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7 청맹과니’
박상주 (칼럼니스트 참미디어연구소장)
미국 뉴욕 맨해튼 땅을 사는 데 들인 돈은 단돈 24달러였다.
17세기 초 허드슨 강변으로 진출한 네덜란드인들은 인디언들에게 손도끼, 옷감, 금속 항아리, 구슬 등을 주고 이 땅을 차지했다. 당시 땅값으로 건네 준 물건들이 대략 24달러어치였다. 그곳에 세운 정착촌이 지금의 뉴욕이다.
네덜란드인들은 정착촌 외곽에 12피트(약 3.6m)의 높은 방책을 세웠다. 처음에는 인디언들의 공격을 막기 위한 방책이었고, 나중엔 신천지 진출 각축을 벌이던 영국군을 막기 위한 용도로 쓰였다. 오랜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은 1699년 이 방책을 철거해버린다. 방책은 사라졌지만 ‘월스트리트’란 이름 속에 그 흔적이 남았다.
오랜 세월 월스트리트는 시장 만능주의자들의 성소였다. 시장과 금융의 기능을 저해하는 모든 규제는 악이었다. 점차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자본은 스스로의 생명력을 갖춘 괴물로 성장한다.
미 연방은행의 과도한 저금리 정책과 비우량주택 담보대출, 거미줄처럼 얽힌 금융파생상품, 규제완화에 따른 감독부실 …. 이런 독소들을 먹고 자란 괴물이 어느 날 갑자기 불쑥 본색을 드러냈다. 세계 경제를 초토화시키고 있는 월스트리트 산(産) 괴물은 그 규모와 형체를 아직은 짐작조차 할 수 없다는 게 세계적인 경제학자들의 고백이다.
타인 하산하는데 등산하는 격
월스트리트 숭배자들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는 “이 산이 아닌가봐” 하고 우르르 되돌아 내려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 뒤늦게 그 산을 향해 올라가면서 “나를 따르라” 하고 억지를 부린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이명박정부의 모양새가 꼭 그렇다. 미국과 영국, 독일 등 선진국들은 월스트리트 발(發) 금융위기 이후 금융규제를 대폭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자본시장통합법 발효와 금산분리 완화 법제화를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말한다. 월스트리트를 호령하던 대형 투자은행(IB)이 쓰러지고 있는데 정부는 여전히 그들을 모델로 한 산업은행 민영화를 서두르고 있다.
얼마 전 “앞으로 투자은행의 육성과 이를 위한 금융규제 완화를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밝힌 전광우 금융위원장의 말이 섬뜩한 여운으로 남는다. 오로지 ‘747공약’(연 7% 경제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강국 진입)에만 마음이 가 있는 듯하다.
며칠 전 국회 기획재정위에 출석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747공약을) 수정할 필요도 없고 논란이 될 필요도 없다”고 했다. 그 낙관론이 자못 신기할 정도다.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의 위기로 전이될 조짐을 보이는 현 세계경제의 형편을 놓고 보자면 ‘황당 개그’ 수준이라는 게 여론의 평가다.
각종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고, 112층짜리 제2롯데월드 건설을 허용하고, 그린벨트를 풀고, 도심 재개발·재건축을 장려하고, 녹색성장이란 이름으로 원자력 10~11기를 건설하고 ….
하나같이 대규모 토목공사나 건설 사업을 필요로 하는 일들이다. 경부대운하 사업 역시 이명박 정부가 아직도 버리지 못한 채 만지작거리고 있는 카드다.
폭약갖고 노는 어린이 보는 느낌
내년 예산안은 저소득층 지원을 위한 사회복지와 교육은 뒷전이고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확대로 경제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데만 주안점을 두고 있다. 현 정부 경제정책의 지향점은 단 한곳, 바로 인위적 경기부양을 통한 ‘747 공약’의 실현인 듯하다.
오죽했으면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같은 이는 “전혀 걱정하는 기색 없이 이런저런 부양정책을 쏟아놓는 정부를 보면 폭약을 갖고 노는 어린애를 보는 것 같은 불안한 심정이 든다”고까지 했겠는가.
현 정부는 ‘747 공약’에 눈이 먼 나머지 무분별한 규제완화와 인위적 경기 부양의 위험을 보지 못하는 ‘747 청맹과니’인지도 모른다. 누군가 나서서 그들을 말려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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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주 (칼럼니스트 참미디어연구소장)
미국 뉴욕 맨해튼 땅을 사는 데 들인 돈은 단돈 24달러였다.
17세기 초 허드슨 강변으로 진출한 네덜란드인들은 인디언들에게 손도끼, 옷감, 금속 항아리, 구슬 등을 주고 이 땅을 차지했다. 당시 땅값으로 건네 준 물건들이 대략 24달러어치였다. 그곳에 세운 정착촌이 지금의 뉴욕이다.
네덜란드인들은 정착촌 외곽에 12피트(약 3.6m)의 높은 방책을 세웠다. 처음에는 인디언들의 공격을 막기 위한 방책이었고, 나중엔 신천지 진출 각축을 벌이던 영국군을 막기 위한 용도로 쓰였다. 오랜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은 1699년 이 방책을 철거해버린다. 방책은 사라졌지만 ‘월스트리트’란 이름 속에 그 흔적이 남았다.
오랜 세월 월스트리트는 시장 만능주의자들의 성소였다. 시장과 금융의 기능을 저해하는 모든 규제는 악이었다. 점차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자본은 스스로의 생명력을 갖춘 괴물로 성장한다.
미 연방은행의 과도한 저금리 정책과 비우량주택 담보대출, 거미줄처럼 얽힌 금융파생상품, 규제완화에 따른 감독부실 …. 이런 독소들을 먹고 자란 괴물이 어느 날 갑자기 불쑥 본색을 드러냈다. 세계 경제를 초토화시키고 있는 월스트리트 산(産) 괴물은 그 규모와 형체를 아직은 짐작조차 할 수 없다는 게 세계적인 경제학자들의 고백이다.
타인 하산하는데 등산하는 격
월스트리트 숭배자들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는 “이 산이 아닌가봐” 하고 우르르 되돌아 내려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 뒤늦게 그 산을 향해 올라가면서 “나를 따르라” 하고 억지를 부린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이명박정부의 모양새가 꼭 그렇다. 미국과 영국, 독일 등 선진국들은 월스트리트 발(發) 금융위기 이후 금융규제를 대폭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자본시장통합법 발효와 금산분리 완화 법제화를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말한다. 월스트리트를 호령하던 대형 투자은행(IB)이 쓰러지고 있는데 정부는 여전히 그들을 모델로 한 산업은행 민영화를 서두르고 있다.
얼마 전 “앞으로 투자은행의 육성과 이를 위한 금융규제 완화를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밝힌 전광우 금융위원장의 말이 섬뜩한 여운으로 남는다. 오로지 ‘747공약’(연 7% 경제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강국 진입)에만 마음이 가 있는 듯하다.
며칠 전 국회 기획재정위에 출석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747공약을) 수정할 필요도 없고 논란이 될 필요도 없다”고 했다. 그 낙관론이 자못 신기할 정도다.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의 위기로 전이될 조짐을 보이는 현 세계경제의 형편을 놓고 보자면 ‘황당 개그’ 수준이라는 게 여론의 평가다.
각종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고, 112층짜리 제2롯데월드 건설을 허용하고, 그린벨트를 풀고, 도심 재개발·재건축을 장려하고, 녹색성장이란 이름으로 원자력 10~11기를 건설하고 ….
하나같이 대규모 토목공사나 건설 사업을 필요로 하는 일들이다. 경부대운하 사업 역시 이명박 정부가 아직도 버리지 못한 채 만지작거리고 있는 카드다.
폭약갖고 노는 어린이 보는 느낌
내년 예산안은 저소득층 지원을 위한 사회복지와 교육은 뒷전이고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확대로 경제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데만 주안점을 두고 있다. 현 정부 경제정책의 지향점은 단 한곳, 바로 인위적 경기부양을 통한 ‘747 공약’의 실현인 듯하다.
오죽했으면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같은 이는 “전혀 걱정하는 기색 없이 이런저런 부양정책을 쏟아놓는 정부를 보면 폭약을 갖고 노는 어린애를 보는 것 같은 불안한 심정이 든다”고까지 했겠는가.
현 정부는 ‘747 공약’에 눈이 먼 나머지 무분별한 규제완화와 인위적 경기 부양의 위험을 보지 못하는 ‘747 청맹과니’인지도 모른다. 누군가 나서서 그들을 말려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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