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검은재앙 1년 '끝나지 않은 악몽'

지역내일 2008-12-05 (수정 2008-12-05 오전 8:44:15)
배상 늦어져 주민 생계 막막 … 피해배상·환경복원 서둘러야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사상 최악의 기름유출 참사가 빚어진 지 7일로 꼭 1년이 된다. 검은 기름파도에 묻혔던 태안은 외관상으로는 옛 모습을 회복했다. 삶의 터전을 되살리려는 주민들 절규와 120만 자원봉사자들 헌신이 있어서 가능했다. 하지만 생태계 복구와 피해배상 문제, 주민 건강과 공동체 복원은 오랫동안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았다.


검은 파도 ‘재앙’…
2007년 12월 7일 오전 7시 6분경. 충남 태안군 소원면 만리포 북서쪽 10㎞ 해상에서 삼성중공업 크레인선이 표류하다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를 들이받았다. 허베이스피리트호에 실려있던 원유 1만2547㎘가 바다로 쏟아졌다. 1995년 여수 씨프린스호 사고(5035㎘)때보다 2.5배나 많고, 1997년 이후 10년 동안 발생한 사고로 유출된 기름을 합친 양(1만234㎘)보다도 많다.
사고발생 14시간여 만에 거대한 기름띠가 일대 해안선을 덮쳤다. 사고 발생 한 달 후에는 기름막이 제주 지역까지 확산됐다.
이 사고로 해안선 1105㎞가 오염됐다. 태안 서산 등 서해안 6개 시·군 굴·김·전복·미역 양식장 820곳(1만5039㏊)과 조피볼락 넙치 등을 기르던 육상 종묘시설 81곳(248㏊)이 피해를 입었다. 해수욕장 15곳이 문을 닫아야 했고 음식점(4067곳)과 콘도·숙박업소(1092곳)의 피해도 심각했다. 저서생물 생태계 50~80%가 파괴됐다. 굴 양식을 하던 어민 이 모씨 등 태안 주민 3명이 기름피해를 비관해 목숨을 끊기도 했다.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어촌계장 이충경(37)씨는 “그 땐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눈앞이 캄캄했다”며 “다시 생각하기조차 싫은 악몽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


자원 봉사 ‘기적’…
123만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검은 바다는 ‘기적’같이 새로 태어났다.
기름 범벅이 된 바닷가에는 이튿날부터 기름을 퍼내고 바위에 묻은 기름을 닦아내려는 자원봉사자들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사고 발생 열흘 만인 12월 16일 10만명을 돌파한 뒤 3~4일 간격으로 10만명씩 늘었다. 22일에는 30만명, 29일에는 50만명을 넘어섰다. 올해 들어서도 평일 6000여명, 주말과 휴일에는 1만여명이 끊임없이 서해안을 찾아 구슬땀을 흘렸다. 사고발생 70여일만인 지난 2월 21일 자원봉사자는 마침내 100만명을 돌파했다.
신혼여행을 대신해 기름제거에 나선 신혼부부도 있고 버스 안에서 기말고사를 보며 달려온 대학생도 있다. 공무원 회사원 학생 주부 등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손길을 보탰다. 시각장애인과 결혼이주여성도 함께 했다.
자원봉사자 123만명은 한편의 드라마처럼 감동적인 기적을 일궈냈다. 죽음의 바다는 조금씩 생명을 되찾았다. 3월부터는 기름피해를 입은 바닷가에 갈매기 떼가 다시 날았고 고둥과 게들이 다시 갯벌을 기어다니기 시작했다.
이완구 충남지사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특별한 혜택이 주어진 것도 아닌데 이처럼 많은 국민이 자원봉사 대열에 합류한 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일”이라며 “자원봉사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손길이 ‘서해안의 기적’을 이뤄냈다”고 말했다.
충남도는 서해안 복구의 일등공신인 자원봉사자들 활동을 기념하기 위해 ‘자원봉사승리기념관’을 건립키로 했다.


피해 배상 ‘난항’…
사고 후 1년. 겉모습은 예년으로 돌아갔지만 생계 터전을 잃어버린 주민들의 삶은 여전히 황폐하다. 정부에서 긴급생계자금과 방제작업 인건비 일부를 지급해 그나마 급한 불은 껐다. 하지만 정상적인 생활은 어렵다. 9월부터 태안군 내 모든 지역에서 어업이 재개됐지만 어업 여건이나 어획량 등이 현저히 떨어져 생계유지에는 태부족이다.
최대 관심은 피해배상에 쏠리고 있다. 지금까지 태안 주민들이 접수한 피해신고 건수는 모두 7만1000여건(수산분야 5만5000여건, 비수산분야 1만6000여건)이다. 이 중 갯벌에서 바지락이나 낙지 등을 잡아 파는 맨손어업이 4만4000여건에 이른다.
그러나 지금까지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 FUND)에 접수된 배상 청구는 1403건 뿐이다. 그나마 방제비 133억원을 제외한 개인배상으로는 펜션업자 김 모씨가 5700만원(청구액 1억800만원)을 받은 게 전부다.
이처럼 피해배상 신청이 늦어지는 것은 피해지역이 넓고 유형도 다양해 손해사정인의 현지 조사에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민피해대책위가 34개나 난립해 각자 피해액을 산정하고 있고 일부 주민들은 막연한 보상심리로 피해 신고를 늦추기도 한다.
맨손어업 보상도 문제다. 국제기금이 입증자료가 있어야 보상한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상황지만 증거 제시가 쉽지 않아 배상 여부가 불투명하다. 현금거래를 선호하는 우리 상거래 특성상 다른 분야도 증거제시가 쉽지 않다. 피해액 산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피해 배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주민 불만이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주민들에게 피해 보상을 하고 가해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최한진 주민피해대책위연합회 사무국장은 “정부가 주민보다는 국제기금이 추정한 액수에 매몰돼 피해 규모를 산정하고 있는 것 같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권희태 충남도 유류사고대책본부장은 “피해사실 조사가 내년 2월까지는 마무리될 예정이어서 3월 중 보상금 지급청구가 이뤄지면 6·7월부터 배상금이 지급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 FUND)이 지난 10월 추정한 사고 피해액은 최소 5663억원에서 최대 6013억원이다. 주민들 주장에는 크게 못 미치는 금액이다. 주민들은 “피해액이 최대 3조원까지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환경 복원 ‘숙제’…
정부와 충남도 태안군 등은 태안지역 오염지표들이 사고 직후에 비해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는 발표를 연일 내놓고 있다. 국토해양부 자료에 따르면 기름농도를 나타내는 바닷물의 총석유계탄화수소(TPH) 농도가 사고 직후 720ppb(1ppb는 1000분의 1ppm)였는데 지금은 환경기준(10ppb)보다 낮은 3ppb로 낮아졌다. 굴 체내에서 검출된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의 평균농도도 사고 직후 487ppb였지만 올 7월부터 사고 이전(2001년 만리포 기준 42ppb)과 비슷한 48ppb 이하로 떨어졌다. PAHs는 기름에 함유된 발암물질로 기름 오염에 의한 위해성을 평가하는 데 사용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환경파괴 정도가 예상보다 심각하고 복원에도 상당 기간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평주 서산·태안 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생태계 복원의 희망은 보이지만 일부 해조류와 극피동물이 잡자기 늘어나는 등 이상 현상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며 “사고 이후 생태계 질서에 큰 혼란이 발생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장지영 생태지평연구소 연구원은 “기름유출 사고를 겪은 미국 일본 스페인에서도 사고 3~4년 뒤나 되서야 이상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태안도 깨끗해졌다고 단정하거나 안심할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생태계 조사와 보건 프로그램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주민 건강을 위한 자활 프로그램 마련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장지영 연구원은 “스페인은 사고 6년이 지난 올해 들어서 기름 성분이 지역 주민 건강에 유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거나 암 발병율이 눈에 띄게 나타나는 등 후유증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 태안을 찾은 세계적 독성학자 리키 오트(54·미국) 박사도 “유류성분이 뇌를 손상시켜 조울증과 같은 신경계 손상도 나타나고 있다”며 “태안 주민들의 유류성분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1989년 기름피해를 입은 알래스카 주민들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메스꺼움 두통 어지럼증을 호소한다는 것이다.
태안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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