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민족주의의 안과 밖
임현진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장.사회학)
마르코 폴로가 730년여년 전 본 중국은 이미 거대한 제국이었다. 중앙과 지방을 연결하는 수많은 육로와 수로를 통해 사람과 물건이 오가면서 제국은 영토를 넓혀갔다. 물론 마르코 폴로의 중국 체험이 거짓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아시아에 대한 최초의 관찰이라 할 ‘동방견문록’이 유럽인들로 하여금 암흑의 중세를 벗어나 근대 문명으로 들어가게 하는 중요한 발상의 전환을 마련해 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중화주의의 우월감에 빠져 서세동점을 우습게 안 중국의 자존심은 아편전쟁으로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구미열강에 의한 침탈은 결국 서구와 일본에 의해 중국을 반(半)식민지로 전락시켰다. 국공내전을 통해 사회주의 혁명의 기치를 내건 중국은 오늘의 개혁과 개방에 이르기까지 제국의 부활을 위해 절치부심(切齒腐心)해왔다. 마침내 우리 안에 갇혔던 호랑이는 세계를 향해 포효하고 있다.
대국(大國) 중국의 부활
중국이 북경올림픽을 앞두고 불안하다. 티베트의 독립시위 탄압으로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는 가운데 티베트족 창족 후이족 등 소수민족들이 사는 사천성에서 강진이 일어나 엄청난 인명과 재산 피해를 입고 있다. 2008년 8월 8일 8시 8분 8초에 시작되는 북경올림픽 88일 전이라 유독 8이란 수자에서 행운을 바라는 중국인들은 심난할 수밖에 없다.
세계 여러 나라의 시민들은 중국의 티베트인들에 대한 인권탄압을 계기로 북경올림픽 성화봉송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 바 있다. 그러나 중국의 젋은 세대는 북경올림픽 성화봉송을 거부하는 것을 자국의 자존심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프랑스가 티베트인들의 인권을 옹호하면서 달라이 라마에게 명예시민증을 주자 중국의 젊은세대가 흥분하고 있는 것이 좋은 보기다.
작금 중화 민족주의는 불타고 있다. 얼마전 시사주간지 ‘타임’은 중국의 민족주의는 불타고 있는 정도를 넘어 증오와 적의마저 품고 있다고 본다. 중국인들은 북경올림픽에 대한 국제사회의 일련의 비판을 중국의 이미지를 더럽히려는 국제적 음모로 오해하고 있다. 근래 중국의 괄목할만한 경제적 성취를 통해 지난날 대국의 모습을 재현하려는 북경올림픽이 잘못되지 않을까 하는 피해의식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대국굴기’가 보여주듯이 중국이 제국의 영광을 회복하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공산당 지도부가 경제성장과 사회통합에 주력하고 있다면 그 수단이 바로 민족주의다. 이미 오래 전에 중국은 56개 민족의 다원일체를 넘어 중화민족이란 새로운 민족을 만들어낸 바 있다. 소수민족들의 문화적 정체성은 보장되고 있지만 대체적으로 점증하는 한족과의 결혼을 통해 인종적 동질성은 약화되고 있다. 소수민족들에게 독립이란 과거의 신화이지 미래의 역사가 아니다. 서남공정, 서북공정, 동남공정, 동북공정 등도 중화 민족주의의 정립을 위한 역사적 포석에 다름아니다.
중화 민족주의의 담지자는 누구보다도 젋은세대다. 이른바 ‘바링허우(八零後)세대’로 알려진 이들은 1980년 이후 한 가구 일인정책으로 태어난 20대로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에서 주관과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 이들은 애국주의적 성향 아래 중국인으로서 긍지와 명예를 존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 유통업체 까르푸에 대한 불매운동이나 미국의 방송매체 CNN에 대한 반대운동도 이들이 주도한 바 있다. 그러나 젊은 세대는 지나친 경쟁사회의 와중에서 성취욕과 박탈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이들의 경제성장에 대한 열망이 언젠가 민주주의에 대한 표출로 부메랑이 되어 나타날 수 있다. 중국사회에 만연된 부정부패, 물가상승, 빈부격차 등이 이들의 자의식을 자극할지도 모른다. 중국 정부가 젊은 세대에 기대하면서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이유다.
소강에서 화해로
중국은 더 이상 잠자는 호랑이가 아니다. 유인우주선 신주(神舟)를 성공시킨 중국은 2008년 북경올림픽, 2010년 엑스포를 통해 세계강국의 위상을 굳히려 하고 있다. 중국은 가까운 시간 안에 200여개 대학을 선택과 집중에 의해 국제수준의 대학으로 만들고 50여개 기업도 세계 500대 기업으로 키우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미 세계 4위에 올라 있는 중국의 GDP는 앞으로 5년 안에 독일과 일본을 따라잡아 미국 다음의 경제강국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올해 2조달러라는 천문학적 숫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의 GDP가 세계 4위라 하더라도 일인당 국민소득은 세계 100위권 안에 들지 못한다. 나라는 부유한데 국민은 가난하다. 사회적 양극화는 도시와 농촌 사이를 넘어 도시와 농촌 안에서도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계층적 위화감이 늘어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소강(小康)에서 화해(和諧)로 정책적 방향을 바꾸고 있는 까닭이다. 중화 민족주의의 미래는 부국강병보다 국민민복에서 해답을 찾을 수밖에 없다. 사회적 시민권에 대한 관심을 통해 중화 민족주의가 안에서의 소통과 대화는 물론 밖으로도 이루어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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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진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장.사회학)
마르코 폴로가 730년여년 전 본 중국은 이미 거대한 제국이었다. 중앙과 지방을 연결하는 수많은 육로와 수로를 통해 사람과 물건이 오가면서 제국은 영토를 넓혀갔다. 물론 마르코 폴로의 중국 체험이 거짓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아시아에 대한 최초의 관찰이라 할 ‘동방견문록’이 유럽인들로 하여금 암흑의 중세를 벗어나 근대 문명으로 들어가게 하는 중요한 발상의 전환을 마련해 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중화주의의 우월감에 빠져 서세동점을 우습게 안 중국의 자존심은 아편전쟁으로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구미열강에 의한 침탈은 결국 서구와 일본에 의해 중국을 반(半)식민지로 전락시켰다. 국공내전을 통해 사회주의 혁명의 기치를 내건 중국은 오늘의 개혁과 개방에 이르기까지 제국의 부활을 위해 절치부심(切齒腐心)해왔다. 마침내 우리 안에 갇혔던 호랑이는 세계를 향해 포효하고 있다.
대국(大國) 중국의 부활
중국이 북경올림픽을 앞두고 불안하다. 티베트의 독립시위 탄압으로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는 가운데 티베트족 창족 후이족 등 소수민족들이 사는 사천성에서 강진이 일어나 엄청난 인명과 재산 피해를 입고 있다. 2008년 8월 8일 8시 8분 8초에 시작되는 북경올림픽 88일 전이라 유독 8이란 수자에서 행운을 바라는 중국인들은 심난할 수밖에 없다.
세계 여러 나라의 시민들은 중국의 티베트인들에 대한 인권탄압을 계기로 북경올림픽 성화봉송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 바 있다. 그러나 중국의 젋은 세대는 북경올림픽 성화봉송을 거부하는 것을 자국의 자존심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프랑스가 티베트인들의 인권을 옹호하면서 달라이 라마에게 명예시민증을 주자 중국의 젊은세대가 흥분하고 있는 것이 좋은 보기다.
작금 중화 민족주의는 불타고 있다. 얼마전 시사주간지 ‘타임’은 중국의 민족주의는 불타고 있는 정도를 넘어 증오와 적의마저 품고 있다고 본다. 중국인들은 북경올림픽에 대한 국제사회의 일련의 비판을 중국의 이미지를 더럽히려는 국제적 음모로 오해하고 있다. 근래 중국의 괄목할만한 경제적 성취를 통해 지난날 대국의 모습을 재현하려는 북경올림픽이 잘못되지 않을까 하는 피해의식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대국굴기’가 보여주듯이 중국이 제국의 영광을 회복하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공산당 지도부가 경제성장과 사회통합에 주력하고 있다면 그 수단이 바로 민족주의다. 이미 오래 전에 중국은 56개 민족의 다원일체를 넘어 중화민족이란 새로운 민족을 만들어낸 바 있다. 소수민족들의 문화적 정체성은 보장되고 있지만 대체적으로 점증하는 한족과의 결혼을 통해 인종적 동질성은 약화되고 있다. 소수민족들에게 독립이란 과거의 신화이지 미래의 역사가 아니다. 서남공정, 서북공정, 동남공정, 동북공정 등도 중화 민족주의의 정립을 위한 역사적 포석에 다름아니다.
중화 민족주의의 담지자는 누구보다도 젋은세대다. 이른바 ‘바링허우(八零後)세대’로 알려진 이들은 1980년 이후 한 가구 일인정책으로 태어난 20대로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에서 주관과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 이들은 애국주의적 성향 아래 중국인으로서 긍지와 명예를 존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 유통업체 까르푸에 대한 불매운동이나 미국의 방송매체 CNN에 대한 반대운동도 이들이 주도한 바 있다. 그러나 젊은 세대는 지나친 경쟁사회의 와중에서 성취욕과 박탈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이들의 경제성장에 대한 열망이 언젠가 민주주의에 대한 표출로 부메랑이 되어 나타날 수 있다. 중국사회에 만연된 부정부패, 물가상승, 빈부격차 등이 이들의 자의식을 자극할지도 모른다. 중국 정부가 젊은 세대에 기대하면서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이유다.
소강에서 화해로
중국은 더 이상 잠자는 호랑이가 아니다. 유인우주선 신주(神舟)를 성공시킨 중국은 2008년 북경올림픽, 2010년 엑스포를 통해 세계강국의 위상을 굳히려 하고 있다. 중국은 가까운 시간 안에 200여개 대학을 선택과 집중에 의해 국제수준의 대학으로 만들고 50여개 기업도 세계 500대 기업으로 키우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미 세계 4위에 올라 있는 중국의 GDP는 앞으로 5년 안에 독일과 일본을 따라잡아 미국 다음의 경제강국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올해 2조달러라는 천문학적 숫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의 GDP가 세계 4위라 하더라도 일인당 국민소득은 세계 100위권 안에 들지 못한다. 나라는 부유한데 국민은 가난하다. 사회적 양극화는 도시와 농촌 사이를 넘어 도시와 농촌 안에서도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계층적 위화감이 늘어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소강(小康)에서 화해(和諧)로 정책적 방향을 바꾸고 있는 까닭이다. 중화 민족주의의 미래는 부국강병보다 국민민복에서 해답을 찾을 수밖에 없다. 사회적 시민권에 대한 관심을 통해 중화 민족주의가 안에서의 소통과 대화는 물론 밖으로도 이루어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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