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전 9시50분.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현대아파트 33동 1113호. 10여명의 수사관이 베
란다와 정문을 통해 들이닥쳤다.
“박노항!”
“네”
잠옷 차림으로 얼굴에 머드팩을 바르고 누워있던 박 원사는 놀라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박씨는 이내 체념한 듯 순순히 체포에 응했다. 박씨는 바로 국방부로 압송됐다.
병역비리의 ‘몸통’ 박노항 원사의 3년간 도주행각은 검거작전 시작 10여분만에 막을 내렸
다.
◇박씨 누나 전화통화 결정적 계기= 지난해 말부터 박씨 가족들을 밀착 감시해 온 검거반에
15일 한 통의 전화통화가 감지됐다. 박씨 누나인 박복순씨가 누군가와 전화통화에서 “부산
에 간다”며 집을 나선 것. 잠복 중이던 수사관의 미행은 시작됐고 박복순씨는 부산이 아닌 충남 서
천 오빠집으로 향했다.
닷새후인 20일 박복순씨는 다시 서울로 올라와 택시를 타고 서울 동부이촌동 부근에 내렸
다. 검거반은 한때 누나 박씨의 행적을 놓쳤으나 택시번호를 확인, 운전기사로부터 동부이천
동 현대아파트에 내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4일간 검거반은 밤을 꼬박 새며 잠복 수사를 해 박 원사의 은신처를 탐문했다. 결국
야간에 불도 켜지지 않는 등 인기척이 없으면서 도시가스 계량기가 돌아가고 조간신문이 사
라지는 33동1113호가 박 원사의 은신처임을 확신, 검거에 들어간 것이다.
◇3년간 도피 미스터리= 언제나 그렇듯이 ‘등잔 밑’이 어두웠다. ‘입산설’ ‘홍콩도피
설’ 등 각종 소문이 난무했지만 박 원사는 서울 한 복판 그것도 국방부에서 불과 5분거리
아파트에 버젓이 살고 있었다.
박 원사는 지난 98년 5월 병역비리 합동수사가 시작되자 홀연 잠적했다. 신창원, 이근안 검
거 후 ‘최후의 도망자’가 된 박씨의 3년 도피행적은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다.
군과 검찰은 박 원사가 99년 초 경기도 안산 근처 야산 등에서 한두 달 노숙도 했고 여관
등지를 떠돌기도 한 것으로 확인했다. 검거된 32평형 아파트는 지난해 1월 50대로 보이는
한 여자를 통해 전세 1억원에 계약했고 박씨는 2월 중순께 이사왔다. 박씨는 그후 이곳에서
누나 등 가족들의 도움을 받으며 철저한 은둔생활을 했다. 이웃집 사람조차 “빈 집인 줄
알았다”고 말할 정도였다.
박씨는 가급적 외출을 삼간 채 밤이면 불빛이 외부로 새나지 않도록 탁상용 전등을 사용하
는 등 치밀한 도피생활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별검거반 추적 ‘첩보전’방불= 군과 검찰은 99년 2월 50여명의 특별검거반을 구성했
다. 검거반은 불교신자인 그가 ‘절’에 은신했다는 소문 때문에 서울, 경기, 충남지역 암자
들을 집중 수색했고 해외도피설로 인터폴에 수사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논산 등 그의 친
인척이 사는 집 10여곳을 동시에 급습하기도 했다. 가족과 지인 등 주변인물 20여명에 대해
자금추적과 전화감청을 했지만 꼬리를 잡지는 못했다. 14개 지방경찰청에 검거전담반이 편
성됐고 현상금(처음 2천만원에서 현재 5000만원)이 내걸렸다. 전국에 뿌려진 수배전단만도
50만여장이다.
박노항 원사 도주·검거 일지
1998.5.12 병역비리 1차 합동수사 착수. 박 원사 잠적
7.23 서울지검 민간인 관련자 명단(165명)공개
12.1 병무사범 합동수사부 구성
1999.4.27 병역면제 비리 합동수사 결과 발표
2000.2.14 검·군 병역비리 합동수사반 발족
2.24 박 원사 특별검거반 발족
3.19 박 원사 변장모습 전단10만장 배포
2001.2.13 검·군 병역비리 합동수사반 해체(총적발자 327명)
4.25 박 원사 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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