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의약분업 정착을 위한 시민운동본부’가 의료계 폐업을 “국민 생명을 담보로
한 집단 인질극”으로 공격한데 대해, 전공의 비대위는 “의료계 투쟁은 잘못된 의료정책에
대한 항거이며 정부의 사고를 전환시키고자 하는 사활을 건 투쟁”이라고 반박했다.
지난해까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현실로 나타난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 의료계의 응답은 비장하다. 인천사랑병원 이왕준 원장은 “의약분업 도입에서 빚
어진 일시적 갈등이 아니라 30여년간 곪고 누적된 문제들의 전면적 표출”이라고 했다.
30년간 곪은 문제들의 표출
의사들을 막가파식 집단행동으로 내몬 뿌리는 정부의 획일적인 저수가정책으로 지적되고 있
다. 77년 의료보험제도가 시행된 이래 다른 나라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낮은 보험료 수
준을 무리하게 유지해 의료제도의 파행과 왜곡을 낳았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보험료는 98년 표준보수 월액 기준 3.27%로 독일 13.4%와 프랑스 18.3%, 일
본 8.5%에 비해 크게 낮으며, 대만의 8%와 비교해도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세대당 월평균
보험료는 3만8000원으로, 평균수입 224만원의 2%에도 못미친다.
수가조정은 77년 이후 23번이 있었으나 98년까지 인상율은 523.8%로, 소비자물가보다 낮은
인상율을 보이다가 98년에야 겨우 소비자물가지수 482.4%를 상회했다. 경제기획원이 소비자
물가보다 상승률이 높아서는 안된다는 ‘불문율’로 억제해 왔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의보수가가 원가에 턱없이 못미치는 기형적 체계가 형성됐다. 97년 10월 보건복지
부 의사협회 병원협회 치과의사협회의 공동 연구용역인 ‘의료보험 수가구조개편을 위한 상
대가치 개발’에서 의보수가의 원가보존율이 64.8%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의사가 100원을 투입해 환자를 진료하는 경우 의보수가로 보상받는 금액이 64.8원에 불과하
다는 것이다. 환자를 많이 진료하면 할수록 의사는 손해라는 결론이다.
그동안 의사와 병원은 손실분을 약가마진으로 보상 받았다. 보건복지부는 약가마진을 25%
까지 허용했으나 실제로는 50%에 이르렀다. 전체 매출액에서 약 판매 비중이 동네의원의
경우 40%, 특히 내과 소아과는 50%를 웃돌았으니 약가마진은 의사들의 생명줄에 해당했다.
세브란스, 내과 전공의 모집미달
때문에 지난해 11월15일 단행된 약가인하조치는 의료계에 엄청난 충격을 던졌다. 30% 약가
인하 대신 9%의 수가인상과 3.4%의 의약품관리료 신설을 했지만 의사들은 공황상태에 빠
져들었다. 의약분업으로 약을 아예 팔지 못하면 동네의원 30%가 망한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약가 의존성이 높은 내과 소아과 등은 졸지에 비인기과목으로 전락했다. 금년 신촌 세브란
스병원의 내과 전공의 모집에서 초유의 미달사태가 벌어졌다. 반면 약가 의존성이 낮고 의
료보험 비중이 작은 안과 피부과 성형외과가 인기과목으로 떠올랐다.
또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진료를 회피하는 의사들이 늘었다. 분만을 피하는 산부인과가 대표
적인 경우다. 10여 시간 기다려서 애기를 받아야 겨우 4만3000원의 분만료가 인정된다. 의사
들의 전문적 노동력이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게 의료계의 항변이다.
반면 병원들은 의료보험에 적용되지 않는 상품의 개발에 나서고 있다. 종합건강진단이나 산
부인과 불임시술이 그것이다. MRI 등 고가의 의료장비 도입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비의료
보험 부분을 통해 적자를 메우려는 시도다.
게다가 96년부터 시작된 의료보험의 재정적자도 의사들의 위기의식을 부채질했다. 94년부터
98년까지 보험료는 평균 12.2% 증가한 반면, 보험급여비는 20.3%가 증가해 재정수지가 연
차적으로 악화됐다.
지난해 9월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당기수지 적자가 96년 877억원, 97년 3820억원, 99년
1조828억원(추정) 등으로 매년 증가해 왔다. 지난해 의료보호환자의 진료비도 2354억원이나
체불돼 병원의 재정을 악화시켰다.
“이보다 더 욕먹을 수는 없다”
결국 이런 의료계의 위기의식은 의약분업 실시를 계기로 폭발했다. 당장 약을 팔 수 없게
된 동네의원의 경우 지난해보다 수익이 20∼25% 가량 감소하게 됐다. 생존의 기로에 섰다
는 절박감이 의사들을 엄습했다.
의료계의 전면폐업을 하루 앞둔 지난 10일, 보건복지부는 처음으로 의보수가가 원가에 못미
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처방료 62.9%, 진찰료 23.2% 인상과 함께 원가의 80% 수준인 현
행 보험수가를 내년 1월1일까지 90%, 다시 1년뒤에 100% 수준으로 현실화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시민들의 반발도 거세다. 고소득층인 의사들의 기득권을 인정하기 위해
국민을 희생시키는 조치라는 비판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동시에 의사들은 즉시 본업에
복귀해야 한다는 격앙된 목소리가 튀어나오고 있다.
언론과 시민의 일방적 비난에 대해 의사들은 “이보다 더 욕먹을 수는 없다”는 막가파식
정서로 대응하고 있다. 의료대란은 여전히 ‘출구없는 터널’로, 의사들에게 환자의 신음소
리가 크게 들리는 지혜를 요구하고 있는 때다.
한 집단 인질극”으로 공격한데 대해, 전공의 비대위는 “의료계 투쟁은 잘못된 의료정책에
대한 항거이며 정부의 사고를 전환시키고자 하는 사활을 건 투쟁”이라고 반박했다.
지난해까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현실로 나타난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 의료계의 응답은 비장하다. 인천사랑병원 이왕준 원장은 “의약분업 도입에서 빚
어진 일시적 갈등이 아니라 30여년간 곪고 누적된 문제들의 전면적 표출”이라고 했다.
30년간 곪은 문제들의 표출
의사들을 막가파식 집단행동으로 내몬 뿌리는 정부의 획일적인 저수가정책으로 지적되고 있
다. 77년 의료보험제도가 시행된 이래 다른 나라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낮은 보험료 수
준을 무리하게 유지해 의료제도의 파행과 왜곡을 낳았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보험료는 98년 표준보수 월액 기준 3.27%로 독일 13.4%와 프랑스 18.3%, 일
본 8.5%에 비해 크게 낮으며, 대만의 8%와 비교해도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세대당 월평균
보험료는 3만8000원으로, 평균수입 224만원의 2%에도 못미친다.
수가조정은 77년 이후 23번이 있었으나 98년까지 인상율은 523.8%로, 소비자물가보다 낮은
인상율을 보이다가 98년에야 겨우 소비자물가지수 482.4%를 상회했다. 경제기획원이 소비자
물가보다 상승률이 높아서는 안된다는 ‘불문율’로 억제해 왔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의보수가가 원가에 턱없이 못미치는 기형적 체계가 형성됐다. 97년 10월 보건복지
부 의사협회 병원협회 치과의사협회의 공동 연구용역인 ‘의료보험 수가구조개편을 위한 상
대가치 개발’에서 의보수가의 원가보존율이 64.8%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의사가 100원을 투입해 환자를 진료하는 경우 의보수가로 보상받는 금액이 64.8원에 불과하
다는 것이다. 환자를 많이 진료하면 할수록 의사는 손해라는 결론이다.
그동안 의사와 병원은 손실분을 약가마진으로 보상 받았다. 보건복지부는 약가마진을 25%
까지 허용했으나 실제로는 50%에 이르렀다. 전체 매출액에서 약 판매 비중이 동네의원의
경우 40%, 특히 내과 소아과는 50%를 웃돌았으니 약가마진은 의사들의 생명줄에 해당했다.
세브란스, 내과 전공의 모집미달
때문에 지난해 11월15일 단행된 약가인하조치는 의료계에 엄청난 충격을 던졌다. 30% 약가
인하 대신 9%의 수가인상과 3.4%의 의약품관리료 신설을 했지만 의사들은 공황상태에 빠
져들었다. 의약분업으로 약을 아예 팔지 못하면 동네의원 30%가 망한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약가 의존성이 높은 내과 소아과 등은 졸지에 비인기과목으로 전락했다. 금년 신촌 세브란
스병원의 내과 전공의 모집에서 초유의 미달사태가 벌어졌다. 반면 약가 의존성이 낮고 의
료보험 비중이 작은 안과 피부과 성형외과가 인기과목으로 떠올랐다.
또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진료를 회피하는 의사들이 늘었다. 분만을 피하는 산부인과가 대표
적인 경우다. 10여 시간 기다려서 애기를 받아야 겨우 4만3000원의 분만료가 인정된다. 의사
들의 전문적 노동력이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게 의료계의 항변이다.
반면 병원들은 의료보험에 적용되지 않는 상품의 개발에 나서고 있다. 종합건강진단이나 산
부인과 불임시술이 그것이다. MRI 등 고가의 의료장비 도입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비의료
보험 부분을 통해 적자를 메우려는 시도다.
게다가 96년부터 시작된 의료보험의 재정적자도 의사들의 위기의식을 부채질했다. 94년부터
98년까지 보험료는 평균 12.2% 증가한 반면, 보험급여비는 20.3%가 증가해 재정수지가 연
차적으로 악화됐다.
지난해 9월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당기수지 적자가 96년 877억원, 97년 3820억원, 99년
1조828억원(추정) 등으로 매년 증가해 왔다. 지난해 의료보호환자의 진료비도 2354억원이나
체불돼 병원의 재정을 악화시켰다.
“이보다 더 욕먹을 수는 없다”
결국 이런 의료계의 위기의식은 의약분업 실시를 계기로 폭발했다. 당장 약을 팔 수 없게
된 동네의원의 경우 지난해보다 수익이 20∼25% 가량 감소하게 됐다. 생존의 기로에 섰다
는 절박감이 의사들을 엄습했다.
의료계의 전면폐업을 하루 앞둔 지난 10일, 보건복지부는 처음으로 의보수가가 원가에 못미
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처방료 62.9%, 진찰료 23.2% 인상과 함께 원가의 80% 수준인 현
행 보험수가를 내년 1월1일까지 90%, 다시 1년뒤에 100% 수준으로 현실화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시민들의 반발도 거세다. 고소득층인 의사들의 기득권을 인정하기 위해
국민을 희생시키는 조치라는 비판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동시에 의사들은 즉시 본업에
복귀해야 한다는 격앙된 목소리가 튀어나오고 있다.
언론과 시민의 일방적 비난에 대해 의사들은 “이보다 더 욕먹을 수는 없다”는 막가파식
정서로 대응하고 있다. 의료대란은 여전히 ‘출구없는 터널’로, 의사들에게 환자의 신음소
리가 크게 들리는 지혜를 요구하고 있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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