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과 결혼한 외국인이 경험한 추석은 힘들면서도 정겨운 날이다. 결혼해 몇 년째 생활해 오면서 차례지낼 음식 장만하고 가족들 눈치보느라 고생도 많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젠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특히 한국인으로 국적이 바뀐후 처음 추석 맞는 사람들은 추석이 더 기다려 진다고 했다. 미얀마 출신 주부 마야민퉤씨와 인도출신 사업가 샴쿠마르씨도 국적이 바뀐후 처음 추석을 맞는다.
◆마야민퉤(한국명: 민다연)씨 - 미얀마에서 귀화한 주부
“추석날이면 성묘다니느라 멀미 날때가 많아요”
충남 논산에 사는 마야민퉤(33)씨는 한국에서 맞는 추석이 올해로 7번째다. 마야민퉤씨는 그동안 추석이 되면 하루종일 성묘다니느라 바빴다. 시아버지 산소가 강원도 홍천에 있고 시어머니 산소가 충북 청주에 있기 때문에 추석날 당일엔 하루 종일 차타고 성묘 다니는 것이다. 아침 차례를 지내기 바쁘게 성묘를 다니다 보면 마야민퉤씨는 멀미가 날 지경이라고 한다. 마야민퉤씨는 “다 좋은데 멀리 성묘다니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마야민퉤씨가 한국에서 처음 맞았던 추석은 너무 힘들었다. 남편 박동천(45)씨가 5남1녀중 다섯째이기 때문에 마야민퉤씨는 추석을 지내기 위해서 전날 큰집인 성남을 갔다. 그때 마야민퉤씨는 한국말과 한국요리를 못했기 때문에 부엌에서 일하는 동서들 눈치만 봤다. 뭘 해야 할지 몰라 혼자서 전전긍긍하던 마야민퉤씨는 가만있으면 안될 것 같아 하루종일 싱크대에 서서 설거지를 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매년 추석때 마야민퉤씨가 하는 일은 설거지로 고정됐다.
이제 마야민퉤씨는 추석이 그다지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다. 멀리 떨어져 살던 형제들이 하루전날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우는 모습이 너무 정겹다. 또 처음엔 낯설게 대했던 동서들과 시아주버니들도 이젠 자신을 칭찬해 주기 때문에 추석이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올해 추석은 마야민퉤씨에겐 특별한 의미가 있다. 한국국적을 취득한 후 처음 맞는 추석이기 때문이다. 지난 1998년 미얀마에서 일하던 남편 박동천씨와 결혼한 마야민퉤씨는 2002년 한국에 들어왔다. 당초 마야민퉤씨의 남편 박씨는 한국에서 계속 살기보다 미얀마로 돌아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바로 귀화신청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주민등록상에 엄마 이름이 없으니 불편한일이 많아졌다. 그는 “마치 엄마없는 아이 처럼 느껴져 눈물날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결국 귀화신청을 했고 올해 3월 한국국적을 얻었다.
한국 국적을 얻은 마야민퉤씨는 “가족들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올해 추석을 앞두고 마야민퉤씨는 자신이 밭에서 직접 재배한 호박, 고구마, 고추 등 무공해 농산물을 챙기고 있다. 마야민퉤씨는 “이젠 제가 동서들에게 시어머니가 된 것 같아요”라며 웃었다.
◆샴쿠마르씨 - 인도에서 귀화한 기업 컨설턴트
“처가집 어른들 잔소리 듣기 힘들었습니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샴쿠마르(38)씨는 아내 임상희(38)씨와 결혼 후 6번째 추석을 맞는다. 샴쿠마르씨는 한국에서 추석을 보낼때면 처가집을 간다. 그때마다 제일 힘든 일이 처가 식구들의 잔소리 듣기였다. 특히 장모가 외국인 사위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장모는 샴쿠마르씨를 볼때마다 “내 딸이 남들처럼 한국사람하고 결혼하지 않고 외국 사람과 결혼해 고생한다”며 불만을 쏟아내곤 했다.
샴쿠마르씨는 손위 동서와 마찰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손위 동서가 늘 나를 가르치려는 것 처럼 잔소리를 해 싫었다”고 한다. 샴쿠마르씨는 이런 잔소리 때문에 연휴라는 핑계를 대고 추석때 아내 임씨와 함께 인도에 가버리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샴쿠마르씨도 이젠 차츰 한국 문화에 익숙해지고 처가 식구들에 대한 불편한 마음도 사라지고 있다. 아내 말처럼 어른들 잔소리를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기도 한다”고 말하며 웃었다. 한국 문화에 대한 호감도 생겨났다. 특히 추석이나 설날 가족들끼리 모여 차례를 지키는 문화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했다. 샴쿠마르씨는 “사업상 외국을 많이 다니는데 한국처럼 자신의 문화를 철저히 지키는 나라는 거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샴쿠마르씨 마음이 이처럼 바뀐데는 작년초에 태어난 아들과 작년 10월 취득한 한국 국적이 큰 영향을 미쳤다. 아들이 태어나면서는 장모의 잔소리가 거의 없어졌다. 샴쿠마르씨는 장모님 잔소리가 준 이유에 대해 “장모님이 아들을 예뻐해 나에 대해 신경을 안쓰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국적을 바꾸면서 그가 하는 기업비지니스 컨설팅 사업이 잘 돼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생겼다. 한국국적을 취득한후 샴쿠마르씨는 자신을 대하는 한국인들의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는 느낌을 갖는다. 예전과는 달리 ‘우리 한국인’이라 생각하고 더 믿는다는 것이다.
한국 국적을 취득한 후 샴쿠마르씨는 올해 첫 번째 추석을 맞는다. 그는 “올해 추석엔 처갓집에 가서도 예전보다 덜 불편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상선 기자 ssle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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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한국인으로 국적이 바뀐후 처음 추석 맞는 사람들은 추석이 더 기다려 진다고 했다. 미얀마 출신 주부 마야민퉤씨와 인도출신 사업가 샴쿠마르씨도 국적이 바뀐후 처음 추석을 맞는다.
◆마야민퉤(한국명: 민다연)씨 - 미얀마에서 귀화한 주부
“추석날이면 성묘다니느라 멀미 날때가 많아요”
충남 논산에 사는 마야민퉤(33)씨는 한국에서 맞는 추석이 올해로 7번째다. 마야민퉤씨는 그동안 추석이 되면 하루종일 성묘다니느라 바빴다. 시아버지 산소가 강원도 홍천에 있고 시어머니 산소가 충북 청주에 있기 때문에 추석날 당일엔 하루 종일 차타고 성묘 다니는 것이다. 아침 차례를 지내기 바쁘게 성묘를 다니다 보면 마야민퉤씨는 멀미가 날 지경이라고 한다. 마야민퉤씨는 “다 좋은데 멀리 성묘다니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마야민퉤씨가 한국에서 처음 맞았던 추석은 너무 힘들었다. 남편 박동천(45)씨가 5남1녀중 다섯째이기 때문에 마야민퉤씨는 추석을 지내기 위해서 전날 큰집인 성남을 갔다. 그때 마야민퉤씨는 한국말과 한국요리를 못했기 때문에 부엌에서 일하는 동서들 눈치만 봤다. 뭘 해야 할지 몰라 혼자서 전전긍긍하던 마야민퉤씨는 가만있으면 안될 것 같아 하루종일 싱크대에 서서 설거지를 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매년 추석때 마야민퉤씨가 하는 일은 설거지로 고정됐다.
이제 마야민퉤씨는 추석이 그다지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다. 멀리 떨어져 살던 형제들이 하루전날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우는 모습이 너무 정겹다. 또 처음엔 낯설게 대했던 동서들과 시아주버니들도 이젠 자신을 칭찬해 주기 때문에 추석이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올해 추석은 마야민퉤씨에겐 특별한 의미가 있다. 한국국적을 취득한 후 처음 맞는 추석이기 때문이다. 지난 1998년 미얀마에서 일하던 남편 박동천씨와 결혼한 마야민퉤씨는 2002년 한국에 들어왔다. 당초 마야민퉤씨의 남편 박씨는 한국에서 계속 살기보다 미얀마로 돌아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바로 귀화신청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주민등록상에 엄마 이름이 없으니 불편한일이 많아졌다. 그는 “마치 엄마없는 아이 처럼 느껴져 눈물날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결국 귀화신청을 했고 올해 3월 한국국적을 얻었다.
한국 국적을 얻은 마야민퉤씨는 “가족들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올해 추석을 앞두고 마야민퉤씨는 자신이 밭에서 직접 재배한 호박, 고구마, 고추 등 무공해 농산물을 챙기고 있다. 마야민퉤씨는 “이젠 제가 동서들에게 시어머니가 된 것 같아요”라며 웃었다.
◆샴쿠마르씨 - 인도에서 귀화한 기업 컨설턴트
“처가집 어른들 잔소리 듣기 힘들었습니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샴쿠마르(38)씨는 아내 임상희(38)씨와 결혼 후 6번째 추석을 맞는다. 샴쿠마르씨는 한국에서 추석을 보낼때면 처가집을 간다. 그때마다 제일 힘든 일이 처가 식구들의 잔소리 듣기였다. 특히 장모가 외국인 사위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장모는 샴쿠마르씨를 볼때마다 “내 딸이 남들처럼 한국사람하고 결혼하지 않고 외국 사람과 결혼해 고생한다”며 불만을 쏟아내곤 했다.
샴쿠마르씨는 손위 동서와 마찰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손위 동서가 늘 나를 가르치려는 것 처럼 잔소리를 해 싫었다”고 한다. 샴쿠마르씨는 이런 잔소리 때문에 연휴라는 핑계를 대고 추석때 아내 임씨와 함께 인도에 가버리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샴쿠마르씨도 이젠 차츰 한국 문화에 익숙해지고 처가 식구들에 대한 불편한 마음도 사라지고 있다. 아내 말처럼 어른들 잔소리를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기도 한다”고 말하며 웃었다. 한국 문화에 대한 호감도 생겨났다. 특히 추석이나 설날 가족들끼리 모여 차례를 지키는 문화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했다. 샴쿠마르씨는 “사업상 외국을 많이 다니는데 한국처럼 자신의 문화를 철저히 지키는 나라는 거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샴쿠마르씨 마음이 이처럼 바뀐데는 작년초에 태어난 아들과 작년 10월 취득한 한국 국적이 큰 영향을 미쳤다. 아들이 태어나면서는 장모의 잔소리가 거의 없어졌다. 샴쿠마르씨는 장모님 잔소리가 준 이유에 대해 “장모님이 아들을 예뻐해 나에 대해 신경을 안쓰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국적을 바꾸면서 그가 하는 기업비지니스 컨설팅 사업이 잘 돼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생겼다. 한국국적을 취득한후 샴쿠마르씨는 자신을 대하는 한국인들의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는 느낌을 갖는다. 예전과는 달리 ‘우리 한국인’이라 생각하고 더 믿는다는 것이다.
한국 국적을 취득한 후 샴쿠마르씨는 올해 첫 번째 추석을 맞는다. 그는 “올해 추석엔 처갓집에 가서도 예전보다 덜 불편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상선 기자 ssle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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