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스승의 날

편지 쓰는 학생, 선물 준비하는 학부모 사라진다

지역내일 2001-05-30
올해 처음 교단에 선 새내기 교사 정수영(가명, 25, 여, 서울시 은평구 목동)씨. 그는 지난 '스승의 날'이 우울하기만 했다. 올해 3월부터 두 달 남짓 초등학교 5학년을 나름대로 열심히 가르쳤다. 하지만 학생들이나 학부모로부터 작은 선물이나 편지 한 장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정씨는 교사가 되면 '부담스러운 선물이나 촌지가 들어오면 편지와 함께 돌려주는 좋은 선생님'이 되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씨는 학교에 와서 반대의 고민을 하게 됐다. 감사의 말이나 인사, 작은 선물을 건네는 학생이나 학부모가 없다는 것.

Ⅰ김밥도시락과 카스테라 빵
지난 4월 중순. 학교 봄소풍을 간 정씨는 점심도시락을 돈 주고 사 먹어야했다. 학창시절 본인의 도시락을 싸며 담임선생님의 도시락에 김밥 두 줄을 더 넣어 갖고 가는 게 너무 당연했다고 한다. 그래서 주변 교사들이 '직접 도시락을 준배해야 할 것'이라는 말을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소풍 당일, 정씨는 단 하나의 도시락도 받지 못했다. 같은 학교 교사들은 "요즘 학부모들은 영악하다"며 학교에서 도시락 비슷한 얘기라고 꺼내면 교육청 홈페이지에 "학교가 학부모에게 향응 제공을 요구한다"고 당장 글을 올린다고 한다.
어린이날 전날. 어머니회에서 돈을 모아 반 학생들에게 카스테라 빵을 하나씩 돌렸다. 어머니회에서 준 빵상자를 열어 아이들에게 다 나눠주고 난 그는 남는 빵이 하나도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아이들을 위한 빵만 준비하고 담임선생님을 위한 빵이나 여분의 빵은 전혀 없었던 것. 학부모나 아이들 그에게 "빵을 드시라"고 권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빵 하나 얻어 먹을 자격도 안되나' 싶어 한없이 처량했단다.
그리고 스승의 날. 그동안 적쟎이 실망했지만 그는 '혹시 편지라도 한 장 받을까' 작은 기대를 했다. 하지만 편지는 없었다.

Ⅱ우울한 스승의 날
스승의 날 진해시 D중학교를 방문했다. 20여년 교사생활을 조 모(42)교사는 "몇 년 새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편지를 쓰거나 작은 선물을 주는 일은 거의 없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 전날(14) 교실 곳곳에 있는 장미꽃다발을 보고 잠시 즐거운 착각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전날은 로즈데이로 남자가 여자에게 나이 수나 사귄 일 수만큼 장미를 사주는 날. 하지만 스승의 날 그는 작은 카네이션 바구니 두 개을 받았을 뿐 "반 아이들이 전체적으로 준비한 카드나 꽃다발, 선물은 없었다"고 한다.
마산시 M여고. 지난 스승의 날 2학년 교사들은 아이들이 돈을 모아 준비한 백화점 상품권 한 장을 받았다. 이외에 편지나 선물, 꽃다발은 들어오지 않았다. 김 모(34)교사는 "교사 생활 10여년만에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승의 날은 즐거움은 아이들이 작은 편지나 선물로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는 것을 느낄 때였다며 아쉬워했다.
지역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선생님이 '우울해지는' 것은 일반적 추세. 일선 교사들은 선물이나 편지를 못 받아서가 아니라 선물이나 편지를 받을 만큼 그 역할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장 모(45, 창원시 안민동)씨는 "1년에 한 번인데 선생님한테 애들 맡겨놓고 작은 선물 하는 건 당연하다고"고 본다며 "큰 돈 들고 학교 다니는 엄마나 또 그걸 요구하는 선생님들은 정말 소수"라고 말한다. 그는 "일부 문제를 언론이 지나치게 과장해 작은 선물 보내는 것도 이상하게 만든 거 같다"고 덧붙였다. 초등학교의 경우 학부모가 직접 담임선생님의 선물을 챙기지만 중·고등학교는 학생들이 선물을 준비한다. 그런데 현재 일선 중·고교에 있는 교사들은 한결같이 스승의 날과 같은 날 아이들이 자신들에게 "무관심"을 실감한다고 한다.
이들에게 스승의 날이 우울한 것은 교단에 선 그들이 존경받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전직 교사인 문 모(42)씨는 "학원에서 공부하고 학교에 놀러오는 요즘 아이들한테 교사가 존경스러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현직 교사 정 모(25)씨는 "학교가 권위를 잃었는데 교사가 권위를 얻을 수 있냐"며 자조했다.
마창 강주화 기자 jhg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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