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원 칼럼

지역내일 2008-11-05
칼럼

대북 산통깨기

김 광 원(언론인·참미디어연구소 대표)

4년 전 6·15 남북공동선언 4돌을 맞을 즈음이었다. 휴전선 155마일에 평화의 소리가 흐르기 시작했다. 외신은 이를 ‘침묵의 소리’라고 했다. 서울서 100여리 밖, 남북을 가르는 임진강변은 따뜻하고 살가웠다. 취재차 나선 내 가슴은 뜨거워졌다.
남북은 그해 6월 15일 군사분계선 지역에서 방송과 게시물, 그리고 전단(삐라) 등을 통한 선전활동을 중지키로 했다. 50여년 간 휴전선을 마주하고 계속돼오던 남북의 선전전이 종식된 것이다.
그 오랜 세월 동안 고즈넉한 강과 아름다운 산을 오가던 남북 간 상쟁(相爭)의 소리들이 꿈결처럼 사라져갔다. 휴전선 양쪽의 대형 확성기가 해체됐다. 선전 전광판의 철거가 이루어졌다. 휴전선이 평화의 소리를 되찾아가는 증거들이었다. 그 평화를 이루는 데 50여년이 걸렸다. 그러나 휴전선을 따라 현장을 밟던 감동의 기억은 4년 만에 아득한 추억이 되고 말았다.
그 휴전선을 타고 넘는 삐라가 다시 쇳소리를 내고 있다. 그 상쟁의 소리는 갈수록 날카로워지는 느낌이다. 북쪽으로 날려 보내는 남쪽 ‘자유북한운동연합’ 등 민간단체들의 삐라풍선들이 북쪽의 위협 메시지로 돌아오고 있다.
북한당국은 최근 남북 군사회담 등 일련의 남북회담을 통해 삐라 살포의 중단을 요구했다. 이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개성공단사업과 개성관광 중단 가능성은 물론 남북관계의 전면중단까지 거론하기에 이르렀다.
그 삐라의 제목은 ‘사랑하는 북녘의 동포에게’라고 다감한 손길을 내밀고 있다. A4용지보다 약간 작은 크기의 비닐종이 앞뒤에 깨알같이 박힌 내용들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저주로 넘쳐난다.
‘6·25 전쟁과 진실’ ‘북조선이 망한 이유’ ‘김정일은 과연 어떤 인간인가’ 등의 항목들을 통해 북한체제를 격렬하게 비난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비방과 함께 부인들을 소개한 뒤 가계도까지 그려 보여준다.
“…북조선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는 그 순간부터 김정일이라는 사람은 북조선 인민들을 파리 목숨보다 못한 노예로 부리는 희대의 살인마임을 알게 됩니다 … 조선인민들이여! 앉아서 굶어죽지 말고 김정일을 반대하여 투쟁하십시오. 인민군 군인들이여! 인민을 향한 선군의 총대를 독재자 김정일에게 돌리십시오. 모든 간부들이여! 잔인한 살인마 김정일에게 충성하지 말고 인민과 자신에게 충성하십시오…”
과거의 체제선전 유형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극단적 내용들이다. 김 위원장을 가리켜 ‘아버지 김일성을 암살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는 잔인한 독재자’라고도 주장한다.
북한으로서는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제기된 상황이어서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부에서는 대남압박의 명분으로 삐라를 이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자유북한운동연합 측은 앞으로도 삐라풍선 보내기를 계속할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다. “지금까지 몇년째 계속해온 사업을 그만둘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와 관련, 남북 간의 여러 합의를 고려할 때 삐라사태가 “자제돼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뒤이어 나오는 말이 “남북 당국 간 합의가 민간의 활동까지 규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통일부 장관의 말이 이럴진대 다른 입들이 무어라고 하겠는가. 이 상황에서 북한의 반응이나 남한의 대응에 대한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은 부질없어 보인다.
문제는 무엇보다 남북 간의 신뢰가 파국으로 흐르고 있다는 우려다.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는 말 대 말의 단계에서부터 좌초되는 양상을 보여왔다. 특히 이 대통령의 대북인식과 어법이 큰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 대통령은 6·15 남북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인정하지 않는 발언을 수없이 해왔다. 심지어 햇볕정책에 관해 “옷을 벗기려는 사람이 옷을 벗었다”는 냉소적 얘기를 공식석상에서 할 정도다.
통일부가 외교통상부나 국방부의 하위기관처럼 돼버린 것도 우연이 아니다. 심지어 통일부가 나서 교과서의 ‘햇볕정책’ 표현을 ‘화해협력정책’으로 바꾸어달라는 개정의견서를 내는 코미디같은 일이 벌어지기에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관련부처의 관계자들이 중구난방으로 나서 민감한 남북관계 문제들을 거론해왔다는 언론의 지적이 뒤따랐다.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최근 자신이 직접 주재한 외교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 ‘북한이 내 욕을 하는데 왜 가만히 있느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청와대는 이에 대한 확인을 거부했다고 하지만, 그 정황을 이해할 수는 있다.
이 대통령은 더욱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지정해제를 ‘잘못된 대응’으로 여긴다는 보도도 있다. 남북관계가 이러한 ‘산통깨기’식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 지금이 어떤 시기인가. 경제는 말할 것도 없다. 북한과 미국의 관계는 중대한 국면에 접어들었다. 제발 남북 간에 ‘침묵의 소리’라도 지키는 자세를 견지했으면 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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