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그루지야 전쟁의 지정학
북경 올림픽의 개막에 세계인의 관심이 쏠리고 있던 바로 그날, 러시아 남부 코카서스에서는 러시아와 그루지야 사이에 전쟁이 터졌다. 러시아 군대는 한때 그루지야의 친미 사카슈빌리 정권을 위협할 것처럼 보여 서방세계를 긴장시켰다.
유럽연합 지도자들이 부랴부랴 중재에 나서 휴전을 성사시킴으로써 미국과 러시아가 직접 충돌할 위험은 일단 사라졌다고 보지만 러시아를 적대시하는 그루지야에 러시아가 무력 개입할 가능성은 아직도 열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코카서스의 평화는 불안정하다. 미국의 그루지야 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소련 붕괴 이후 지금까지 우호정책을 추구해온 워싱턴과 모스크바 관계가 대립관계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 벌써 이달 하순 예정된 미-러 합동 군사훈련이 취소됐다. 미국의회에서는 2014년의 소치 동계 올림픽을 보이콧하고 러시아의 세계무역기구(WTO)가입을 반대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찍이 영국의 처칠은 “러시아는 불가사의 속의 비밀에 싸인 수수께끼같은 나라라서 예측하기 어려운 나라”라고 말한 일이 있다. 100여개 이상의 민족이 함께 살고 있는 러시아 문제의 복잡성을 비유한 말이다.
러시아와 그루지야가 전쟁을 벌이게 된 원인도 아주 복잡하다. 그루지야는 스탈린의 출생지이며 한국과 소련의 국교 정상화에 결정적 역할을 한 셰바르나제 소련 외상이 독립 후 2003년까지 통치했던 면적 7만㎢, 인구 450만의 작은 나라다.
그러나 카스피아 연안에서 생산되는 석유와 가스를 터키와 유럽으로 수송하는 송유관과 가스관이 통과하는 전략적 요충지로 러시아에는 지정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지역이다.
이 지정학적 위치가 그루지야를 강대국들의 각축장으로 만들었고 오늘날 미국과 러시아의 긴장을 초래한 핵심 원인이 되고 있다.
그루지야전쟁은 왜 일어났는가?
그루지야는 인구 구성이 복잡하다. 이 지역에는 그루지야인 뿐 아니라 오세트인 압하지아인 러시아인 터키인 등 다수 민족이 혼재하고 있다.
그루지야가 모스크바로부터 독립을 요구하던 90년대 초 남오세치아와 압하지아는 그루지야로부터 독립을 주장하고 자치공화국을 선포했다.
셰바르나제가 대통령일 때는 그루지야와 러시아 관계에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2003년 말 미국서 공부하고 돌아온 젊은 미하일 사카슈빌리(당시 33세)가 셰바르나제를 축출하고 대통령이 된 후부터 노골적으로 친 서방 정책을 추진하면서 그루지야와 크렘린 사이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크렘린은 사카슈빌리의 퇴출을 바라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사카슈빌리가 남오세치아 독립세력을 진압한다는 이유로 병력을 동원했다.
러시아는 그루지야 군대가 민간인을 대량학살한다는 구실로 탱크와 군대를 투입, 그루지야 군과 맞싸웠다. 유럽 언론은 사카슈빌리가 자신의 언론 플레이와 미국의 지원을 과신한 나머지 스스로 판 함정에 빠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러시아가 공산체제를 버리고 자본주의를 채택했는데도 미국은 나토(북대서양 동맹기구)를 구 동구 국가들로 확산했다.
그 뿐 아니라 이제 소연방에 속했던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까지 나토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려 하고 있다. 폴란드 체코와는 미사일방위체제(MD)를 배치하는 협정에 합의했다.
크렘린은 이것이 러시아를 겨냥한 한 미국의 ‘음모’이며 전통적으로 인정돼 온 러시아의 ‘영향권’을 무시한 워싱턴의 러시아 포위정책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러시아 포위정책
그래서 러시아의 앞마당에 있는 나라들이 러시아를 겨냥한 미국의 미사일 방위체제를 구축하고 나토에 가입시키게 되면 모스크바는 행동으로 복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러시아는 친미 그루지야로부터 분리 독립을 선언한 남오세치아와 압하지아를 적극 지원할 것이며 그루지야의 영토주권은 제한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 행동으로 사카슈빌리의 완전한 영토보전 주장을 지지하게 된다면 러시아와의 대결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러시아는 지금 석유와 가스를 무기로 자국의 이익을 해치는 국가에 대해 ‘복수’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러시아를 이해하는 한 가지 열쇠 말이 있다면 그것은 러시아의 국익”이라고 한 처칠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장행훈 신문발전위원회 위원장(동아일보 전 유럽총국장)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북경 올림픽의 개막에 세계인의 관심이 쏠리고 있던 바로 그날, 러시아 남부 코카서스에서는 러시아와 그루지야 사이에 전쟁이 터졌다. 러시아 군대는 한때 그루지야의 친미 사카슈빌리 정권을 위협할 것처럼 보여 서방세계를 긴장시켰다.
유럽연합 지도자들이 부랴부랴 중재에 나서 휴전을 성사시킴으로써 미국과 러시아가 직접 충돌할 위험은 일단 사라졌다고 보지만 러시아를 적대시하는 그루지야에 러시아가 무력 개입할 가능성은 아직도 열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코카서스의 평화는 불안정하다. 미국의 그루지야 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소련 붕괴 이후 지금까지 우호정책을 추구해온 워싱턴과 모스크바 관계가 대립관계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 벌써 이달 하순 예정된 미-러 합동 군사훈련이 취소됐다. 미국의회에서는 2014년의 소치 동계 올림픽을 보이콧하고 러시아의 세계무역기구(WTO)가입을 반대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찍이 영국의 처칠은 “러시아는 불가사의 속의 비밀에 싸인 수수께끼같은 나라라서 예측하기 어려운 나라”라고 말한 일이 있다. 100여개 이상의 민족이 함께 살고 있는 러시아 문제의 복잡성을 비유한 말이다.
러시아와 그루지야가 전쟁을 벌이게 된 원인도 아주 복잡하다. 그루지야는 스탈린의 출생지이며 한국과 소련의 국교 정상화에 결정적 역할을 한 셰바르나제 소련 외상이 독립 후 2003년까지 통치했던 면적 7만㎢, 인구 450만의 작은 나라다.
그러나 카스피아 연안에서 생산되는 석유와 가스를 터키와 유럽으로 수송하는 송유관과 가스관이 통과하는 전략적 요충지로 러시아에는 지정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지역이다.
이 지정학적 위치가 그루지야를 강대국들의 각축장으로 만들었고 오늘날 미국과 러시아의 긴장을 초래한 핵심 원인이 되고 있다.
그루지야전쟁은 왜 일어났는가?
그루지야는 인구 구성이 복잡하다. 이 지역에는 그루지야인 뿐 아니라 오세트인 압하지아인 러시아인 터키인 등 다수 민족이 혼재하고 있다.
그루지야가 모스크바로부터 독립을 요구하던 90년대 초 남오세치아와 압하지아는 그루지야로부터 독립을 주장하고 자치공화국을 선포했다.
셰바르나제가 대통령일 때는 그루지야와 러시아 관계에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2003년 말 미국서 공부하고 돌아온 젊은 미하일 사카슈빌리(당시 33세)가 셰바르나제를 축출하고 대통령이 된 후부터 노골적으로 친 서방 정책을 추진하면서 그루지야와 크렘린 사이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크렘린은 사카슈빌리의 퇴출을 바라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사카슈빌리가 남오세치아 독립세력을 진압한다는 이유로 병력을 동원했다.
러시아는 그루지야 군대가 민간인을 대량학살한다는 구실로 탱크와 군대를 투입, 그루지야 군과 맞싸웠다. 유럽 언론은 사카슈빌리가 자신의 언론 플레이와 미국의 지원을 과신한 나머지 스스로 판 함정에 빠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러시아가 공산체제를 버리고 자본주의를 채택했는데도 미국은 나토(북대서양 동맹기구)를 구 동구 국가들로 확산했다.
그 뿐 아니라 이제 소연방에 속했던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까지 나토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려 하고 있다. 폴란드 체코와는 미사일방위체제(MD)를 배치하는 협정에 합의했다.
크렘린은 이것이 러시아를 겨냥한 한 미국의 ‘음모’이며 전통적으로 인정돼 온 러시아의 ‘영향권’을 무시한 워싱턴의 러시아 포위정책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러시아 포위정책
그래서 러시아의 앞마당에 있는 나라들이 러시아를 겨냥한 미국의 미사일 방위체제를 구축하고 나토에 가입시키게 되면 모스크바는 행동으로 복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러시아는 친미 그루지야로부터 분리 독립을 선언한 남오세치아와 압하지아를 적극 지원할 것이며 그루지야의 영토주권은 제한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 행동으로 사카슈빌리의 완전한 영토보전 주장을 지지하게 된다면 러시아와의 대결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러시아는 지금 석유와 가스를 무기로 자국의 이익을 해치는 국가에 대해 ‘복수’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러시아를 이해하는 한 가지 열쇠 말이 있다면 그것은 러시아의 국익”이라고 한 처칠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장행훈 신문발전위원회 위원장(동아일보 전 유럽총국장)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