 자체도 상품이 될 수 있다. 몰디브나 발리 바다가 아름답다 하지만 우리 서남해안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네는 섬과 해안을 상품으로 개발했고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 개념을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 20여년간 그가 해온 일, 앞으로 할 일이다.
“여수 해양엑스포에 큰 기대를 걸고 있어요. 바다에 대한 개념을 바꿔줄 거예요.”
다만 인수위 논의대로 정부기구개편이 진행될까 우려한다. 해양정책을 총괄지휘하는 컨트롤타워 축소와 함께 정책 연관성이나 지속성이 사라질 수 있어서다. 그는 “해양수산부가 부처로 존재하면서 우수한 인재들이 배치됐고 먼 미래를 내다보는 해양정책이 생산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기구 축소에 따라 해양에 눈을 돌리는 우수 공무원이 사라지고 해양정책에 대한 예산투자가 줄어든다면 지금까지 쌓아온 것마저 잃어버릴 수 있어요. 만에 하나 기구 위상이 격하되더라도 투자는 줄어들면 안됩니다.”
새 정부가 해양정책과 관련한 인재나 예산 측면에서 투자를 계속할 수 있도록 견제하는 일, 역시 그가 감당할 몫이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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