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 장위동 월곡초등학교 부근에 사는 용은주(여·40·사진)씨의 남편은 대형 트레일러를 운전한다. 남편(최영준씨)은 요즘 화물연대 운송거부로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지난 주말 남편은 집으로 전화를 걸어 “파업 때문에 집에 들어가지 못하니 입을 옷가지 좀 가져오라”고 한 이후 소식도 없다. 어차피 남편은 평소에도 일주일에 5일은 차에서 웅크리고 자기 때문에 용씨 입장에서는 크게 변한 것도 없지만 그대로 마음 한구석이 답답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희망이 보이지 않아요.” 용씨가 넋두리처럼 내뱉는 말이다.
◆일할수록 손해나는 남편 일 = 용씨가 이달 초 통장으로 입금 받은 남편의 운임은 700여만원이다. 하지만 기름값과 고속도로 통행료 등 카드결제로 빠져 나간 돈이 670여만원에 이른다. 남은 돈은 불과 30만원이다.
게다가 전달에는 트레일러가 고장 나 수리비로 300만원이 들어가 270만원이 적자가 났다고 한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지입료, 컨테이너 대여료 등 300여만원은 아직 낼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용씨네 형편이 급격히 어려워진 것은 올해 경유값이 폭등하면서부터다. 그는 경유값이 오르면서 몸무게가 5~6kg가량 빠졌다.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아 돌려막기로 생계를 꾸려갈 수밖에 없는 처지여서 체중이 크게 준 것이다. 그는 “요즘엔 일을 할수록 손해”라며 “일을 많이 하면 그 만큼 기름값이 더 들어가니 차라리 안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러니 용씨는 이번 화물연대 파업에 적극 찬성했다. 그는 “지난 2003년에는 반대했지만 열심히 일해 봐야 기름값만 더 들어가니 차라리 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살림은 갈수록 쪼그라들고 = 용씨는 그동안 억척스럽게 살아왔다. 남들처럼 아파트는 아니더라도 방두칸짜리 연립주택이라도 장만하려고 아끼고 또 아끼며 살림을 챙겼다. 가족끼리 외식 한번 제대로 한적 없고 자신이 입는 옷도 여동생과 같이 입는다. 화장품은 사치품이 된지 오래고 심지어 머리 퍼머도 오랫동안 하지 못했다.
5년 전부터는 아예 친정집으로 들어가 부모님께 얹혀살고 있다. 집에서 인터넷도 안쓰고 아이들 휴대전화도 없다. 빨래도 손빨래만 할 정도다. 남편 몰래 살림에 보태려고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도 한다. 아이들이 학교에 간 시간에 훠미리레스토랑에서 주방 일을 해 60~70만원의 벌이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억척스럽게 살아도 요즘같이 남편수입이 적자를 내면 희망이 사라진다. 그는 지금 살고 있는 장위동 인근에 집을 마련하려 했다. 헌데 장위동이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집값이 천정부지로 올라 지금은 꿈도 꿀 수 없다고 한다. 다른 지역을 둘러 봐도 만만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남편수입이 줄면서 얼마전 그동안 들었던 적금까지 해약했다. 내집 마련의 꿈이 사실상 멀어진 것이다.
◆그래도 다른 일은 할 수가 없고 = 두 아이가 커가면서 걱정도 태산이다. 중학교 1학년인 큰아들은 전교 1~2등을 다툴 정도로 공부를 잘한다. 얼마전 큰아들이 ‘특목고를 가고 싶다’며 학원을 보내달라고 했지만 ‘돈 없으니 다음에 가라’면서 보내지 않았다.
초등학교3학년인 작은 아들이 ‘태권도 도장을 다니고 싶다’고 했지만 역시 안된다고 했다. 두 아들이 다니고 싶어 하는 학원도 보내주지 못하는 처지에 용씨는 남몰래 펑펑 울기도 했다. 언제까지 두 아이의 기를 꺾을 수도 없고 현실은 암담하고 한숨만 나온다고 했다.
그렇다고 당장 남편의 화물차 운전을 바꿀 처지도 안된다. 남편은 용씨와 결혼하기 전부터 화물차 운전을 했다. 20년 가까이 해온 일을 지금 와서 당장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직업을 바꾸려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딱히 없다.
그는 “정부는 물류대란이니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느니 하지만 당장 우리가 죽게 생겼는데 어쩔 수 없다”며 “살기위해 어쩔 수 없이 파업을 하고 있는 남편을 생각하면 나라도 이를 악물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고 말했다.
이상선 기자 ssle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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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남편은 집으로 전화를 걸어 “파업 때문에 집에 들어가지 못하니 입을 옷가지 좀 가져오라”고 한 이후 소식도 없다. 어차피 남편은 평소에도 일주일에 5일은 차에서 웅크리고 자기 때문에 용씨 입장에서는 크게 변한 것도 없지만 그대로 마음 한구석이 답답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희망이 보이지 않아요.” 용씨가 넋두리처럼 내뱉는 말이다.
◆일할수록 손해나는 남편 일 = 용씨가 이달 초 통장으로 입금 받은 남편의 운임은 700여만원이다. 하지만 기름값과 고속도로 통행료 등 카드결제로 빠져 나간 돈이 670여만원에 이른다. 남은 돈은 불과 30만원이다.
게다가 전달에는 트레일러가 고장 나 수리비로 300만원이 들어가 270만원이 적자가 났다고 한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지입료, 컨테이너 대여료 등 300여만원은 아직 낼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용씨네 형편이 급격히 어려워진 것은 올해 경유값이 폭등하면서부터다. 그는 경유값이 오르면서 몸무게가 5~6kg가량 빠졌다.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아 돌려막기로 생계를 꾸려갈 수밖에 없는 처지여서 체중이 크게 준 것이다. 그는 “요즘엔 일을 할수록 손해”라며 “일을 많이 하면 그 만큼 기름값이 더 들어가니 차라리 안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러니 용씨는 이번 화물연대 파업에 적극 찬성했다. 그는 “지난 2003년에는 반대했지만 열심히 일해 봐야 기름값만 더 들어가니 차라리 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살림은 갈수록 쪼그라들고 = 용씨는 그동안 억척스럽게 살아왔다. 남들처럼 아파트는 아니더라도 방두칸짜리 연립주택이라도 장만하려고 아끼고 또 아끼며 살림을 챙겼다. 가족끼리 외식 한번 제대로 한적 없고 자신이 입는 옷도 여동생과 같이 입는다. 화장품은 사치품이 된지 오래고 심지어 머리 퍼머도 오랫동안 하지 못했다.
5년 전부터는 아예 친정집으로 들어가 부모님께 얹혀살고 있다. 집에서 인터넷도 안쓰고 아이들 휴대전화도 없다. 빨래도 손빨래만 할 정도다. 남편 몰래 살림에 보태려고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도 한다. 아이들이 학교에 간 시간에 훠미리레스토랑에서 주방 일을 해 60~70만원의 벌이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억척스럽게 살아도 요즘같이 남편수입이 적자를 내면 희망이 사라진다. 그는 지금 살고 있는 장위동 인근에 집을 마련하려 했다. 헌데 장위동이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집값이 천정부지로 올라 지금은 꿈도 꿀 수 없다고 한다. 다른 지역을 둘러 봐도 만만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남편수입이 줄면서 얼마전 그동안 들었던 적금까지 해약했다. 내집 마련의 꿈이 사실상 멀어진 것이다.
◆그래도 다른 일은 할 수가 없고 = 두 아이가 커가면서 걱정도 태산이다. 중학교 1학년인 큰아들은 전교 1~2등을 다툴 정도로 공부를 잘한다. 얼마전 큰아들이 ‘특목고를 가고 싶다’며 학원을 보내달라고 했지만 ‘돈 없으니 다음에 가라’면서 보내지 않았다.
초등학교3학년인 작은 아들이 ‘태권도 도장을 다니고 싶다’고 했지만 역시 안된다고 했다. 두 아들이 다니고 싶어 하는 학원도 보내주지 못하는 처지에 용씨는 남몰래 펑펑 울기도 했다. 언제까지 두 아이의 기를 꺾을 수도 없고 현실은 암담하고 한숨만 나온다고 했다.
그렇다고 당장 남편의 화물차 운전을 바꿀 처지도 안된다. 남편은 용씨와 결혼하기 전부터 화물차 운전을 했다. 20년 가까이 해온 일을 지금 와서 당장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직업을 바꾸려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딱히 없다.
그는 “정부는 물류대란이니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느니 하지만 당장 우리가 죽게 생겼는데 어쩔 수 없다”며 “살기위해 어쩔 수 없이 파업을 하고 있는 남편을 생각하면 나라도 이를 악물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고 말했다.
이상선 기자 ssle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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