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의 탄생
조승연 지음
더난출판 / 2만8000원
현재의 자본주의 시스템은 유럽의 르네상스 시대에 만들어졌다. 왕과 기사가 농민을 착취해서 부를 나눠 갖던 봉건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슈퍼부자들이 창의력과 아이디어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르네상스 시대에 각종 문화가 발전한 것도 이러한 부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사업가들은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농사법을 개발했고 효율적인 항해를 위한 무역선을 만들었다. 죽음을 무릎 쓰고 미지의 땅에 진출해 유럽에 커피와 사탕수수를 들여놓아 유럽에 신상품을 유통시키기도 했다.
‘비즈니스의 탄생’의 저자인 조승연씨는 이들을 ‘1세대 비즈니스 리더’라고 지칭했다. 조씨는 영국의 경영 컨설팅 및 리더십 교육회사 UFM의 최연소 상임이사다. 저자는 부를 벌어들인 이들에게는 사람을 위한 사람에 의한 사람 냄새나는 사업을 해야 부가 저절로 굴어 들어오고, 더불어 잘 먹고 잘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만 오랫동안 부가 달아나지 않는다 ‘불변의 법칙’이 있다고 말한다. 성공적인 비즈니스는 사람들을 좀 더 편하고 잘살게 하며,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해 성취감을 준다.
이 책에는 최강의 금융권력자인 메디치 가문과 정치권력을 이용한 자크 쾨르, 해상왕 엔히크, 최초의 미디어 재벌인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 현대금융업의 아버지 야콥 푸거, 부동산 재벌 에르난 코르테스 등을 소개했다.
이중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자크 쾨르다. 정치와 경제를 떼려야 뗄 수 없는 한국의 기업인들에게는 프랑스 역사상 최대 부자인 자크 쾨르의 성공 비결에 대해 알고 싶을 것이다.
쾨르는 새로운 항구를 열어 경제 인프라를 구축해 가난한 어촌을 부유한 상업도시로 성장시켰다. 이 과정에서 쾨르는 당시 정치권력인 샤를 7세를 적절히 이용했다. 1448년 쾨르가 프랑스 왕실에 빌려준 돈은 20만 황금에쿠, 현재 화폐로 환산하면 10조원이 넘는 규모다. 경제학자들은 당시 쾨르의 자산은 현재 프랑스 최대 상장기업인 ‘CAC40’의 증시 가치를 합한 것보다 크다고 한다.
정치와 권력에 근접해 있다면 적을 만들게 되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 것이 일반적이다. 권력의 단맛과 늘어난 허영심이 파멸의 길로 안내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부분 돈을 계급상승의 도구로 봤지만 쾨르는 계급상승을 돈 버는 도구로 봤다.
프랑스는 부르고뉴-영국 연합국과 전쟁을 치르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했고, 왕실의 돈을 불릴 수 있는 사람으로 쾨르를 꼽았다. 쾨르는 금기시했던 이슬람교도와의 거래를 추진했다. 왕에게 자기 사촌을 이집트 대사로 임명시켜줄 것을 요구했고 교황을 직접 만나 ‘그리스도 교구의 부를 늘리는 일’이라며 이교도(이집트, 터키, 시리아 등 이슬람교도들)와의 상거래를 허락받는다. 군수사업에도 눈을 돌려 광석을 수입해 무기를 만들고 모피로 만든 갑옷을 발명하기도 했다.
지금 같으면 비리 사건으로 대서특필되고 사회적 지탄을 받을 일이다. 그러나 쾨르는 정치권력과 인맥을 목적에 맞게 관리를 하면서 비교적 장수했다. 하지만 쾨르의 재산을 탐낸 샤를 7세의 배신으로 그는 재산을 모두 뺏기고 추방당했다. 분산투자가 아닌 왕에게 투자를 집중했기 때문이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조승연 지음
더난출판 / 2만8000원
현재의 자본주의 시스템은 유럽의 르네상스 시대에 만들어졌다. 왕과 기사가 농민을 착취해서 부를 나눠 갖던 봉건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슈퍼부자들이 창의력과 아이디어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르네상스 시대에 각종 문화가 발전한 것도 이러한 부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사업가들은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농사법을 개발했고 효율적인 항해를 위한 무역선을 만들었다. 죽음을 무릎 쓰고 미지의 땅에 진출해 유럽에 커피와 사탕수수를 들여놓아 유럽에 신상품을 유통시키기도 했다.
‘비즈니스의 탄생’의 저자인 조승연씨는 이들을 ‘1세대 비즈니스 리더’라고 지칭했다. 조씨는 영국의 경영 컨설팅 및 리더십 교육회사 UFM의 최연소 상임이사다. 저자는 부를 벌어들인 이들에게는 사람을 위한 사람에 의한 사람 냄새나는 사업을 해야 부가 저절로 굴어 들어오고, 더불어 잘 먹고 잘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만 오랫동안 부가 달아나지 않는다 ‘불변의 법칙’이 있다고 말한다. 성공적인 비즈니스는 사람들을 좀 더 편하고 잘살게 하며,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해 성취감을 준다.
이 책에는 최강의 금융권력자인 메디치 가문과 정치권력을 이용한 자크 쾨르, 해상왕 엔히크, 최초의 미디어 재벌인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 현대금융업의 아버지 야콥 푸거, 부동산 재벌 에르난 코르테스 등을 소개했다.
이중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자크 쾨르다. 정치와 경제를 떼려야 뗄 수 없는 한국의 기업인들에게는 프랑스 역사상 최대 부자인 자크 쾨르의 성공 비결에 대해 알고 싶을 것이다.
쾨르는 새로운 항구를 열어 경제 인프라를 구축해 가난한 어촌을 부유한 상업도시로 성장시켰다. 이 과정에서 쾨르는 당시 정치권력인 샤를 7세를 적절히 이용했다. 1448년 쾨르가 프랑스 왕실에 빌려준 돈은 20만 황금에쿠, 현재 화폐로 환산하면 10조원이 넘는 규모다. 경제학자들은 당시 쾨르의 자산은 현재 프랑스 최대 상장기업인 ‘CAC40’의 증시 가치를 합한 것보다 크다고 한다.
정치와 권력에 근접해 있다면 적을 만들게 되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 것이 일반적이다. 권력의 단맛과 늘어난 허영심이 파멸의 길로 안내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부분 돈을 계급상승의 도구로 봤지만 쾨르는 계급상승을 돈 버는 도구로 봤다.
프랑스는 부르고뉴-영국 연합국과 전쟁을 치르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했고, 왕실의 돈을 불릴 수 있는 사람으로 쾨르를 꼽았다. 쾨르는 금기시했던 이슬람교도와의 거래를 추진했다. 왕에게 자기 사촌을 이집트 대사로 임명시켜줄 것을 요구했고 교황을 직접 만나 ‘그리스도 교구의 부를 늘리는 일’이라며 이교도(이집트, 터키, 시리아 등 이슬람교도들)와의 상거래를 허락받는다. 군수사업에도 눈을 돌려 광석을 수입해 무기를 만들고 모피로 만든 갑옷을 발명하기도 했다.
지금 같으면 비리 사건으로 대서특필되고 사회적 지탄을 받을 일이다. 그러나 쾨르는 정치권력과 인맥을 목적에 맞게 관리를 하면서 비교적 장수했다. 하지만 쾨르의 재산을 탐낸 샤를 7세의 배신으로 그는 재산을 모두 뺏기고 추방당했다. 분산투자가 아닌 왕에게 투자를 집중했기 때문이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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