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표 칼럼]대통령의 조바심

지역내일 2008-04-07
대통령의 조바심
성한표 (언론인 전 한겨레신문 논설주간)

정치는 말로써 이뤄진다. 대통령은 정치의 최고봉에 있다. 그래서 대통령은 정치인 중에서도 가장 많은 말을 하는 사람에 속한다. 얼마 전 대통령 자리를 물러 난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 자리를 승계한 이명박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두 전 현직 대통령의 말은 방향이 좀 다르다.
노 전 대통령은 사회 통념을 깨뜨리려는 도전적인 말을 많이 했다. 그는 전통적인 권위주의를 스스로 허물었다. 통치자로서가 아니라 토론자로서 논쟁에 끼어드는 일이 잦았다. 반면에 이 대통령은 큰 주제를 놓고 토론하기 보다는 실무적인 주제에 대한 지시에 치중한다.
이 대통령은 경제를 살릴 것이라는 국민들의 기대 속에서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국제적인 경제 환경도 좋지 않고 내부적인 장애물들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선 당시부터 시작된 그의 장밋빛 약속은 그치지 않고 있다. 지난 6일 그는 청와대에서 환경미화원들과 점심을 같이 들면서 “돈이 없어도 학교를 졸업할 수 있고, 유학까지도 정부가 지원하도록 하는 것이 새정부의 목표”라고 말했다. 꿈같은 이야기다.

꿈과 현실 사이의 큰 간격
자신이 그리고 있는 꿈과 딛고 서 있는 나라의 현실 사이에 놓인 엄청난 간격을 대통령은 어떻게 메울 것인가? 당선자 시절부터 이 대통령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탄탄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그저 동분서주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현장 확인행정과 공무원 자세의 변화를 강조했다. 대불공단의 전봇대가 뽑혀나가고 국무회의장의 대통령 좌석이 달라지는 등의 변화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나라의 정책이, 특히 경제를 살리는 일이 도로의 전봇대를 뽑거나 대통령의 좌석을 바꾸는 것처럼 단순 명쾌한 일은 아니다. 대통령이 관여하는 정책 영역 중에서 모든 사람에게 좋으면서도 아직 아무도 착안하지 못한 정책은 거의 없다. 정책은 이해관계의 조정과정이며 대통령은 전면에 나서기 전에 전후 맥락과 이해관계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선행시켜야 하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경기도 일산에서 일어난 여자 어린이 납치미수 사건에 대한 경찰의 부실수사가 언론에 의해 고발되자 일산경찰서로 달려가 기합을 넣었다. 그는 이를 통해 역시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는 일부 신문의 칭찬을 듣기도 했지만 경찰에 대한 국민 불신의 심화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힐책은 경찰청장을 청와대로 불러 조용히 하고 수사력을 강화시키는 시스템의 문제를 논의했다면 경찰의 기를 살려주면서 대통령의 역할도 부각시켰을 것이다.
영어교육의 새 정책과 관련해서도 이 대통령은 너무 성급히 전면에 나섰다. 당선자 시절 영어 몰입교육을 추진한 인수위의 정책에 대한 반대여론이 강하게 일어났었다. 영어 사교육비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였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지난 1월 25일 새정부의 교육정책은 오랫동안 시험해보고 내놓은 것이라면서 인수위 정책의 타당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두달 뒤인 지난 3월 20일 이 대통령은 영어 몰입교육은 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이경숙 인수위원장이 ‘어륀지’ 파동까지 겪으면서 매달렸던 새 영어교육 정책이 사실상 없던 일로 되어버린 것이다.
이와 같은 대통령의 조급증은 정부 산하 기관장을 다루는 데서도 드러났다. 그는 지난 3월 16일 “정권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야당같은 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참여정부 출신 기관장들의 사퇴를 우회적으로 촉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대통령의 뜻을 가장 충실히 받들었던 장관이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었다. 유 장관은 도를 넘는 사퇴압력을 산하 기관장들에게 넣었다.
유 장관의 압력에 따라 사표를 낸 기관장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사퇴압력이 부당하다면서 맞서 싸우겠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밝혔고 여론도 임기를 존중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오지철 한국관광공사 사장의 사표를 일주일만에 반려했다. 이 때문에 결국 유 장관이 오버한 꼴이 되었고 서먹해진 기관장들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동분서주하는 대통령
국민과의 약속은 지켜야 하겠고 현실은 꽉 막혀 있는데다 공무원조직은 잘 따라주지 않으니 대통령이 조바심을 낼만도 하다. 그러나 대통령 스스로 동분서주하면 국민의 시선이 온통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 쏠리고 공무원 조직은 더욱 가라앉아 버릴 위험이 있다. 대통령은 백조의 지혜를 배울 필요가 있다. 백조는 물밑에서는 끊임없이 발을 움직이지만 물 위로는 더없이 평화롭고 우아한 모습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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