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문: 이명박 정부의 민영의료보험 활성화 방침을 둘러싼 논란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때마침 미국 의료보험제도의 허상을 적나라하게 고발한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식코’(환자의 미국 속어)가 개봉되면서 불길은 정치권으로 옮아붙었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갑론을박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내에서도 보건복지가족부와 지식경제부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민들은 두려움과 함께 혼란에 빠졌고, 정치권은 이해득실을 따지느라 바빠졌다. 한반도대운하 못지않은 핫이슈로 급부상한 민영의료보험 활성화 논란을 짚어본다.
문패: 민영의료보험활성화 논란 격화
제목: “대운하보다 의료정책이 더 두렵다”
부제: 당연지정제 폐지 등 설익은 정책에 혼선만 커져
정치권 가세해 논란 가중 … 정부부처간 이견 여전
‘병원이 아끼려 집에서 포경 수술하던 중학생 응급실’
‘아파트 없어도 민영보험가입자면 일등신랑감’
‘집에서 치질 수술하던 50대 남자 사망’
도대체 무슨 황당한 뉴스냐고?
최근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통해 빠르게 번지고 있는 ‘민영의료보험활성화 이후 즐거운 생활상’이라는 가상이미지 속 내용이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려는 민영의료보험 활성화가 시행되고 나면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이런 내용이 실릴 것이라는 그야말로 가상뉴스다. 그런데도 인터넷을 통해 수만 명이 내용을 봤고, 수많은 네티즌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가상이미지를 마치 금방이라도 실제 상황이 될 것처럼 두려워하고 있다. 대운하공약보다 의료보험 민영화가 더 두렵다는 글까지 등장했다. 국민들에게는 영화 ‘식코’에서 실업자 애덤이 다리에 생긴 상처를 ‘스스로’ 꿰매는 장면이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무엇이 논란인가 = 민영의료보험 활성화를 둘러싼 논란은 3월 10일 기획재정부의 대통령 업무보고가 본격적인 불을 지폈다. 기획재정부의 업무보고 가운데 의료서비스 규제완화 대목에는 ‘영리의료법인 도입’,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공·사보험간 정보공유’ 등이 포함돼 있다. 이에 앞서 이명박 대통령 역시 지난 대선 과정에서 ‘당연지정제 완화’ 등을 공약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큰 틀에서 보자면 건강보험의 재정악화 문제를 해결하고 의료산업과 보험업계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시장원리와 경쟁체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와 보건의료단체가 들고 일어났다.
자칫하면 의료서비스의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고, 부자병원과 가난한 병원이 나뉘는 의료양극화가 급속히 진행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정작 주무부처인 보건복지가족부 업무보고에서는 이 같은 내용이 모두 빠졌다. 괜한 논란만 일으키느니 차라리 입을 다물자는 식이다. 복지부의 태도에 대해 알맹이 없는 업무보고라는 비난이 잇따랐다. 분위기가 이렇게 흘러가자 최근에는 김성이 복지부 장관이 각종 언론 인터뷰를 통해 현재의 건강보험 제도의 틀을 깨지 않을 것이며, 건강정보 공유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발 물러섰다. 그러나 예민한 사안인 당연지정제 완화, 영리의료법인 도입 등에 대해서는 확실한 답보다는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는 원칙론만 반복했다. 특히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는 현재처럼 건강보험 가입 환자들이 어떤 병원을 찾더라도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것이 폐지되면 건강보험이 있어도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과 치료받을 수 없는 병원이 구분된다. 현재 미국이 채택하고 있는 방식이다. ‘식코’에 나온 것처럼 아이가 갑자기 아파서 병원에 가지만 민간보험사와 계약이 된 병원이 아니기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경우까지 발생할 수 있다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국민건강과 생명이 직결된 중요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복지부와 기획재정부의 엇갈린 업무보고는 현재까지도 정부부처간, 그리고 정부부처와 청와대 사이에서 의견조율이 제대로 안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발 빠른 정치권? = 화제를 몰고 온 영화 ‘식코’가 국내에 개봉되면서 정치권이 민영의료보험 논란에 가세했다. 얼마 전 경실련이 이번 총선의 각 정당 공약을 비교분석한 내용에 따르면 영리법인설립 허용과 민간의료보험 활성화에 있어 정당 간 입장차이 극명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병원의 영리법인 설립 등 영리사업을 허용하는 정책에 대해서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은 찬성, 나머지 통합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등은 반대 의견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국민건강보험제도에 있어서도 정당별 정책적 차이가 드러났다.
건강보험제도와 경쟁할 수 있는 민간의료보험 활성화에 대해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이 찬성, 나머지 3당이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나라당은 건강보험재정으로 국민건강에 대한 욕구를 충족하기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중증질병 등은 민간의료보험에서 커버한다는 차원에서 찬성입장을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민영의료보험 활성화와 당연지정제, 영리법인 설립 등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반대하는 쪽의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고, 찬성하는 쪽은 이유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영화 ‘식코’를 함께 보자는 시민단체의 캠페인에 동참하며 의료문제를 총선이슈로 부각시키고 있다.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 역시 4일 중앙선대위 회의에서 “총선이 끝나고 나면 부자병원과 가난한 서민병원을 가르는 ‘식코’같은 의료제도가 우리나라에 들어설 것”이라며 정치쟁점화를 시도했다. 또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도 6일 영화 ‘식코’를 직접 관람한 뒤 “민영화가 더 좋은 것도 물론 있지만 미국식 의료정책을 따라간다는 것은 절대 안 된다. 거꾸로 가려는 보험정책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한나라당은 가급적 의료이슈가 언급되는 것 자체를 꺼리는 눈치다. 자칫하면 막판 총선 득표 전략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박희태 한나라당 공동선대위원장이 최근 한 방송사의 TV 토론회에서 예민한 의료정책에 대해 ‘잘 모르겠다’는 식으로 일관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오락가락 정책, 보험업계도 고민 = 당사자인 보험업계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민영의료보험의 활성화 논의는 보험업계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정권이 바뀌면서 정책이 180도 달라지는가 싶더니, 이제는 정부당국자 사이에도 이견을 보이자 보험업계는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참여정부 시절 유시민 전복지부장관은 2006년 7월 노무현 전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의료산업선진화위 전체회의에서 “실손형 상품 판매로 건강보험 재정이 연간 2400억원~1조7000억원까지 피해를 입는다”고 주장하면서 실손형 상품의 판매 금지를 관철시켰고, 금융감독원이 갖고 있던 민영의보 상품의 관리감독권도 복지부가 가져가는 것으로 결정했다. 또한 민영건강보험의 보장범위를 비급여부분으로만 제한하는 등의 공보험 위주의 정책을 추진했다. 보험업계는 강력하게 반발했고, 지난해 대선이 끝난 뒤 관련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면서 원점으로 회귀했다. 다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민영보험을 활성화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 가 싶더니 최근 다시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고 있는 형국이다. 실손형 상품시장 진출을 진출하기 위해 준비 중이던 생명보험업계도 정치권 동향을 주시하며 주춤하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아직 이명박 정부의 건강보험 재정악화에 대한 개선책이나 민영의료보험 활성화 방안이 구체적으로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민들의 반감만 커지고 있어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마치 보험업계가 미국식 ‘건강보험 민영화’와 ‘당연지정제 폐지’ 등을 부추기고 있는 것처럼 비쳐지는 것도 부담스럽다. 보험업계는 그동안 우리나라가 공보험(국민건강보험)과 사보험(민영의료보험)의 역할 분담을 통해 각자의 역할을 해 왔고, 이 같은 정책기조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기획재정부 업무보고와 영화 ‘식코’ 등의 영향으로 마치 공보험이 완전히 없어지고, 모든 것을 민영화 하는 쪽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비쳐지는 데 대해 우려하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공적의료보험을 민영의료보험이 대신하는 ‘대체형’이 아니라 공적보험이 담보하지 못하는 부분을 보완하는 ‘보완형’이기에 민영의료보험이 활성화 된다고 해서 공적보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실제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공적보험을 근간으로 하고 민영의료보험이 나머지를 보완해주는 방식을 많이 채택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구나 참여정부시절 국민건강보험의 재정적자 가운데 상당부분이 민영의료보험 때문이라는 주장을 놓고 설전을 벌이다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중심이 돼 연구용역을 진행했지만 그 결과를 발표조차 하지 않은 상황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태도다.
◆국민목숨 담보한 실험 안 돼 = 이번 논란의 상당한 책임은 설익은 정책과 무리한 추진 움직임을 들 수 있다는 게 중론이다. 논란이 될 수 있고, 충분히 검토해야 할 사안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기획재정부는 추진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더구나 주무부처인 복지부와 의견조율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내용을 공개하면서 혼선을 가중시켰다. 여기에 정책변화에 따른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고, 우려되는 부작용에 대해서도 아무런 해명을 하지 않으면서 국민 불안만 가중시킨 셈이다. 미국의 자극적인 면만을 다룬 영화 한 편을 보고 왜 그리 호들갑이냐고 반박할 수 있다. 그것도 우리정부가 추진하려는 정책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초일류 미국사회의 가려진 모습을 드러내는 마이클무어 감독의 자극적인 카메라는 국민들을 공포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의 의료정책이 미국을 닮아가려는 것처럼 보이는데 무조건 두려워하지 말기를 바라는 것이 오히려 무리다. 국민들은 정부의 설익은 실험에 목숨을 걸고 동참하고 싶은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불안감을 부추긴 것은 영화가 아니라 정부당국이라는 비판에 대해 정책당국자들이 진지하게 귀 기울여야 할 때라는 지적이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문패: 민영의료보험활성화 논란 격화
제목: “대운하보다 의료정책이 더 두렵다”
부제: 당연지정제 폐지 등 설익은 정책에 혼선만 커져
정치권 가세해 논란 가중 … 정부부처간 이견 여전
‘병원이 아끼려 집에서 포경 수술하던 중학생 응급실’
‘아파트 없어도 민영보험가입자면 일등신랑감’
‘집에서 치질 수술하던 50대 남자 사망’
도대체 무슨 황당한 뉴스냐고?
최근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통해 빠르게 번지고 있는 ‘민영의료보험활성화 이후 즐거운 생활상’이라는 가상이미지 속 내용이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려는 민영의료보험 활성화가 시행되고 나면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이런 내용이 실릴 것이라는 그야말로 가상뉴스다. 그런데도 인터넷을 통해 수만 명이 내용을 봤고, 수많은 네티즌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가상이미지를 마치 금방이라도 실제 상황이 될 것처럼 두려워하고 있다. 대운하공약보다 의료보험 민영화가 더 두렵다는 글까지 등장했다. 국민들에게는 영화 ‘식코’에서 실업자 애덤이 다리에 생긴 상처를 ‘스스로’ 꿰매는 장면이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무엇이 논란인가 = 민영의료보험 활성화를 둘러싼 논란은 3월 10일 기획재정부의 대통령 업무보고가 본격적인 불을 지폈다. 기획재정부의 업무보고 가운데 의료서비스 규제완화 대목에는 ‘영리의료법인 도입’,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공·사보험간 정보공유’ 등이 포함돼 있다. 이에 앞서 이명박 대통령 역시 지난 대선 과정에서 ‘당연지정제 완화’ 등을 공약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큰 틀에서 보자면 건강보험의 재정악화 문제를 해결하고 의료산업과 보험업계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시장원리와 경쟁체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와 보건의료단체가 들고 일어났다.
자칫하면 의료서비스의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고, 부자병원과 가난한 병원이 나뉘는 의료양극화가 급속히 진행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정작 주무부처인 보건복지가족부 업무보고에서는 이 같은 내용이 모두 빠졌다. 괜한 논란만 일으키느니 차라리 입을 다물자는 식이다. 복지부의 태도에 대해 알맹이 없는 업무보고라는 비난이 잇따랐다. 분위기가 이렇게 흘러가자 최근에는 김성이 복지부 장관이 각종 언론 인터뷰를 통해 현재의 건강보험 제도의 틀을 깨지 않을 것이며, 건강정보 공유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발 물러섰다. 그러나 예민한 사안인 당연지정제 완화, 영리의료법인 도입 등에 대해서는 확실한 답보다는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는 원칙론만 반복했다. 특히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는 현재처럼 건강보험 가입 환자들이 어떤 병원을 찾더라도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것이 폐지되면 건강보험이 있어도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과 치료받을 수 없는 병원이 구분된다. 현재 미국이 채택하고 있는 방식이다. ‘식코’에 나온 것처럼 아이가 갑자기 아파서 병원에 가지만 민간보험사와 계약이 된 병원이 아니기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경우까지 발생할 수 있다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국민건강과 생명이 직결된 중요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복지부와 기획재정부의 엇갈린 업무보고는 현재까지도 정부부처간, 그리고 정부부처와 청와대 사이에서 의견조율이 제대로 안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발 빠른 정치권? = 화제를 몰고 온 영화 ‘식코’가 국내에 개봉되면서 정치권이 민영의료보험 논란에 가세했다. 얼마 전 경실련이 이번 총선의 각 정당 공약을 비교분석한 내용에 따르면 영리법인설립 허용과 민간의료보험 활성화에 있어 정당 간 입장차이 극명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병원의 영리법인 설립 등 영리사업을 허용하는 정책에 대해서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은 찬성, 나머지 통합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등은 반대 의견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국민건강보험제도에 있어서도 정당별 정책적 차이가 드러났다.
건강보험제도와 경쟁할 수 있는 민간의료보험 활성화에 대해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이 찬성, 나머지 3당이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나라당은 건강보험재정으로 국민건강에 대한 욕구를 충족하기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중증질병 등은 민간의료보험에서 커버한다는 차원에서 찬성입장을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민영의료보험 활성화와 당연지정제, 영리법인 설립 등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반대하는 쪽의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고, 찬성하는 쪽은 이유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영화 ‘식코’를 함께 보자는 시민단체의 캠페인에 동참하며 의료문제를 총선이슈로 부각시키고 있다.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 역시 4일 중앙선대위 회의에서 “총선이 끝나고 나면 부자병원과 가난한 서민병원을 가르는 ‘식코’같은 의료제도가 우리나라에 들어설 것”이라며 정치쟁점화를 시도했다. 또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도 6일 영화 ‘식코’를 직접 관람한 뒤 “민영화가 더 좋은 것도 물론 있지만 미국식 의료정책을 따라간다는 것은 절대 안 된다. 거꾸로 가려는 보험정책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한나라당은 가급적 의료이슈가 언급되는 것 자체를 꺼리는 눈치다. 자칫하면 막판 총선 득표 전략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박희태 한나라당 공동선대위원장이 최근 한 방송사의 TV 토론회에서 예민한 의료정책에 대해 ‘잘 모르겠다’는 식으로 일관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오락가락 정책, 보험업계도 고민 = 당사자인 보험업계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민영의료보험의 활성화 논의는 보험업계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정권이 바뀌면서 정책이 180도 달라지는가 싶더니, 이제는 정부당국자 사이에도 이견을 보이자 보험업계는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참여정부 시절 유시민 전복지부장관은 2006년 7월 노무현 전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의료산업선진화위 전체회의에서 “실손형 상품 판매로 건강보험 재정이 연간 2400억원~1조7000억원까지 피해를 입는다”고 주장하면서 실손형 상품의 판매 금지를 관철시켰고, 금융감독원이 갖고 있던 민영의보 상품의 관리감독권도 복지부가 가져가는 것으로 결정했다. 또한 민영건강보험의 보장범위를 비급여부분으로만 제한하는 등의 공보험 위주의 정책을 추진했다. 보험업계는 강력하게 반발했고, 지난해 대선이 끝난 뒤 관련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면서 원점으로 회귀했다. 다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민영보험을 활성화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 가 싶더니 최근 다시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고 있는 형국이다. 실손형 상품시장 진출을 진출하기 위해 준비 중이던 생명보험업계도 정치권 동향을 주시하며 주춤하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아직 이명박 정부의 건강보험 재정악화에 대한 개선책이나 민영의료보험 활성화 방안이 구체적으로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민들의 반감만 커지고 있어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마치 보험업계가 미국식 ‘건강보험 민영화’와 ‘당연지정제 폐지’ 등을 부추기고 있는 것처럼 비쳐지는 것도 부담스럽다. 보험업계는 그동안 우리나라가 공보험(국민건강보험)과 사보험(민영의료보험)의 역할 분담을 통해 각자의 역할을 해 왔고, 이 같은 정책기조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기획재정부 업무보고와 영화 ‘식코’ 등의 영향으로 마치 공보험이 완전히 없어지고, 모든 것을 민영화 하는 쪽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비쳐지는 데 대해 우려하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공적의료보험을 민영의료보험이 대신하는 ‘대체형’이 아니라 공적보험이 담보하지 못하는 부분을 보완하는 ‘보완형’이기에 민영의료보험이 활성화 된다고 해서 공적보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실제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공적보험을 근간으로 하고 민영의료보험이 나머지를 보완해주는 방식을 많이 채택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구나 참여정부시절 국민건강보험의 재정적자 가운데 상당부분이 민영의료보험 때문이라는 주장을 놓고 설전을 벌이다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중심이 돼 연구용역을 진행했지만 그 결과를 발표조차 하지 않은 상황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태도다.
◆국민목숨 담보한 실험 안 돼 = 이번 논란의 상당한 책임은 설익은 정책과 무리한 추진 움직임을 들 수 있다는 게 중론이다. 논란이 될 수 있고, 충분히 검토해야 할 사안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기획재정부는 추진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더구나 주무부처인 복지부와 의견조율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내용을 공개하면서 혼선을 가중시켰다. 여기에 정책변화에 따른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고, 우려되는 부작용에 대해서도 아무런 해명을 하지 않으면서 국민 불안만 가중시킨 셈이다. 미국의 자극적인 면만을 다룬 영화 한 편을 보고 왜 그리 호들갑이냐고 반박할 수 있다. 그것도 우리정부가 추진하려는 정책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초일류 미국사회의 가려진 모습을 드러내는 마이클무어 감독의 자극적인 카메라는 국민들을 공포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의 의료정책이 미국을 닮아가려는 것처럼 보이는데 무조건 두려워하지 말기를 바라는 것이 오히려 무리다. 국민들은 정부의 설익은 실험에 목숨을 걸고 동참하고 싶은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불안감을 부추긴 것은 영화가 아니라 정부당국이라는 비판에 대해 정책당국자들이 진지하게 귀 기울여야 할 때라는 지적이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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