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웅 칼럼]MBP들의 세상

지역내일 2008-02-27
MBP들의 세상
임춘웅 (본지 객원 논설위원)

수년 전 미국의 변호사 김화진씨가 한 신문에 쓴 칼럼을 통해 ‘MBP론’을 소개했다.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MBP란 ‘moderately bad persons’의 약자로 우리말로 옮기면 ‘적당히 나쁜 사람들’이 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이런 MBP들이 의외로 많아 어떻게 보면 한국사회가 적당히 나쁜 사람들의 세상이 돼 있다는 것이다.
MBP는 성실하고 유능하며 소심한 편이어서 숭례문에 불을 지른다든지 주가조작 같은 범죄는 상상도 못하는 사람들이다. 못할 뿐 아니라 그런 범죄에 그들은 매우 분개한다. 그러나 운전을 하다 앞이 밀려 있으면 용감하게 유턴을 감행하기도 하고 감시 카메라가 없는 것을 알면 속도위반도 한다.
회사에 가서는 일을 아주 잘해낸다. 주말에 가족들과 외식을 할 때는 당연히 회사 법인카드를 쓴다.
경리사원은 회사의 분식회계에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임원은 비자금 조성이나 비자금을 위한 차명계좌를 여러 개 갖고 있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한다. MBP들은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고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적당히 나쁜 사람들’ 많아
돈이 생기면 부동산 투자(투기)도 하고 위장전입도 예사로 한다. 미국 영주권을 갖고 있으면 더욱 좋은 일이다. 교사는 촌지를 받고 의사는 제약회사의 골프접대를 받는다.
그러나 이들은 한결같이 집에서 엄한 가장이고 매우 교육적이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불우이웃 돕기에 동참하기도 한다.
MBP들 중에는 자기가 하는 일의 어디가 잘못됐는지를 알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의식하지 못한다. 모르고 지나치기도 하고 설령 안다고 해도 반대급부가 크기 때문에 스스로 시정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선거 때 보듯이 어떤 후보는 이런 저런 비리의혹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데도 정작 본인은 나는 그렇게 부끄럽게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고 강변하는 것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MBP시대에 젖어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MBP시대를 살아왔다. 그 속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MBP들이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그런 시대가 더 이상 용납되지 않게 됐다. 그래 우리의 MBP들은 “내가? 왜?” 하며 억울해한다.
이명박(MB) 정부가 출발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언론 검증과정에서 말썽이 난 이춘호 여성부장관 내정자가 스스로 물러났는가 하면 한승수 총리후보의 국회인준안이 진통 끝에 29일로 연기됐다.
박은경 환경부장관 내정자, 남주홍 통일부장관 내정자는 야권으로부터 청문회 자체를 거부당하고 있다. 사태가 심상치 않자 당초 청문회에서 모든 것이 밝혀진 다음 판단하겠다던 청와대도 태도를 바꿔 재검증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늦었으나 다행한 일이다. 비리의혹을 받는 사람들로는 선진화 원년을 시작할 수 없다. 이런 문제들은 법 이전의 문제다. 선진한국을 외치는 이명박정부의 국정목표를 본질적으로 훼손하는 도덕성의 문제다.
한나라당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무려 10여명의 MBP들을 권좌에서 끌어내렸거나 아예 취임도 못하게 했다. 장 상 총리후보, 이헌재 경제부총리, 김병준 교육부총리 등이 그들이다. 그런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자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인물들의 경우는 그때와 다르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보수는 부패해서 망하고 진보는 분열해서 망한다는 말이 있다. 보수의 아킬레스건은 바로 부패와 비리다. 한나라당이 두 번이나 대선에서 패한 것은 차떼기 등 부패와 관련이 크고 이명박 후보도 대선과정에서 여러 가지 의혹들로 마음 고생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그것은 바꿔야 겠다는 절박한 민심이 표를 몰아 준 것이지 제기됐던 의혹들이 문제가 안된다거나 용서했다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어쩌면 역설적이게도 그런 문제들이 있으니 대통령이 되면 더 잘하지 않겠느냐는 역심리가 작용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번 문제들을 그대로 밀고 나가려 한다면 역풍을 면치 못할 것이다.

MBP 극복해야 선진화 가능
이명박 정부가 리더십을 발휘하자면 도덕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명박 정부가 내새우는 선진사회 진입의 성패여부는 새정부가 얼마만큼 도덕성을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청문회와 관계없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인물들은 거르고 출발하는 것이 이명박시대를 성공적으로 여는 길이 될 것이다. 새정부가 MBP시대를 극복하지 못하고서는 선진사회로 나아갈 수 없다. 선진사회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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