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지역내일 2008-10-23


농민은 없다

김 광 원(언론인· 참미디어연구소 대표)

전통적 농경사회에서 지주와 소작인은 대표적인 사회갈등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작가의 농촌소설들이 그 갈등을 바탕으로 민초들의 한을 담아냈다.
특히 생각나는 것은 동화작가 권정생(2007년 작고)의 소설 ‘한티재 하늘’이다. 돈만 가지고 살 수 없다며 광고도 내지 않은 책이다. 그 자신 소설같은 가난과 투병의 삶을 살았다.
10년 전 출간된 이 소설은 소작농으로 사는 민초들의 삶을 꼭 그들의 삶만큼 그려내고 있다. 경북 안동 인근 마을의 소작 농사꾼들의 억장 무너지는 생활이다. 수십년 간 이 동네에서 바람 같이 살다 간 사람들의 발자취를 담고 있다. 인간의 얼룩을 닦아내는듯한 내용이다. 그는 이 소설을 쓰며 많이 울었다고 했다.
그는 들머리(머리말) 등을 통해 “이 소설은 어머니가 들려준 이웃들의 모습을 이야기나 체험으로 쌓아놓은 것들이다. 나는 그들의 고통만을 얘기하고자 할 따름이다. 더 나아가면 또 다른 사회적 갈등이 시작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들에게는 “일한만큼 가진다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다.
그 소설보다 고약한 상황이 현대의 지식정보사회에서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황당하고 그래서 단절감은 더 크게 느껴진다. ‘쌀 소득보전 직불금’이라는 정책이 빚은 해괴한 사태다.
정책이 문제 있다 하여 농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지원금이 농사꾼 아닌 사람들에게 갈 수는 없다. 공직자와 언론인 그리고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 인사들을 포함한 여러 종류의 농지 소유자들의 직불금 부정수령이 관련법 미비라는 이유로 헷갈릴 일은 더욱 아니다. 더구나 이들이 노리는 더 큰 이익은 양도세 감면이라고 하지 않는가.
농지법 등 관련법과 농정(農政)의 문제에도 불구, 사태의 전말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절대농지를 소유할 수 없는 사람들이 탈법적 방법으로 농경지를 소유, 재산증식을 꾀한 데 있다. 대도시 주변 농경지의 3분의 2 이상이 비농민 소유로 알려져 있을 정도다. 이들이 농가소득을 보전해주기 위해 농민들에게 주어야 할 직불금을 가로챈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는 본인들이 더욱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번에 문제된 직불금제는 수확기 쌀값이 목표에 미달할 경우, 그 차액의 85%를 정부가 실경작자에게 직접 지불해주는 제도로 2005년부터 실시돼왔다. 감사원 자료에 따르면 2006년 직불금 수령자 99만8000여명 중 비농업인이 28만명, 그 중 직업이 확인된 부정수령의 경우가 17만3500여건이다.
이 중 공무원이 약 4만명, 회사원이 10만여명이며 그 외 전문직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또 강남 서초 송파 등 강남 3구의 직불금 신청은 지난 2년 새 55%나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대판 악덕지주들의 표본이다.
한국의 농촌인구는 343만명(2005년)으로 전체인구의 7.3%에 불과하다. 그것도 점점 줄어드는 고령의 농민들로 이루어진 소외된 사회다. 그들은 쌀시장 개방압력 등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에게까지 땅투기의 손을 뻗치며 농민들에 대한 보조금을 낚아채는 고학력 고소득층의 탐욕적 행태를 그저 시장주의의 부작용 정도로 보아야 할 것인가.
이봉화 전 보건복지가족부 차관의 직불금 신청의혹이 제기된 이후 전개돼온 여야 간 논란은 정쟁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게 언론들의 전망이다. 여야가 직불금 국정조사를 하기로 합의했지만 그동안 서로 다른 속셈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국회논의는 물론 다음달 10일부터 26일간 계속될 국정조사 기간 중 여야가 보일 입장은 제시됐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 등 참여정부에 대한 의혹캐기에 집중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반면 민주당은 이명박정부 흠집내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공방전이 계속된다면 또다시 피해 당사자인 농민들만 답답할 수밖에 없다. 그중의 한명이 김포에 사는 조종대씨다. 그는 지난해 3월 직불금을 부당수령한 땅주인을 면사무소에 신고했다. 이후 그는 언론의 취재대상이 됐고 최근 직불금 문제가 터진 이후 ‘유명인사’가 됐다. 신문과 방송기자들의 인터뷰나 전화취재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휴대폰을 통해 들려온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친절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적잖이 막막할 때가 있다. 신고 이후 자신이 겪는 일이 힘들기 때문이다. 그는 신고 후 논 주인에게 경작지를 빼앗겼다. 또 환수된 직불금은 신고한 피해 당사자에게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국고에 들어갔다.
더욱이 추수 때 누군가 논바닥에 철근을 박아놓는 바람에 콤바인까지 망가져 수리비를 물어야 했다. 또 주변으로부터는 분란을 일으킨다며 욕을 먹고 있다. 이러한 식의 이야기 전개가 소작농의 실상이라고 했다. 그들에게는 일한만큼 가진다는 게 여전히 어려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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