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 현장을 분석해 범인이 범행을 저지를 당시의 행동과 범죄를 저지르게 된 원인에 대한 가정을 올바로 세우면 범인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때 범인을 꼼짝 못하게 하는 방법이 바로 과학수사이다. 유교를 국시로 삼은 조선시대라고 해서 범죄가 없었을 리는 만무하다. 놀라운 것은 유럽에 비해 조선에서는 과학수사가 매우 이른 시기에 시작됐다는 점이다. 미국의 CSI과학수사대 못지 않은 조선시대의 과학수사 기법을 소개한다. ‘조선시대의 과학수사 X파일(이종호 지음·글로연 출판)’를 참조했다. 편집자 주
조선조 말 경기도 여주에 사는 김인규라는 사람이 술에 취해 자다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사람 살려!’ 하는 남편의 비명소리를 듣고 김씨의 처가 일어났으나 방문을 열고 나가는 괴한의 상투머리만 봤을 뿐이었다. 김씨 가족들은 여주군수 이준규에서 소를 제기했으나 수사는 여의치 않았다. 현장에 출동해 이웃들을 탐문했으나 하나같이 ‘모르쇠’로 일관했다.
정황을 살펴보니 죽은 김인규와 채권채무 관계에 있던 이춘경이 용의자로 지목됐다. 이씨는 저당 잡힌 집문서 문제로 김씨와 다퉈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황 만으로 범인으로 단정할 수는 없었다.
여주군수는 이춘경의 버선과 평소 차고 다니던 칼을 주목했다. 버선에 아주 미미한 혈흔이 발견됐던 것이다. 하지만 시일이 오래 지난데다 이춘경의 칼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어 물증으로 삼기 어려웠다.
이준규는 서리들에게 칼을 숯불에 달구게 한 후 그 위에 고농도의 식초를 들이부었다. 그러자 ‘치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칼에 선명한 혈흔이 나타났다. 결국 이춘경은 자신의 범행을 자백했다. 이는 조선시대 수사참고서인 ‘증수무원록언해’에 따라 실시한 수사기법이다. 책에 따르면 ‘시간이 많이 지나 살인한 흉기를 판별하기 어려우면 모름지기 숯불로 발갛게 달구어 신 초(醋)로 씻으면 혈흔이 보인다’고 돼 있다.
이에 대해 서강대 화학과 이덕환 교수는 “오래된 피에 남아 있던 철 이온은 소량이라도 티어시안산(酸)과 반응하면 붉은색이 드러난다”며 “신 초에는 티오시안산이 들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미국 드라마 ‘CSI과학수사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기법이다. 범죄 현장을 어둡게 한 후 루미놀 기법을 쓰면 아무리 작은 혈흔이라도 반딧불처럼 빛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혈흔을 찾기 위해 루미놀에 과산화수소수를 혼합한 용액을 뿌리면 과산화수소수가 혈흔의 혈색소와 만나 산소가 떨어져 나가면서 파란 형광 빛을 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서 현대의 최첨단 과학기법이 쓰였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다.
◆자살로 위장한 살인 판단 비결은 = 1894년 음력 6월 경북 문경에서 양반가의 부녀자가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상놈 정이문이 양반 안도흠의 며느리 황씨를 겁탈하려다 미수에 그쳤는데, 황씨가 수치심을 이기지 못해 목을 맸다는 안씨 집안의 고발이었다. 정이문은 도망쳤으니 안씨 집안의 고발 내용을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정씨의 할아버지가 뜻밖의 증언을 했다. 손씨가 황씨 부인을 겁탈한 게 아니라 5~6년 전부터 둘 사이가 남달랐다는 것이다.
이에 문경군수 김영연은 사건의 정황을 파악하기 위해 현장에 출동해 피해자를 검시했다. 양반집 부녀자 시체의 옷을 벗겨 검시하면 예의에 어긋난다는 법례가 있었지만 사건을 풀기 위해 검시를 진행했다. 황씨 부인을 살펴보니 속옷에 대변이 어지럽게 묻어 있었다. 얼굴 역시 구타당한 듯 푸르기도, 붉기도, 누르게 보이기도 했다. ‘중수무원록언해’에 적힌 구타살해 조항과 흡사한 시반(시체에 생긴 멍)도 나타났다. 좀 더 살펴보니 머리 정수리 왼쪽에 피부가 벗겨진 상처도 있었다. 목 졸린 흔적도 뚜렷했다.
문경군수는 여러 정황상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는 심증을 굳히고 일단 황씨 부인이 목을 맨 서까래를 살폈다. 보통 자살의 경우 숨이 끊어질 때까지 몸부림을 치기 때문에 서까래의 올가미 흔적은 한 줄이 아니라 여러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서까래엔 먼지가 많이 앉는 곳이기 때문에 먼지가 어지럽혀져 있어야 한다.
하지만 황씨 부인이 목을 맸다는 서까래엔 한줄의 올가미 자국만 나 있고 먼지가 어지럽혀지지도 않았다. 또한 황씨 부인의 목 뒤에도 올가미 자국이 패 있었다. 자살할 경우 무게 중심이 아래로 쏠리기 때문에 자살한 사람의 목 앞에만 ‘V자’ 올가미 자국이 나게 돼 있다. 결국 황씨 부인은 자살이 아니라 타살 당한 것이었다.
이런 정황을 들이대자 황씨 부인 남편이 범행을 털어놨다. ‘중수무원록언해’에 따르면 늑액사(勒縊死·목매어 죽은 것)를 조사할 경우 목을 맨 서까래나 대들보의 올가미 흔적, 먼지의 상황을 확인하도록 돼 있다. 이와 함께 자살자의 목 부의 조직의 출혈 여부를 살피도록 하고 있다. 이는 현대 법의학에서 쓰이는 수사 상식으로, 조선시대 당시에도 기본 과학수사 기법이었다.
◆조선시대 활용된 과학수사기법은 = 그밖에도 여러 가지 과학수사 기법이 있다. 조선시대 많이 일어난 사건 가운데 익수사(溺水死·물에 빠져 죽은 것)와 중독사(中毒死)가 많았다. 익사한 이가 살았을 때 물에 빠졌는지, 죽고 나서 빠졌는지 알기 위해서는 콧구멍 가운데에서 진흙과 모래 가루가 나오는지 살피면 된다. 살았을 때 빠졌으면 사토가 있고, 죽었을 때 빠졌으면 사토가 없다.
중독사의 경우 대부분 은비녀에 의지했다. 은비녀를 목구멍 안에 깊이 넣었다가 잠시 후 꺼내면 색이 검어지기 때문으로, 조선 특유의 수사 기법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의 경우 비상으로 인명을 해치는 경우가 없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비상으로 살해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핏방울 뽑아 섞이면 친자”
황당한 수사기법도
조선시대 수사 교과서인 ‘신주무원록’이 과학수사를 원칙으로 했다지만 지금으로 보면 황당한 내용도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핏방울의 응고 여부로 친자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친자나 형제가 어려서부터 헤어져 진짜와 거짓을 가리기 어려울 경우 각기 손가락에 피를 한방울 내 그릇에 떨어뜨려 하나로 응결되면 친자이고, 그렇지 않으면 친자나 형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사망자의 친자 여부도 가렸다는 점이다. 자식의 피를 부모의 뼈 위에 떨어뜨려 피가 뼛속으로 스며들면 친자이고, 그렇지 않으면 친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 익사한 사체의 경우 남자는 얼굴이 무거워 엎드린 자세가 되고, 여자는 등이 무거워 드러눕는 자세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 과학에서는 성별에 관계없이 일반적인 익사체의 경우 머리와 팔다리가 아래로 늘어지는 엎드린 형태가 된다고 설명한다. 머리와 팔다리는 부피에 비해 뼈의 비율이 커 비중이 높고, 상대적으로 몸통은 비중이 낮기 때문이다. ‘신주무원록’은 또 성교시 남자가 갑자기 사망하는 복상사의 진위를 판단할 경우 남자의 성기가 부풀어 있어야 복상사로 사망한 것이고, 오그라들었으면 거짓이라고 적고 있다. 성교 도중 사망했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해석이다. 하지만 현대 학자들은 복상사의 원인은 대부분 심장질환이기 때문에 성교 도중보다 성교 직후에 사망하는 예가 많다고 본다.
김은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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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말 경기도 여주에 사는 김인규라는 사람이 술에 취해 자다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사람 살려!’ 하는 남편의 비명소리를 듣고 김씨의 처가 일어났으나 방문을 열고 나가는 괴한의 상투머리만 봤을 뿐이었다. 김씨 가족들은 여주군수 이준규에서 소를 제기했으나 수사는 여의치 않았다. 현장에 출동해 이웃들을 탐문했으나 하나같이 ‘모르쇠’로 일관했다.
정황을 살펴보니 죽은 김인규와 채권채무 관계에 있던 이춘경이 용의자로 지목됐다. 이씨는 저당 잡힌 집문서 문제로 김씨와 다퉈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황 만으로 범인으로 단정할 수는 없었다.
여주군수는 이춘경의 버선과 평소 차고 다니던 칼을 주목했다. 버선에 아주 미미한 혈흔이 발견됐던 것이다. 하지만 시일이 오래 지난데다 이춘경의 칼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어 물증으로 삼기 어려웠다.
이준규는 서리들에게 칼을 숯불에 달구게 한 후 그 위에 고농도의 식초를 들이부었다. 그러자 ‘치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칼에 선명한 혈흔이 나타났다. 결국 이춘경은 자신의 범행을 자백했다. 이는 조선시대 수사참고서인 ‘증수무원록언해’에 따라 실시한 수사기법이다. 책에 따르면 ‘시간이 많이 지나 살인한 흉기를 판별하기 어려우면 모름지기 숯불로 발갛게 달구어 신 초(醋)로 씻으면 혈흔이 보인다’고 돼 있다.
이에 대해 서강대 화학과 이덕환 교수는 “오래된 피에 남아 있던 철 이온은 소량이라도 티어시안산(酸)과 반응하면 붉은색이 드러난다”며 “신 초에는 티오시안산이 들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미국 드라마 ‘CSI과학수사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기법이다. 범죄 현장을 어둡게 한 후 루미놀 기법을 쓰면 아무리 작은 혈흔이라도 반딧불처럼 빛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혈흔을 찾기 위해 루미놀에 과산화수소수를 혼합한 용액을 뿌리면 과산화수소수가 혈흔의 혈색소와 만나 산소가 떨어져 나가면서 파란 형광 빛을 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서 현대의 최첨단 과학기법이 쓰였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다.
◆자살로 위장한 살인 판단 비결은 = 1894년 음력 6월 경북 문경에서 양반가의 부녀자가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상놈 정이문이 양반 안도흠의 며느리 황씨를 겁탈하려다 미수에 그쳤는데, 황씨가 수치심을 이기지 못해 목을 맸다는 안씨 집안의 고발이었다. 정이문은 도망쳤으니 안씨 집안의 고발 내용을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정씨의 할아버지가 뜻밖의 증언을 했다. 손씨가 황씨 부인을 겁탈한 게 아니라 5~6년 전부터 둘 사이가 남달랐다는 것이다.
이에 문경군수 김영연은 사건의 정황을 파악하기 위해 현장에 출동해 피해자를 검시했다. 양반집 부녀자 시체의 옷을 벗겨 검시하면 예의에 어긋난다는 법례가 있었지만 사건을 풀기 위해 검시를 진행했다. 황씨 부인을 살펴보니 속옷에 대변이 어지럽게 묻어 있었다. 얼굴 역시 구타당한 듯 푸르기도, 붉기도, 누르게 보이기도 했다. ‘중수무원록언해’에 적힌 구타살해 조항과 흡사한 시반(시체에 생긴 멍)도 나타났다. 좀 더 살펴보니 머리 정수리 왼쪽에 피부가 벗겨진 상처도 있었다. 목 졸린 흔적도 뚜렷했다.
문경군수는 여러 정황상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는 심증을 굳히고 일단 황씨 부인이 목을 맨 서까래를 살폈다. 보통 자살의 경우 숨이 끊어질 때까지 몸부림을 치기 때문에 서까래의 올가미 흔적은 한 줄이 아니라 여러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서까래엔 먼지가 많이 앉는 곳이기 때문에 먼지가 어지럽혀져 있어야 한다.
하지만 황씨 부인이 목을 맸다는 서까래엔 한줄의 올가미 자국만 나 있고 먼지가 어지럽혀지지도 않았다. 또한 황씨 부인의 목 뒤에도 올가미 자국이 패 있었다. 자살할 경우 무게 중심이 아래로 쏠리기 때문에 자살한 사람의 목 앞에만 ‘V자’ 올가미 자국이 나게 돼 있다. 결국 황씨 부인은 자살이 아니라 타살 당한 것이었다.
이런 정황을 들이대자 황씨 부인 남편이 범행을 털어놨다. ‘중수무원록언해’에 따르면 늑액사(勒縊死·목매어 죽은 것)를 조사할 경우 목을 맨 서까래나 대들보의 올가미 흔적, 먼지의 상황을 확인하도록 돼 있다. 이와 함께 자살자의 목 부의 조직의 출혈 여부를 살피도록 하고 있다. 이는 현대 법의학에서 쓰이는 수사 상식으로, 조선시대 당시에도 기본 과학수사 기법이었다.
◆조선시대 활용된 과학수사기법은 = 그밖에도 여러 가지 과학수사 기법이 있다. 조선시대 많이 일어난 사건 가운데 익수사(溺水死·물에 빠져 죽은 것)와 중독사(中毒死)가 많았다. 익사한 이가 살았을 때 물에 빠졌는지, 죽고 나서 빠졌는지 알기 위해서는 콧구멍 가운데에서 진흙과 모래 가루가 나오는지 살피면 된다. 살았을 때 빠졌으면 사토가 있고, 죽었을 때 빠졌으면 사토가 없다.
중독사의 경우 대부분 은비녀에 의지했다. 은비녀를 목구멍 안에 깊이 넣었다가 잠시 후 꺼내면 색이 검어지기 때문으로, 조선 특유의 수사 기법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의 경우 비상으로 인명을 해치는 경우가 없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비상으로 살해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핏방울 뽑아 섞이면 친자”
황당한 수사기법도
조선시대 수사 교과서인 ‘신주무원록’이 과학수사를 원칙으로 했다지만 지금으로 보면 황당한 내용도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핏방울의 응고 여부로 친자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친자나 형제가 어려서부터 헤어져 진짜와 거짓을 가리기 어려울 경우 각기 손가락에 피를 한방울 내 그릇에 떨어뜨려 하나로 응결되면 친자이고, 그렇지 않으면 친자나 형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사망자의 친자 여부도 가렸다는 점이다. 자식의 피를 부모의 뼈 위에 떨어뜨려 피가 뼛속으로 스며들면 친자이고, 그렇지 않으면 친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 익사한 사체의 경우 남자는 얼굴이 무거워 엎드린 자세가 되고, 여자는 등이 무거워 드러눕는 자세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 과학에서는 성별에 관계없이 일반적인 익사체의 경우 머리와 팔다리가 아래로 늘어지는 엎드린 형태가 된다고 설명한다. 머리와 팔다리는 부피에 비해 뼈의 비율이 커 비중이 높고, 상대적으로 몸통은 비중이 낮기 때문이다. ‘신주무원록’은 또 성교시 남자가 갑자기 사망하는 복상사의 진위를 판단할 경우 남자의 성기가 부풀어 있어야 복상사로 사망한 것이고, 오그라들었으면 거짓이라고 적고 있다. 성교 도중 사망했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해석이다. 하지만 현대 학자들은 복상사의 원인은 대부분 심장질환이기 때문에 성교 도중보다 성교 직후에 사망하는 예가 많다고 본다.
김은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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