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편지> 금강-1

지역내일 2008-11-17
<그림편지> 금강-1

어디나 똑같고, 똑같이 낯선 고향풍경들

전북 장수에서 진안 용담댐까지
발원지 수분리에도 외국인 며느리
금강상류 비경지대는 용담댐 물속으로

필리핀에서, 베트남에서, 몽골에서, 우즈베키스탄에서, 중국에서, 인도네시아에서, 미얀마에서 …. 참 멀리도 시집온 여자들. 시집온 새색시가 시댁의 김치맛을 익혀가듯 그 여자들도 김치 담그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다.
- 조병준. ‘그곳엔 우리의 누이들이 산다’

지난해 금강 발원지 수분리에서 캄보디아에서 왔다는 한상남씨를 만났습니다. 1973년 겨울 사진가 강운구씨가 ‘마을 삼부작’으로 수분리를 찍은 지 33년, 외국인 며느리가 이곳 수분리까지 진출한 것입니다.
2003년에서 2005년 사이 사진가 권태균씨는 강운구씨의 제안으로 ‘마을 삼부작 30년 후’(권태균·열화당)를 찍었습니다. 30년 동안 수분리는 어떻게 변했을까요. 한마디로 ‘예전엔 가난해도 풍족해 보였는데, 지금은 풍족한지는 모르지만 가난해 보인다’는 게 강운구씨의 총평입니다.

30년 전 53가구에 살던 389명(남자 199명, 여자 190명)이 45가구 162명(남자 75명, 여자 87명)으로, 195명이나 되던 노동인구는 80명으로 줄었고, 55마리였던 소는 120마리로 늘었으나 돼지는 19마리였던 것이 지금은 한 마리도 없다. … 서른 해 동안 모든 이 땅은 소용돌이치는 바다가 되었다.
- 강운구. ‘마을 삼부작 30년 후’ 서문

서른 해 동안 이 땅이 소용돌이치는 바다가 된 이후,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강운구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연과 어울리는 곡선과 빛깔에서 붉고 푸른 빛깔의 얄팍한 직선으로 온 나라의 집과 마을이 갑자기 바뀌었을 때, 그리고 느닷없이 전통과 익숙한 풍경으로부터 단절되었을 때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아무렇지도 않았을 거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 모든 고향의 지명은 여전하지만 이제 모습은 어디나 똑같고 똑같이 낯설다.”
- 강운구. ‘마을 삼부작’

수입곡물 먹고 자라는 토종 한우 000
‘마을 삼부작 30년 후’를 펼치면 왼쪽 면에는 1970년대 강운구씨가 찍은 수분리 사진이 작은 크기로 실려 있고, 오른쪽 면에는 권태균씨가 2003년부터 2005년 사이에 같은 장소와 인물을 찾아 찍은 사진들이 실려 있습니다.
이 사진집은 3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 그때가 좋았다거나 그래도 먹고 살만한 지금이 훨씬 낫다는 식의 단순한 비교를 하지 않습니다. 근대화 산업화 도시화로 불리는 변화가 불가피했다면 그것은 어떤 식이어야 했는지 묻고 있습니다.
지난해 여름, 수분리 마을 입구에는 ‘우리 마을은 외지 방문차량 번호를 기록해서 관리한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금강 상류에 있는 마을 곳곳에서 이런 경고문을 볼 수 있었는데, 그만큼 농촌지역에 도난사건이 많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문구를 보고 외지인들은 ‘인심 사납다’고 투덜거립니다. 하지만 자기 손으로 고추 한 포기 심어본 일이 없는 도시인들이 농작물을 도둑맞는 농촌사람들의 심정을 얼마나 이해할까요.
외국인 며느리 문제도 그렇습니다. ‘심각한 사회적 문제’라는 시각보다는 ‘마흔 넘도록 장가를 못 갔던 아들에게 시집온 태국 며느리가 너무 예쁘다’는 농촌 할머니들의 얘기가 오히려 현실적입니다.
도시 사람들 ‘신토불이 우리 농산물’ 좋아하지만 진짜 우리 농산물이 어디 있습니까. 한우가 먹는 사료의 대부분은 수입 곡물이고 토종 고추도 씨앗은 네덜란드산입니다. 벼와 콩, 도라지 등 몇몇 농작물 이외에는 대부분 외국 종묘회사가 종자를 공급합니다. 이런 책임까지 농촌에 돌릴 수 있을까요.

이성계가 조선건국의 계시를 받은 샘 000
금강은 한강, 낙동강에 이어 남한에서 세번째로 큰 강입니다. 동으로는 백두대간, 남으로는 호남정맥, 북으로는 한남정맥에 걸쳐 있는 금강의 유역면적은 9810㎢에 이르며 전북과 충청권을 가로질러 서해안으로 흘러드는 물길은 약 1000리(395.9km)가 됩니다.
금강의 발원지는 섬진강 발원지인 팔공산을 마주보고 있습니다. 금강이 시작되는 공식적인 발원샘은 전북 장수군 장수읍 수분리 신무산(897m) 중턱의 ‘뜬봉샘’입니다. 수분리 마을은 ‘물뿌랭이마을’로 불렸던 흔적이 있어 예로부터 선조들이 이곳을 금강의 발원지로 여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장수읍에서 수분령 꼭대기로 가다 보면 왼쪽으로 ‘수분송’이라 이름붙은 커다란 소나무가 한그루 서 있습니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수분리 마을로 들어가면 뜬봉샘까지 올라가는 마을 안길이 이어집니다. 마을에서 뜬봉샘까지는 걸어서 40분 정도 걸립니다. 임도를 타고 자동차로 접근해도 마지막 500m 정도는 걸어서 올라가야 합니다.
뜬봉샘이란 이름에는 옛날 이산에서 고을의 재앙을 막고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산에 군데군데 뜸을 뜨듯이 봉화를 올렸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경우 ‘뜸봉샘’으로 표기)과 태조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하다 조선 건국의 계시를 받은 곳이라는 두가지 전설이 전해집니다.

한때 ‘반역의 강’으로 지목되기도 000
뜬봉샘을 출발한 금강 물줄기는 장수읍 용머리마을에서 섬진강의 발원지인 진안 팔공산(1151m) 북쪽 계곡 물을 만납니다. 팔공산을 사이에 두고 서쪽은 섬진강, 동쪽은 금강 수계가 되는 겁니다.
장수군을 지난 금강 물줄기는 이제 진안군으로 들어갑니다. 백두대간 덕유산(1614m)에서 내려오는 ‘구량천’과 호남정맥 마이산(678m)에서 시작되는 ‘진안천’을 만나 제법 굵어진 금강 물줄기는 이제 무주·영동군을 향해 정북 방향으로 흐릅니다.
‘금강(錦江)’은 굽이치며 흐르는 물결이 비단결과 같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한때 ‘반역의 강’으로 지목되기도 했는데, 이는 옥천까지 한양 방향으로 잘 올라오다가 갑자기 방향을 왼쪽으로 틀어 서해로 빠져나가기 때문이 아닐까요.
조선시대 각 도별 지형을 간략하게 정리해서 보여주는 ‘도별도’를 보면 하천 수계의 분포가 얼마나 중요한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남·북한강, 임진강, 달천 등 한강 수계의 모든 물줄기는 한양으로 모입니다. 낙동강 수계도 마찬가지죠. 강원도 태백에서 지리산 동쪽까지, 모든 물줄기가 모여 부산으로 흐릅니다. 이들 하천은 세금 걷는 데 최적의 조건이죠.
반면 ‘충청도’ 지도를 보면 금강은 한양으로 올라오는 듯 보이지만 옥천에서 방향을 틀어 서해바다로 가버립니다. ‘전라도’ 지도를 볼까요? 만경·동진강, 영산강, 탐진강, 섬진강이 모두 제각기 다른 곳으로 흐릅니다. 충청도보다 더 심란합니다.
너른 들판에 여러 개의 강은 제각기 다른 곳으로 흐르니 당연히 지역색과 자주성이 강한 특징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이런 지방색이 중앙 조정의 눈으로 보면 ‘반역’이 아니었을까요?

조선조의 광주사태, 기축옥사의 무대 0000
금강 본류와 덕유산에서 내려온 구량천이 만나는 ‘죽도’는 ‘조선조의 광주사태’로 불리는 기축옥사의 주인공 정여립(1546~1589) 선생이 죽은 곳입니다.
죽도는 정확하게 용담호 만수위 선상에 있습니다. 만수위가 되면 금강과 구량천이 만나는 아름다운 물굽이는 물속에 잠기고, 금강 물줄기가 휘감아 섬처럼 보이는 죽도는 진짜 섬으로 바뀝니다. 수몰 이후 죽도로 들어가는 길은 끊어졌습니다. 산 위로 우회도로가 났고 옛 죽도 유원지 언덕은 서서히 별장지로 바뀌고 있죠.
이곳 죽도에서 구 용담면까지 금강은 전형적인 감입곡류로 곳곳이 영월 동강처럼 아름다운 바위·절벽지대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용담댐 건설 이 비경지대는 모두 물속에 잠겼습니다.
용담댐 바로 아래로 내려가면 강 한가운데 수석처럼 아름다운 바위가 하나 서 있습니다. ‘섬바위’라는 이름의 이 바위는 다행히 용담댐 바로 하류에 위치한 까닭에 수장을 면했습니다.
그러나 섬바위 물속으로 들어가면 발이 저릴 정도로 차가운 기운이 느껴집니다. 용담댐 방류수가 강물 온도를 이렇게 바꾸어놓은 겁니다.
따뜻하고 맑은 물속으로 잠수하면 물고기들의 천국이 펼쳐지던 곳이 물때가 잔뜩 끼어 걸어다닐 수도 없을 정도로 변했습니다. 주변 자갈밭에는 시퍼런 풀들이 무성하게 자랐습니다. 용담댐 담수 이후 홍수와 갈수라는 자연적인 변화가 사라지면서 금강 상류 생태계에는 이미 이런 변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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