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돌리는 손님보면 한숨만”

대형마트 싹쓸이로 물건 품귀 … 매달 수십만원 적자지만 “희망 안버려”

지역내일 2008-07-23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다. 물가는 폭등하고 실질소득은 감소하고 있다.
서민층은 물론 중산층도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제위기가 IMF를 능가하는 고통을 동반하고 기간도 더 길 것이라고 한다.
고사위기에 빠진 서민과 중산층의 경제적 고통실태를 살펴본다 .

“수박 없어요?” “오늘 과일은 토마토뿐이네요. 다음에 들여 놓을게요.”
“칼국수 주세요.” “칼국수가 떨어졌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서울 외곽의 한 아파트 단지 앞에서 슈퍼마켓을 꾸리는 김은숙(여·가명·53)씨 귀에 오늘도 손님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손님이 찾는 물건을 제때 들이지 못한 지가 벌써 몇 달 째인지 모른다. 지난 봄 소풍철에는 김밥에 필요한 김과 햄을 구경조차 못 했다.
이런 ‘품귀’현상은 7~8년 전 인근에 대형마트가 들어선 이후로 흔한 일이다. 하지만 최근 물가가 오른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물건 구하기가 더 힘들어졌다. 김씨는 “값이 곧 오를 거라니까 마트에서 과일, 채소를 밭뙈기째 싹쓸이하고, 다른 물품도 대량으로 사들이는 탓”이라고 말했다. 예전에는 주문 물량에 관계없이 자주 오던 납품회사 트럭들도 유가가 오른 탓에 10만~30만원 정도 주문해야 오거나 일주일에 두세 번만 들르는 상황이다. 그나마 ‘싹쓸이’ 후에 주문하다 보니 값이 한참 뛰었다.
어렵게 구한 물건 값을 올리기도 쉽지 않다. 동네슈퍼는 주민들과의 친밀한 관계가 생명인 까닭이다. 김씨는 “규모가 작으니 박리다매도 안 되고, 주민들 상대로 마진 더 챙기면 손님만 잃는다”며 한숨을 쉬었다.
결혼한 지 30년이 넘은 김씨는 원래 교사였다. 금융기관에서 일하다 과로로 쓰러진 남편이 간암 말기 판정을 받자 일을 그만두고 병간호에 매달렸지만 결국 사별, 지금까지 혼자 세 자녀를 뒷바라지해왔다. 전공을 살려 임시교사, 학습지 선생님 등을 하다 슈퍼마켓을 시작한 지는 3년이 좀 넘었다. 다행히 세 자녀 모두 흔하다는 과외, 학원 강의 한 번 안 받고 이름대면 알 만한 4년제 대학에 무사히 진학했다. 공부를 잘 해 장학금도 받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때부터였다. 장학금 100만원씩을 빼도 한 학기 대학 등록금만 400만원이 넘는다. 김씨가 자녀를 졸업시키는 데는 무려 7200만원 이상이 필요하다. 여기에 입학금 500만원까지 합하면 자녀 대학교육비만 1억원에 육박하는 셈이다. 15평 슈퍼마켓으로는 이 큰 돈을 감당할 길이 없어 김씨는 결국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했다.
슈퍼마켓 영업이 잘 될 때는 한 달에 150만원 넘게 벌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엔 수입이 줄어 90만~100만원을 오르내린다. 집 장만 대출 이자가 100만 원, 가게 전기세가 월 10만원이니 이미 적자다. 그동안 거래처 대금결제를 한두 달씩 연기하는 식으로 자녀들의 등록금을 보태 왔던 김씨는 “이제 막내딸이 졸업을 3학기 남겨뒀다”며 “앞으로 등록금, 공과금까지 오르면 남은 고비를 어떻게 넘길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졸업해 직장을 구한 큰딸이 6개월 인턴기간 동안 받은 월급은 80만원이 채 안됐다. 김씨는 “슈퍼마켓으로는 대출 이자 갚기에도 급급하다”며 “기름값이 오르면 동네슈퍼 이용자가 늘어난다는데 진심으로 그러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에 따르면 유통시장이 개방되고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슈퍼마켓은 13만개 정도다. 김경배 연합회 회장은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으로 내몰린 사람들에게 창업을 독려한 것은 정부”라며 “그래도 그 때는 주머니에 돈 갖고 자영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10년 동안 돈 다 까먹고 빚까지 졌다. 이 상황에서 기름 값, 물가까지 오르면 외환위기 때보다 더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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