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의 아웃사이더
이이화 지음
김영사 펴냄 / 1만3000원
조선시대에도 부를 축적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세습지주의 대부분은 정치권력을 잡은 조상으로부터 토지를 물려받은 이들이다.
자수성가한 서민지주는 눈을 씻어 봐도 찾을 수 없었다. 상공업이나 무역을 통해 부자가 된 경우도 비슷했다. 하지만 상인 임상옥은 중인출신으로 많은 부를 축적했고 벼슬까지 얻어 양반 행세까지 했다. 같은 시기 일본에서 부를 축적하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나가던 거상들과 비슷했다. 임상옥은 성공한 상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나눔의 경영을 실천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흉년이 들거나 홍수, 괴질이 전국을 휩쓸 때 앞서서 사람들을 도왔고 도로와 다리를 놓는데 재물을 아끼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 ‘백과부’로 알려진 여성상인 백선행도 비슷한 사례다. 그는 16살에 결혼했으나 1년만에 청상과부가 됐다.
백선행은 생계가 어려워지자 장터 음식점에서 음식찌꺼기를 거둬다 돼지를 먹였고 바느질, 식모일을 닥치는 듯이 했다. 이렇게 모인 돈으로 방직사업을 벌였고 부동산에 투자했다. 그는 여유가 생기자 재물을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다른이들을 돕는데 주력했다. 다리를 놓고 평양시내에 시민집회 장소인 공회당(백선행 기념관)을 세웠다. 각종 학교
기금으로 전답을 내놨고 죽기 전에는 친척과 빈민들에게 재산을 나눠줬다. 조선총독부가 그에게 수차례 표창을 주려했으나 매번 거부했다.
당시 권력자들은 외세에 붙었지만 여성이자 사업가였던 그는 일제와 야합하지 않고 민족을 위한 자선사업을 멈추지 않았다. 여성상인이자 사업가인 민족지사 백선행이 여든살에 세상을 뜨자 평양시내에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사회장이 치러졌고 1만명이 장례식에 몰려왔다.
정치권력의 중심부에 있던 양반이나 벼슬아치가 아니었던 탓에 임상옥이나 백선행과 같은 비주류들의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상인 외에도 의학자나 과학자도 인정받지 못하는 비주류 중에 하나였다. 또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개혁사상가들은 대부분 역적으로 몰려 천명을 누리지 못했다.
역사 이야기꾼 이이화가 10권을 목표로 한 ‘인물로 읽는 한국사’의 두 번째 시리즈로 ‘한국사의 아웃사이더’를 펴냈다. 제목으로 보면 승자중심의 역사에서 소외됐던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낸 책이다.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을 역사 속에서 끄집어냈고, 많이 알려진 인물이라면 오늘의 시각으로 해당 인물을 재평가하는 작업을 했다. 승자의 시각과 패자의 시각, 식민지와 피식민지의 시각이 다른 것처럼 역사속의 충신은 현대에서 간신배로 보일수도 있는 법이다.
이 책에는 갑신정변에 가담한 궁녀 고대수와 제주출신의 자선가 만덕, 현실이 허락하지 않은 지성인 정개청, 조선 최대의 반란 주도자 이 괄, 고약제조의 명인 피재길, 전문 봉기꾼 최봉주 등이 등장한다.
다행히 이들의 발자취가 근근이 이어지고 있어 역사를 풍부하게 했고 한 인물과 사건, 시대를 바라보는 시각을 다양하게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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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화 지음
김영사 펴냄 / 1만3000원
조선시대에도 부를 축적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세습지주의 대부분은 정치권력을 잡은 조상으로부터 토지를 물려받은 이들이다.
자수성가한 서민지주는 눈을 씻어 봐도 찾을 수 없었다. 상공업이나 무역을 통해 부자가 된 경우도 비슷했다. 하지만 상인 임상옥은 중인출신으로 많은 부를 축적했고 벼슬까지 얻어 양반 행세까지 했다. 같은 시기 일본에서 부를 축적하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나가던 거상들과 비슷했다. 임상옥은 성공한 상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나눔의 경영을 실천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흉년이 들거나 홍수, 괴질이 전국을 휩쓸 때 앞서서 사람들을 도왔고 도로와 다리를 놓는데 재물을 아끼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 ‘백과부’로 알려진 여성상인 백선행도 비슷한 사례다. 그는 16살에 결혼했으나 1년만에 청상과부가 됐다.
백선행은 생계가 어려워지자 장터 음식점에서 음식찌꺼기를 거둬다 돼지를 먹였고 바느질, 식모일을 닥치는 듯이 했다. 이렇게 모인 돈으로 방직사업을 벌였고 부동산에 투자했다. 그는 여유가 생기자 재물을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다른이들을 돕는데 주력했다. 다리를 놓고 평양시내에 시민집회 장소인 공회당(백선행 기념관)을 세웠다. 각종 학교
기금으로 전답을 내놨고 죽기 전에는 친척과 빈민들에게 재산을 나눠줬다. 조선총독부가 그에게 수차례 표창을 주려했으나 매번 거부했다.
당시 권력자들은 외세에 붙었지만 여성이자 사업가였던 그는 일제와 야합하지 않고 민족을 위한 자선사업을 멈추지 않았다. 여성상인이자 사업가인 민족지사 백선행이 여든살에 세상을 뜨자 평양시내에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사회장이 치러졌고 1만명이 장례식에 몰려왔다.
정치권력의 중심부에 있던 양반이나 벼슬아치가 아니었던 탓에 임상옥이나 백선행과 같은 비주류들의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상인 외에도 의학자나 과학자도 인정받지 못하는 비주류 중에 하나였다. 또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개혁사상가들은 대부분 역적으로 몰려 천명을 누리지 못했다.
역사 이야기꾼 이이화가 10권을 목표로 한 ‘인물로 읽는 한국사’의 두 번째 시리즈로 ‘한국사의 아웃사이더’를 펴냈다. 제목으로 보면 승자중심의 역사에서 소외됐던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낸 책이다.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을 역사 속에서 끄집어냈고, 많이 알려진 인물이라면 오늘의 시각으로 해당 인물을 재평가하는 작업을 했다. 승자의 시각과 패자의 시각, 식민지와 피식민지의 시각이 다른 것처럼 역사속의 충신은 현대에서 간신배로 보일수도 있는 법이다.
이 책에는 갑신정변에 가담한 궁녀 고대수와 제주출신의 자선가 만덕, 현실이 허락하지 않은 지성인 정개청, 조선 최대의 반란 주도자 이 괄, 고약제조의 명인 피재길, 전문 봉기꾼 최봉주 등이 등장한다.
다행히 이들의 발자취가 근근이 이어지고 있어 역사를 풍부하게 했고 한 인물과 사건, 시대를 바라보는 시각을 다양하게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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