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제목: 고종시대의 리더십
저자: 오인환
출판사: 열린책들
우다웨이(武大偉) 중국외교부 부부장은 현재 북핵 6자회담 대표로서 중국의 아시아 외교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우다웨이가 주 한국 중국대사를 지내던 2001년 2월 그의 초청으로 서울 명동의 중국 대사관저에서 몇 사람이 저녁을 먹으며 환담한 적이 있다. 대학서 역사학을 공부한 그는 만주 하르빈 출신으로 동아시아 역사에 조예가 깊었다.
당시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한일 간에 갈등이 있을 때여서 임진왜란이 화제가 되었다. 그는 임진왜란이 비록 조선 땅에서 벌어진 전쟁이지만 동양3국이 모두 참여한 동아시아의 거대한 국제전으로 보고 있었다. 특히 이 전쟁이 명나라 조정을 분열로 몰아넣었던 과정과 그 후 중국역사의 퇴영에 끼친 영향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우리 세대가 중고등학교 국사 수업등을 통해 아는 지식, 즉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고 이에 명나라가 원군을 보내 조선을 도왔다는 단순한 논리와는 생각의 관점이 전혀 딴 판이었다.
그것이 그의 개인적 역사해석이었든 중국 지식인들이 보는 역사관이었든 간에 판세를 읽는 스케일과 잣대가 중국인과 한국인 간에 다르며 그게 오늘날까지도 계속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 한국인들이 임진왜란을 생각할 때 항상 조선과 일본, 조선과 중국과의 양국관계로 인수분해 하는 것에 익숙해 있듯이, 오늘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에서도 한미 한중 한일 관계를 묶어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양국관계로 떼어놓고 보는 경향이 강하다.
임진왜란에 대한 우다웨이의 해석을 문득 떠오르게 하는 책이 있다. 바로 오인환씨가 지난 6월 출간한 ‘고종시대의 리더십’이다.
고종이 조선 26대 왕으로 군림한 것은 1863년이고 일본의 압력으로 퇴위한 것이 1907년이다. 고종은 44년이라는 긴 재위기간을 거치면서 조선조 500년의 종말을 눈앞에서 목도한 비운의 권력자다. 개인의 실패였고, 왕조의 실패였으며, 한 국가의 실패였다.
‘고종시대의 리더십’은 바로 고종재위 44년간에 벌어진 주요 역사적 사건을 권력자를 중심으로 한 위기관리의 관점에서 조명하고 있다. 고종은 100년 전에 존재했던 조선의 군주였다. 상당한 역사적 거리감이 있다. 그럼에도 저자는 고종과 고종의 시대를 위기관리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조명함으로써 그 거리감을 심리적으로 단축시키고 있다.
고종 재위 동안 권력의 중심으로 정치권력을 발휘한 인물은 임금의 아버지로 섭정한 대원군, 권력투쟁으로 대원군을 견제하고 사실상 권력을 잡은 민비 그리고 숱한 정변과 외세의 틈바구니에서 왕권과 주권을 유지하려 했던 고종 등 세 사람이다.
이 책은 고종시대의 역사를 자국중심의 관점에서만 접근하지 않는다. 당시의 국제정세, 즉 조선 청국 일본 등 동양 3국의 대내외 정치적 상황을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조선을 압박 압박해온 외세의 양대 세력인 청나라와 일본을 단순하게 외세 그 자체로만 보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이들 두 나라가 모두 서구열강의 압박을 받고 이에 대처해나가는 과정에서 조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고종 시대 망국의 위기를 초래한 외세개입에서 중심적 역할을 한 인물로 일본의 이토오 히로부미나 청국의 이홍장과 원세개를 빼놓을 수 없다. 저자는 이들 3인의 정치적 성장배경, 자국에서의 권력쟁취과정, 대(對)조선관에 대한 자료를 풍부하게 기술하고 있다. 즉 이들의 위기관리와 조선 권력자들의 위기관리를 글로벌한 측면에서 대비시킴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고종시대의 국가 위기의 본질과 그 심각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저자는 이 책에서 권력의 위기관리와 국가의 위기관리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그 대표적 사례로 고종 초기에 나타난 대원군의 쇄국정책과 고종후기에 일어난 독립협회 강제해산을 들고 있다.
쇄국정책으로 대원군은 잠시 권력을 공고히 할 수 있었지만 그 때문에 조선의 방위기술과 전략은 시대를 거슬러 거꾸로 가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청국과 일본이 서양문물, 특히 군사적으로 서양의 무기와 군사제도를 적극 수용한 것과 정반대의 길을 간 것이다. 저자는 이 사례를 통해 “시대의 큰 흐름을 거스른다면 특정 정권의 위기관리가 반드시 국가발전에 유익한 것은 아니다”란 결론을 내린다.
저자는 독립협회해산을 고종의 역사적 실수로 규정한다. 고종의 재가를 받고 설립된 독립협회가 지속됐다면 구국의 해결사로서 역할을 할 수 있었고, 입헌군주국으로의 길을 닦을 정치세력으로 발전했을 것이라는 가정을 내놓고 있다. 고종이 독립협회를 탄압한 것은 독립협회가 갖고 있는 철학, 즉 군민공치(君民共治)가 왕권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우려에서 드러난 고종의 위기관리의 방식이라는 것이 저자의 해석이다.
독립협회 해산을 보는 저자의 생각은 이렇게 요약된다. 독립협회 해산이 왕권의 위기관리에는 일시적으로 도움이 됐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고종황제와 대한제국을 지키는 데 필요한 전략무기를 스스로 해체한 것이다.
저자 오인환씨는 김영삼 문민정부에서 5년 동안 공보처장관을 지낸 후 10년에 걸쳐 두 권의 책을 썼다.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나 김대중 정부 5년 동안에 준비해서 펴낸 책이 ‘조선왕조에서 배우는 위기관리의 리더십’이고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공부해서 내놓은 책이 ‘위기관리의 관점에서 본 고종시대의 리더십’이다. 저자를 지배한 경력은 두 가지다. 그의 커리어의 대부분은 언론인이었고, 그 후 5년 동안 각료로서 정부에 참여했다. 스스로 권부의 핵심으로 참여하거나 권력행사를 가까운 거리에서 관찰할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 때문에 권력과 정부와 국가를 ‘위기관리’의 관점에서 바라볼 좋은 기회를 많이 가졌고, 몸에 스며든 저널리스트의 필력으로 이 글을 쓸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저자는 스스로 밝혔듯이 이 책을 단순한 역사기술이 아니라 19세기말 고종시대의 위기를 21세기 초 한국의 상황에 반면교사로 삼겠다는 의도를 갖고 쓴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한국현대사의 원형을 ‘고종시대’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100년 전 세계정세에 깜깜했던 은둔의 나라에서 지금은 세계 13위 경제 강국의 반열에 올라섰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구도는 큰 틀의 변화가 없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또한 이것은 많은 지식인들의 시각이기도 하다. 달라진 것은 100년전 쇠퇴하던 중국의 화려한 컴백이다. 저자는 위기관리의 변수로 가장 중시하는 것이 바로 중국이라는 점을 키신저 박사의 견해를 빌려 암시하고 있다.
독자에 따라 이 책을 보는 견해가 한결같을 수는 없다. 일반독자의 입장에서는 고종시대에 명멸한 국내외의 역사적 인물들을 평가하기 위한 저자의 ‘역사여행’을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고 의미있어 보인다.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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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제목: 고종시대의 리더십
저자: 오인환
출판사: 열린책들
우다웨이(武大偉) 중국외교부 부부장은 현재 북핵 6자회담 대표로서 중국의 아시아 외교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우다웨이가 주 한국 중국대사를 지내던 2001년 2월 그의 초청으로 서울 명동의 중국 대사관저에서 몇 사람이 저녁을 먹으며 환담한 적이 있다. 대학서 역사학을 공부한 그는 만주 하르빈 출신으로 동아시아 역사에 조예가 깊었다.
당시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한일 간에 갈등이 있을 때여서 임진왜란이 화제가 되었다. 그는 임진왜란이 비록 조선 땅에서 벌어진 전쟁이지만 동양3국이 모두 참여한 동아시아의 거대한 국제전으로 보고 있었다. 특히 이 전쟁이 명나라 조정을 분열로 몰아넣었던 과정과 그 후 중국역사의 퇴영에 끼친 영향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우리 세대가 중고등학교 국사 수업등을 통해 아는 지식, 즉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고 이에 명나라가 원군을 보내 조선을 도왔다는 단순한 논리와는 생각의 관점이 전혀 딴 판이었다.
그것이 그의 개인적 역사해석이었든 중국 지식인들이 보는 역사관이었든 간에 판세를 읽는 스케일과 잣대가 중국인과 한국인 간에 다르며 그게 오늘날까지도 계속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 한국인들이 임진왜란을 생각할 때 항상 조선과 일본, 조선과 중국과의 양국관계로 인수분해 하는 것에 익숙해 있듯이, 오늘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에서도 한미 한중 한일 관계를 묶어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양국관계로 떼어놓고 보는 경향이 강하다.
임진왜란에 대한 우다웨이의 해석을 문득 떠오르게 하는 책이 있다. 바로 오인환씨가 지난 6월 출간한 ‘고종시대의 리더십’이다.
고종이 조선 26대 왕으로 군림한 것은 1863년이고 일본의 압력으로 퇴위한 것이 1907년이다. 고종은 44년이라는 긴 재위기간을 거치면서 조선조 500년의 종말을 눈앞에서 목도한 비운의 권력자다. 개인의 실패였고, 왕조의 실패였으며, 한 국가의 실패였다.
‘고종시대의 리더십’은 바로 고종재위 44년간에 벌어진 주요 역사적 사건을 권력자를 중심으로 한 위기관리의 관점에서 조명하고 있다. 고종은 100년 전에 존재했던 조선의 군주였다. 상당한 역사적 거리감이 있다. 그럼에도 저자는 고종과 고종의 시대를 위기관리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조명함으로써 그 거리감을 심리적으로 단축시키고 있다.
고종 재위 동안 권력의 중심으로 정치권력을 발휘한 인물은 임금의 아버지로 섭정한 대원군, 권력투쟁으로 대원군을 견제하고 사실상 권력을 잡은 민비 그리고 숱한 정변과 외세의 틈바구니에서 왕권과 주권을 유지하려 했던 고종 등 세 사람이다.
이 책은 고종시대의 역사를 자국중심의 관점에서만 접근하지 않는다. 당시의 국제정세, 즉 조선 청국 일본 등 동양 3국의 대내외 정치적 상황을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조선을 압박 압박해온 외세의 양대 세력인 청나라와 일본을 단순하게 외세 그 자체로만 보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이들 두 나라가 모두 서구열강의 압박을 받고 이에 대처해나가는 과정에서 조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고종 시대 망국의 위기를 초래한 외세개입에서 중심적 역할을 한 인물로 일본의 이토오 히로부미나 청국의 이홍장과 원세개를 빼놓을 수 없다. 저자는 이들 3인의 정치적 성장배경, 자국에서의 권력쟁취과정, 대(對)조선관에 대한 자료를 풍부하게 기술하고 있다. 즉 이들의 위기관리와 조선 권력자들의 위기관리를 글로벌한 측면에서 대비시킴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고종시대의 국가 위기의 본질과 그 심각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저자는 이 책에서 권력의 위기관리와 국가의 위기관리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그 대표적 사례로 고종 초기에 나타난 대원군의 쇄국정책과 고종후기에 일어난 독립협회 강제해산을 들고 있다.
쇄국정책으로 대원군은 잠시 권력을 공고히 할 수 있었지만 그 때문에 조선의 방위기술과 전략은 시대를 거슬러 거꾸로 가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청국과 일본이 서양문물, 특히 군사적으로 서양의 무기와 군사제도를 적극 수용한 것과 정반대의 길을 간 것이다. 저자는 이 사례를 통해 “시대의 큰 흐름을 거스른다면 특정 정권의 위기관리가 반드시 국가발전에 유익한 것은 아니다”란 결론을 내린다.
저자는 독립협회해산을 고종의 역사적 실수로 규정한다. 고종의 재가를 받고 설립된 독립협회가 지속됐다면 구국의 해결사로서 역할을 할 수 있었고, 입헌군주국으로의 길을 닦을 정치세력으로 발전했을 것이라는 가정을 내놓고 있다. 고종이 독립협회를 탄압한 것은 독립협회가 갖고 있는 철학, 즉 군민공치(君民共治)가 왕권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우려에서 드러난 고종의 위기관리의 방식이라는 것이 저자의 해석이다.
독립협회 해산을 보는 저자의 생각은 이렇게 요약된다. 독립협회 해산이 왕권의 위기관리에는 일시적으로 도움이 됐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고종황제와 대한제국을 지키는 데 필요한 전략무기를 스스로 해체한 것이다.
저자 오인환씨는 김영삼 문민정부에서 5년 동안 공보처장관을 지낸 후 10년에 걸쳐 두 권의 책을 썼다.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나 김대중 정부 5년 동안에 준비해서 펴낸 책이 ‘조선왕조에서 배우는 위기관리의 리더십’이고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공부해서 내놓은 책이 ‘위기관리의 관점에서 본 고종시대의 리더십’이다. 저자를 지배한 경력은 두 가지다. 그의 커리어의 대부분은 언론인이었고, 그 후 5년 동안 각료로서 정부에 참여했다. 스스로 권부의 핵심으로 참여하거나 권력행사를 가까운 거리에서 관찰할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 때문에 권력과 정부와 국가를 ‘위기관리’의 관점에서 바라볼 좋은 기회를 많이 가졌고, 몸에 스며든 저널리스트의 필력으로 이 글을 쓸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저자는 스스로 밝혔듯이 이 책을 단순한 역사기술이 아니라 19세기말 고종시대의 위기를 21세기 초 한국의 상황에 반면교사로 삼겠다는 의도를 갖고 쓴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한국현대사의 원형을 ‘고종시대’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100년 전 세계정세에 깜깜했던 은둔의 나라에서 지금은 세계 13위 경제 강국의 반열에 올라섰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구도는 큰 틀의 변화가 없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또한 이것은 많은 지식인들의 시각이기도 하다. 달라진 것은 100년전 쇠퇴하던 중국의 화려한 컴백이다. 저자는 위기관리의 변수로 가장 중시하는 것이 바로 중국이라는 점을 키신저 박사의 견해를 빌려 암시하고 있다.
독자에 따라 이 책을 보는 견해가 한결같을 수는 없다. 일반독자의 입장에서는 고종시대에 명멸한 국내외의 역사적 인물들을 평가하기 위한 저자의 ‘역사여행’을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고 의미있어 보인다.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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