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식 물가대책과 시장경제
김진동 (본지 객원 논설위원)
장바구니를 반도 못 채운 주부가 “안 오른 게 없고 올라도 너무 올라 시장 가기가 겁난다”고 한숨 짓는다. 넋두리인지 하소연인지 “세상 살아가면서 물가 걱정 없이 살던 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다”고 푸념한다.
새정부가 어쩔 수 없이 칼을 뺐다. 이명박 대통령이 “물가안정이 성장이나 일자리보다 중요하다”면서 생필품 50개를 선정해 집중관리하라고 지시했다. 이 지시가 떨어진 지 1주일만에 각 부처가 머리를 싸매고 52개를 고르고 골라 특별관리 대상으로 지정했다. 10일 단위로 모니터링하겠다고 한다.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가 성장에서 안정으로 급선회했다. 그 표변에 다소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지만 물가비상 상황에선 이해할만한 선택이다. 해외에서 밀려오는 위기 전조로 보나 국내의 물가상승 동향으로 보아 성장을 붙들고 있다고 해도 목표 달성이 어렵고 경제살리기는커녕 스태그플레이션을 자초해서 국가경제와 서민생활을 더 멍들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군사정권 시절 써먹던 ‘헌칼’
그러나 이는 70~80년대에서나 통하던 발상이다. 시장다운 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군사정권 시절에나 써먹던 ‘헌칼’이다. 인위적인 가격통제가 아니라고 강변하지만 사실상 통제를 전제로 한 정책이다.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지자 관련 부처가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며 난감해했다는 후문이고 보면 시장경제를 강조해온 새정부치고는 매우 후진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정부가 엄포를 놓으면 당분간은 업계가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권력의 무서움을 잘 알기 때문이다. 정부의 ‘협조당부’에 고분고분하지 않거나 합동단속에 걸리면 ‘괘씸죄’로 몰려 유형무형의 압력을 받기 때문이다.
70~80년대 물가대책이 그랬다. 정부가 업자를 불러들여 제품값을 올리지 말라고 당부한다. 말이 당부지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주무부서인 기획원 물가국장은 사무실로 출근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으로 출근했다. 상인들을 어르고 달랬다. 원가압박으로 가격인상 요인이 생겨도 값을 올리지 못했다. 허가를 받거나 내락을 받아야 했다. 정부 말을 듣지 않으면 세무조사 대출회수 등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그렇게 물가를 잡았다.
지금도 가격을 통제하는 나라가 있기는 하다. 러시아가 기본적인 식품에 대해 가격상한제를 실시하고 있다. 중국이 정부승인제를, 태국과 인도네시아도 가격통제와 동결조치 등을 실시하고 있다. 이들 나라들은 거의 시장경제가 작동되지 않는 개도국들이다. 선진국들은 비상사태의 경우 외에는 거의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맡긴다.
그렇게 해서라도 물가가 잡힌다면 다행이다. 그러나 뜻대로 쉽게 잡힐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물가상승의 주된 요인이 원자재 가격상승 등 우리의 통제권 밖인 해외에서 밀려오기 때문이다.
원유 곡물 철강석 석탄 등의 국제가격이 올라 원가상승 압력을 받고 있는데 제품값을 내리라고 한들 내릴 수가 없는 게 상식적인 이치다. 그래도 굳이 내려야 한다면 양을 줄이거나 품질을 낮출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은 우회인상으로 소비자에 전가된다. 끝내는 품귀현상을 빚고 뒤이어 수급불균형에 따른 가격폭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1차 오일쇼크 때 뼈아프게 경험했던 일이다.
정부 내 손발이 엇갈리는 것도 물가안정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머리(대통령)는 성장보다 물가잡기를 우선하라고 주문하는데 팔다리(기획재정부)는 성장 올인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강만수 장관이 금리와 환율인하를 끈질지게 주문하고 있는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 문제를 두고 한국은행과 사이에서 마찰음이 들리기도 한다. 금리와 환율인하는 성장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물가에는 독이 된다.
이 대통령 또한 물가안정과는 상충되는 시책을 내놓고 있다. 규제완화를 명분으로 재건축을 허용하겠다고 했다. 이 소식에 부동산 값이 이상 징후를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재건축은 부동산값 상승을 부채질하고 부동산값 상승은 물가를 자극한다.
소비자 나서야 물가 잡혀
엇박자 정책으로 물가잡기는 어렵게 되어 가고 있다. 이래서 ‘선거용’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정부가 뭔가 하고 있다는 인상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이다.
이번 물가상승 요인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알면 답은 어렵지 않게 나온다. 불가피한 고통이라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불가피한 고통이라면 어렵더라도 지혜롭게 이겨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 정책도 중요하지만 소비자들의 참여가 더 중요하다. 값이 오르면 오른 만큼 소비를 절제하여 스스로를 보호하는 자세가 아쉬운 때다. 소비자가 나서야 물가가 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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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동 (본지 객원 논설위원)
장바구니를 반도 못 채운 주부가 “안 오른 게 없고 올라도 너무 올라 시장 가기가 겁난다”고 한숨 짓는다. 넋두리인지 하소연인지 “세상 살아가면서 물가 걱정 없이 살던 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다”고 푸념한다.
새정부가 어쩔 수 없이 칼을 뺐다. 이명박 대통령이 “물가안정이 성장이나 일자리보다 중요하다”면서 생필품 50개를 선정해 집중관리하라고 지시했다. 이 지시가 떨어진 지 1주일만에 각 부처가 머리를 싸매고 52개를 고르고 골라 특별관리 대상으로 지정했다. 10일 단위로 모니터링하겠다고 한다.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가 성장에서 안정으로 급선회했다. 그 표변에 다소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지만 물가비상 상황에선 이해할만한 선택이다. 해외에서 밀려오는 위기 전조로 보나 국내의 물가상승 동향으로 보아 성장을 붙들고 있다고 해도 목표 달성이 어렵고 경제살리기는커녕 스태그플레이션을 자초해서 국가경제와 서민생활을 더 멍들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군사정권 시절 써먹던 ‘헌칼’
그러나 이는 70~80년대에서나 통하던 발상이다. 시장다운 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군사정권 시절에나 써먹던 ‘헌칼’이다. 인위적인 가격통제가 아니라고 강변하지만 사실상 통제를 전제로 한 정책이다.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지자 관련 부처가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며 난감해했다는 후문이고 보면 시장경제를 강조해온 새정부치고는 매우 후진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정부가 엄포를 놓으면 당분간은 업계가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권력의 무서움을 잘 알기 때문이다. 정부의 ‘협조당부’에 고분고분하지 않거나 합동단속에 걸리면 ‘괘씸죄’로 몰려 유형무형의 압력을 받기 때문이다.
70~80년대 물가대책이 그랬다. 정부가 업자를 불러들여 제품값을 올리지 말라고 당부한다. 말이 당부지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주무부서인 기획원 물가국장은 사무실로 출근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으로 출근했다. 상인들을 어르고 달랬다. 원가압박으로 가격인상 요인이 생겨도 값을 올리지 못했다. 허가를 받거나 내락을 받아야 했다. 정부 말을 듣지 않으면 세무조사 대출회수 등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그렇게 물가를 잡았다.
지금도 가격을 통제하는 나라가 있기는 하다. 러시아가 기본적인 식품에 대해 가격상한제를 실시하고 있다. 중국이 정부승인제를, 태국과 인도네시아도 가격통제와 동결조치 등을 실시하고 있다. 이들 나라들은 거의 시장경제가 작동되지 않는 개도국들이다. 선진국들은 비상사태의 경우 외에는 거의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맡긴다.
그렇게 해서라도 물가가 잡힌다면 다행이다. 그러나 뜻대로 쉽게 잡힐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물가상승의 주된 요인이 원자재 가격상승 등 우리의 통제권 밖인 해외에서 밀려오기 때문이다.
원유 곡물 철강석 석탄 등의 국제가격이 올라 원가상승 압력을 받고 있는데 제품값을 내리라고 한들 내릴 수가 없는 게 상식적인 이치다. 그래도 굳이 내려야 한다면 양을 줄이거나 품질을 낮출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은 우회인상으로 소비자에 전가된다. 끝내는 품귀현상을 빚고 뒤이어 수급불균형에 따른 가격폭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1차 오일쇼크 때 뼈아프게 경험했던 일이다.
정부 내 손발이 엇갈리는 것도 물가안정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머리(대통령)는 성장보다 물가잡기를 우선하라고 주문하는데 팔다리(기획재정부)는 성장 올인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강만수 장관이 금리와 환율인하를 끈질지게 주문하고 있는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 문제를 두고 한국은행과 사이에서 마찰음이 들리기도 한다. 금리와 환율인하는 성장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물가에는 독이 된다.
이 대통령 또한 물가안정과는 상충되는 시책을 내놓고 있다. 규제완화를 명분으로 재건축을 허용하겠다고 했다. 이 소식에 부동산 값이 이상 징후를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재건축은 부동산값 상승을 부채질하고 부동산값 상승은 물가를 자극한다.
소비자 나서야 물가 잡혀
엇박자 정책으로 물가잡기는 어렵게 되어 가고 있다. 이래서 ‘선거용’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정부가 뭔가 하고 있다는 인상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이다.
이번 물가상승 요인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알면 답은 어렵지 않게 나온다. 불가피한 고통이라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불가피한 고통이라면 어렵더라도 지혜롭게 이겨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 정책도 중요하지만 소비자들의 참여가 더 중요하다. 값이 오르면 오른 만큼 소비를 절제하여 스스로를 보호하는 자세가 아쉬운 때다. 소비자가 나서야 물가가 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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