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일꿈

지역내일 2008-07-02 (수정 2008-07-02 오전 8:09:42)
서울시교육청 이점순 장학사

‘뻥튀기 옥수수’ 혹은 ‘볶은 콩’ 사는 취미


평소 바쁘다는 이유로 주말이나 연휴에도 놀이동산에도 한 번 가질 못해 가족들, 특히 초등학교 5학년인 작은 아이에게 미안함이 늘 마음에 있었기에, 지난 주말에는 오랜만에 시간을 내서 더위도 식힐 겸 작은 아이, 남편과 함께 집 주변 산책을 나갔다.
작은 아이는 나와 남편의 손을 잡고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 엄마예요, 저, 지금 엄마, 아빠와 산책 가요”라고 자랑하며 연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참새처럼 재잘거리며 나와 남편의 손을 흔들며 신나게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던 작은 아이가 갑자기, “엄마! 뻥튀기 할아버지야! ”라고 큰 소리로 말하였다. 그리곤 “엄마! 뻥튀기 사야지!”라고 하였다.그러자 할아버지께서 나를 쳐다보셨다. 그 순간 나는 ‘뻥튀기 옥수수’를 사려다 “먹지도 않으면서 왜 사느냐”는 남편의 핀잔이 생각나, 잠시 주저하는 사이에 그만 사지 못하였다.

우리집 아파트 입구에는 토요일마다 ‘뻥튀기 할아버지’께서 오신다. 그러면 나는 늘 2,000원 짜리 ‘튀긴 옥수수’ 1봉지나 ‘볶은 검은콩’ 1봉지를 사곤 했다.
그렇게 사다 놓으면 주말에 조금 먹고는 그대로 식탁 모퉁이에 얌전히 있다. 왜냐하면 먹을 시간이 없기도 하지만 우리집 식구들이 그다지 군것질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으니, 퇴근 후 남편이 TV를 보면서 거의 의무감으로 먹었다. 이런 횟수가 잦으니 남편이 ‘먹지도 않으면서 왜 사느냐’고 핀잔을 주었고, 그런 핀잔에도 불구하고 나의 ‘뻥튀기 옥수수 또는 볶은 콩 사는 취미’(?) 계속 되자, 고등학교 3학년인 큰 아이도 “엄마, 먹지도 않으면서 왜 또 샀어?”라고 물었다. 큰 아이의 질문에 나는 오히려 “엄마가 왜 사는 것 같니?”라고 반문하는 나를 의아해 하면서 쳐다보는 큰 아이에게 나의 대학 시절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대학을 부산에서 다녔다. 대학시절 ‘지우회’라는 서클에 가입하여 주로 봉사활동을 하였다. 그런데 우연히 여름 방학 때 우리 동기들과 같이 광안리 바닷가에 가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그 때, 아주 남루한 차림의 초등학교 1학년으로 보이는 남자 아이가 껌 한 통을 들고 와서 우리들에게 사달라고 하였다. 그 당시 어린 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앵벌이’가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 되었던 시기였기에, 대부분의 친구들이 외면하고 있었다. 나 역시 모르는 척하고 딴전을 피우고 있는데, 그 아이가 내 옆에 와서 불쌍한 목소리로 “껌 하나 사주세요!”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그 아이는 계속 나에게 사달라고 애원하였지만 나는 계속 고개를 저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던 동기 남학생이 나에게 “어지간하면 1통 사주라 마!”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나는 사회 정의를 위해서 우리가 사주면 안 된다고 하였다. 그러자 그 친구가 무엇이 진정한 사회적 정의냐고 반문하면서 급기야 열띤 토론이 시작되었다.
나는 ‘내가 저 껌을 사서, 그 수익금이 지금 껌을 팔고 있는 아이에게 돌아가면 나는 얼마든지 저 껌을 살 수 있지만, 현실은 대부분의 수익금은 앵벌이를 시키는 검은 조직들이 다 가로채기 때문에 나는 저 껌을 살 수 없고, 또한 사회 정의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저 껌을 사서도 안된다’며 주장했다. 그러나 그 친구는 ‘우리 모두 저 껌을 사 주지 않으면, 저 아이는 어떻게 되겠느냐? 국가의 복지제도가 어려운 사람들을 다 보살펴 줄 수 있으면 모르지만 현재는 그렇지 못하니까 우리가 사 주어야 되며 그리고 앵벌이가 아닐 수도 있다’면서 그 아이가 들고 있는 껌을 모두 사서 우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반론을 제기하여 껌은 그 친구가 샀지만 ‘사회 정의를 위해서 앵벌이가 파는 껌을 사서는 안된다’로 토론회(?)를 마무리한 후 그 일을 까마득히 잊고 살았었다.

세월이 흘러 결혼도 하고, 타향에서 ‘사람살이’의 이런저런 애환을 겪어가던 서른 즈음, 퇴근길 복잡한 지하철에서 허리 굽은 할머니가 껌과 함께 슬픈 사연이 적힌 종이를 승객들 무릎에 올려놓는 모습을 보자, 세월 속에 가려졌던 광안리 바닷가가 불현듯 생생하게 스쳐가면서 나의 반론에 소금에 절인 배추가 된 친구의 생각이, 내 스스로 할머니의 껌을 사게 하였다. 그러면서 돌아오는 지하철 내내 난 그 친구를 생각했고, 그 친구가 말한 뜻이 무엇이었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런 후, 언제부터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시장을 본 뒤, 생기는 비닐봉투 중 깨끗하고 마른 봉투는 모아 두었다가 일부러 재래시장의 난전이나 후미진 곳에서, 소량의 푸성귀 서너 가지로 앉아 있는 할머니한테 야채 이것저것 사면서 비닐 봉투를 드리곤 하였다. 그런데 이사를 오면서 옛날에 다니던 재래시장과 멀어져 재래시장을 가지 못하였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우리 아파트 입구에 ‘뻥튀기 할아버지’가 오시면서
어린 시절의 맛이 그립기도 하고, 또 할아버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튀긴 옥수수’나 ‘볶은 콩’을 사기 시작하였다.

쉰을 바라보는 지금은, 젊은 시절 내가 그렇게 소리치던 사회적 정의를 여전히 강조하지만 그 색깔이나 모양이 조금은 달라졌다.

나에게도 ‘1,000원’ ‘2,000원’은 소중하고 큰돈이다. 그런데 ‘1,000원’ ‘2,000원’이 다른 사람에게는 ‘1,000원’ ‘2,000원’ 또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닐 수 있다. 내가 가진 소중한 것의 일부를 힘들고 어려운 이들과 함께 기쁜 마음으로 나눌 수 있을 때, 우리 사회가 더불어 즐거움을 느낄 수 있고, 내 주변사람들이 다 함께 행복할 때, 그 때야 말로 ‘사회적 정의’가 진정으로 실현되지 않을까…….

요즈음은 그 때, 나의 이야기를 말없이 듣고 있던 고등학교 3학년 큰 아이가 나 ‘튀긴 옥수수’를 가끔 사서 “엄마! 같이 먹자. 옥수수가 다이어트 식품이래.” 하면서 내 손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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