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살 고수지 양, 올 해 9월에 KBS 오케스트라와 협연결정 … 자녀 안 낳고 미국인 아내와 입양 결심
“이스라엘에서 교수를 하고 있던 어느 날, 일곱 살 제이슨이 학교에 다녀와서는 ‘독일인 친구가 나를 보고 ‘입양아’라고 놀렸다‘며 울먹이길래 바구니에 초콜릿을 많이 담아서 눈을 감고 고르라고 했어요. 작은 것을 집더군요. 다음엔 눈을 뜨고 고르라고 했더니 당장 큰 것을 집었어요. 그래서 아들에게 ‘아버지는 너를 입양할 때 눈을 뜨고 가장 우수한 아이를 선택한거야, 독일 친구 아버지는 선택권 없이 눈을 감고 아들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야’라고 말했습니다.”
입양한 아들을 이렇게 달랜 고세진(55)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총장은 다음날 아들을 놀린 친구의 아버지에게서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제이슨이 자기 아들에게 도대체 무슨 말을 했냐는 항의성 전화였다. 아들이 울면서 ‘왜 나는 아무런 선택도 되지 않고 그냥 태어난 아이냐고'고 볼멘 소리로 말하더라는 것이다. 고 총장의 교육 덕분인지 제이슨은 당당하게 자라서 이제 육사를 가겠다고 말하는 씩씩한 사나이로 변모했다.
고 총장은 두 아이를 입양해 키운 아버지로 한국에서는 ‘입양전도사’로 불린다. 두 아이들을 기른 배후에는 언제나 성실하게 어머니 역을 잘 감당하고 있는 아내 세라 (Sarah)가 있고, 두 사람은 동서양의 지혜와 육아법을 총동원해서 아이들을 양육한 셈이다.
첫째인 아들 제이슨은 18살 고등학생으로 성장했고 둘째인 딸 수지는 미국 시카고의 음악영재학교에 다니고 있다.
잘 자란 두 명의 입양아를 보면서 주위에서는 성공적인 입양이라고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기까지 고 총장 부부에게는 남모를 눈물과 사연이 있었다.
◆불치병 아들, 병명도 모르고 아팠던 딸 = 제이슨을 입양한 것은 고 총장이 미국 시카고 대학교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밟고 있을 때였다. 한국 아동의 해외 입양이 사회문제가 되면서 해외 입양을 금지시켰을 때 고 총장은 우여곡절 끝에 홀트재단을 통해 제이슨을 입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10개월이던 제이슨은 불과 두달 후 ‘악성신장염’이라는 불치병진단을 받았다. 고 총장은 미국과 이스라엘 최고의 의사를 찾아다녔다. 몸이 거의 두 배로 붇고 호흡이 곤란해지는 이 병은 면역력이 급격히 저하되기 때문에 감기라도 걸리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고 총장은 늘 불안했다. 그의 아내 세라는 매일 아침 아들의 소변을 리트머스 시험지에 묻혀 건강상태를 확인해야 했다.
고 총장은 “신장염 억제를 위해 스테로이드를 사용했는데 장복하면 키가 안자라고 시력을 잃거나 바보가 될 수 있는 부작용이 있어 걱정이 많았다”며 “제이슨이 우리 집에 오지 않았더라면 죽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다행히 가족의 노력과 많은 사람들의 기도 덕분으로 제이슨의 증상은 13세부터 사라지기 시작해 지금은 발병이 완전히 억제됐다.
고 총장 부부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둘째 아이 입양을 결심했다. 제이슨 때도 그랬지만 아내 세라가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며 자식을 낳지 말고 입양해서 키우자고 했고 그 결심을 고 총장도 함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대학교수로 있을 당시 한국을 방문, 생후 6개월인 수지를 한 고아원에서 입양했다. 하지만 건강해 보였던 수지도 병이 있었다. 집중력결핍증(ADD)라는 것이었다. 천재들에게 많다는 이 증상은 약물복용과 함께 가족들의 끊임없는 대화와 보살핌에 의해 극복될 수 있었다. 그러나 시련은 또 있었다. 수지가 서너 살 되면서 갑자기 찾아온 심한 두통과 가슴 답답증은 한국, 미국, 이스라엘 의사들이 모두 병명을 모를 만큼 난감한 문제였다.
고 총장은 “무슨 방법을 다 동원해도 어쩔 수 없어서 주변 분들과 하나님께 기도를 많이했다”며 “기도 덕분에 신기하게도 증상이 말끔히 사라지고 완전하게 건강하다”고 말했다.
◆둘째 수지 올 해 9월에 한국서 KBS와 협연 = 수지는 세 살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웠다.
고 총장은 “입양된 아이는 잘해줘도 잘못되기 싶다.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 상실감이 있고 부모에게 버림받은 것에 대한 깊은 상처가 있기 때문”이라며 “수지에게 삶의 희망을 주고 보람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기도 중에 바이올린을 가르치기로 했다”고 말했다. 수지는 바이올린 교육을 받은 지 1주일 만에 음을 정확히 낼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고 총장에게는 그것이 하나님이 준 능력으로 느껴졌다. 일곱 살 때에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여 데뷰하였다. 13살의 바이올린니스트인 수지는 지난달 전미국 음악교사협회 (Music Teachers’ National Association) 주최로 열린 전미국 기악콩쿨대회에서 모든 지역예선에서 1등을 하고 본선에서 2위를 하는 등, 미국과 이스라엘의 각종 콩쿨대회에서 여러 차례 1등으로 수상한 경력을 가진 ‘음악신동’이다. 이미 작년 5월에 뉴욕 카네기 홀에서 연주하였고 오는 9월에는 서울에서 KBS 오케스트라와 협연 결정이 돼있다. 오는 6월 9일에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언론 네트워크(TV, 인터넷, 위성 TV, 라디오)를 자랑하는 미국 ABN TV Network가 현악 천재들 중 수지를 선정해 방송 하기로 결정했다.
수지는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는 것을 인생의 목정이 아니라 삶의 과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의 최종 목적은 백두산부터 한라산까지 모든 고아원을 찾아서 고아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 주는 것이라고 한다. 자기 수입은 모두 고아들을 위하여 쓸 것이라고 했다. 음악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하여 살겠다는 것이 어린 수지의 음악가적 비젼이다.
◆입양사실 아이들에 알리고 대화 많이 해 = 고 총장은 평소 아이들과 대화를 많이 한다. 그는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의 정서, 정신적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고 총장은 지금도 아이들과 떨어져 있을 때나, 외국에 여행을 할 때에도 아이들과 인터넷 화상통화를 매일 한다. 고 총장은 아이들이 말을 알아듣기 시작할 때부터 입양사실을 내어 놓고 얘기했다. 자라면서 충격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스라엘이나 미국에서는 주변에 입양 가족들이 많아 아이들이 입양에 대하여 느끼는 거부감은 별로 없었다.
고 총장은 “외국인들은 입양했다는 말을 들으면 참으로 좋아하고 기뻐하고 도움을 주려고 했다”며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입양에 대한 거리감을 상당히 줄여줬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수적인 아버지를 설득하는데는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마지못해 아버지가 “알아서 하라”는 말을 들을 때까지 입양을 기다려야 했다.
미국인 아내와의 결혼때도 완강한 반대에 부딪혔던 고 총장은 또 다시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입양을 선택한 것이다.
그는 “아버지가 제이슨을 안고는 손자라고 좋아하면서 그 동안의 편견이 다 사라진 것 같은 모습을 보일 때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 후 고 총장은 입양전도사가 됐다. 어디가나 입양을 권한다. 우리나라처럼 혈연에 집착하는 곳에서 고아원에 많은 아이들이 방치되어 있는 것은 사회의 불안요소가 된다. 재작년 11월 한국입양홍보회가 개최한 6차 전국대회에서 축사와 함께 특강도 했다. 그는 “입양은 고아들을 돕는 것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된다”며 “입양된 아이들이 입양한 부모에게 주는 축복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되고 고아원에 있는 많은 아이들이 잠재적인 행복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고 총장은 “우리사회가 갈수록 다문화, 다인종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단일민족임을 고집하는 것은 배타적인 자세”라며 “입양을 하면 마음이 열리고 서로를 끌어 안는 열린 사회, 행복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 대학 총장 지내 = 고 총장은 미국 시카고 대학교에서 근동고고학 박사학위(Ph.D.)를 받았고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고고학 현장에서 지난 20년간 주로 청동기와 철기시대의 고대 유적들을 발굴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대학에서 교무처장, 고고학연구소장, 총장을 지내는 등 동양인으로서는 이례적인 성과를 냈다. 2002년에 귀국해 2003년부터 한국 양평에 있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에서 근동고고학교수로 근무하다 2006년 3월 총장에 임명됐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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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서 교수를 하고 있던 어느 날, 일곱 살 제이슨이 학교에 다녀와서는 ‘독일인 친구가 나를 보고 ‘입양아’라고 놀렸다‘며 울먹이길래 바구니에 초콜릿을 많이 담아서 눈을 감고 고르라고 했어요. 작은 것을 집더군요. 다음엔 눈을 뜨고 고르라고 했더니 당장 큰 것을 집었어요. 그래서 아들에게 ‘아버지는 너를 입양할 때 눈을 뜨고 가장 우수한 아이를 선택한거야, 독일 친구 아버지는 선택권 없이 눈을 감고 아들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야’라고 말했습니다.”
입양한 아들을 이렇게 달랜 고세진(55)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총장은 다음날 아들을 놀린 친구의 아버지에게서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제이슨이 자기 아들에게 도대체 무슨 말을 했냐는 항의성 전화였다. 아들이 울면서 ‘왜 나는 아무런 선택도 되지 않고 그냥 태어난 아이냐고'고 볼멘 소리로 말하더라는 것이다. 고 총장의 교육 덕분인지 제이슨은 당당하게 자라서 이제 육사를 가겠다고 말하는 씩씩한 사나이로 변모했다.
고 총장은 두 아이를 입양해 키운 아버지로 한국에서는 ‘입양전도사’로 불린다. 두 아이들을 기른 배후에는 언제나 성실하게 어머니 역을 잘 감당하고 있는 아내 세라 (Sarah)가 있고, 두 사람은 동서양의 지혜와 육아법을 총동원해서 아이들을 양육한 셈이다.
첫째인 아들 제이슨은 18살 고등학생으로 성장했고 둘째인 딸 수지는 미국 시카고의 음악영재학교에 다니고 있다.
잘 자란 두 명의 입양아를 보면서 주위에서는 성공적인 입양이라고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기까지 고 총장 부부에게는 남모를 눈물과 사연이 있었다.
◆불치병 아들, 병명도 모르고 아팠던 딸 = 제이슨을 입양한 것은 고 총장이 미국 시카고 대학교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밟고 있을 때였다. 한국 아동의 해외 입양이 사회문제가 되면서 해외 입양을 금지시켰을 때 고 총장은 우여곡절 끝에 홀트재단을 통해 제이슨을 입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10개월이던 제이슨은 불과 두달 후 ‘악성신장염’이라는 불치병진단을 받았다. 고 총장은 미국과 이스라엘 최고의 의사를 찾아다녔다. 몸이 거의 두 배로 붇고 호흡이 곤란해지는 이 병은 면역력이 급격히 저하되기 때문에 감기라도 걸리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고 총장은 늘 불안했다. 그의 아내 세라는 매일 아침 아들의 소변을 리트머스 시험지에 묻혀 건강상태를 확인해야 했다.
고 총장은 “신장염 억제를 위해 스테로이드를 사용했는데 장복하면 키가 안자라고 시력을 잃거나 바보가 될 수 있는 부작용이 있어 걱정이 많았다”며 “제이슨이 우리 집에 오지 않았더라면 죽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다행히 가족의 노력과 많은 사람들의 기도 덕분으로 제이슨의 증상은 13세부터 사라지기 시작해 지금은 발병이 완전히 억제됐다.
고 총장 부부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둘째 아이 입양을 결심했다. 제이슨 때도 그랬지만 아내 세라가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며 자식을 낳지 말고 입양해서 키우자고 했고 그 결심을 고 총장도 함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대학교수로 있을 당시 한국을 방문, 생후 6개월인 수지를 한 고아원에서 입양했다. 하지만 건강해 보였던 수지도 병이 있었다. 집중력결핍증(ADD)라는 것이었다. 천재들에게 많다는 이 증상은 약물복용과 함께 가족들의 끊임없는 대화와 보살핌에 의해 극복될 수 있었다. 그러나 시련은 또 있었다. 수지가 서너 살 되면서 갑자기 찾아온 심한 두통과 가슴 답답증은 한국, 미국, 이스라엘 의사들이 모두 병명을 모를 만큼 난감한 문제였다.
고 총장은 “무슨 방법을 다 동원해도 어쩔 수 없어서 주변 분들과 하나님께 기도를 많이했다”며 “기도 덕분에 신기하게도 증상이 말끔히 사라지고 완전하게 건강하다”고 말했다.
◆둘째 수지 올 해 9월에 한국서 KBS와 협연 = 수지는 세 살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웠다.
고 총장은 “입양된 아이는 잘해줘도 잘못되기 싶다.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 상실감이 있고 부모에게 버림받은 것에 대한 깊은 상처가 있기 때문”이라며 “수지에게 삶의 희망을 주고 보람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기도 중에 바이올린을 가르치기로 했다”고 말했다. 수지는 바이올린 교육을 받은 지 1주일 만에 음을 정확히 낼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고 총장에게는 그것이 하나님이 준 능력으로 느껴졌다. 일곱 살 때에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여 데뷰하였다. 13살의 바이올린니스트인 수지는 지난달 전미국 음악교사협회 (Music Teachers’ National Association) 주최로 열린 전미국 기악콩쿨대회에서 모든 지역예선에서 1등을 하고 본선에서 2위를 하는 등, 미국과 이스라엘의 각종 콩쿨대회에서 여러 차례 1등으로 수상한 경력을 가진 ‘음악신동’이다. 이미 작년 5월에 뉴욕 카네기 홀에서 연주하였고 오는 9월에는 서울에서 KBS 오케스트라와 협연 결정이 돼있다. 오는 6월 9일에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언론 네트워크(TV, 인터넷, 위성 TV, 라디오)를 자랑하는 미국 ABN TV Network가 현악 천재들 중 수지를 선정해 방송 하기로 결정했다.
수지는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는 것을 인생의 목정이 아니라 삶의 과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의 최종 목적은 백두산부터 한라산까지 모든 고아원을 찾아서 고아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 주는 것이라고 한다. 자기 수입은 모두 고아들을 위하여 쓸 것이라고 했다. 음악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하여 살겠다는 것이 어린 수지의 음악가적 비젼이다.
◆입양사실 아이들에 알리고 대화 많이 해 = 고 총장은 평소 아이들과 대화를 많이 한다. 그는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의 정서, 정신적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고 총장은 지금도 아이들과 떨어져 있을 때나, 외국에 여행을 할 때에도 아이들과 인터넷 화상통화를 매일 한다. 고 총장은 아이들이 말을 알아듣기 시작할 때부터 입양사실을 내어 놓고 얘기했다. 자라면서 충격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스라엘이나 미국에서는 주변에 입양 가족들이 많아 아이들이 입양에 대하여 느끼는 거부감은 별로 없었다.
고 총장은 “외국인들은 입양했다는 말을 들으면 참으로 좋아하고 기뻐하고 도움을 주려고 했다”며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입양에 대한 거리감을 상당히 줄여줬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수적인 아버지를 설득하는데는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마지못해 아버지가 “알아서 하라”는 말을 들을 때까지 입양을 기다려야 했다.
미국인 아내와의 결혼때도 완강한 반대에 부딪혔던 고 총장은 또 다시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입양을 선택한 것이다.
그는 “아버지가 제이슨을 안고는 손자라고 좋아하면서 그 동안의 편견이 다 사라진 것 같은 모습을 보일 때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 후 고 총장은 입양전도사가 됐다. 어디가나 입양을 권한다. 우리나라처럼 혈연에 집착하는 곳에서 고아원에 많은 아이들이 방치되어 있는 것은 사회의 불안요소가 된다. 재작년 11월 한국입양홍보회가 개최한 6차 전국대회에서 축사와 함께 특강도 했다. 그는 “입양은 고아들을 돕는 것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된다”며 “입양된 아이들이 입양한 부모에게 주는 축복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되고 고아원에 있는 많은 아이들이 잠재적인 행복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고 총장은 “우리사회가 갈수록 다문화, 다인종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단일민족임을 고집하는 것은 배타적인 자세”라며 “입양을 하면 마음이 열리고 서로를 끌어 안는 열린 사회, 행복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 대학 총장 지내 = 고 총장은 미국 시카고 대학교에서 근동고고학 박사학위(Ph.D.)를 받았고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고고학 현장에서 지난 20년간 주로 청동기와 철기시대의 고대 유적들을 발굴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대학에서 교무처장, 고고학연구소장, 총장을 지내는 등 동양인으로서는 이례적인 성과를 냈다. 2002년에 귀국해 2003년부터 한국 양평에 있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에서 근동고고학교수로 근무하다 2006년 3월 총장에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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