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운하 물속에 빠진 정부
박영규 (언론인 전 연합뉴스 논설위원)
조선의 8대 문장가 중 선조 때 인물로 구봉 송익필(宋翼弼)이란 분이 있다. 그의 시 칠언절구 산행(山行) 중 첫 구절이 ‘산행망좌좌망행(山行忘坐坐忘行)’이다. ‘산길을 가다 보면 앉아 쉬기를 잊고, 쉬다보면 갈 일을 잊는다’는 뜻이다. 무슨 일에든 몰두하면 다른 일은 잊게 된다는 의미다.
대운하에 푹 빠진 정부를 보며 이런 지경이 생각된다. 정부와 여당은 4·9 총선 때 대운하 논의를 금기했다. 높아지는 반대여론 속에서 정치적 공세를 염려해서다. 그렇게 침잠했던 대운하 얘기가 총선이 지나자 솔솔 피어오르고 있다. 반대 여론은 갈수록 높아지는데 말이다.
지난달 여론조사 전문기관 중앙리서치가 전국의 20∼49세 남녀 2446명에 대해 온라인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1%가 대운하 사업에 들어가는 비용과 혜택을 비교할 때 경제성이 낮다고 답했다.
모양새 갖춰 추진한다는 뜻
이 조사는 해당 연령대의 인구 비례에 맞게 지역별 및 성별, 연령별 가중치를 부여했으며 최대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1.98%p였다고 한다. 대운하의 물류개선 효과에 대해서는 63%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했고 환경개선효과에 대해서는 82%가 환경을 파괴할 것이라고 답했으며 대운하사업 추진을 반대하는 의견은 76%에 달했다.
같은 달 중앙일보와 SBS가 실시한 패널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2.3%는 ‘대운하 추진을 재검토하거나 그만둬야 한다’고 답했다. 같은 모집단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 반대 의견은 지난해 12월에는 45.6%였으나 올 3월에는 57.9%로 높아진 데 이어 계속 높아지는 추세다. 한국일보가 18대 총선 당선자 299명 중 25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135명(53.8%)이 대운하 사업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찬성은 47명(18.7%)에 그쳤으며, 나머지 69명(27.5%)은 ‘모름·무응답’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부정적 여론의 동향은 안중에 없는 듯하다. 국토해양부와 청와대는 용감하게 대운하 논의에 다시 불을 지폈다. 정종환 국토해양부장관은 4월 30일 한반도 대운하 문제와 관련 “때가 됐을 때 왜 우리가 대운하가 필요한지를 국민에게 설명 드리면서 추진하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한 조찬강연에서 “운하 문제가 토목공사로 변질돼 이상하게 비쳐지고 있다. 운하라는 말도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원래는 물길을 열고 물길을 잇자는 개념”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나라는 1년 중 6, 7, 8월에 비가 집중적으로 내리고 이 비를 25%밖에 활용 못하는 물 부족국가”라며 “대운하 문제는 이수와 치수 측면에서 강을 어떻게 활용하고 물을 확보할 것이냐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대운하 추진이 처음 발표됐을 때 강조됐던 물류 얘기는 사라졌다. 그가 주장하는 이수와 치수는 백두대간을 뚫어 뱃길을 내지 않아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타당한 이유라 볼 수 없다.
청와대 추부길 홍보기획비서관은 4월 29일 경부 대운하에 대한 대국민 홍보와 관련, “5월 중순부터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면서 “의견수렴 단계는 최소한 2~3개월 정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여론 수렴을 거치겠다지만 반대여론이 강하면 포기한다는 의미보다는 대국민 홍보로 여론을 끌어올려 ‘모양’을 갖추고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비친다. 이달 들어서는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이 “대운하를 민자로 진행하겠다는 뜻은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여권 및 정부 일각에서 흘러나오는 ‘보류설’을 일축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누구보다 여론조사의 힘을 잘 아는 이들은 새정부 사람들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기간 동안 변함없이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확보했으며 그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그의 주변에는 여론조사 전문가가 포진했다. 그런데 대운하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시간을 벌며 국민을 설득해서 여론을 돌려보려는 것일까?
경제 살릴 다른 대안 모색을
정부가 대운하 반대의 물꼬를 억지로 돌리려 애쓰는 것을 보면 분수령에서 자연스럽게 갈라져 흐르는 물길을 억지로 합수시키려는 대운하 발상과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자연스럽지 못한 처사다.
정부는 반대여론에 부딪혀 탄력을 잃은 대운하 논의를 명쾌히 접고 경제를 살릴 여러 대안을 모색하는 게 현명하다. 하릴없는 집착은 볼썽만 사납다. 명실공히 실용을 앞세운 정부가 되려면 기념비적 치적에 집착하기보다 국민들의 일상적 불편을 해소하는 실질적 사업에 몰두하는 게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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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규 (언론인 전 연합뉴스 논설위원)
조선의 8대 문장가 중 선조 때 인물로 구봉 송익필(宋翼弼)이란 분이 있다. 그의 시 칠언절구 산행(山行) 중 첫 구절이 ‘산행망좌좌망행(山行忘坐坐忘行)’이다. ‘산길을 가다 보면 앉아 쉬기를 잊고, 쉬다보면 갈 일을 잊는다’는 뜻이다. 무슨 일에든 몰두하면 다른 일은 잊게 된다는 의미다.
대운하에 푹 빠진 정부를 보며 이런 지경이 생각된다. 정부와 여당은 4·9 총선 때 대운하 논의를 금기했다. 높아지는 반대여론 속에서 정치적 공세를 염려해서다. 그렇게 침잠했던 대운하 얘기가 총선이 지나자 솔솔 피어오르고 있다. 반대 여론은 갈수록 높아지는데 말이다.
지난달 여론조사 전문기관 중앙리서치가 전국의 20∼49세 남녀 2446명에 대해 온라인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1%가 대운하 사업에 들어가는 비용과 혜택을 비교할 때 경제성이 낮다고 답했다.
모양새 갖춰 추진한다는 뜻
이 조사는 해당 연령대의 인구 비례에 맞게 지역별 및 성별, 연령별 가중치를 부여했으며 최대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1.98%p였다고 한다. 대운하의 물류개선 효과에 대해서는 63%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했고 환경개선효과에 대해서는 82%가 환경을 파괴할 것이라고 답했으며 대운하사업 추진을 반대하는 의견은 76%에 달했다.
같은 달 중앙일보와 SBS가 실시한 패널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2.3%는 ‘대운하 추진을 재검토하거나 그만둬야 한다’고 답했다. 같은 모집단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 반대 의견은 지난해 12월에는 45.6%였으나 올 3월에는 57.9%로 높아진 데 이어 계속 높아지는 추세다. 한국일보가 18대 총선 당선자 299명 중 25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135명(53.8%)이 대운하 사업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찬성은 47명(18.7%)에 그쳤으며, 나머지 69명(27.5%)은 ‘모름·무응답’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부정적 여론의 동향은 안중에 없는 듯하다. 국토해양부와 청와대는 용감하게 대운하 논의에 다시 불을 지폈다. 정종환 국토해양부장관은 4월 30일 한반도 대운하 문제와 관련 “때가 됐을 때 왜 우리가 대운하가 필요한지를 국민에게 설명 드리면서 추진하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한 조찬강연에서 “운하 문제가 토목공사로 변질돼 이상하게 비쳐지고 있다. 운하라는 말도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원래는 물길을 열고 물길을 잇자는 개념”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나라는 1년 중 6, 7, 8월에 비가 집중적으로 내리고 이 비를 25%밖에 활용 못하는 물 부족국가”라며 “대운하 문제는 이수와 치수 측면에서 강을 어떻게 활용하고 물을 확보할 것이냐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대운하 추진이 처음 발표됐을 때 강조됐던 물류 얘기는 사라졌다. 그가 주장하는 이수와 치수는 백두대간을 뚫어 뱃길을 내지 않아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타당한 이유라 볼 수 없다.
청와대 추부길 홍보기획비서관은 4월 29일 경부 대운하에 대한 대국민 홍보와 관련, “5월 중순부터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면서 “의견수렴 단계는 최소한 2~3개월 정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여론 수렴을 거치겠다지만 반대여론이 강하면 포기한다는 의미보다는 대국민 홍보로 여론을 끌어올려 ‘모양’을 갖추고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비친다. 이달 들어서는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이 “대운하를 민자로 진행하겠다는 뜻은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여권 및 정부 일각에서 흘러나오는 ‘보류설’을 일축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누구보다 여론조사의 힘을 잘 아는 이들은 새정부 사람들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기간 동안 변함없이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확보했으며 그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그의 주변에는 여론조사 전문가가 포진했다. 그런데 대운하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시간을 벌며 국민을 설득해서 여론을 돌려보려는 것일까?
경제 살릴 다른 대안 모색을
정부가 대운하 반대의 물꼬를 억지로 돌리려 애쓰는 것을 보면 분수령에서 자연스럽게 갈라져 흐르는 물길을 억지로 합수시키려는 대운하 발상과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자연스럽지 못한 처사다.
정부는 반대여론에 부딪혀 탄력을 잃은 대운하 논의를 명쾌히 접고 경제를 살릴 여러 대안을 모색하는 게 현명하다. 하릴없는 집착은 볼썽만 사납다. 명실공히 실용을 앞세운 정부가 되려면 기념비적 치적에 집착하기보다 국민들의 일상적 불편을 해소하는 실질적 사업에 몰두하는 게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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