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여성 구청장
이영임 (주부·송파구 가락동)
지난주 우리 가족은 석가탄신일을 포함한 황금연휴를 맞아 동해 바다로 여행을 떠났다. 송파구청 공무원인 남편과 결혼생활 15주년을 기념하는 가족여행이었다.
들뜬 마음으로 경포대 바닷가에 도착해 아이들과 동심에 젖어 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다음날 한 통의 문자메시지를 받은 남편의 표정이 굳어졌다. 당장 구청으로 가야겠다며 어렵게 입을 뗐다. 조류인플루엔자(AI)가 서울에서 발생해 비상소집 명령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아이와 나는 모처럼의 가족여행이 중단되는 아쉬움에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나 송파구 문정·장지 지구 비닐하우스에서 불법으로 기르던 닭과 오리 12마리를 구청이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 검사 의뢰한 결과 AI로 판명될 확률이 높고, 그럴 경우 최대한 빨리 살처분해야 한다는 설명을 듣고 서둘러 차에 올랐다.
구청장이 살처분 진두지위
“아, 난 주민건강과 안전을 책임진 구청 공무원의 아내구나.”
남편은 타미플루를 복용하고 방역복과 장갑을 끼고 보호안경과 마스크를 착용한 채 연휴 마지막날 새벽까지 문정·장지지구 비닐하우스 닭과 오리 포획에 투입됐고 오전에야 돌아왔다.
그러나 걱정이 앞섰다. 올해 발생한 AI가 고약한 베트남형이어서 살처분에 직접 투입된 남편이 혹시 감염되지 않았을까하는 걱정과 닭·오리 불법사육과 관련해 해당 공무원들이 불이익을 입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한마디로 가족들을 안심시켰다. 구청장이 약을 복용하고 방역복, 장갑, 마스크를 쓰고 살처분 현장에서 직원들을 진두지휘했다는 것이다. TV뉴스에서도 여성인 송파구청장이 완전무장한 채 “AI에 노출된 닭과 오리에 대한 살처분을 완료했다”고 인터뷰하는 모습이 나왔다. 남자인 남편을 걱정한 내가 머쓱하게 느껴졌다.
또 생계대책을 요구하며 살처분에 반발하는 주민들 앞에서 “내가 구청장이고 책임자다. 내 가족 같은 송파구 공무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나선 것은 주민들의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한 희생”이라고 설득했고 주민들도 납득하고 돌아섰다는 게 남편 설명이다.
직원에 대한 고마움 묻어나와
다음날 아침 급하게 가족관계증명서가 필요해 구청에 갔다. 마침 김영순 구청장의 구내방송이 흘러나왔다. 그 목소리에서는 연휴도 반납한 채 한걸음으로 달려와 저녁도 거른 채 허기와 싸우면서 험한 일을 마다하지 않은 직원에 대한 진한 고마움이 묻어나왔다.
이제 살처분은 끝났다. 언론에서는 송파구가 늑장대처를 했느니 가축사육을 방치했느니 사후대책이 미흡하다느니 말들이 많다. 그러나 밤샘 근무에 ‘콩나물국’이라도 제대로 챙겨 먹었는지 걱정한 구청장 목소리엔 그 어떤 원망이나 질책도 없었다. “나는 참 행복한 송파구청의 공무원 아내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이영임 (주부·송파구 가락동)
지난주 우리 가족은 석가탄신일을 포함한 황금연휴를 맞아 동해 바다로 여행을 떠났다. 송파구청 공무원인 남편과 결혼생활 15주년을 기념하는 가족여행이었다.
들뜬 마음으로 경포대 바닷가에 도착해 아이들과 동심에 젖어 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다음날 한 통의 문자메시지를 받은 남편의 표정이 굳어졌다. 당장 구청으로 가야겠다며 어렵게 입을 뗐다. 조류인플루엔자(AI)가 서울에서 발생해 비상소집 명령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아이와 나는 모처럼의 가족여행이 중단되는 아쉬움에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나 송파구 문정·장지 지구 비닐하우스에서 불법으로 기르던 닭과 오리 12마리를 구청이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 검사 의뢰한 결과 AI로 판명될 확률이 높고, 그럴 경우 최대한 빨리 살처분해야 한다는 설명을 듣고 서둘러 차에 올랐다.
구청장이 살처분 진두지위
“아, 난 주민건강과 안전을 책임진 구청 공무원의 아내구나.”
남편은 타미플루를 복용하고 방역복과 장갑을 끼고 보호안경과 마스크를 착용한 채 연휴 마지막날 새벽까지 문정·장지지구 비닐하우스 닭과 오리 포획에 투입됐고 오전에야 돌아왔다.
그러나 걱정이 앞섰다. 올해 발생한 AI가 고약한 베트남형이어서 살처분에 직접 투입된 남편이 혹시 감염되지 않았을까하는 걱정과 닭·오리 불법사육과 관련해 해당 공무원들이 불이익을 입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한마디로 가족들을 안심시켰다. 구청장이 약을 복용하고 방역복, 장갑, 마스크를 쓰고 살처분 현장에서 직원들을 진두지휘했다는 것이다. TV뉴스에서도 여성인 송파구청장이 완전무장한 채 “AI에 노출된 닭과 오리에 대한 살처분을 완료했다”고 인터뷰하는 모습이 나왔다. 남자인 남편을 걱정한 내가 머쓱하게 느껴졌다.
또 생계대책을 요구하며 살처분에 반발하는 주민들 앞에서 “내가 구청장이고 책임자다. 내 가족 같은 송파구 공무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나선 것은 주민들의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한 희생”이라고 설득했고 주민들도 납득하고 돌아섰다는 게 남편 설명이다.
직원에 대한 고마움 묻어나와
다음날 아침 급하게 가족관계증명서가 필요해 구청에 갔다. 마침 김영순 구청장의 구내방송이 흘러나왔다. 그 목소리에서는 연휴도 반납한 채 한걸음으로 달려와 저녁도 거른 채 허기와 싸우면서 험한 일을 마다하지 않은 직원에 대한 진한 고마움이 묻어나왔다.
이제 살처분은 끝났다. 언론에서는 송파구가 늑장대처를 했느니 가축사육을 방치했느니 사후대책이 미흡하다느니 말들이 많다. 그러나 밤샘 근무에 ‘콩나물국’이라도 제대로 챙겨 먹었는지 걱정한 구청장 목소리엔 그 어떤 원망이나 질책도 없었다. “나는 참 행복한 송파구청의 공무원 아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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