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만남과 깔끔한 헤어짐
전대환
(대구참여연대 공동대표, 구미안디옥교회 목사)
올해도 좋은 계절, 좋은 명절이 왔다. ‘명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만남’이다. 만남을 위해서, 명절마다 고속도로에는 엄청난 차량들이 몰려든다.
만남이 없는 명절은 축복의 절기가 아니라 슬픔의 절기다. 살림살이의 어려움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이들, 이별로 인해서 마음 아파하는 이들, 가까운 이들의 죽음으로 인해서 애통해하는 이들, 지리적인 이유 때문에, 질병 때문에, 그리고 일 때문에 복된 만남을 얻지 못하는 이들에게도 이번 명절이 희망의 절기가 되면 좋겠다.
‘만남’에는 일상의 만남, 반가운 만남, 껄끄러운 만남이 있다. 삶 속에서 이 세 가지 만남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반가운 만남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일상적인 만남도 늘 있는 일이니까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껄끄러운 만남, 만나기 싫은 사람을 만나는 것, 그것이 문제다.
며느리가 시댁에 가는 것은 대체로 ‘껄끄러운 만남’인 것 같다. 그렇게 어려운 자리에 가서 껄끄러운 만남을 견디고 있는데도 남자들은 거들어줄 생각도 않고 술만 마신다든지, 앉아서 TV만 본다든지, 그러면 명절 음식 준비하다가 꼬치에 고기를 끼우는 대신, 남편을 끼워버리고 싶은 마음이 든단다. 남편들은 조심해야겠다.
‘시댁 문화’가 많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시’자 붙은 것만으로도 며느리들은 불편하다. 남자들이야 “하루 이틀 가는 것도 아닌데, 뭘 그러느냐? 시집에 가면 누가 잡아먹기라도 하느냐?” 하고 항변하지만, 아무리 잘 해줘도 시댁은 시댁인 걸 어쩌랴?
하긴 이제 세월이 바뀌어서 남자들도 처가에 가면 장모 눈치를 많이 봐야 하고, 시어머니들도 며느리 눈치를 봐야 하는 일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이 껄끄러운 만남을 잘 해소하는 사람이 집안에 있다면 그는 집안의 보배다. 시어머니가 됐든, 며느리가 됐든, 어려워하는 상대를 어렵지 않게 해주는 것, 만나기 껄끄러워하는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 이것이 그런 보배들이 가진 멋진 기술이다.
어떻게 가능할까. 일단 껄끄러운 그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내 편인 사람은 틀린 말을 해도 봐줄 수 있지만, 내 편이 아닌 사람은 옳은 말을 해도 얄밉다. 우리 정서가 그렇다. ‘편 가르기’가 썩 내키지는 않더라도 평화를 위한 것이라면 한 번 해봄직 하지 않을까.
시어머니는 아들 편이 아니라 며느리 편이 되고, 장모는 딸 편이 아니라 사위 편이 되는 구도가 형성되면 껄끄러움은 쉽게 사라진다. 두 눈 질끈 감고 일단 이렇게 편먹기를 하면 그 다음 문제들은 의외로 술술 풀린다. 누가 먼저 편먹기를 시작하면 될까. 시어머니든 며느리든, 장모든 사위든, 불편함을 많이 느끼는 쪽에서 먼저 하면 된다.
만남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헤어짐이다. “사랑만 남겨놓고 떠나가느냐, 얄미운 사람…” 하는 유명한 노래를 요즘은 이렇게 패러디해서 부른단다. “설거지만 남겨놓고 떠나가느냐, 얄미운 동서….” 날아다니는 새는 앉는 자리가 깨끗해야 하지만 사람은 떠난 자리가 깨끗해야 한다고 했다.
사람 떠난 자리가 너절너절하면 그것처럼 추한 것도 없다. 내 뒤처리를 내가 하면 괜찮은데, 내 뒤처리를 남이 하게 되면 그 때부터 짜증이 나게 되어 있다. 화장실에서 내 뒤를 내가 닦으면 별 감각이 없지만 남의 뒤를 내가 닦아줘야 한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끔찍한가.
설거지를 하면서 접시를 닦을 때 안쪽도 물론 잘 닦아야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신경을 써서 닦아야 할 곳이 밑바닥이다. 그래야 겹쳐서 쌓아 놓을 때 다른 접시에 때가 안 묻게 된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 있어서도 뒤가 깔끔해야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또 그래야 다음에 만날 때 깔끔하게 만날 수 있다.
하늘이 하루가 다르게 높이 올라가고 있다. 가볍게 올라가는 하늘처럼, 내가 먼저 마음을 비우고 집안의 보배가 되어서 멋진 만남과 깔끔한 헤어짐을 주도한다면 온 가족의 기분이 모두모두 높이높이 올라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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