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 시인을 위한 변명
김영철
시민방송 RTV 상임부이사장
뒤늦게 고백할 게 있다. 1991년 명지대생 강경대씨 타살 사건으로 촉발된 이른바 ‘분신정국’ 때다. 사건기자였던 나는 매일 시위 현장을 누비고 있었다. 정권을 향한 거리의 분노가 잇단 분신으로 폭발하고 있었다.
어느날 아침, 조선일보를 뒤적이다 충격적인 제목의 기고문에 눈이 꽂혔다.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김지하 시인이었다. ‘젊은 벗들!’로 시작되는 장문의 기고문은 단숨에 읽혔다. ‘너스레’가 싹 가신, 공격적이고 직설적인 문장이었다.
불길했다. 게다가 하필 조선일보가 한복판에 있었다. 신화가 된 운동 선배의 예상치 못한 도발, 이것이 불러올 후폭풍이 걱정됐다. 아니나 다를까. 비난은 내 예상을 훨씬 웃돌았다. 시인에 대한 거친 공세가 잇따랐다. 심지어 민족문학작가회의가 그를 제명했다.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도 비난을 하고 나섰다. 그런데 웬지 나는 거기에 가담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이해할 것 같았다. 소수가 되는 게 두려웠던 까닭인가. 나는 끝내 이런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했다. “죽은 사람에 대한 예를 갖추지 않고 ‘죽인 집단’에 대한 공격을 먼저 하지 않은 것은 분명 잘못이다. 하지만 잇따르는 죽음에 맞서 생명의 도발을 감행한 것은 용기있고 값진 일이다. 생명은 김 시인의 사상적 신조 아닌가.”
얼마 전 김지하 시인이 프레시안에 기고한 ‘좌익에게 묻는다’를 읽었다. 다시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쳤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조선일보는 진보진영에 대한 이 옛 운동권 시인의 공격을 1면에 대서특필했다. ‘죽음의 굿판’이 몰고온 파문의 깊이를 모르지 않는 나로서는 당혹스러웠다. 이 파문은 또 어디까지 갈 것인가? 세월이 흘러 ‘죽음의 굿판’이 드리운 그림자에서 서서히 벗어나려던 김 시인은 또 어떻게 되려는가? 아, 이제 ‘김지하’는 완전히 가는 것인가?
예상은 빗나갔다. 조선일보가 개입했지만 파문은 잠깐이었다. 비난도 힘이 없었다. 그는 촛불을 횃불로 바꾸려는 운동권을 거칠고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그런데도 그랬다. 왜 그럴까. 거칠고 직설적인 것으로 치면 ‘죽음의 굿판’보다 더한데, 도대체 이유가 무엇일까. 운동권이 풀이 죽었든지, 아니면 그 기사를 옮겨 실은 조선일보가 맛이 갔든지, 남들에게 말은 못했지만 내 마음 속에는 이런 의문들이 꼬리를 물었다.
바로 뒷날, 같은 매체에 김 시인의 또 다른 기고문이 실렸다. ‘우익 잘해보라, 잘하면 망할 것이다.’ 애초부터 양 극단을 비판하려고 작정했던 모양이다. 마지막 대목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촛불이 켜진 시청 앞에서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일이라고 했다. “한 숨은 목소리가 음산하게 외친다. ‘아무개를 찢어 죽이자!’ 곁에서 한 여성이 외친다. ‘너나 죽여라!’ 내 곁에 있는 초등학생이 속삭이듯 외친다. ‘종이냐, 찢게?’”
의문이 조금씩 가시기 시작했다. “횃불을 들자!”는 ‘음산한’ 선동을 맞받아친 사람은 여성과 어린이, 바로 촛불집회의 중심들이었다. 선동에 대항하는 이들의 무기는 가볍고 유쾌하고 발랄한, 한마디 조크였다.
그것은 ‘자발적 촛불’을 지탱해 온 에너지이기도 했다. 연약한 어린이와 부드러운 여성이 공동체의 새로운 주체로 떠오른 것, 늘 주변을 맴돌던 이들이 기발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채 거리집회의 중심에 나선 것, 김지하 시인에게 ‘촛불’의 의미는 바로 이것이었던 것이다.
성급한 횃불이 은근한 촛불을 이길 수 없다는 그의 직관적 상상력이 크게 틀리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 시민사회가 한 시인의 도발적 문제제기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을 정도로 넉넉해진 까닭일까. 어느 쪽이건 다 좋다. 시인의 목소리가 울림을 지니는 건 좋은 사회니까.
시인의 직관은 늘 논리 너머를 향한다. 세상을 응시하는 시인의 상상력은 과학적 분석을 능가한다. 1970년대 이래 김 시인의 직관과 상상력은 늘 당대의 세상을 향하고 있었다. 그가 펼치고 있는 생명과 모심의 사상은 때로 어렵고, 더러는 논리적 비약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시인 특유의 날카로운 직관과 풍성한 상상력이 살아 있다면, 그 또한 어떤가. ‘잘해보라, 잘 하면 망할 것이다.’
촛불과 불교의 배후를 수색하고 ‘녹색성장과 대운하를 함께 거론하는’ 이명박정부에 대한 독설이 그것을 입증한다. 좌든 우든, 생각의 차이를 잠시 접고 시인의 직관적 독설에 한번쯤 귀를 기울이는 것은 어떨까. 예술적 진실이 과학적 지식보다 값진 것일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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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
시민방송 RTV 상임부이사장
뒤늦게 고백할 게 있다. 1991년 명지대생 강경대씨 타살 사건으로 촉발된 이른바 ‘분신정국’ 때다. 사건기자였던 나는 매일 시위 현장을 누비고 있었다. 정권을 향한 거리의 분노가 잇단 분신으로 폭발하고 있었다.
어느날 아침, 조선일보를 뒤적이다 충격적인 제목의 기고문에 눈이 꽂혔다.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김지하 시인이었다. ‘젊은 벗들!’로 시작되는 장문의 기고문은 단숨에 읽혔다. ‘너스레’가 싹 가신, 공격적이고 직설적인 문장이었다.
불길했다. 게다가 하필 조선일보가 한복판에 있었다. 신화가 된 운동 선배의 예상치 못한 도발, 이것이 불러올 후폭풍이 걱정됐다. 아니나 다를까. 비난은 내 예상을 훨씬 웃돌았다. 시인에 대한 거친 공세가 잇따랐다. 심지어 민족문학작가회의가 그를 제명했다.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도 비난을 하고 나섰다. 그런데 웬지 나는 거기에 가담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이해할 것 같았다. 소수가 되는 게 두려웠던 까닭인가. 나는 끝내 이런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했다. “죽은 사람에 대한 예를 갖추지 않고 ‘죽인 집단’에 대한 공격을 먼저 하지 않은 것은 분명 잘못이다. 하지만 잇따르는 죽음에 맞서 생명의 도발을 감행한 것은 용기있고 값진 일이다. 생명은 김 시인의 사상적 신조 아닌가.”
얼마 전 김지하 시인이 프레시안에 기고한 ‘좌익에게 묻는다’를 읽었다. 다시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쳤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조선일보는 진보진영에 대한 이 옛 운동권 시인의 공격을 1면에 대서특필했다. ‘죽음의 굿판’이 몰고온 파문의 깊이를 모르지 않는 나로서는 당혹스러웠다. 이 파문은 또 어디까지 갈 것인가? 세월이 흘러 ‘죽음의 굿판’이 드리운 그림자에서 서서히 벗어나려던 김 시인은 또 어떻게 되려는가? 아, 이제 ‘김지하’는 완전히 가는 것인가?
예상은 빗나갔다. 조선일보가 개입했지만 파문은 잠깐이었다. 비난도 힘이 없었다. 그는 촛불을 횃불로 바꾸려는 운동권을 거칠고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그런데도 그랬다. 왜 그럴까. 거칠고 직설적인 것으로 치면 ‘죽음의 굿판’보다 더한데, 도대체 이유가 무엇일까. 운동권이 풀이 죽었든지, 아니면 그 기사를 옮겨 실은 조선일보가 맛이 갔든지, 남들에게 말은 못했지만 내 마음 속에는 이런 의문들이 꼬리를 물었다.
바로 뒷날, 같은 매체에 김 시인의 또 다른 기고문이 실렸다. ‘우익 잘해보라, 잘하면 망할 것이다.’ 애초부터 양 극단을 비판하려고 작정했던 모양이다. 마지막 대목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촛불이 켜진 시청 앞에서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일이라고 했다. “한 숨은 목소리가 음산하게 외친다. ‘아무개를 찢어 죽이자!’ 곁에서 한 여성이 외친다. ‘너나 죽여라!’ 내 곁에 있는 초등학생이 속삭이듯 외친다. ‘종이냐, 찢게?’”
의문이 조금씩 가시기 시작했다. “횃불을 들자!”는 ‘음산한’ 선동을 맞받아친 사람은 여성과 어린이, 바로 촛불집회의 중심들이었다. 선동에 대항하는 이들의 무기는 가볍고 유쾌하고 발랄한, 한마디 조크였다.
그것은 ‘자발적 촛불’을 지탱해 온 에너지이기도 했다. 연약한 어린이와 부드러운 여성이 공동체의 새로운 주체로 떠오른 것, 늘 주변을 맴돌던 이들이 기발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채 거리집회의 중심에 나선 것, 김지하 시인에게 ‘촛불’의 의미는 바로 이것이었던 것이다.
성급한 횃불이 은근한 촛불을 이길 수 없다는 그의 직관적 상상력이 크게 틀리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 시민사회가 한 시인의 도발적 문제제기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을 정도로 넉넉해진 까닭일까. 어느 쪽이건 다 좋다. 시인의 목소리가 울림을 지니는 건 좋은 사회니까.
시인의 직관은 늘 논리 너머를 향한다. 세상을 응시하는 시인의 상상력은 과학적 분석을 능가한다. 1970년대 이래 김 시인의 직관과 상상력은 늘 당대의 세상을 향하고 있었다. 그가 펼치고 있는 생명과 모심의 사상은 때로 어렵고, 더러는 논리적 비약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시인 특유의 날카로운 직관과 풍성한 상상력이 살아 있다면, 그 또한 어떤가. ‘잘해보라, 잘 하면 망할 것이다.’
촛불과 불교의 배후를 수색하고 ‘녹색성장과 대운하를 함께 거론하는’ 이명박정부에 대한 독설이 그것을 입증한다. 좌든 우든, 생각의 차이를 잠시 접고 시인의 직관적 독설에 한번쯤 귀를 기울이는 것은 어떨까. 예술적 진실이 과학적 지식보다 값진 것일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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