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질로 허송한 국정조사
“국정조사 한다고 난리 치더니 겨우 이겁니까. 우리가 보기에는 당 싸움이지, 국민 위한 국회가 아니예요. 어떻게 그리도 뻔뻔스러운지, 원!”
엊그제 쌀 직불금 국정조사 TV 뉴스에 나온 한 농민의 코멘트는 원망을 넘어 한탄으로 들렸다. 회기를 두번이나 연장하고도 증인과 참고인 말 한번 들어보지 못하고 간판을 내리게 된 국회 쌀 직불금 국정조사특별위원회(특위)에 관한 언급이었다.
이런 한탄에 대한 정치인들과 관계부처 책임자들 생각은 어떨지 궁금하다. 이럴 양이었으면 애당초 시작을 말든지, 시작했으면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옳지 않은가.
국회 특위가 출범한 것은 40일 전인 11월 10일이었다. 첫날부터 정부가 직불금 부당수령자 명단을 제출하지 않아 특위는 2주일 동안이나 공전했다. 우여곡절 끝에 첫 회의를 연 날이 11월 24일이었다.
그 이후 어떤 활동이 있었는지 알아보려고 국회 홈페이지 ‘회의관련 정보’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더니, 회의가 열린 날은 7일에 불과했다. 첫날인 11월 24일은 개의로 지나갔고, 다음날은 부당수령자 명단제출 거부 기관장 해임 및 고발 안건으로 설왕설래만 했다.
그 다음부터는 관계부처에 대한 서류제출 요구와 관련기관 보고, 실경작자확인 자료 보고, 증인 및 참고인 공청회 등으로 일정이 잡혔다. 그러나 어느 것 한 가지 시원하게 처리된 사안이 없었다. 12월 10일 이후는 회의가 중단상태다. 이러니 국회에 원망과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실랑이와 책임전가 끝에 그럭저럭 굴러가는 것 같던 특위활동이 완전히 정지된 것은 증인과 참고인을 부르는 안건 때문이었다. 사단은 한나라당 김학용 의원을 증인으로 ‘세우자’ ‘안 된다’ 하는 싸움이었다.
민주당은 직불금 받은 김 의원을 불러 증언을 들어야 하겠다고 하고, 한나라당은 “지난 정권의 청와대와 감사원 관계자를 부르게 될 것이 두려운 민주당의 발목잡기”라고 받아치며 김 의원 증인채택을 막았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16일부터 사흘간으로 예정되었던 청문회는 무산되고 말았다. 그 뒤로는 내년도 예산안과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 강행처리 등 첨예한 정치현안에 파묻혀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말았다. 남은 특위 활동기간은 이제 불과 사흘이다.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22일)이면 간판을 내려야 한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은 한 그 사이에 국민의 의구심을 풀어줄 활동을 기대하기는 어렵게 됐다.
정치불신 풍조와 국회무용론은 이래서 더욱 무성해지는 것이다. 특위활동 기간 중 소속위원들은 600만원씩의 활동비를 받았다. 쌀농사를 짓고도 당연히 받아야 할 지원금을 받지 못한 농민들은 쉽게 만져보기도 어려운 돈이다. 당연히 할 일을 수당까지 받아가면서, 성과는커녕 불신만 키운 국회에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국민이 있을까.
이 문제에 관해 국정조사를 한다고 했을 때 국민의 기대가 컸던 것은 첫째, 지난 정권이 감사를 통해 사실을 적발하고도 묻어두었던 이유가 궁금해서였다. 둘째, 부당수령자 면면을 낱낱이 밝혀 잘못 지급된 돈을 못 받은 농민들에게 돌려주어야 하고 셋째, 다시는 이런 부조리가 일어나지 못 하도록 법과 제도를 완벽하게 손보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 것도 이룬 것 없이 간판을 내리게 됐으니 처음부터 짜고 한 일이라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지 않은가. 주도권을 행사해야 할 한나라당은 부당수령자 명단에 들어 있는 현역의원 몇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민주당은 지난 정권의 책임을 호도하기 위해 그럴듯한 명분을 관철하는 척 하면서 세월만 가기를 기다린 것이 아닌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쌀 직불금 파동으로 지금 농촌에는 내년 농사를 걱정하는 한숨소리가 높다. 부당수령 혐의를 받은 부재지주들이 자경(自耕)의 형식을 갖추려고 농지를 회수하는 바람이 불어 소작농들이 생계수단을 빼앗기게 된 것이다.
국회가 이런 농촌현실을 안다면 회기를 연장하는 특별결의를 해서라도 맡은 바 소임을 다 해야 한다. 한미 FTA 때문에 더욱 피폐해질 농민을 생각해서라도 비준안 문제에 사생결단을 할 게 아니라, 농민의 생계가 더 화급함을 인식하기 바란다.
문 창 재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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