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적 정치현실·행정의 전횡 … 이름뿐인 남녀평등·열악한 노동실태에 거부감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거짓말
스기타 사토시 지음 / 양영철 옮김
말글빛냄 / 1만3000원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가장 가까이 사는 한국인들조차도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많지 않다.
세계의 경찰 미국을 상대로 싸움을 걸었던 역사적 사실 때문에 일본에는 강대국 이미지가 있다. 우리가 아시안 게임조차 유치할 힘도 뜻도 없었던 때에 일본은 올림픽을 유치해 세계국가가 되었다. 국토의 면적도, 인구도, 국민소득도 우리가 넘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온갖 생필품과 공산품들은 한국인에게 ‘하쿠라이’(舶來品)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하쿠라이’란 일본인들이 동경하던 서양 문명국 제품의 총칭이었다. ‘선박을 타고 먼 나라에서 수입되어 온 좋은 물건’이라는 뜻의 일본어가, 역으로 우리에게 일본과 미국에서 수입된 질 좋은 물건의 대명사로 통했던 시대가 있었다.
그런 일본을 일본인 자신이 “일본을 선진국이라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선언한 책이 나와 화제다. 말글빛냄 출판사가 내놓은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거짓말’이다. 홋카이도 오비히로 축산대학 교수인 저자 스기타 사토시 교수는 서문에서 “일본은 선진국이라기보다 개발도상국에 가까우며, 분야에 따라서는 오히려 후진국에 가깝다”고 단언하고 있다.
그는 올가을 홋카이도 도야코에서 일본정부 주최로 열린 G-8 정상회의를 예로 들어, 지구온난화와 빈곤문제를 다루는 회의장소가 마땅히 교토(京都)가되어야 할 텐데, 경치 좋은 호숫가에서 개최된 사실부터 문제 삼았다. 지구온난화 방지협약인 교토의정서를 앞장서 실천할 의지와, 지구촌 빈곤문제 퇴치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드러낸 처사라는 것이다.
저자가 일본을 선진국이 아니라고 강변하는 첫 째 이유는 ‘후진적인 정치현실’이었다. 근년 일본국민 5,000만 명분의 연금기록이 통째로 날아가 버린 사건을 부패하고 무능한 행정의 표본으로 본 것이다. 그는 일본정부가 국민에게 군림하는 ‘행정지도’ 역시 일본을 후진국으로 만든 요인이라고 질타했다. 법 규정이 아니라 담당 관료의 재량권에 좌우되는 이 ‘행정의 전횡’은 세계에 유례가 없다는 것이다.
각종 법률의 규정을 애매하게 해 놓고 세부사항을 ‘성령’(省令) ‘규칙’ ‘통달’ 등 하부규정에 위임해 역사교과서 검정 문제 같은 국제적인 말썽을 일으킨 것을 그 사례로 들었다.
정경유착과 낡은 선거제도에 관해서도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다. 저자는 일본정치를 왜곡시키는 두 번째 요인으로 재계의 대정부 로비를 들었다. “일본경제단체연합(경단련)이 거의 매일 자민당과 정부에 정책요구서를 들이미는 배경에는 연간 수십억 엔의 정치헌금이 있다”면서, 너무 많은 정당교부금과 불투명한 용도를 문제 삼았다.
“지난 13년 동안 선거에서 불과 40%의 득표율 밖에 얻지 못한 자민당은 의회에서 80% 가까운 의석을 차지했다. 만약 완전한 비례대표제가 실시된다면 자민당은 이미 단독으로는 정권을 잡을 수 없는 정당이 되었을 것이다.”
저자는 일본의 선거제도를 ‘후진국과 오십보백보’라고 표현했다. 선거기간 중 입후보자의 호별방문 금지와 후보등록 시 3,000만 엔에 이르는 공탁금 제도를 그 근거로 제시했다.
사법의 독립성도 문제 삼았다. 저자는 “삼권분립이라는 말은 초등학생도 알지만 그것이 유명무실해졌다는 사실은 대학생이라도 알지 못 할 것”이라며, 그 원인을 법원이 위헌법률심시권을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미사일 기지 건설을 위해 홋카이도 나가누마 마을 보안림을 해제한 사건에 삿포로 지법 재판장이 위헌판결을 내린 1973년 ‘나가누마 사건’을 예로 들었다. 그 판결 이래 재판장이 도쿄에 진출하지 못 한 것은 위헌결정에 대한 법원행정 당국의 보복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2차 대전 패전 이래 60년이 넘도록 일본법원에서 내려진 위헌판결이 단 6건뿐인 사실이 일본 사법부의 독립성을 의심하게 하는 근거라고 했다.
과도한 중안집권 시스템도 도마에 올랐다. 중앙집권이 강하기로 유명했던 나라였던 프랑스가 미테랑 대통령의 개혁으로 크게 완화됨으로써, 이제 일본이 세계유일의 중앙집권 국가가 되었다고까지 단언했다. 이제 겨우 학급정원 40명을 벗어난 과밀학급 문제, 초등학생들까지 기진맥진하게 만드는 교육제도, 어디서나 명문대학 출신만을 선호하는 학력사회, 교과서 검정으로 사상을 통제하는 교육행정, ‘학습지도 요령’이라는 관료의 전횡에 교사들이 신음하는 교육의 획일성, 유럽 사람들이 웃을 성교육의 경직성, 너무 비싼 사교육비와 대학등록금렁?이런 문제들이 모두 일본을 선진국으로 볼 수 없는 까닭이라고 했다.
그 밖에도 이름뿐인 남녀평등, 방치된 보육환경, 열악한 노동의 실태, 거꾸로 가는 환경정책 등을 들어 저자는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그 기준을 적용할 때 한국은 어느 수준에 와 있는가를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다. 지난 해 대통령선거를 계기로 요즘 우리 사회에는 선진국 담론이 한창이다. 환율약세 때문이었다고는 하지만, 지난 정권 때 국민소득 2만 달러가 달성된 뒤로, 국민 일반에서도 선진국 편입욕망을 드러내는 사람이 많아졌다.
과연 우리에게 ‘선진국 타령’을 할 자격이 있을까. 그 해답은 독자들 스스로 명쾌하게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문창재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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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선진국이라는 거짓말
스기타 사토시 지음 / 양영철 옮김
말글빛냄 / 1만3000원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가장 가까이 사는 한국인들조차도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많지 않다.
세계의 경찰 미국을 상대로 싸움을 걸었던 역사적 사실 때문에 일본에는 강대국 이미지가 있다. 우리가 아시안 게임조차 유치할 힘도 뜻도 없었던 때에 일본은 올림픽을 유치해 세계국가가 되었다. 국토의 면적도, 인구도, 국민소득도 우리가 넘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온갖 생필품과 공산품들은 한국인에게 ‘하쿠라이’(舶來品)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하쿠라이’란 일본인들이 동경하던 서양 문명국 제품의 총칭이었다. ‘선박을 타고 먼 나라에서 수입되어 온 좋은 물건’이라는 뜻의 일본어가, 역으로 우리에게 일본과 미국에서 수입된 질 좋은 물건의 대명사로 통했던 시대가 있었다.
그런 일본을 일본인 자신이 “일본을 선진국이라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선언한 책이 나와 화제다. 말글빛냄 출판사가 내놓은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거짓말’이다. 홋카이도 오비히로 축산대학 교수인 저자 스기타 사토시 교수는 서문에서 “일본은 선진국이라기보다 개발도상국에 가까우며, 분야에 따라서는 오히려 후진국에 가깝다”고 단언하고 있다.
그는 올가을 홋카이도 도야코에서 일본정부 주최로 열린 G-8 정상회의를 예로 들어, 지구온난화와 빈곤문제를 다루는 회의장소가 마땅히 교토(京都)가되어야 할 텐데, 경치 좋은 호숫가에서 개최된 사실부터 문제 삼았다. 지구온난화 방지협약인 교토의정서를 앞장서 실천할 의지와, 지구촌 빈곤문제 퇴치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드러낸 처사라는 것이다.
저자가 일본을 선진국이 아니라고 강변하는 첫 째 이유는 ‘후진적인 정치현실’이었다. 근년 일본국민 5,000만 명분의 연금기록이 통째로 날아가 버린 사건을 부패하고 무능한 행정의 표본으로 본 것이다. 그는 일본정부가 국민에게 군림하는 ‘행정지도’ 역시 일본을 후진국으로 만든 요인이라고 질타했다. 법 규정이 아니라 담당 관료의 재량권에 좌우되는 이 ‘행정의 전횡’은 세계에 유례가 없다는 것이다.
각종 법률의 규정을 애매하게 해 놓고 세부사항을 ‘성령’(省令) ‘규칙’ ‘통달’ 등 하부규정에 위임해 역사교과서 검정 문제 같은 국제적인 말썽을 일으킨 것을 그 사례로 들었다.
정경유착과 낡은 선거제도에 관해서도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다. 저자는 일본정치를 왜곡시키는 두 번째 요인으로 재계의 대정부 로비를 들었다. “일본경제단체연합(경단련)이 거의 매일 자민당과 정부에 정책요구서를 들이미는 배경에는 연간 수십억 엔의 정치헌금이 있다”면서, 너무 많은 정당교부금과 불투명한 용도를 문제 삼았다.
“지난 13년 동안 선거에서 불과 40%의 득표율 밖에 얻지 못한 자민당은 의회에서 80% 가까운 의석을 차지했다. 만약 완전한 비례대표제가 실시된다면 자민당은 이미 단독으로는 정권을 잡을 수 없는 정당이 되었을 것이다.”
저자는 일본의 선거제도를 ‘후진국과 오십보백보’라고 표현했다. 선거기간 중 입후보자의 호별방문 금지와 후보등록 시 3,000만 엔에 이르는 공탁금 제도를 그 근거로 제시했다.
사법의 독립성도 문제 삼았다. 저자는 “삼권분립이라는 말은 초등학생도 알지만 그것이 유명무실해졌다는 사실은 대학생이라도 알지 못 할 것”이라며, 그 원인을 법원이 위헌법률심시권을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미사일 기지 건설을 위해 홋카이도 나가누마 마을 보안림을 해제한 사건에 삿포로 지법 재판장이 위헌판결을 내린 1973년 ‘나가누마 사건’을 예로 들었다. 그 판결 이래 재판장이 도쿄에 진출하지 못 한 것은 위헌결정에 대한 법원행정 당국의 보복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2차 대전 패전 이래 60년이 넘도록 일본법원에서 내려진 위헌판결이 단 6건뿐인 사실이 일본 사법부의 독립성을 의심하게 하는 근거라고 했다.
과도한 중안집권 시스템도 도마에 올랐다. 중앙집권이 강하기로 유명했던 나라였던 프랑스가 미테랑 대통령의 개혁으로 크게 완화됨으로써, 이제 일본이 세계유일의 중앙집권 국가가 되었다고까지 단언했다. 이제 겨우 학급정원 40명을 벗어난 과밀학급 문제, 초등학생들까지 기진맥진하게 만드는 교육제도, 어디서나 명문대학 출신만을 선호하는 학력사회, 교과서 검정으로 사상을 통제하는 교육행정, ‘학습지도 요령’이라는 관료의 전횡에 교사들이 신음하는 교육의 획일성, 유럽 사람들이 웃을 성교육의 경직성, 너무 비싼 사교육비와 대학등록금렁?이런 문제들이 모두 일본을 선진국으로 볼 수 없는 까닭이라고 했다.
그 밖에도 이름뿐인 남녀평등, 방치된 보육환경, 열악한 노동의 실태, 거꾸로 가는 환경정책 등을 들어 저자는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그 기준을 적용할 때 한국은 어느 수준에 와 있는가를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다. 지난 해 대통령선거를 계기로 요즘 우리 사회에는 선진국 담론이 한창이다. 환율약세 때문이었다고는 하지만, 지난 정권 때 국민소득 2만 달러가 달성된 뒤로, 국민 일반에서도 선진국 편입욕망을 드러내는 사람이 많아졌다.
과연 우리에게 ‘선진국 타령’을 할 자격이 있을까. 그 해답은 독자들 스스로 명쾌하게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문창재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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