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최악의 상황 대비해야
유철규 (성공회대학교 교수·경제학)
배럴당 100달러를 넘긴 국제유가를 두고 지난달 하순 미국의 경제지 월스트리트 저널은 에너지 관련 전문 애널리스트들이 당황해하고 있다는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는 최근의 유가 급등을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우려와 같은 수요-공급 불안 문제로 설명하는 통상적인 견해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흥미롭다.
최근 국제 원자재 시장의 가격 추이를 보면 금, 밀, 백금, 옥수수, 석탄 등 주요 상품들의 가격이 순환해가면서 차례로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미국 등 세계 주요 국가들의 성장둔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모든 원자재 시장에서 수급이 불안해서 가격이 오른다는 설명은 충분하지 않다.
이렇다 보니 대안적인 설명으로 세를 얻고 있는 것이 ‘상품 투기론’이다. 증시침체 때문에 금융시장을 탈출한 자금이 원자재시장에 몰려들면서 투기성 가격급등을 초래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2000년대 초반의 실물경제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세계 주요 중앙은행들이 정책금리 인하라는 정책 공조를 취하면서 국제 유동성이 급팽창했다. 이에 더해 2005년 이후 아시아 중앙은행들이 미국채권의 매입 등을 통해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해외 금융시장에 공급함으로써 국제유동성의 팽창이 누적된 사실을 고려한 설명이라서 수급불균형보다 좀 더 설득력이 있다 하겠다.
그런데 묘하게도 위의 두 가지 서로 다른 설명들을 각기 취하는 분석가들이라 하더라도 대다수가 ‘조만간에’ 국제금융시장과 상품시장이 안정화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데는 별 차이가 없다.
세 얻고 있는 ‘상품투기론’
국내에서도 이제 미국의 증시가격 하락이나 부동산 가격하락이 어느 정도 저점에 도달했기 때문에 추가적인 더 큰 위험은 없을 것이라는 등의 전망이 난무한다.
그러나 미국의 경기가 회복되면 상품시장의 수급불안정은 더욱 심화될 수도 있다. 또 금리를 계속 낮추면 국제적 과잉유동성의 팽창 문제가 더 심화될 수도 있다. 한마디로 이런 전망은 믿을 만하지 않다.
많은 경제분석가들이 믿고 싶어하는 것과는 달리 미국의 정책금리 인하가 금융불안사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증거는 약하다.
투자은행 메를린치의 분석에 따르면 작년 9월 이후 미국연준이 인하한 금리의 폭은 2.25%p에 이르지만 모기지 대출금리는 일반금리 0.02%p, 우량대출 0.2%p 하락에 머무르고 있다.
작년 말 미국의 씨티은행은 75억 달러 규모의 표면금리 11%짜리 전환사채(CB)를 발행했다. 11%라면 최하 신용등급이다. 세계 최대 은행이 이 수준이라면 이보다 더한 미국의 금융기관들은 무수히 많을 것이다.
씨티은행의 전환사채를 중동 국부펀드가 인수했듯이 중동 및 아시아의 자금공급이 없다면 미국의 많은 금융기관들이 사실상 도산상태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미국 금융기관들이 외국 중앙은행의 자금공급에 의존해 급한 불을 끄고 있는 반면 정작 미국 연준이 금리인하를 통해 공급하고 있는 유동성은 금융시장 내에 머무르지 않고 민간 투기자금을 따라 옮겨다니는 모습이다.
미국의 정책당국이 금융시장에 대한 관리능력을 잃고 있다는 의구심이 생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서구 경제의 중요한 변화는 실물경제에 비해 금융부문이 불균형적으로 확대되었고 증권이나 부동산 등 자산시장이 지나치게 팽창했다는 점이다. 경기순환의 역사에서 보면 이러한 불균형은 결코 무한히 계속될 수 없다. 현재 세계경제 불안정의 근본 원인이 여기에 기인하고 있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자산시장 전체 동시침체 가능성
즉 금융부문의 팽창이 한계를 넘어서면서 자산투자의 수익성이 위협받게 되자 과잉 팽창된 유동성이 위험회피를 위해 금융자산, 부동산자산, 상품자산시장으로 순차적으로 옮겨다니는 상황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금융시장과 부동산시장의 침체가 일어났고 이제 마지막 남은 자산시장인 상품시장으로 유동성이 몰려든 상황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자산시장 전체의 동시 침체나 버블 붕괴라는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새 정부에 세계경제의 급격한 변동가능성을 염두에 둔 만반의 대책이 준비되어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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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철규 (성공회대학교 교수·경제학)
배럴당 100달러를 넘긴 국제유가를 두고 지난달 하순 미국의 경제지 월스트리트 저널은 에너지 관련 전문 애널리스트들이 당황해하고 있다는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는 최근의 유가 급등을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우려와 같은 수요-공급 불안 문제로 설명하는 통상적인 견해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흥미롭다.
최근 국제 원자재 시장의 가격 추이를 보면 금, 밀, 백금, 옥수수, 석탄 등 주요 상품들의 가격이 순환해가면서 차례로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미국 등 세계 주요 국가들의 성장둔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모든 원자재 시장에서 수급이 불안해서 가격이 오른다는 설명은 충분하지 않다.
이렇다 보니 대안적인 설명으로 세를 얻고 있는 것이 ‘상품 투기론’이다. 증시침체 때문에 금융시장을 탈출한 자금이 원자재시장에 몰려들면서 투기성 가격급등을 초래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2000년대 초반의 실물경제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세계 주요 중앙은행들이 정책금리 인하라는 정책 공조를 취하면서 국제 유동성이 급팽창했다. 이에 더해 2005년 이후 아시아 중앙은행들이 미국채권의 매입 등을 통해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해외 금융시장에 공급함으로써 국제유동성의 팽창이 누적된 사실을 고려한 설명이라서 수급불균형보다 좀 더 설득력이 있다 하겠다.
그런데 묘하게도 위의 두 가지 서로 다른 설명들을 각기 취하는 분석가들이라 하더라도 대다수가 ‘조만간에’ 국제금융시장과 상품시장이 안정화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데는 별 차이가 없다.
세 얻고 있는 ‘상품투기론’
국내에서도 이제 미국의 증시가격 하락이나 부동산 가격하락이 어느 정도 저점에 도달했기 때문에 추가적인 더 큰 위험은 없을 것이라는 등의 전망이 난무한다.
그러나 미국의 경기가 회복되면 상품시장의 수급불안정은 더욱 심화될 수도 있다. 또 금리를 계속 낮추면 국제적 과잉유동성의 팽창 문제가 더 심화될 수도 있다. 한마디로 이런 전망은 믿을 만하지 않다.
많은 경제분석가들이 믿고 싶어하는 것과는 달리 미국의 정책금리 인하가 금융불안사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증거는 약하다.
투자은행 메를린치의 분석에 따르면 작년 9월 이후 미국연준이 인하한 금리의 폭은 2.25%p에 이르지만 모기지 대출금리는 일반금리 0.02%p, 우량대출 0.2%p 하락에 머무르고 있다.
작년 말 미국의 씨티은행은 75억 달러 규모의 표면금리 11%짜리 전환사채(CB)를 발행했다. 11%라면 최하 신용등급이다. 세계 최대 은행이 이 수준이라면 이보다 더한 미국의 금융기관들은 무수히 많을 것이다.
씨티은행의 전환사채를 중동 국부펀드가 인수했듯이 중동 및 아시아의 자금공급이 없다면 미국의 많은 금융기관들이 사실상 도산상태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미국 금융기관들이 외국 중앙은행의 자금공급에 의존해 급한 불을 끄고 있는 반면 정작 미국 연준이 금리인하를 통해 공급하고 있는 유동성은 금융시장 내에 머무르지 않고 민간 투기자금을 따라 옮겨다니는 모습이다.
미국의 정책당국이 금융시장에 대한 관리능력을 잃고 있다는 의구심이 생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서구 경제의 중요한 변화는 실물경제에 비해 금융부문이 불균형적으로 확대되었고 증권이나 부동산 등 자산시장이 지나치게 팽창했다는 점이다. 경기순환의 역사에서 보면 이러한 불균형은 결코 무한히 계속될 수 없다. 현재 세계경제 불안정의 근본 원인이 여기에 기인하고 있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자산시장 전체 동시침체 가능성
즉 금융부문의 팽창이 한계를 넘어서면서 자산투자의 수익성이 위협받게 되자 과잉 팽창된 유동성이 위험회피를 위해 금융자산, 부동산자산, 상품자산시장으로 순차적으로 옮겨다니는 상황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금융시장과 부동산시장의 침체가 일어났고 이제 마지막 남은 자산시장인 상품시장으로 유동성이 몰려든 상황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자산시장 전체의 동시 침체나 버블 붕괴라는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새 정부에 세계경제의 급격한 변동가능성을 염두에 둔 만반의 대책이 준비되어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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