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외교사에 이름석자 굵게 새겨
지금까지 외교통상부장관의 퇴임은 순조롭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출장 중 비행기에서 경질 되거나 심지어는 방송을 통해 경질 소식을 접한 경우도 있다. 과거 전력문제로 억울하게 옷을 벗은 경우도 있고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에 대한 신체관련실언 등 말실수가 빌미가 돼 퇴임한 경우도 있다.
그런 점에서 송민순 장관의 퇴임은 달랐다. 지난 20일 이임 기자회견에 많은 내외신 기자들이 몰려들어 열띤 취재경쟁을 벌였고 환송 리셉션에서 기자단에게 감사패까지 전달받았다.
송 장관은 상기된 표정으로 재임 15개월의 여정을 회고 했다. 그는 “지난 3년간 6자회담 수석대표와 청와대 안보실장, 외교장관을 거치면서 한반도에서 평화건설을 위한 역사의 현장에서 일할 수 있었던 데 대해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북핵문제와 관련 향후 해결방향에 대한 설계도에 합의했다는 데 큰 의미를 부여했다. 송 장관은 재임 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평화유지활동(PKO) △공적개발원조(ODA) △해외영사서비스 강화 △한중일 외교장관회담 정례화 △여수박람회 유치 등 많은 업무를 처리했다.
송 장관은 새 정부에 대해서도 “북한 핵 문제는 한반도 문제와 분리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새 정부도 이와 유사한 시각에서 북핵 문제에 접근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주문했다.
33년 동안 외교전문가로서 터득한 경험을 “외교라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출해내고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것을 가능성의 영역으로 끌어내는 작업”이라고 압축했다.
어떤 때 기자들이 가장 섭섭했는가라는 질문을 받은 송 장관은 “나는 비판받는다. 고로 존재한다”고 비유적으로 답했다. 공직자는 항상 실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에 비판 받는 것을 두려워하면 공직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기자들에게도 “알지 못하면서 비판할 때, 확인하지 않고 비판했을 때 섭섭했다”고 말했다.
송 장관은 퇴임 이후의 활동계획에 대해서 “풍선으로 비유하자면 바람이 너무 팽팽하게 들어 있어서 좀 빼야한다”면서 “퇴임 이후 한동안 무작정 쉴 생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와 청와대 안보실장, 외교장관으로 3년간 활동하면서 터득한 경험이 제2의 활동을 통해 조만간 가시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김기수 기자 kskim@naeil.com
끝이 좋아 모두 좋은 ‘통일부’ 장관
극한으로 치닫던 여야간 정부조직법 개편안 협상이 20일 타결됨으로써 통일부가 살아났다. 통일부를 존치시키기 위해 한달 여의 기간동안을 다른 어느 때보다 바쁘게 보낸 이재정 통일부장관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장관직을 떠나게 되었다.
2006년 10월 북한의 핵실험으로 남북간 대화가 단절된 상황에서 12월 통일부장관으로 부임한 이 장관은 2007년 들어 남북장관회담에 이어 제2차 남북정상회담 준비 등에 바쁜 시간을 보냈다.
21일 이재정 장관은 이임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의 핵실험 여파로 끊어져 있던 남북대화를 복원해낸 것을 가장 소중한 성과로 꼽았다. 이 장관은 남북간 물적 교류보다 정상회담과 총리회담 등을 통해 대화와 접촉의 틀이 만들어진 것이 더욱 소중하며 민족의 꿈과 희망을 나눌 수 있는 남북대화는 어떤 상황이 와도 지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통일부 폐지 위기와 관련해서는 신학 전공자답게 “다들 통일부 없어지는 것을 걱정하길래 우리가 부활을 믿는데 죽여도 살고 살면 영원히 살 것이라고 말했다”며 “통일부는 통일될 때까지, 이후에도 역할을 만들며 이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부분 일을 마쳐 큰 숙제가 남아있지 않다는 이 통일장관은 새 정부에 대해 한반도 평화증진을 위해 현 정책의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 잘된 것은 발전시키고 개선·보완해 나갈 것을 주문했다. 특히 97년 남북간 교류인원이 1천명에 불과했는데 2007년 현재 남북 교류인원은 무려 16만명으로 늘었다는 점을 들며 소중한 만남과 대화가 통일부를 통해 이어지길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참여정부 5년, 여러 공과가 있겠지만 남북간 긴장완화는 크게 평가받을 만할 일이다. 그러나 마지막 1년여간 이뤄진 외교·안보정책 집행과정에서 참여정부의 남북관계에 대한 과욕이 앞서 통일부가 외교안보 관련 타 부서와 불협화음을 보이며 일방적으로 업무를 추진하려 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어느 국가업무보다도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추진해야 할 통일업무에 대해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내려는데 소홀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되돌아봐야 할 일이다.
한나라당의 통일부 폐지 의지를 막아내고 큰 부담 없이 장관직을 떠나게 된 이 장관은 3월 학기부터 성공회대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직으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왕수 기자 kws@naeil.com
남북권력자 순치시킨 ‘무위의 정치력’
김장수 국방장관은 재임 중 남과 북 최고권력자 세명을 자신에게 순치시킨 ‘무위(無爲)의 정치력’을 발휘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그를 스타장관으로 만들었고, 평양 국방장관 회담을 떠나기 전 “성과가 나오지 않아도 좋으니 NLL문제는 장관 뜻대로 하시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백지위임을 받아냈다.
국방부를 방문한 이명박 당선인은 김 장관의 세 마디 설명에 전시작전통제권 재협상 공약을 책상서랍에 넣어버렸다. ‘부시대통령의 서명, 요구자 비용부담의 원칙, 2012년 전 평가 기회 활용가능’이라는 설명에 당선인은 핵심안보공약을 포기했던 것이다.
68만 병력을 관장하며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숱한 조직을 거느리고 있는 국방부의 수장은 ‘무위자연(無爲自然)형’ 지도자가 최적이다. 모든 사안의 핵심을 간파하되 자신을 강하게 내세우지 않아야 한다. 불도저식 장관은 조직의 균형을 깨는 최악의 카드다. 국방부의 한 팀장은 “김 장관은 보고자가 자신의 의견을 충분히 피력했다고 느낄 때까지 경청한 후, 세마디 이내로 핵심만 짚어 결론을 내려주는 스타일”이라며 “의견을 충분히 피력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만으로도 자기가 책임지고 업무를 추진하게 만드는 리더십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김 장관은 당선인을 만난 후 “참여정부에서 마련한 국방개혁을 이명박정부에 연착륙시켰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수위에 제출할 모든 보고서는 장관의 재가를 받을 것”을 지시했고 “국방개혁안은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 것이므로 새 정부 공약에 맞춘다고 지레 뒤집어서는 안된다”고 엄명했다. 그 결과 인수위의 국정과제보고서는 국방부가 제출한 보고서를 90%이상 수용함으로써 ‘국방개혁 연착륙’을 입증했다.
1998년과 2003년 인수위 시절, 국방부 장관은 업무를 ‘중지했다.’ 그러나 김 장관은 레임덕이 없다. 군인복지기본법이 발효되도록 19일 마지막 절차를 마쳤고, 같은 날 서울대병원과 업무협약도 서명했다. 기자단 이임만찬은 새정부 출범뒤인 26일로 잡혔다.
본인은 퇴임 후 미국에서 연구원 생활을 구상하고 있으나, 안보분야에서는 드물게 나온 ‘스타장관’을 정치권이 가만 두지 않을 분위기다. 장관퇴임때 까지 집을 장만하지 못해 전세아파트를 구했다.
진병기 기자 j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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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외교통상부장관의 퇴임은 순조롭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출장 중 비행기에서 경질 되거나 심지어는 방송을 통해 경질 소식을 접한 경우도 있다. 과거 전력문제로 억울하게 옷을 벗은 경우도 있고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에 대한 신체관련실언 등 말실수가 빌미가 돼 퇴임한 경우도 있다.
그런 점에서 송민순 장관의 퇴임은 달랐다. 지난 20일 이임 기자회견에 많은 내외신 기자들이 몰려들어 열띤 취재경쟁을 벌였고 환송 리셉션에서 기자단에게 감사패까지 전달받았다.
송 장관은 상기된 표정으로 재임 15개월의 여정을 회고 했다. 그는 “지난 3년간 6자회담 수석대표와 청와대 안보실장, 외교장관을 거치면서 한반도에서 평화건설을 위한 역사의 현장에서 일할 수 있었던 데 대해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북핵문제와 관련 향후 해결방향에 대한 설계도에 합의했다는 데 큰 의미를 부여했다. 송 장관은 재임 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평화유지활동(PKO) △공적개발원조(ODA) △해외영사서비스 강화 △한중일 외교장관회담 정례화 △여수박람회 유치 등 많은 업무를 처리했다.
송 장관은 새 정부에 대해서도 “북한 핵 문제는 한반도 문제와 분리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새 정부도 이와 유사한 시각에서 북핵 문제에 접근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주문했다.
33년 동안 외교전문가로서 터득한 경험을 “외교라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출해내고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것을 가능성의 영역으로 끌어내는 작업”이라고 압축했다.
어떤 때 기자들이 가장 섭섭했는가라는 질문을 받은 송 장관은 “나는 비판받는다. 고로 존재한다”고 비유적으로 답했다. 공직자는 항상 실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에 비판 받는 것을 두려워하면 공직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기자들에게도 “알지 못하면서 비판할 때, 확인하지 않고 비판했을 때 섭섭했다”고 말했다.
송 장관은 퇴임 이후의 활동계획에 대해서 “풍선으로 비유하자면 바람이 너무 팽팽하게 들어 있어서 좀 빼야한다”면서 “퇴임 이후 한동안 무작정 쉴 생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와 청와대 안보실장, 외교장관으로 3년간 활동하면서 터득한 경험이 제2의 활동을 통해 조만간 가시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김기수 기자 kskim@naeil.com
끝이 좋아 모두 좋은 ‘통일부’ 장관
극한으로 치닫던 여야간 정부조직법 개편안 협상이 20일 타결됨으로써 통일부가 살아났다. 통일부를 존치시키기 위해 한달 여의 기간동안을 다른 어느 때보다 바쁘게 보낸 이재정 통일부장관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장관직을 떠나게 되었다.
2006년 10월 북한의 핵실험으로 남북간 대화가 단절된 상황에서 12월 통일부장관으로 부임한 이 장관은 2007년 들어 남북장관회담에 이어 제2차 남북정상회담 준비 등에 바쁜 시간을 보냈다.
21일 이재정 장관은 이임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의 핵실험 여파로 끊어져 있던 남북대화를 복원해낸 것을 가장 소중한 성과로 꼽았다. 이 장관은 남북간 물적 교류보다 정상회담과 총리회담 등을 통해 대화와 접촉의 틀이 만들어진 것이 더욱 소중하며 민족의 꿈과 희망을 나눌 수 있는 남북대화는 어떤 상황이 와도 지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통일부 폐지 위기와 관련해서는 신학 전공자답게 “다들 통일부 없어지는 것을 걱정하길래 우리가 부활을 믿는데 죽여도 살고 살면 영원히 살 것이라고 말했다”며 “통일부는 통일될 때까지, 이후에도 역할을 만들며 이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부분 일을 마쳐 큰 숙제가 남아있지 않다는 이 통일장관은 새 정부에 대해 한반도 평화증진을 위해 현 정책의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 잘된 것은 발전시키고 개선·보완해 나갈 것을 주문했다. 특히 97년 남북간 교류인원이 1천명에 불과했는데 2007년 현재 남북 교류인원은 무려 16만명으로 늘었다는 점을 들며 소중한 만남과 대화가 통일부를 통해 이어지길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참여정부 5년, 여러 공과가 있겠지만 남북간 긴장완화는 크게 평가받을 만할 일이다. 그러나 마지막 1년여간 이뤄진 외교·안보정책 집행과정에서 참여정부의 남북관계에 대한 과욕이 앞서 통일부가 외교안보 관련 타 부서와 불협화음을 보이며 일방적으로 업무를 추진하려 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어느 국가업무보다도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추진해야 할 통일업무에 대해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내려는데 소홀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되돌아봐야 할 일이다.
한나라당의 통일부 폐지 의지를 막아내고 큰 부담 없이 장관직을 떠나게 된 이 장관은 3월 학기부터 성공회대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직으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왕수 기자 kws@naeil.com
남북권력자 순치시킨 ‘무위의 정치력’
김장수 국방장관은 재임 중 남과 북 최고권력자 세명을 자신에게 순치시킨 ‘무위(無爲)의 정치력’을 발휘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그를 스타장관으로 만들었고, 평양 국방장관 회담을 떠나기 전 “성과가 나오지 않아도 좋으니 NLL문제는 장관 뜻대로 하시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백지위임을 받아냈다.
국방부를 방문한 이명박 당선인은 김 장관의 세 마디 설명에 전시작전통제권 재협상 공약을 책상서랍에 넣어버렸다. ‘부시대통령의 서명, 요구자 비용부담의 원칙, 2012년 전 평가 기회 활용가능’이라는 설명에 당선인은 핵심안보공약을 포기했던 것이다.
68만 병력을 관장하며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숱한 조직을 거느리고 있는 국방부의 수장은 ‘무위자연(無爲自然)형’ 지도자가 최적이다. 모든 사안의 핵심을 간파하되 자신을 강하게 내세우지 않아야 한다. 불도저식 장관은 조직의 균형을 깨는 최악의 카드다. 국방부의 한 팀장은 “김 장관은 보고자가 자신의 의견을 충분히 피력했다고 느낄 때까지 경청한 후, 세마디 이내로 핵심만 짚어 결론을 내려주는 스타일”이라며 “의견을 충분히 피력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만으로도 자기가 책임지고 업무를 추진하게 만드는 리더십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김 장관은 당선인을 만난 후 “참여정부에서 마련한 국방개혁을 이명박정부에 연착륙시켰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수위에 제출할 모든 보고서는 장관의 재가를 받을 것”을 지시했고 “국방개혁안은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 것이므로 새 정부 공약에 맞춘다고 지레 뒤집어서는 안된다”고 엄명했다. 그 결과 인수위의 국정과제보고서는 국방부가 제출한 보고서를 90%이상 수용함으로써 ‘국방개혁 연착륙’을 입증했다.
1998년과 2003년 인수위 시절, 국방부 장관은 업무를 ‘중지했다.’ 그러나 김 장관은 레임덕이 없다. 군인복지기본법이 발효되도록 19일 마지막 절차를 마쳤고, 같은 날 서울대병원과 업무협약도 서명했다. 기자단 이임만찬은 새정부 출범뒤인 26일로 잡혔다.
본인은 퇴임 후 미국에서 연구원 생활을 구상하고 있으나, 안보분야에서는 드물게 나온 ‘스타장관’을 정치권이 가만 두지 않을 분위기다. 장관퇴임때 까지 집을 장만하지 못해 전세아파트를 구했다.
진병기 기자 j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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