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여성구청장-밥일꿈

지역내일 2008-05-19
이영임(37·송파구 가락동)

지난 10일 토요일부터 월요일인 12일 부처님 오신 날까지는 말 그대로 황금연휴. 많은 사람들이 멋진 계획을 세우고 여행을 떠났다. 우리가족도 아름다운 계절이 주는 선물을 놓칠세라 오래 전부터 세운 계획대로 강릉 바닷가로 출발했다. 송파구청 공무원인 남편과 결혼생활 15주년을 기념하는 가족여행이기도 했다.
토요일. 차는 막혔지만 가족들과 함께하기에 그 또한 즐거움이고 행복으로 느껴졌다. 들뜬 마음으로 도착한 경포대 바닷가의 푸른 바다와 부서지는 파도, 갯내음 섞인 바닷바람에 가슴이 탁 트였다. 횟집에서 싱싱한 회를 먹은 후에 백사장에서 두꺼비집을 지으며 남편도 나도 아이와 동심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다음날인 일요일, 한 통의 문자메시지를 받은 남편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당장 구청으로 가야겠다고 어렵게 입을 뗐다. 조류인플루엔자(AI)로 비상소집 명령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아이와 나는 모처럼의 가족여행이 중단되는 아쉬움에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나 강건너 광진구에서 AI가 발생한 이후 송파구가 문정·장지 지구 비닐하우스에서 불법으로 기르던 닭과 오리 12마리를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 검사 의뢰한 결과 AI로 판명될 확률이 높고 그럴 경우 최대한 빨리 살처분해야 한다는 설명을 듣고 서둘러 차에 올랐다. “아, 내가 주민건강과 안전을 책임진 구청 공무원의 아내구나...” 순식간에 바다가 멀어졌다.
남편은 타미플루를 복용하고, 방역복과 장갑을 끼고 보호안경과 마스크를 착용한 채 연휴 마지막날 새벽까지 문정·장지지구 비닐하우스 닭과 오리 포획에 투입되었고 오전에야 돌아왔다. 그러나 걱정이 앞섰다. 하나는 올해 발생한 AI가 고약한 베트남형이어서 살처분에 직접 투입된 남편이 혹시 감염되지 않았을까하는 걱정이었고, 다른 하나는 닭 오리 불법 사육과 관련해 해당 공무원들이 입을지 모를 불이익이었다. 가뜩이나 서울시가 송파구를 상대로 감사에 나선다는 보도가 잇따라 나오는 마당이었다.
감염 걱정을 남편은 한마디로 안심시켰다. “구청장님이 약을 목용하고 방역복, 장갑, 마스크를 쓰고 살처분 현장에서 직원들을 진두지휘했다”는 것이다. 또 생계대책을 요구하며 살처분에 반발하는 주민들 앞에서 “내가 구청장이고 책임자다. 내 가족 같은 송파구 공무원들이 위험을 무릎 쓰고 나선 것은 주민들의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한 희생”이라고 설득했고, 주민들도 납득하고 돌아섰다는게 남편 설명이다. TV 뉴스에도 김 청장님이 완전무장한 모습으로 “AI에 노출된 닭과 오리에 대한 살처분을 완료했다”고 인터뷰하는 모습이 나왔다. 여자가 저리 당당한데 남자인 내 남편을 걱정한 내가 우습다.
다음날 아침 급하게 가족관계증명서가 필요해 구청에 왔다. 마침 김영순 청장의 구내방송이 흘러 나왔다. 요약하면 비상소집에 응해 주민건강을 위해 동분서주한 직원들에게 감사하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탁 쉰 목소리에는 연휴도 반납한 채 한걸음으로 달려와 저녁도 거른 채 허기와 싸우면서 험한 일을 마다하지 않은 직원에 대한 진한 고마움이 묻어나왔다.
이제 살처분은 끝났다. 언론에서는 송파구가 늑장대처를 했느니, 가축사육을 방치했느니, 사후대책이 미흡하다느니 하는 말들이 많다. 구청 직원이나 나같은 가족들은 다시 한번 걱정에 휩쌓였다. 그러나 밤샘 근무에 ‘콩나물국’이라도 제대로 챙겨 먹었는지 걱정한 구청장 목소리엔 그 어떤 원망이나 질책도 없었다. “나는 참 행복한 송파구청의 공무원 아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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