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에서 허브농사 지어요”
허브시장 계속 커질 것 … 아들은 한국농업대 다니며 승계 준비
서울의 동쪽 끝자락 송파구 장지동에는 비닐하우스와 고층 아파트들이 어우러져 있다. 새로운 건축물을 짓는 공사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서울 가장자리 중 한 곳인 이곳에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고 있고, 국내 허브생산량 7위권 규모의 ‘허브다섯메’도 여기서 소비자들과 만나고 있다.
◆허브시장 개척 = 함영주(53) 허브다섯메 이사는 동갑내기 남편 조강희씨와 결혼한 1983년부터 농장일을 시작했다.
서울 토박이인 남편 조씨는 방송통신대학교에서 농학을 전공하고 형의 일을 도우며 원예를 배우고 있었다. 이들은 결혼과 함께 독립했고 1984년 자신들의 이름으로 농장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아이템을 찾기 시작했다.
함 이사는 “1986년에 서울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렸는데 그때 구청에 초화(꽃이 피는 풀)를 납품할 만큼 괜찮은 실적도 거뒀지만 고생한 만큼 소득은 안되는 것 같았다”며 “원예 분야에는 많은 선배들이 한참 앞서 가고 있어 그들보다 앞서나갈 기회를 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함 이사 부부는 틈나는 대로 외국서적을 읽고 기회가 되는대로 일본을 방문해 시장을 조사했다. 그리고 ‘허브’와 ‘먹는 꽃’이라는 아이템을 찾았다. 1990년대 중반까지도 허브는 일반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는데, 유행보다 5년 이상 앞선 일이었다.
이들은 농장일을 계속하면서 허브공부를 하고 씨를 확보하며 사업화할 수 있는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때가 왔다.
1996년 시중에 허브가 등장하자 도매시장 상인들이 함 이사 부부에게 허브를 해보라고 권했다. 하지만 쉽게 뛰어들지 않았다. 이들은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던 분화(화분에 심은 꽃)를 주력으로 하면서 허브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한발씩 사업분야를 넓히며 시장의 반응을 살폈다. 함 이사는 “우리는 허브가 왜 좋은지 잘 알고 있었지만 허브를 구매해야 할 소비자들의 인식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냉철하게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3년 후, 함 이사 부부는 농장이름을 ‘허브다섯메’(www.herb5.co.kr)로 정하고 허브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200여종의 각종 허브를 재배하며 허브를 이용한 베개 쿠숀 등 각종 상품을 개발해 판매했다.
농장도 서울 장지동에서 경기도 광주와 곤지암 그리고 강원도 평창으로 늘렸다.
◆부채 없이 농사 = 함 이사 부부는 서울과 지역의 농장을 연결해 판매와 생산을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서울 장지지구의 농장은 판매를 담당하며 허브조경과 허브관련 교육을 담당한다. 광주 곤지암 평창지구 농장에서는 생산을 담당한다. 해발 1200m 고지에 자리한 평창 농장은 여름철에도 온도가 25도씨 정도를 유지해 허브시범포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서울을 포함한 경기도 지역 농장부지 5ha를 모두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부채는 없다. 함 이사는 “하우스 시설을 할 때 융자를 많이 받지만 우리는 부채없이 농지도 사고 하우스를 설치했다”고 말했다. 미리 준비하고 서두르지 않는 방식으로 농사를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허브다섯메는 지난해 15억원 가량의 매출을 올렸다. 매출액은 매년 성장하고 있다. 함 이사는 “허브는 서양에서 요리재료로 사용하는 것”이라며 “국내 주부들도 허브를 주방에 두고 요리에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 시장이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함 이사 부부는 허브농장을 자녀에게 물려줄 생각이다. 올해 24세가 된 아들은 한국농업대학 특작과에 입학해 허브농장을 물려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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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시장 계속 커질 것 … 아들은 한국농업대 다니며 승계 준비
서울의 동쪽 끝자락 송파구 장지동에는 비닐하우스와 고층 아파트들이 어우러져 있다. 새로운 건축물을 짓는 공사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서울 가장자리 중 한 곳인 이곳에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고 있고, 국내 허브생산량 7위권 규모의 ‘허브다섯메’도 여기서 소비자들과 만나고 있다.
◆허브시장 개척 = 함영주(53) 허브다섯메 이사는 동갑내기 남편 조강희씨와 결혼한 1983년부터 농장일을 시작했다.
서울 토박이인 남편 조씨는 방송통신대학교에서 농학을 전공하고 형의 일을 도우며 원예를 배우고 있었다. 이들은 결혼과 함께 독립했고 1984년 자신들의 이름으로 농장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아이템을 찾기 시작했다.
함 이사는 “1986년에 서울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렸는데 그때 구청에 초화(꽃이 피는 풀)를 납품할 만큼 괜찮은 실적도 거뒀지만 고생한 만큼 소득은 안되는 것 같았다”며 “원예 분야에는 많은 선배들이 한참 앞서 가고 있어 그들보다 앞서나갈 기회를 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함 이사 부부는 틈나는 대로 외국서적을 읽고 기회가 되는대로 일본을 방문해 시장을 조사했다. 그리고 ‘허브’와 ‘먹는 꽃’이라는 아이템을 찾았다. 1990년대 중반까지도 허브는 일반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는데, 유행보다 5년 이상 앞선 일이었다.
이들은 농장일을 계속하면서 허브공부를 하고 씨를 확보하며 사업화할 수 있는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때가 왔다.
1996년 시중에 허브가 등장하자 도매시장 상인들이 함 이사 부부에게 허브를 해보라고 권했다. 하지만 쉽게 뛰어들지 않았다. 이들은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던 분화(화분에 심은 꽃)를 주력으로 하면서 허브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한발씩 사업분야를 넓히며 시장의 반응을 살폈다. 함 이사는 “우리는 허브가 왜 좋은지 잘 알고 있었지만 허브를 구매해야 할 소비자들의 인식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냉철하게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3년 후, 함 이사 부부는 농장이름을 ‘허브다섯메’(www.herb5.co.kr)로 정하고 허브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200여종의 각종 허브를 재배하며 허브를 이용한 베개 쿠숀 등 각종 상품을 개발해 판매했다.
농장도 서울 장지동에서 경기도 광주와 곤지암 그리고 강원도 평창으로 늘렸다.
◆부채 없이 농사 = 함 이사 부부는 서울과 지역의 농장을 연결해 판매와 생산을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서울 장지지구의 농장은 판매를 담당하며 허브조경과 허브관련 교육을 담당한다. 광주 곤지암 평창지구 농장에서는 생산을 담당한다. 해발 1200m 고지에 자리한 평창 농장은 여름철에도 온도가 25도씨 정도를 유지해 허브시범포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서울을 포함한 경기도 지역 농장부지 5ha를 모두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부채는 없다. 함 이사는 “하우스 시설을 할 때 융자를 많이 받지만 우리는 부채없이 농지도 사고 하우스를 설치했다”고 말했다. 미리 준비하고 서두르지 않는 방식으로 농사를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허브다섯메는 지난해 15억원 가량의 매출을 올렸다. 매출액은 매년 성장하고 있다. 함 이사는 “허브는 서양에서 요리재료로 사용하는 것”이라며 “국내 주부들도 허브를 주방에 두고 요리에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 시장이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함 이사 부부는 허브농장을 자녀에게 물려줄 생각이다. 올해 24세가 된 아들은 한국농업대학 특작과에 입학해 허브농장을 물려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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