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편지> 낙동강-5
낙동강이 범람해야 진짜 우포늪이 된다
우포늪에서 낙동강하구까지 … 2008 람사르총회 열리는 주무대
도동서원 물굽이를 지난 낙동강은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을 지나 경남 창녕군 이방면으로 흘러듭니다.
이방면 적포리에서 낙동강은 거창의 산악지대에서 발원한 황강을 품에 안고 그나마 조금 맑은 물빛을 되찾습니다. 백두대간 덕유산 자락에서 발원하는 황강은 길이 111km의 큰 물줄기입니다.
이곳 이방면에는 2008 람사르총회의 주무대인 ‘우포늪’이 있습니다. 70여만평에 이르는 우포늪은 소벌(우포), 나무벌(목포), 모래벌(사지포), 쪽지벌 4개의 늪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 최대의 내륙습지로 수많은 물풀들과 어류, 곤충, 조류들이 서식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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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취재 때도 우포늪 어부 노기열(이방면 안리)씨 민박집에서 묵었습니다. 노씨는 환경단체 사람들 사이에서 ‘우포늪의 괴물’로 불립니다.
70대 후반인데도 그에게 팔목을 잡혀서 팔씨름을 이긴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힘이 장사입니다. 주량 또한 여전히 말술이고, 그가 입을 열면 교수, 공무원, 환경단체 사람들, 욕먹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루는 민박집 앞 커피 자판기 앞에서 노씨가 “소주 한잔 줄까?” 합니다. 그런데 진짜 커피 자판기에서 소주가 나왔습니다. 열쇠로 자판기를 여니 그 안에 소주병이 있었습니다.
더 놀라운 건 노씨가 밀크커피에 소주를 타서 마신다는 겁니다. 커피폭탄인 셈인데, 노씨는 ‘하루에 커피 10잔을 마셔도 다 이렇게 소주를 타서’ 마신답니다.
우포늪이 외래어종 블루길 천지가 된 이후 노씨는 주로 블루길을 잡습니다. 15~20cm급 붕어도 대여섯마리씩 잡히지만 그물을 가득 채우는 건 대부분 블루길입니다. 노씨는 매일 아침 이렇게 잡은 블루길을 양식하는 가물치 먹이로 던져 줍니다.
가물치 연못에 뿌려진 블루길들은 겁에 질려 도망도 못 가고 덜덜 떱니다. 곧바로 “쩡!” “쩡!” 꼬리로 물을 가르는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이무기처럼 큰 가물치들이 나타납니다. 식성이 유달리 까다로운 가물치는 한달을 굶겨도 살아 있는 물고기가 아니면 절대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민물고기 중에서는 가물치가 대장이라. 베스도 육식성이지만 가물치한테는 안된다카이. 내가 우포늪에 가물치 풀어서 블루길 베스 소탕하자고 해도 환경부가 말을 안 듣는다 아이가.”
우포늪의 우점종이 된 블루길이나 베스들에게도 노씨는 ‘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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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늪은 언제, 어떻게 생겼을까요? 1만5000년 전 빙하기가 절정을 이루었을 때 해수면은 지금보다 100m 이상 낮았습니다. 그때 낙동강과 우포늪은 미국의 그랜드캐년처럼 폭이 좁고 깊은 골짜기였죠.
빙하가 녹기 시작하면서 해수면이 상승, 6000년 전에는 바닷물이 낙동강 하구에서 160㎞ 떨어진 88고속도로 고령교 지점까지 올라왔다고 합니다. 바닷물이 들어온 뒤 상류에서 떠내려온 흙과 모래가 바닥에 쌓이기 시작했고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점점 바닥이 해수면보다 높아져 지금의 낙동강을 만들게 됩니다. 우포늪이 만들어진 것도 이때의 일입니다.
우포늪의 해발고도는 9.6m로 채 10m를 넘지 못하죠. 반면 우포늪과 낙동강 사이에는 홍수 때 형성된 해발 14~17.5m의 자연제방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낙동강에 홍수가 나면 이 제방을 넘어 낙동강물이 우포로 역류하고 평상시에는 배수가 잘 되지 않아 늘 물이 고여 있는 늪이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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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은 발원지인 태백에서 봉화 일대까지는 해발고도가 높지만 안동(낙동강-반변천 합수지점)으로 내려오면 평균하상 높이가 82.85m로 뚝 떨어집니다. 안동에서 부산까지 긴 거리를 100m도 채 안 되는 고도 차이로 흘러가야 하는 겁니다.
낙동강의 평균하상 높이는 하류로 내려올수록 급격히 낮아집니다. 예천 삼강나루(내성천 합수지점)에서 50.12m로 낮아진 낙동강은 대구 화원나루(금호강 합수지점)에서는 20.57m로, 밀양(밀양강 합수지점)에서는 1.91m까지 낮아집니다.
이렇게 낮은 고도 차이로 흘러가면서 오염물질을 정화하기란 강으로서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골재채취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니 강의 자정작용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낙동강물환경연구소 연구에 따르면 골재채취, 특히 수중 골재채취는 부유물질을 과도하게 발생시켜 수질을 악화시키고 빛 투과율을 떨어뜨려 강 생태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칩니다.
또 지자체 수익사업으로 추진되다 보니 과다하게 채취되는 경향이 있고 지자체 사이의 업무 연관성이 없어 하천 상·하류 구간의 평형이 깨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대부분 ‘흡입식’ 기계를 사용하기 때문에 하천단면에 연속적으로 깊은 웅덩이를 만들어 또다른 하상교란의 문제를 초래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낙동강물환경연구소 신찬기 소장은 “골재채취로 훼손된 강의 생태계가 회복되려면 20년의 세월이 필요하다”며 “외국에서는 하천 내 골재채취를 금지하거나 매우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한강보다 길고 강수량은 400mm 적어
낙동강은 구조적으로 오염에 취약한 조건에 놓여 있습니다. 하류인 수도권에 인구가 집중된 한강과는 달리 낙동강유역에는 안동 구미 대구 등 중·상류에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삽니다.
특히 구미와 대구에서부터는 도시지역 뿐 아니라 농촌지역도 심각한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낙동강 오염의 중심벨트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낙동강 제방 안 하천부지를 점령한 시설재배용 비닐하우스들은 1년에 최다 6회까지 농작물을 생산합니다. 당연히 엄청난 비료와 관개용수를 소모하죠.
낙동강변 경작지에서는 가축분뇨를 액비나 고형분 형태로 사용하는 곳도 많습니다. 강변에 뿌려진 축분비료는 큰비가 오면 그대로 낙동강으로 흘러듭니다. 수량이라도 풍부하면 그나마 나을텐데 낙동강은 백두대간과 낙동정맥 사이에 숨어 있어 한강유역에 비해 연간 강수량이 400mm 정도 적습니다.
‘낙동강특별법’으로 많은 제약을 받게 되는 상류지역 주민들이 이 법에 손을 들어 준 것도 낙동강이 갖고 있는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똥물은 좋다. 독극물만 내려보내지 마라”
적어도 경상도 사람이라면 낙동강을 따라가며 꼭 한번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안동 똥물 대구 먹고, 대구 똥물 부산 먹는다’는 옛 어른들의 말이 절대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낙동강 페놀사건과 일사다이옥산 등 각종 유해물질 파동 이후 요즘 부산 사람들은 이 농담을 “똥물은 좋다. 독극물만 내려보내지 마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부산은 낙동강 최종취수지인 매리와 물금취수장을 통해 전체 상수원수의 90% 이상을 공급받습니다. 여름철이면 이틀이 마다하고 녹조현상이 발생하는 이곳의 정수과정은 한강 등 중부권과는 다릅니다. 염소와 오존, 입상활성탄을 정수과정에 첨가시켜야 마실 수 있는 물이 만들어집니다.
부산의 시인 이동순은 부산 사람들의 낙동강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 탁한 강물을 마셔서/ 마음조차 흐려진 이곳 강 유역의 주민들은 … 밤마다 그들의 목을 휘감아오는/ 저 차고 무거운 쇠사슬이/ 사실은 죽은 강줄기의 망령임을/ 소스라쳐 깨어서도 눈치채지 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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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이 범람해야 진짜 우포늪이 된다
우포늪에서 낙동강하구까지 … 2008 람사르총회 열리는 주무대
도동서원 물굽이를 지난 낙동강은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을 지나 경남 창녕군 이방면으로 흘러듭니다.
이방면 적포리에서 낙동강은 거창의 산악지대에서 발원한 황강을 품에 안고 그나마 조금 맑은 물빛을 되찾습니다. 백두대간 덕유산 자락에서 발원하는 황강은 길이 111km의 큰 물줄기입니다.
이곳 이방면에는 2008 람사르총회의 주무대인 ‘우포늪’이 있습니다. 70여만평에 이르는 우포늪은 소벌(우포), 나무벌(목포), 모래벌(사지포), 쪽지벌 4개의 늪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 최대의 내륙습지로 수많은 물풀들과 어류, 곤충, 조류들이 서식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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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취재 때도 우포늪 어부 노기열(이방면 안리)씨 민박집에서 묵었습니다. 노씨는 환경단체 사람들 사이에서 ‘우포늪의 괴물’로 불립니다.
70대 후반인데도 그에게 팔목을 잡혀서 팔씨름을 이긴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힘이 장사입니다. 주량 또한 여전히 말술이고, 그가 입을 열면 교수, 공무원, 환경단체 사람들, 욕먹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루는 민박집 앞 커피 자판기 앞에서 노씨가 “소주 한잔 줄까?” 합니다. 그런데 진짜 커피 자판기에서 소주가 나왔습니다. 열쇠로 자판기를 여니 그 안에 소주병이 있었습니다.
더 놀라운 건 노씨가 밀크커피에 소주를 타서 마신다는 겁니다. 커피폭탄인 셈인데, 노씨는 ‘하루에 커피 10잔을 마셔도 다 이렇게 소주를 타서’ 마신답니다.
우포늪이 외래어종 블루길 천지가 된 이후 노씨는 주로 블루길을 잡습니다. 15~20cm급 붕어도 대여섯마리씩 잡히지만 그물을 가득 채우는 건 대부분 블루길입니다. 노씨는 매일 아침 이렇게 잡은 블루길을 양식하는 가물치 먹이로 던져 줍니다.
가물치 연못에 뿌려진 블루길들은 겁에 질려 도망도 못 가고 덜덜 떱니다. 곧바로 “쩡!” “쩡!” 꼬리로 물을 가르는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이무기처럼 큰 가물치들이 나타납니다. 식성이 유달리 까다로운 가물치는 한달을 굶겨도 살아 있는 물고기가 아니면 절대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민물고기 중에서는 가물치가 대장이라. 베스도 육식성이지만 가물치한테는 안된다카이. 내가 우포늪에 가물치 풀어서 블루길 베스 소탕하자고 해도 환경부가 말을 안 듣는다 아이가.”
우포늪의 우점종이 된 블루길이나 베스들에게도 노씨는 ‘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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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늪은 언제, 어떻게 생겼을까요? 1만5000년 전 빙하기가 절정을 이루었을 때 해수면은 지금보다 100m 이상 낮았습니다. 그때 낙동강과 우포늪은 미국의 그랜드캐년처럼 폭이 좁고 깊은 골짜기였죠.
빙하가 녹기 시작하면서 해수면이 상승, 6000년 전에는 바닷물이 낙동강 하구에서 160㎞ 떨어진 88고속도로 고령교 지점까지 올라왔다고 합니다. 바닷물이 들어온 뒤 상류에서 떠내려온 흙과 모래가 바닥에 쌓이기 시작했고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점점 바닥이 해수면보다 높아져 지금의 낙동강을 만들게 됩니다. 우포늪이 만들어진 것도 이때의 일입니다.
우포늪의 해발고도는 9.6m로 채 10m를 넘지 못하죠. 반면 우포늪과 낙동강 사이에는 홍수 때 형성된 해발 14~17.5m의 자연제방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낙동강에 홍수가 나면 이 제방을 넘어 낙동강물이 우포로 역류하고 평상시에는 배수가 잘 되지 않아 늘 물이 고여 있는 늪이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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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은 발원지인 태백에서 봉화 일대까지는 해발고도가 높지만 안동(낙동강-반변천 합수지점)으로 내려오면 평균하상 높이가 82.85m로 뚝 떨어집니다. 안동에서 부산까지 긴 거리를 100m도 채 안 되는 고도 차이로 흘러가야 하는 겁니다.
낙동강의 평균하상 높이는 하류로 내려올수록 급격히 낮아집니다. 예천 삼강나루(내성천 합수지점)에서 50.12m로 낮아진 낙동강은 대구 화원나루(금호강 합수지점)에서는 20.57m로, 밀양(밀양강 합수지점)에서는 1.91m까지 낮아집니다.
이렇게 낮은 고도 차이로 흘러가면서 오염물질을 정화하기란 강으로서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골재채취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니 강의 자정작용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낙동강물환경연구소 연구에 따르면 골재채취, 특히 수중 골재채취는 부유물질을 과도하게 발생시켜 수질을 악화시키고 빛 투과율을 떨어뜨려 강 생태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칩니다.
또 지자체 수익사업으로 추진되다 보니 과다하게 채취되는 경향이 있고 지자체 사이의 업무 연관성이 없어 하천 상·하류 구간의 평형이 깨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대부분 ‘흡입식’ 기계를 사용하기 때문에 하천단면에 연속적으로 깊은 웅덩이를 만들어 또다른 하상교란의 문제를 초래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낙동강물환경연구소 신찬기 소장은 “골재채취로 훼손된 강의 생태계가 회복되려면 20년의 세월이 필요하다”며 “외국에서는 하천 내 골재채취를 금지하거나 매우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한강보다 길고 강수량은 400mm 적어
낙동강은 구조적으로 오염에 취약한 조건에 놓여 있습니다. 하류인 수도권에 인구가 집중된 한강과는 달리 낙동강유역에는 안동 구미 대구 등 중·상류에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삽니다.
특히 구미와 대구에서부터는 도시지역 뿐 아니라 농촌지역도 심각한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낙동강 오염의 중심벨트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낙동강 제방 안 하천부지를 점령한 시설재배용 비닐하우스들은 1년에 최다 6회까지 농작물을 생산합니다. 당연히 엄청난 비료와 관개용수를 소모하죠.
낙동강변 경작지에서는 가축분뇨를 액비나 고형분 형태로 사용하는 곳도 많습니다. 강변에 뿌려진 축분비료는 큰비가 오면 그대로 낙동강으로 흘러듭니다. 수량이라도 풍부하면 그나마 나을텐데 낙동강은 백두대간과 낙동정맥 사이에 숨어 있어 한강유역에 비해 연간 강수량이 400mm 정도 적습니다.
‘낙동강특별법’으로 많은 제약을 받게 되는 상류지역 주민들이 이 법에 손을 들어 준 것도 낙동강이 갖고 있는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똥물은 좋다. 독극물만 내려보내지 마라”
적어도 경상도 사람이라면 낙동강을 따라가며 꼭 한번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안동 똥물 대구 먹고, 대구 똥물 부산 먹는다’는 옛 어른들의 말이 절대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낙동강 페놀사건과 일사다이옥산 등 각종 유해물질 파동 이후 요즘 부산 사람들은 이 농담을 “똥물은 좋다. 독극물만 내려보내지 마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부산은 낙동강 최종취수지인 매리와 물금취수장을 통해 전체 상수원수의 90% 이상을 공급받습니다. 여름철이면 이틀이 마다하고 녹조현상이 발생하는 이곳의 정수과정은 한강 등 중부권과는 다릅니다. 염소와 오존, 입상활성탄을 정수과정에 첨가시켜야 마실 수 있는 물이 만들어집니다.
부산의 시인 이동순은 부산 사람들의 낙동강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 탁한 강물을 마셔서/ 마음조차 흐려진 이곳 강 유역의 주민들은 … 밤마다 그들의 목을 휘감아오는/ 저 차고 무거운 쇠사슬이/ 사실은 죽은 강줄기의 망령임을/ 소스라쳐 깨어서도 눈치채지 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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