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원이 돌아왔다. 가치투자로 이름을 날리다 가치투자로 잠시동안 만신창이가 됐던 그가 예전의 모습 그대로 우리 곁에 섰다.
사실 그는 증권가를 떠난 게 아니었다. 그의 투자철학인 ‘가치투자’가 잠시 시장에서 사라졌을 뿐이었다. 그의 이름이 다시 증권가에 회자되는 이유는 가치투자를 짓눌렀던 성장주 대세론이 시장에 피바람을 일으키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광란의 기술주 폭등장
이채원의 가치투자에 철퇴를 가한 건 지난해 10월부터 불기 시작한 ‘광란의 기술주 폭등장’이었다. 나스닥과 코스닥이 폭등하는 장세에서 그가 외치는 가치투자는 허공의 메아리였다. 기술주 맏형 삼성전자의 시가총액 비중이 20%를 넘어서고 100만원 하던 SK텔레콤이 400만원∼500만원으로 치솟았지만 시장은 전통 가치주들에 대해서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코스닥은 더 했다. 5000원대였던 주식이 30만원대로 뛰어오르는 폭등장이 99년 10월 이후 4개월 동안 계속됐다.
“지수는 올라가는데 제가 운용하는 펀드수익률은 떨어지는 거예요. 고객 입장에서는 도무지 납득이 안가죠. 펀드수익률이 지수랑 비슷하게 움직여야 하는데 거꾸로 가니...”
그가 운용하던 벨류시리즈 펀드는 성장주를 편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고객들의 돈을 모을 때 이채원은 가치주에 투자해 수익을 낼 것이라고 고객과 약속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투자설명서에 가치투자를 한다고 써놓고 성장주를 사 모을 수는 없었다는 게 이채원의 말이다. 또 하나 이유는 성장주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에게는 성장주들을 검증할 능력이 없었다. .
“농심은 라면, 롯데는 껌, 포철은 쇠, 한전은 전기 간단합니다. 그런데 인터넷이나 기술주는 모르겠어요. 어느 기업에 투자하려면 그 기업에 대해 철저히 분석해 모든 걸 꿰뚫고 있어야 하는데, 기술주에 대해서는 인터넷 전문 애널리스트나 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만큼 분석해낼 자신이 없었어요. 내가 모르는 기업에 어떻게 투자할 수 있겠어요.”
당시 가치투자의 결과는 참혹했다. 고객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자신이 없으면 그만둬라’‘수익 못 내면 다른 사람 시키지 끝가지 그러고 있냐’‘한전은 왜 들고 있나. 팔아서 코스닥 사라’ 그에게 쏟아진 비난은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찼다. 특히 단위형 상품이었던 스팟펀드 VIP 2호는 만기가 2월이었기 때문에 고객들의 항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고객들의 항의도 견딜 수 없었지만 건강이 버텨주질 않았다. 결국 그는 자리를 떠나야 했다.
성장주는 영원하지 않았다
우선 회사에 휴직서를 제출하고 한달 정도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그가 회사로 복귀한 것은 지난 3월. 그 때 그는 펀드 운용에서 손을 완전히 뗀 상태였다. 그가 운용하던 펀드들은 펀드매니저 세 사람이 나눠 운용하고 있었다.
“복귀한 후 회사를 떠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동원을 떠날 수는 없었습니다. 다른 투신사로 옮기면 신탁재산을 운용해야 하잖습니까. 다른 데 가서 동원에서 운용하던 스타일 그대로 버젓이 운용하면 모양세가 안 좋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좀 자중한다는 마음으로 고유계정을 운용하는 동원증권 주식운용팀로 옮겼습니다. 더 이상 고객이 맡긴 돈을 굴릴 자신도 없었지만 소신껏 매매할 수 있는 회사자산을 운용하는 게 당시 상황에서는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성장주의 전성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가 펀드운용에서 손을 뗄 때 이미 성장주는 상투를 치고 아래로 꺾이는 상황이었다. 300선 가까이 갔던 코스닥은 지난해 말 이후부터 꺾여 힘을 잃어 가는 상황이었다.
포기할 수 없는 가치투자
지난 4월 동원증권 주식운용팀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채원은 7% 정도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4월 종합지수가 860선이었다가 현재 550선도 지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7% 수익률은 그런 대로 이채원이라는 이름석자를 유지할만한 수준이다.
한 때 가치투자로 만신창이가 된 그이지만 그의 투자철학인 가치투자 원칙은 어떤 상황이라도 버릴 수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에게 주식투자란 단순히 유가증권을 사는 게 아니고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투자를 하려면 그 기업을 꿰뚫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는 잘 모르는 종목은 매매하지 않는다.
“전 앞으로도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 투자하는 짓은 하지 않으려 합니다. 리스크가 너무 커요. 또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리스크가 현재 주가에 이미 반영돼 있으면 어떡합니까. 미래를 예측하기보다 기존에 있는 현상에서 저평가돼 있는 주식 기술주보다는 생활에 필요한 주식을 골라 투자하는 게 저에게 맞는 투자원칙입니다.”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