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춘절 기간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자 광둥성(廣東省)위 서기인 왕양(汪洋)과 광둥성 성장 황화화(黃華華)는 인터넷 이메일을 통해 네티즌들에게 새해 인사를 보냈다.
왕 서기는 이메일에서 최근 보기 드문 악천후로 많은 성 주민들이 곤경해 빠진 사정을 전하며 네티즌들의 의견을 구하고자 했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큰 호응을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정보기술의 발전으로 중국의 많은 지도자들이 인터넷을 이용해 여론을 반영하고 새로운 정무(政務)를 공개하고 정책을 촉진하기 시작했다. 특히 중국의 많은 지방당위원회는 인터넷 사용을 시정활동의 일부로 간주하는 중이다.
왕양은 이메일에 “정보기술의 발전으로 인터넷은 갈수록 사람들의 일과생활에서 기본 수단이 되고 있으며, 이제 각급 당위원회와 정부가 국민들의 여론을 수렴하는 중요한 경로가 됐다. 정부는 네티즌들에게 정책을 묻고 그들의 감독을 받아들이고 싶다”고 썼다.
이 공개 인터넷 편지는 광둥성 주요 인터넷 사이트에 발표됐는데 3시간 만에 17만 명의 네티즌이 조회했고 1000여 명의 네티즌이 답글을 달았다. 2007년 말 발표된 관련 부문 통계데이터에 따르면 광둥성 네티즌은 2500만 명이 넘어 중국 전체 네티즌의 12%를 차지하며 광둥성 내 인터넷 사이트는 30만 개에 달하는데, 이 모두가 중국에서 1위를 차지하는 규모다.
왕양 서기의 이메일을 접한 한 네티즌은 “인터넷은 공개성이라는 성격으로 인해 대중들의 직접 참여를 넓히고 더 진실되고 직접적인 여론 척도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이런 현상은 인터넷을 충분히 이용해 정무를 공개할 수 있으며, 정부가 여론을 중시하는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음을 나타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방식의 여론 수렴 방식은 정보화시대에 맞는 중국 지도자 또는 간부들의 새로운 지도방식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왕양 서기는 1955년생으로 중국과기대학을 공학석사로 졸업했다. 1982년 공산청년단(공청단) 안후이성 위원회 선전부 부장을 맡으며 두각을 나타냈고, 1983년 공산당 안후이성 위원회 부서기로 발탁돼 이후 성 당 상무위원, 상무부성장, 성 당 부서기 등을 지냈다.
1999년 9월 국가발전계획위원회 부주임, 2003년 3월 국무원 부비서장을 거쳐 2005년 충칭시 당 위원에서 서기로 올라섰고, 지난 해 10월 17대 전대 이후 광둥성 서기로 자리를 옮겼다. 공천단파의 리더이며 후진타오 주석이 각별히 신임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중국망·김선태 기자 ks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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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서기는 이메일에서 최근 보기 드문 악천후로 많은 성 주민들이 곤경해 빠진 사정을 전하며 네티즌들의 의견을 구하고자 했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큰 호응을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정보기술의 발전으로 중국의 많은 지도자들이 인터넷을 이용해 여론을 반영하고 새로운 정무(政務)를 공개하고 정책을 촉진하기 시작했다. 특히 중국의 많은 지방당위원회는 인터넷 사용을 시정활동의 일부로 간주하는 중이다.
왕양은 이메일에 “정보기술의 발전으로 인터넷은 갈수록 사람들의 일과생활에서 기본 수단이 되고 있으며, 이제 각급 당위원회와 정부가 국민들의 여론을 수렴하는 중요한 경로가 됐다. 정부는 네티즌들에게 정책을 묻고 그들의 감독을 받아들이고 싶다”고 썼다.
이 공개 인터넷 편지는 광둥성 주요 인터넷 사이트에 발표됐는데 3시간 만에 17만 명의 네티즌이 조회했고 1000여 명의 네티즌이 답글을 달았다. 2007년 말 발표된 관련 부문 통계데이터에 따르면 광둥성 네티즌은 2500만 명이 넘어 중국 전체 네티즌의 12%를 차지하며 광둥성 내 인터넷 사이트는 30만 개에 달하는데, 이 모두가 중국에서 1위를 차지하는 규모다.
왕양 서기의 이메일을 접한 한 네티즌은 “인터넷은 공개성이라는 성격으로 인해 대중들의 직접 참여를 넓히고 더 진실되고 직접적인 여론 척도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이런 현상은 인터넷을 충분히 이용해 정무를 공개할 수 있으며, 정부가 여론을 중시하는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음을 나타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방식의 여론 수렴 방식은 정보화시대에 맞는 중국 지도자 또는 간부들의 새로운 지도방식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왕양 서기는 1955년생으로 중국과기대학을 공학석사로 졸업했다. 1982년 공산청년단(공청단) 안후이성 위원회 선전부 부장을 맡으며 두각을 나타냈고, 1983년 공산당 안후이성 위원회 부서기로 발탁돼 이후 성 당 상무위원, 상무부성장, 성 당 부서기 등을 지냈다.
1999년 9월 국가발전계획위원회 부주임, 2003년 3월 국무원 부비서장을 거쳐 2005년 충칭시 당 위원에서 서기로 올라섰고, 지난 해 10월 17대 전대 이후 광둥성 서기로 자리를 옮겼다. 공천단파의 리더이며 후진타오 주석이 각별히 신임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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