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멘토
김수종 (언론인 전 한국일보 주필)
이명박 대통령이 최시중 전 한국갤럽회장을 방송통신위원장 후보로 임명한 것을 두고 야당과 언론단체가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왜? 최 위원장 후보와 이 대통령의 관계가 방송통신위원회의 정치적 중립성 또는 독립성에 위협이 된다는 주장이다. 최 위원장 후보는 소위 ‘MB의 멘토’로 알려져 있다. 스스로도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생명을 걸 정도로 노력했다고 술회하고 있다.
‘멘토.’ 근래 우리 사회에서 꽤 유행하는 용어다. 그 어원은 그리스 신화에서 나온다. 오디시우스 장군은 트로이 전쟁에 출정하기에 앞서 아들 텔레마쿠스와 궁성을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는 이 일을 친한 친구인 멘토(Mentor)에게 맡겼다.
17세기 프랑스 문학작품에서 ‘멘토’는 신뢰하는 친구, 고문, 스승의 뜻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성공한 사람들은 멘토의 영향과 도움을 받았다. 가장 좋은 예를 든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소년기 알렉산더 대왕의 멘토가 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뜻을 찾는다면 사부(師父)쯤이 좋은 표현이다.
호흡 함께하는 동지적 멤버
어째서 최시중 후보는 ‘MB의 멘토’로 통하는 것일까? 언론보도를 보면 짐작이 간다. 최 후보는 대통령과 동향이고 그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과는 대학동기로 막역한 사이다. 일찍이 대통령을 꿈꾸는 이명박 서울시장에게 대권으로 가는 길을 구체적이고 전략적으로 조언을 했다고 한다.
동아일보 정치부장과 논설위원 출신이자 한국의 대표적 여론조사기관을 운영했던 이 70대 원로의 경험과 감각, 그리고 개인적 친밀감은 단순히 측근 또는 참모로만 치부하기에는 존재감이 크다. 그러니 멘토라는 별칭이 붙여진 것이리라.
멘토가 멘토로 그냥 남아 있으면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을 텐데, 멘토가 막강한 대통령 직속기관인 방송통신위원장으로 변신하게 됐으니 논란이 제기되는 것이다. 최 위원장 후보는 대통령 선거직후 총리, 국가정보원장 등의 하마평에도 비중 있게 올랐다. 짐작컨대 이 대통령은 이 세 자리 중 어느 것이든 맡길 만한 멘토라고 생각했을 법하다.
최 후보의 입장에서 보면 방송통신위원회 수장이 어울리는 자리인지도 모른다. 그의 말마따나 통신, 신문, 여론조사기관 등을 넘나든 그의 경력이 정보산업을 망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향력으로 보더라도 방송통신위원장은 총리와 국정원장에 버금하는 자리다. 개편된 방송통신위원회는 기존 방송위원회에다 과거 정보통신부의 권한 일부를 부여한 막강한 기관이다.
최 위원장 후보는 방송통신위원회의 독립성을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그는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제 하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은 대통령의 측근이고 동지적 의식이 중요하다. 저 역시 대통령과 호흡을 함께하는 많은 동지적 멤버의 한 사람으로 생각해 달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방통위는 엄격한 중립을 지키도록 시스템이 되어 있고 그것을 충분히 활용해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객관성과 중립성을 유지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그의 스케치는 매우 흐릿하다. 대통령과 호흡을 맞추면서 독립성도 유지해보겠다는 복선의 맥락으로 읽힌다.
권력은 법과 제도의 범위 안에서 자기 코드에 맞춰 정책을 수행하려 한다. 그 결과 과거 방송위원회는 정권변화에 따른 정치적 힘의 배분에 의해, 또 KBS는 정권코드에 맞춘 사장 인사로 방송언론의 방향성이 정권의 전유물처럼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지난 참여정부가 다르지 않았고 그 연원을 따지면 한나라당의 전신 정부로 올라간다.
정당간 정권교체로 민주주의 전통은 두터워지고 있으나 사회적 통합에 필요한 중립지대는 황폐화되고 있다. 방송언론 분야가 바로 그런 범주에 속한다. 방송언론의 정치적 중립성 유지는 우리 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과제다. 그래서 정책결정에서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역할이, 실제 방송편성에서는 KBS의 역할이 논쟁의 초점이 된다.
방송의 객관성과 정치 중립성
정권을 잡은 쪽은 방송정책을 그들의 입맛에 맞게 구성하고 정권을 잃은 쪽은 그런 구성을 정치공세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 결과 방송이 국민을 통합시키는 게 아니라 분열시키는 역할을 했다. 대다수 국민은 방송의 정치적 중립성을 원한다.
대통령의 멘토든 참모든 결국은 대통령의 편이다. 그럼에도 멘토라는 점에 생각이 미치는 것은 대통령을 위해 쓴 소리도 할 수 있고 국가가 나아갈 소망스러운 방향을 대국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점이다.
정권교체 때마다 널뛰기하는 방송에 객관성과 정치적 중립성의 균형추를 달아줄 수 있을까. 멘토의 행보에 주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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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언론인 전 한국일보 주필)
이명박 대통령이 최시중 전 한국갤럽회장을 방송통신위원장 후보로 임명한 것을 두고 야당과 언론단체가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왜? 최 위원장 후보와 이 대통령의 관계가 방송통신위원회의 정치적 중립성 또는 독립성에 위협이 된다는 주장이다. 최 위원장 후보는 소위 ‘MB의 멘토’로 알려져 있다. 스스로도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생명을 걸 정도로 노력했다고 술회하고 있다.
‘멘토.’ 근래 우리 사회에서 꽤 유행하는 용어다. 그 어원은 그리스 신화에서 나온다. 오디시우스 장군은 트로이 전쟁에 출정하기에 앞서 아들 텔레마쿠스와 궁성을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는 이 일을 친한 친구인 멘토(Mentor)에게 맡겼다.
17세기 프랑스 문학작품에서 ‘멘토’는 신뢰하는 친구, 고문, 스승의 뜻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성공한 사람들은 멘토의 영향과 도움을 받았다. 가장 좋은 예를 든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소년기 알렉산더 대왕의 멘토가 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뜻을 찾는다면 사부(師父)쯤이 좋은 표현이다.
호흡 함께하는 동지적 멤버
어째서 최시중 후보는 ‘MB의 멘토’로 통하는 것일까? 언론보도를 보면 짐작이 간다. 최 후보는 대통령과 동향이고 그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과는 대학동기로 막역한 사이다. 일찍이 대통령을 꿈꾸는 이명박 서울시장에게 대권으로 가는 길을 구체적이고 전략적으로 조언을 했다고 한다.
동아일보 정치부장과 논설위원 출신이자 한국의 대표적 여론조사기관을 운영했던 이 70대 원로의 경험과 감각, 그리고 개인적 친밀감은 단순히 측근 또는 참모로만 치부하기에는 존재감이 크다. 그러니 멘토라는 별칭이 붙여진 것이리라.
멘토가 멘토로 그냥 남아 있으면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을 텐데, 멘토가 막강한 대통령 직속기관인 방송통신위원장으로 변신하게 됐으니 논란이 제기되는 것이다. 최 위원장 후보는 대통령 선거직후 총리, 국가정보원장 등의 하마평에도 비중 있게 올랐다. 짐작컨대 이 대통령은 이 세 자리 중 어느 것이든 맡길 만한 멘토라고 생각했을 법하다.
최 후보의 입장에서 보면 방송통신위원회 수장이 어울리는 자리인지도 모른다. 그의 말마따나 통신, 신문, 여론조사기관 등을 넘나든 그의 경력이 정보산업을 망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향력으로 보더라도 방송통신위원장은 총리와 국정원장에 버금하는 자리다. 개편된 방송통신위원회는 기존 방송위원회에다 과거 정보통신부의 권한 일부를 부여한 막강한 기관이다.
최 위원장 후보는 방송통신위원회의 독립성을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그는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제 하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은 대통령의 측근이고 동지적 의식이 중요하다. 저 역시 대통령과 호흡을 함께하는 많은 동지적 멤버의 한 사람으로 생각해 달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방통위는 엄격한 중립을 지키도록 시스템이 되어 있고 그것을 충분히 활용해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객관성과 중립성을 유지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그의 스케치는 매우 흐릿하다. 대통령과 호흡을 맞추면서 독립성도 유지해보겠다는 복선의 맥락으로 읽힌다.
권력은 법과 제도의 범위 안에서 자기 코드에 맞춰 정책을 수행하려 한다. 그 결과 과거 방송위원회는 정권변화에 따른 정치적 힘의 배분에 의해, 또 KBS는 정권코드에 맞춘 사장 인사로 방송언론의 방향성이 정권의 전유물처럼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지난 참여정부가 다르지 않았고 그 연원을 따지면 한나라당의 전신 정부로 올라간다.
정당간 정권교체로 민주주의 전통은 두터워지고 있으나 사회적 통합에 필요한 중립지대는 황폐화되고 있다. 방송언론 분야가 바로 그런 범주에 속한다. 방송언론의 정치적 중립성 유지는 우리 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과제다. 그래서 정책결정에서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역할이, 실제 방송편성에서는 KBS의 역할이 논쟁의 초점이 된다.
방송의 객관성과 정치 중립성
정권을 잡은 쪽은 방송정책을 그들의 입맛에 맞게 구성하고 정권을 잃은 쪽은 그런 구성을 정치공세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 결과 방송이 국민을 통합시키는 게 아니라 분열시키는 역할을 했다. 대다수 국민은 방송의 정치적 중립성을 원한다.
대통령의 멘토든 참모든 결국은 대통령의 편이다. 그럼에도 멘토라는 점에 생각이 미치는 것은 대통령을 위해 쓴 소리도 할 수 있고 국가가 나아갈 소망스러운 방향을 대국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점이다.
정권교체 때마다 널뛰기하는 방송에 객관성과 정치적 중립성의 균형추를 달아줄 수 있을까. 멘토의 행보에 주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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